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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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사의 힘을 믿는 편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야기의 힘을 말이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을 때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이야기의 힘을, 과연 다른 책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우연치 않게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가 조금은 늘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해서 사실 이번 <7년의 밤>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내 심장을 쏴라>도 당시에 읽을 땐 그랬지만, 후에 생각해보니 단편적으로나마 이야기의 장면들이 떠올라,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래, 다시 한 번 믿어보자 하며 <7년의 밤>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초반까지는 잘 몰랐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더 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덮은 뒤에는, 조금은 속된 표현이지만, 물건 하나 나왔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야기는 내가 처음에 읽기 시작하기 전, 가졌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하드했다. 사실 보통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의 이야기 정보를 얻은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 <7년의 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었기에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심지어 배경조차 모르고 무턱대고 읽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하드한데도 서사가 매끄러웠던 것이 장점이 되어서 일까. 속도감 있게 책장이 넘어갔다. 인물들의 시점에 따라 전개되는 방식도 참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방식을 택해서 독자들이 궁금증을 일으켜 뒷장을 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퍼즐 맞추든 하나하나 짜맞춰가며 읽는 재미가 좋았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인물들, 캐릭터들의 성격이었다. 현수는 승환, 영제를 비롯해 서원까지. 인물들이 제 각기 자신들의 삶을 이고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섬세하고 잘 짜여진 인물들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현수의 행동이 조금은 우연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는데,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는 그런 점이 다른 장점들에 의해 많이 가려졌지만, 초반부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을 땐, 너무 충동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자세한 정보들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세령 마을을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다. 디테일한 정보를 주어서 오히려 좋았지만, 그만큼 늘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세세한 부분들이다 보니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야구에 대한 정보는 너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야구는 많은 이들이 아는 분야이고 좋아하는 분야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조금은 더 자세하게 해주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이들의 취향을 살펴서 이야기에 담아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독자인 우리들의 아집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제의 캐릭터도 나중에 다 읽고 나서는 조금은 난해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물이 너무 극과 극을 달린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인물들이 많지만, 뭔가 조금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현수를 범인으로 생각하는 점도, 조금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물론 현수의 행동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읽는 내내 영제가 현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부분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에 비해 이야기의 힘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 병동이라는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면서 읽는 내내 상당히 고역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서는 그때와 달리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 세령 마을을 창조해낼 만큼의 상상력이 무척이나 대단했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이 <7년의 밤>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렇게 보였다. 인물, 배경, 서사, 스토리 등 하나도 빠짐없이 만족스러웠던, 괴물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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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4-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7년의 밤이 음식이 되어서는 사람의 입 속에 녹아 들고 있는 맛으로 놓고 평가하는 미각적 차원의 미학적 감각으로 꼼꼼하게 이야기 해 주시는 내용들 감동있게 잘 들었던 독자라 몇 자 적어 보고 나갑니다. 소설도 참 좋아 하시는 것 같고, 소설의 묘미랑 맛을 제대로 느끼고 계시는 안목에 부러움을 표현 해 봅니다.

괭이 2011-04-29 22:21   좋아요 0 | URL
변변치 않은, 제 주관적인 평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