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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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집어든 책으로 가장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술술 읽히는 김영하의 작가의 책.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독 지난 내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름대로 정직했다고 장담할 수 있었던 내 십대에 대해서 말이다.

 

 

김영하 작가의 최신작이라면 최신작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었던 텍스트였다.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내가 상상하며 그려왔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주인공인 ‘제이’라는 인물의 모습을 떨쳐내는 일이었다. 흔히들 바라는 ‘오글’거리는 일이라 단 한 번도 책을 읽고 그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읽고 눈물 날 뻔 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제이는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제이라는 인물이 무엇 때문에 그리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일까. 사실 제이는 지극히 상투적이며 쌍팔년도적 레퍼토리를 답습하고, 막장으로 치닫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고속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나고, 돼지엄마에게 키워지며 룸살롱과 지하방에서 자란다. 또한 십대에 들어서는 자신의 또래들이 눈앞에서 난장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고 훗날 거기에 동조하기도 하며, ‘싯타르타’라고 불리기도 했고, 거리에서 지내며 생쌀을 씹어 먹고 폭주를 뛰기도 할뿐더러, 여러 여자아이들을 건드리기도 한다. 이 수많은 폭력과 안정적이지 못한 제이의 일생 중 가장 내 인상에 깊게 남은 장면은 무엇보다도 대학로에서 목란을 만났을 때다. 목란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비보잉을 하는 소년이 제이에게 다가와 으름장 아닌 으름장을 놓고 영장이 나왔을 때 잘라버린 검지를 보여주는 장면.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 아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에 내몰려 있는지를 나도 모르게 절감해버리고 말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가장 강렬하게 내 인상에 남은 것은 비단 ‘제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이 텍스트 자체가 무척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경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가 하늘로 승천하는 부분. 봤지만 믿을 수 없는 장면. 그 장면으로 치닫기까지 펼쳐진 지나치게 현실적인 부분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겠냐고. 하지만 일어난다. 어린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집을 나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생활을 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것은 명백한 현실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이끌어간 이야기가 후반에 이르러서 제이가 성수대교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 이 장면은 분명한 환상이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났지만 그런 일이 말 그대로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날 순 없지 않은가. 이렇듯, 작가는 앞에서는 현실적인 부분들로 이끌어와 결말 부분에서 비현실적인 경계로 주인공을 내던진다. ‘신화’가 그렇듯. 분명히 본 사람은 있고, 그 중에서도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 부분을 관통하는 지점에 놓여 있는 텍스트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나는 제이가 말 그대로 죽지 않았으면, 영원히 살아 있었으면 싶었다. 내게 있어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등장하는 ‘제이’는 내 첫 주인공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단 한 번도 소설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내 자신을, 내 모습을 투영해 바라보았던 인물. 부러워했던 인물. 현실과 비현실사이로 들어가 버린 그 인물. 나는 이 인물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살아 있는 인물로 남았으면 싶다.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는 정직했다고 생각하는 지나온 십대를 생각했다. 지극히 모범적이었다고 생각되는 내 십대가 이 글을 읽고 나니 조금 재미없다고 생각되었다. 조금은 비겁해도 되었을 십대. 단 한 번만이라도 규율이나 통제를 벗어나 일탈을 해봤어도 좋았을 텐데. 그때를 즐겼더라면, 정말 생각없이 온전히 빠져들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등장하는 제이라는 인물을 보며 이렇게 큰 공감과 상실감, 부러움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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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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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점들은, 르네상스, 화가들은 배가 고프다, 사연이 많은 화가들이 많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피카소, 고흐, 고갱 등등. 이 정도에 아주 단적이면서도 단어로도 표현될 수 있는 짧은 지식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반면에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멀리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리는 게 좋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 미술 좀 아는 사람이야, 하는 식의 남들에게 뽐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을까. 셋 중 어느 것이더라도, 내가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미술에 대해 관심만 많아서일까. 언제나 예술 관련 서적이나 화집, 미술품에 대한 글은 잘 읽지 못하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있는 분야이기에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가지만 중반부를 넘어서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관심만 있을 뿐,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그림을 애찬 하는 글에 대한 이해불과, 원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같은 점들을 느끼지 못하는 등. 결국은 무지에서 오는 것들이 이런 미술, 예술 관련 서적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유명한 그림이지만 내 생각에는 이게 대체 왜 유명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물론 중세시대에 정말 사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진 작품들을 볼 때면, 대체 이걸 어떻게 그린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 때마다 언젠가 미술 공부를 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하고 생각했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무서운 그림>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고, 표지 속에 그려진 여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제목과 맞아떨어지는 분위기를 내면서 관심이 생겼다. 물론 그 뒤로도 다른 책들을 읽느라 뒷전으로 미루어두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가 닿아 읽게 된 이 책은, 조금은 예상 밖이었다. 물론 여전히 미술품에 대한 작가는 애찬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이 조금은 나에게 와 닿지 않는 면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보여주고 그 당시의 사회적 풍경과 작가 개인의 문제 등을 끌어들이면서 효과적으로 이해를 돕고 있었다. 새롭게만 느껴졌다.


이 책은 명화를 소개하고, 그 명화에 대한 보편적인 평가와 시선을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안으로 점점 이야기를 파고들어간다. 화가 개인의 불우한 생활과, 작품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 당시 시대상의 모습을 서술한다. 그럼으로써 이 작품을 세세하게 파헤치고, 이 그림이 어째서 무서운 그림인지 소개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일 앞에 실린 드가의 <에투알>이었다. 과감하게 붓을 사용해 표현한 이 작품은 최근 텔레비전 광고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또 미술교과서와 같은 곳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 소개된, 배경과 무용수들의 당시 사회적 지위 등을 깨닫고, 작품 뒷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의 존재 등을 깨달아가며, 이 작품이 완전히 아름다운 작품이라고만은 볼 수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일 첫 부분에 실린 만큼 그만큼의 충격도 상당히 강했던 작품이다.


이 <무서운 그림>이 좋았던 이유는 한 가지 점이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다른 미술과 관련된 서적에서 보이는 미술품에 대한 애찬적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이 작품이 아름답고 또 그러한 것들을 부각시키는 것만이 아닌, 명화 속에 숨겨진 스토리를 그려내 준 다는 점에서 <무서운 그림>이라는 책은 무척이나 다르게 느껴졌다. 또 물론 이것은 독자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목에서 주는 ‘무서운’이라는 소재를 적절히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20편의 명화들은 저마다 ‘무서운’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이라는 자극적임을 들쑤신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읽게 만든다. 간간히 삽입된 보조 설명을 돕는 명화들 또한 그렇다.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표현하기 힘든 작품들. 그러한 작품들을 배치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많은 미술서적을 읽어보려고 시도했고, 몇 번은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중간에서 그만두게 되었는데, <무서운 그림>은 끝까지 읽게 되었다. 재밌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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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들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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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무수히 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있다. 살인과 같은 범죄 이야기들이 특히나 그렇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무리 기분이 좋던 날이라도 금세 시무룩해지고,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야할 앞으로가 왠지 무섭게만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나는 살인이나 강간, 강도질 등과 더불어 어떠한 것에 특히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것이 바로 청소년범죄이다. 청소년들의 온갖 범죄 행위를 인터넷 기사나 뉴스를 통해 볼 때면, 어째서 저랬을까, 하는 마음과 동시에 도대체 어떻게 저러게 할 수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정말 어떻게 해야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에 사람들이 모두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조금씩은 뒤틀린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사소한 문제들>에서 등장하는 이야기 또한 청소년 범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불편함이 나를 들쑤셨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소위 말하는 ‘재수 없게’ 황순구라는 아이에게 걸려든 아영. 이 아이가 황순구라는 아이에게 도망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가출이라는 방법이었다. 가족도 이 아이에게는 온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순구.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손에 힘을 주어 불끈불끈 했는지 모른다. 이 아이가 저지르는 온갖 범죄들. 성인이었더라면 단박에 잡혀 들어갔을 행위들이 이 아이는 청소년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자유롭게 행한다. 거의 매춘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일도 서슴없이 말이다.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이렇게까지 치닫을 수가 있는 것일까. 물론 있겠지, 하는 생각을 들면서, 그럼 도대체 왜 어째서 이렇게 까지 간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지곤 했다. 섬뜩한 감정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남아있다.


아영이를 숨겨주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남자. 믿었던 사람들에게 치이기만 하던 사람. 그 때문에 그렇게 은둔생활을 시작했던 것일까. 이 남자도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믿었던 애인에게 계속 당하기만 하던, 단순히 평범하지만 않았던 인생을 살았던 남자. 그리고 앞으로도 평범하지만은 않은 생활을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 결말 부분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전환이 되는 듯싶지만, 이 남자의 성향이 전환 되지는 않으니, 평범하게 만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두식이라는 이름의 남자. 이 남자와 아영의 이야기에서 나는 앞서 만난 황순구의 충격을 조금은 해소시키는 기분이었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반어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소할 수만은 없는 문제들이 계속 툭툭 튀어나왔다. 여전히 하루에 한 두 건씩은 청소년들의 범죄 소식이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으로 터져 나오고, 그 때마다 사람들은 분개하고 다음에 나오는 새로운 소식에 또 다시 분개한다. 사소할 수 없는 문제들. 단순히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른들 보다 끔직한 일을 저지름에도 면죄가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 만약에 나보고 청소년 범죄 처방에 대해 반대하냐고 묻는다면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황순구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래도 이 황순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말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황순구에게 응징을 가하는 아이가 나는 뒤에서 어떠한 활약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아이가 뒤에서 어떠한 활약을 했다면 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칭이나 이름으로 처리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건데, 뭔가 있는 듯이,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처럼 기대감을 심어 놓아서 <사소한 문제들>의 마지막 책장을 다 넘긴 뒤에 이 아이는 결국 안 나왔나? 하며 책을 첫 장부터 다시 한 번 훑게 되었다. 나쁜 아이였지만, 황순구보다 악질이고 황순구가 무서워하는 인물이었지만, 등장해주는 것도 오히려 소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더 크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읽어나가면서 느낀 점이지만, 모 배우 주연의 영화 <아저씨>가 떠올랐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은둔 중인 성인 남자와 아이의 이야기. 기본적인 골격은 다르지만,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 영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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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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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외모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상대방을 평가하기 가장 쉬운 것 중 하나, 상대방을 판단하기에 가장 좋은 척도 등. 이런 것이 아무래도 외모가 가지는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 아닐까.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라면 첫 만남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람은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 테고, 못생긴 사람들이라면 첫 만남에서 좀 아닌데, 별로다,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 백 퍼센트가 전부 첫 만남에서 이런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이어 대화를 나누어보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서 올바르게 생각을 가지고 나갈 것이다. 외모라는 것은 이 정도로 처음 만난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내리는 중요한 수단이다. 여기,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인 <그대의 차가운 손>에서도 ‘외모’로 얽혀있는 사람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들이 등장한다. 뚱뚱한 여자와 모든 면에서 잘난 여자.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와, 그 남자가 써낸 글을 읽는 작가인 또 다른 여자. 이렇게 보면 무척이나 복잡하지만,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간단한 구조이다. 얽혀있는 구조라고는 보기 힘든 작품이다. 아무튼 첫 만남에서 손을 보고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목만큼 ‘손’이 주제가 되는 소설. 여기서는 ‘손’이 외모가 되어 판단의 척도가 되곤 한다.


이야기는 액자형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인 여자는 후배의 연극 공연을 보고 거기서 석고 작품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석고 작품의 작가인 미술가 남자를 만나게 되고, 회식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진다. 그리고 훗날 작가인 여자에게 미술가 남자의 동생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가 쓴 원고를 보여준다. 그것을 읽고 오빠의 행방불명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고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스토리는 이제 미술가 남자의 글 속으로 이어진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두 명의 여자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


살과 함께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던 L, 완벽주의자였지만, 육손이었던 E.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연민이라고 해야 할까. 가끔씩 나는 연민을 느낀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노점상을 하는 아줌마가 커피체인점에서 주는 커피와 케이크 조각을 먹으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고, 민망할 상황을 당한 사람을 볼 때도 그렇고, 뚱뚱한 사람을 볼 때도, 날씬한 사람을 볼 때도 나는 연민을 느낀다. 그리곤 곧 혐오한다. 이런 나한테 말이다. 그런 연민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나는 죄를 지은 듯 고개를 젓곤 한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인물들을 보면서,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이 인물들이 내 머릿속에 유난히 선명히 남았던 것은, 아무래도 연민,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책장을 덮은 뒤로, 나는 이 인물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운형(미술가 남자)의 작품을 모조리 깨부수고 몇 번이나 작업실을 뛰쳐나갔던 L, 언제나 메말라 있던 E, 이 두 여자의 모습은 언제고 그 모습을 툭툭, 드러냈다. 그 인물들이 있었기에 장편소설인데도 호흡을 유지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생생하다고 느꼈다. 인물들이. 그리고 그들의 행동도, 심지어 충동적인 행동들도 모조리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라면 이랬을 것 같아. 그랬을 거야. 이렇게 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지 모른다. 이것도 연민으로 연결 지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또 다시 한강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읽으면서 계속 몰입했고, 읽은 뒤에도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곧잘 까먹는 내가 유일하게, 물론 뚜렷하게까지는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휘몰아치듯 읽어 내려갔고, 읽은 뒤에는 그 잔상에 사로잡혀 며칠 동안 다른 책을 읽어도 계속 이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작품의 이야기들이, 분위기들이, 인물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나에게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곧잘 일어났던 것이다.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행복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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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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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일요일은 언제나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쉬는 날이면서도 동시에 내일부터 학교든 회사든 어디로든 가야하는 날이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늘 아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하루의 마감은 언제나 개그콘서트와 함께 했다. 일요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각각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좋은 날, 이라는 인식이 강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쉬는 날이니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일본 작가 중 한 명인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들도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일요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와 그 어감에 따른 기분 등. 이야기가 결코 경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었다. 쉬는 날 같다, 라는 생각이 말이다.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인, 두 형제의 이야기가 전제로 깔린 채 다섯 편의 이야기로 진행이 된다. 연작 소설인 셈이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일요일의 남자들>이라는 작품이었다. 소소한 이야기 안에 과거 이야기가 끼어들고, 부자지간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 일본 특유의 감동과 함께 교훈을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인 <일요일들>이라는 단편이었다. 파편식으로 등장하던 형제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지점인 이 작품에서 형제의 상봉 장면은 무척이나 따스하게 표현된다. 남자에게 맞는 여성을 화자로 등장시켜, 이 남자와 헤어진 뒤, 훗날 이 형제를 만나는 식의 스토리를 가진 이 작품은 가장 전형적인 일본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물론 내가 많은 일본 소설을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 같았기에, 가장 일본식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단편과 달리 외국의 단편들은 나는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단편은 이야기가 확실히 끝난다, 는 느낌이 드는 반면, 외국의 단편들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라면 그것이 더 부각된다. 사소설이 발달한 일본의 경우, 일상의 소소한 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물론 엄청나게 많고, 그것에 대한 반증으로 우리나라에서 일본문학의 수요도 많은 것이 사실이겠지만, 나는 그러한 점들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부러 외국 소설들은 주로 장편으로 읽어나갔고 가끔씩 기회가 닿아 단편집을 읽을 때는 매번 머리를 싸매 쥐거나, 이게 뭐지? 하는 식의 허탈한 반응을 보이는 등 두 가지 중 한 가지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이 <일요일들>은 조금 달랐다. 물론 허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의 완결성 있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여자 친구의 죽음과 아내의 죽음이 서로 교차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부자지간과, 남자에게 매 맞는 여성, 그 남성에게서 벗어나 상담원이 되고 자립해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는 단편들은 말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소소한 일상거리일 수도 있지만,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소재의 단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일본소설을 읽을 때면 술술 읽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뒤에 앞에서 말했듯이 허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이 모두 술술 읽힌다. 가독성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단편집들은 하나의 압축된 이야기로 표현한다면, 일본소설의 단편은 말 그대로 그 정도 길이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이 좋다. 그래서 한때 나도 얼마 되진 않지만 미친 듯이 일본소설을 읽었던 거라,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곤 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들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저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따뜻한 이야기를 쓴다고들 한다. 그 말이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직접 그 말들을 확인해볼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이리저리 일에 치이고 개인적으로 한창 바쁠 시기에 읽었던 책이기에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하는데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읽어나간 책이다. 이제는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앉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확히, 또렷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몸이 이 이야기를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일요일만 되면 이 책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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