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손홍섭 작가에 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었다. 아니 어찌 보면 거의 무지했다고 보면 된다. 손홍규 작가라고 하면, 단순히 조금은 농촌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지 않나, 하는 이유 없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손홍규 작가의 작품을 전혀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게,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가 손홍규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정도였는데 어째서 내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 추천을 해주었던 것도 같고, 서점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와서 읽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동기로 이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독서를 끝마친 지금에서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손홍규 작가의 책은 이번 <봉섭이 가라사대>가 처음이었는데, 느낌을 말하자면 좋았다. 경쾌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너무 쉽게 쓴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니 촘촘한 구조 안에 겉모양을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봉섭이 가라사대>가 아닌, 제일 앞에 수록된 <상식적인 시절>이었다. 보면서 사실 표현들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저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용들을 떠올려보면 이 <상식적인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봉섭이 가라사대>에 실린 10편의 단편들이 모두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가장 이야기가 요동치고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이 생생히 움직이고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조금은 저속할지라도 표현들을 해주는 것들이 말 그대로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눈길이 갔던 <매혹적인 결말>. 소설가 지망생 두 명이 나오는 것만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점점 이야기와 사건들이 전개 될수록, 그러한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테러리스트 시리즈인 <최후의 테러리스트>, <최초의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 세 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표제작이었던 <봉섭이 가라사대>. 소들을 키우다가 결국 소처럼 변해버린 응삼. 소가 사람인지, 사람이 소인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변해버린 응삼과, 그의 사고뭉치 아들 봉섭. 이 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낄낄 댔는데, 읽어나가면서 아,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기분을 느껴갔던 소설이다. <도플 갱어>를 보면서는 남과 북에서 각각의 인물들을 설정해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점에 시선이 갔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라면 이런 이야기를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뱀이 눈을 뜬다>라는 단편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들, 그리고 그러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얽혀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이 흥미로웠다. 가장 흥미가 갔던 인물은 소설 내에서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은주였다. 그리고 그런 은주가 만드는 탈, 등 여러 가지의 장치들이 은주 라는 인물을 돋보이게 해주었던 것 같았다.


<봉섭이 가라사대>에서는 다양한 이야기와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떤 소설은 유쾌하면서도 발랄, 쉽게 쓴 듯한 인상을 받지만, 어떤 소설은 읽어나가면서 참담함을 느낀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또는 너무도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에 읽으면서 입안이 씁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를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말 그대로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단순히 현실적인 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지극히 ‘소설’적인 소설 말이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읽으면서 생각했다.


손홍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주위에서는 손홍규 작가의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책들도 많이 추천해주었다. 한 번은 읽어보고 싶다. 만약 이 <봉섭이 가라사대>를 읽어보지 못했더라면 이런 생각도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이슬람 정육점>에서도 이번 <봉섭이 가라사대>서 만큼의 이야기의 힘과, 재미, 주제의식 등을 내보여주었다면, 나는 분명 손홍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질 거라 생각한다. 처음 만나본 작가였지만, 만족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이 02 - 김사과 소설집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기’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있다. 어딘지 조금은 날이 선 듯 하면서 묵직한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단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자주 듣기가 매우 힘든 그런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사과 작가의 <영이>를 다 읽고 났을 때, 생각난 단어는 이 ‘광기’라는 단어였다. 어딘지 조금은 일그러진 부분에서, 뚜렷한 무언가가 없이 일어나는 일처럼, 김사과 작가의 작품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눈이 까뒤집힐 정도로 미쳐버린 사람도 있고, 일상에서 갑작스레 이상해져 돌발행동 아닌 돌발행동을 하는 인물들도 있다. 이 <영이>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 중 단 한 편도 편한 작품이 없었다. 읽으면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광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것 같았다. 사실 <영이>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담담한 어조로 풀어가다, 어느 한 지점에서만 폭발하듯 분위기가 고조된다. 물론 이것도 몇몇 작품일 뿐인데, 그런 작품들 이외에는 빠르지만, 조금은 담담한, 그리고 시니컬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영이>를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야기들이 아직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든다. 이 단편집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은 제각기 ‘폭력’으로 일구어진다. 그 폭력이 육체적이든,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정신적 폭력이든 결과적으로는 폭력이라 부를 수 있다. 길을 가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알게 되는 <정오의 산책>이나 부모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애인을 죽이는 <과학자>, 지갑을 주우려다 갑자기 승용차가 자신을 향해 굴러와 깔리게 된 할머니를 구해주려다 결국 죽이게 되는 <이나의 좁고 긴 방>,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은 아내에게 맞아 개가 되어버리는,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영이>등. 이야기들이 대부분 ‘폭력’을 통해 이루어져 나간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앞에서 말했듯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러한 폭력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낀 점은, 김사과 작가가 스토리텔링 능력이었다. 좋았다. 읽으면서 나는 간결하게 쳐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이 좋았다. 지지 부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편이 훨씬 읽기에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사과 작가는 내가 느끼기에는 디테일한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묘사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폭력을 가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묘사들은, 너무 디테일하지 않아, 거북함이 조금은 덜했던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를 해주었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릴 것 같다. 이것도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지만, 만약 의도했던 거라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직은 독서 경험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인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와 현실과의 대립이 이렇게까지 ‘광기’ 어릴 정도인가 싶다. 아직은 내가 십대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과 대립하는 정도를 말이다. 그런데 그 것이 너무도 작고 미약해서, 이 <영이>를 읽는데, 그리고 해설을 읽는데 공감하지 못했던 점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폭력성도 마찬가지다. 이렇게까지 폭력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 어쩌면 이게 현실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똬리를 틀듯 피어올랐다.


만약 누군가 <영이>에 대해 표현해보라고 말한다면, 나는 분노, 광기, 정신분열, 대립 등으로 이 <영이>를 표현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은 강렬했다. 여러모로 말이다. 김사과 작가의 작품은 사실 처음 읽어봤다. 장편소설을 주로 냈던 작가였기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이 작품들을 읽어보게 된다. 기대했던 것보다 이상이었다. 물론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분노, 광기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김사과 작가의,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도 내심 기대가 된다. 아직은 거북스러움을 남겼지만, 앞으로 발표될 김사과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이 조금은 해소되고,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책 좀 읽는 다는 사람들에게 가면,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작가가 있다. 처음에는 제목과 표지 그림만 보고 외국작품을 번역해온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 작가였다. 처음부터 그런 인식이 박혀서 인지, 계속 외국작품이라 생각해왔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손이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내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책에 손을 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맨 처음, 이 책을 선전하면서 말했던 출판사 직원이 요즘 가장 핫한 책이에요, 하고 말하는 것을 기억해 냈고, 잘 쓰는 작가라는 말을 해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본 주변사람들도 괜찮은 평들을 해주었기에, 나도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야지, 하는 심보로 책을 손에 들었다. 그 책이 바로 <퀴르발 남작의 성>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그리고 읽어가면서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기존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던 일정한 수준의 패턴과 달랐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재구성’이라는 방식도 처음 접해본 책이었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단편 한 편을 온전히 다 읽으면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이해가 간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으로, 모자이크 기법으로 처리한 표제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이 그랬다. 각각 시간과 장소가 다른 이야기들을 합쳐놓고, ‘퀴르발 남작의 성’을 서술해 나가는 방식은, 정말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했지? 하는 의문점이 끊임없이 들었다. 처음에 볼 때는 전혀 공통점 없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모두 하나로 맞춰지는. 이런 식의 방식은 그동안 내가 처음 봐왔기에 보면서 흥미롭기도, 의아하기도, 감탄하기도 했다.


텍스트를 재구성한 <괴물을 위한 변명>과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등은 사실 내가 원작을 읽어보질 않아서, 나에게 있어선 이 작품들이 원작과 얼마나 다른지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작품들이 원작으로 생각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재미는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어서 내 자신에게 조금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중인격자를 ‘톰과 제리’라는 인물로 나타낸 <그림자 박제>는 보면서 정말, 이런 방식도 있네? 하는 마음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뚜렷이 보여준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체로 서술되는 이 단편은 어투로 인해서 한 인간의 여러 가지 성경, 유형들을 보여준다. 조금은 과격하고 자유분방한 톰과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제리. 그리고 화자 자신까지. 세 사람, 아니 한 명을 더 보태어 네 사람의 심리와 성격 등을 대화로 대신해 표현한 것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화체로 가다보면 조금은 쉽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최제훈 작가는 오히려 그것을 역전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매듭>에서는 우리 인간들의 ‘기억 왜곡’에 대해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도 인상 깊었다. 이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린 8편의 단편들이 전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어느 하나 평범한 작품이 없을 정도이다. 마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화 이야기를 곁들인 <마녀에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ㅡ휘뚜루마뚜루 세계사1>같은 작품은 정말 소설인지 알 수 없는 분석문 형태의 글이다. 그런데 소설적인 매력과 장치들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자칫 지루하게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말 그대로 ‘이야기’로 이끌어 나간다.


참 새로운 방식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미 구효서 작가가 이전에 이런 방식으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으면서 참 새롭다고 느꼈다. 내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과 이야기를 해준 책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최제훈 작가가 어떤 식으로 작품을 쓰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주었으면 싶다. 이번에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충격이 과연 언제쯤 다시 맛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이와 같은, 나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정은 작가의 이야기는 참 난해하다. 언제부터인가 황정은 작가의 이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 나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진 작가의 책을 읽기까지는 사실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일곱 시 삼십이 분 코끼리 열차>라는 책을 알게 된 것도 벌써 이 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글쎄.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이상한 글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니 관심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요즘 문학에서 흔히 차용되는 알레고리 상상력의 소설들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황정은 작가가 떠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황정은 작가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처음에 대한 생각에서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마냥 황당무계한 상상력으로만 밀어붙이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다보면 조금 당황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된 쥐 이야기인 <G>나, 현대사회를 풍자한 짧은 소설인 <초코맨의 사회>같은 작품들을 보다보면,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왠지 조금은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뚜렷히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씁쓸한 감정을 말이다. 그 이외에도 황정은 작가의 초기작인 <마더>나, <소년>같은 작품을 보면, 황정은 작가의 변천사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처음부터 상상력을 파고든 작가가 아닌, 전통에서부터 시작한, 처음의 이야기를 나중에는 상상력으로 이끌어 낸 작가. 누가 나에게 황정은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면 나는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사실 나는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무조건적인 상상력으로만 밀어붙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 페이지를 책, 이라는 단어로 거의 도배하다시피 한 어떤 작품을 읽을 때는, 그 페이지만 봤으면서도 뭐 이런 작가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작가는, 소설은 다 읽어봐야지만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너무 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작가를 내가 그렇게 폄하했다니, 하는 참회의 생각이 들었다.


<일곱 시 삼십이 분 코끼리 열차>의 이야기는 정말 황정은 작가의 스타일을 잘 알 수 있는 이야기들로만 짜여 있다. 조금은 난해하고 해설이 필요한 작품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무슨 이야기인 걸까, 하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시도 때도 없이 모자로 변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모자>같은 이야기가 특히 그런 것 같다. 도대체 왜 모자로 변하는지 황정은 작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가 모자로 처음 변하던 시기를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는 인물들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또렷하게 말해주지 않다보니, 나 같은, 나름대로 추리나 상상을 해보기보단, 똑 떨어지는 답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읽으면서 부담 없이 읽었던 것은 <곡도와 살고 있다>와 <문>, <일곱 시 삼십이 분 코끼리 열차>였다. 새로운 특산품인 ‘곡도’라는 동물을 내세운 <곡도와 살고 있다>는 읽으면서 크나큰 갈등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부담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문>에서는 중간 부분에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월하게 읽혔던 것 같다. 표제작인 <일곱 시 삼십이 분 코끼리 열차>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무리 없이 읽혔던 작품이다.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인 <G>까지 다 읽고 나서 황정은 작가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무작정 상상력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그 안에 많은 것을 담아내는 작가라는 생각을 말이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난해한 작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상징하는 것 같기는 한데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건지 모르겠는 것들이 담겨진 작품들 말이다. 그래서 여전히 조금은 미심쩍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황정은 작가와의 첫 만남이 된 <일곱 시 삼십이 분 코끼리 열차>에서는 만족스러움을 얻었다. 신선한 충격이다, 라 말하면 너무 식상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요즘 나오는 소설들에서 판치는,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아닌, 그 안에 현실적인 것들이 담겨져 있는 황정은 작가의 상상력이 다음 소설에서는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서사의 힘을 믿는 편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야기의 힘을 말이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을 때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이야기의 힘을, 과연 다른 책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우연치 않게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가 조금은 늘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해서 사실 이번 <7년의 밤>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내 심장을 쏴라>도 당시에 읽을 땐 그랬지만, 후에 생각해보니 단편적으로나마 이야기의 장면들이 떠올라,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래, 다시 한 번 믿어보자 하며 <7년의 밤>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초반까지는 잘 몰랐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더 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덮은 뒤에는, 조금은 속된 표현이지만, 물건 하나 나왔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야기는 내가 처음에 읽기 시작하기 전, 가졌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하드했다. 사실 보통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의 이야기 정보를 얻은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 <7년의 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었기에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심지어 배경조차 모르고 무턱대고 읽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하드한데도 서사가 매끄러웠던 것이 장점이 되어서 일까. 속도감 있게 책장이 넘어갔다. 인물들의 시점에 따라 전개되는 방식도 참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방식을 택해서 독자들이 궁금증을 일으켜 뒷장을 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퍼즐 맞추든 하나하나 짜맞춰가며 읽는 재미가 좋았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인물들, 캐릭터들의 성격이었다. 현수는 승환, 영제를 비롯해 서원까지. 인물들이 제 각기 자신들의 삶을 이고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섬세하고 잘 짜여진 인물들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현수의 행동이 조금은 우연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는데,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는 그런 점이 다른 장점들에 의해 많이 가려졌지만, 초반부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을 땐, 너무 충동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자세한 정보들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세령 마을을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다. 디테일한 정보를 주어서 오히려 좋았지만, 그만큼 늘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세세한 부분들이다 보니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야구에 대한 정보는 너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야구는 많은 이들이 아는 분야이고 좋아하는 분야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조금은 더 자세하게 해주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이들의 취향을 살펴서 이야기에 담아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독자인 우리들의 아집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제의 캐릭터도 나중에 다 읽고 나서는 조금은 난해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물이 너무 극과 극을 달린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인물들이 많지만, 뭔가 조금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현수를 범인으로 생각하는 점도, 조금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물론 현수의 행동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읽는 내내 영제가 현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부분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에 비해 이야기의 힘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 병동이라는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면서 읽는 내내 상당히 고역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서는 그때와 달리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 세령 마을을 창조해낼 만큼의 상상력이 무척이나 대단했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이 <7년의 밤>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렇게 보였다. 인물, 배경, 서사, 스토리 등 하나도 빠짐없이 만족스러웠던, 괴물 같은 소설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의안그림자 2011-04-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7년의 밤이 음식이 되어서는 사람의 입 속에 녹아 들고 있는 맛으로 놓고 평가하는 미각적 차원의 미학적 감각으로 꼼꼼하게 이야기 해 주시는 내용들 감동있게 잘 들었던 독자라 몇 자 적어 보고 나갑니다. 소설도 참 좋아 하시는 것 같고, 소설의 묘미랑 맛을 제대로 느끼고 계시는 안목에 부러움을 표현 해 봅니다.

괭이 2011-04-29 22:21   좋아요 0 | URL
변변치 않은, 제 주관적인 평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