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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02 - 김사과 소설집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0년 12월
평점 :
‘광기’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있다. 어딘지 조금은 날이 선 듯 하면서 묵직한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단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자주 듣기가 매우 힘든 그런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사과 작가의 <영이>를 다 읽고 났을 때, 생각난 단어는 이 ‘광기’라는 단어였다. 어딘지 조금은 일그러진 부분에서, 뚜렷한 무언가가 없이 일어나는 일처럼, 김사과 작가의 작품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눈이 까뒤집힐 정도로 미쳐버린 사람도 있고, 일상에서 갑작스레 이상해져 돌발행동 아닌 돌발행동을 하는 인물들도 있다. 이 <영이>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 중 단 한 편도 편한 작품이 없었다. 읽으면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광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것 같았다. 사실 <영이>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담담한 어조로 풀어가다, 어느 한 지점에서만 폭발하듯 분위기가 고조된다. 물론 이것도 몇몇 작품일 뿐인데, 그런 작품들 이외에는 빠르지만, 조금은 담담한, 그리고 시니컬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영이>를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야기들이 아직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든다. 이 단편집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은 제각기 ‘폭력’으로 일구어진다. 그 폭력이 육체적이든,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정신적 폭력이든 결과적으로는 폭력이라 부를 수 있다. 길을 가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알게 되는 <정오의 산책>이나 부모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애인을 죽이는 <과학자>, 지갑을 주우려다 갑자기 승용차가 자신을 향해 굴러와 깔리게 된 할머니를 구해주려다 결국 죽이게 되는 <이나의 좁고 긴 방>,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은 아내에게 맞아 개가 되어버리는,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영이>등. 이야기들이 대부분 ‘폭력’을 통해 이루어져 나간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앞에서 말했듯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러한 폭력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낀 점은, 김사과 작가가 스토리텔링 능력이었다. 좋았다. 읽으면서 나는 간결하게 쳐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이 좋았다. 지지 부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편이 훨씬 읽기에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사과 작가는 내가 느끼기에는 디테일한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묘사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폭력을 가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묘사들은, 너무 디테일하지 않아, 거북함이 조금은 덜했던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를 해주었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릴 것 같다. 이것도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지만, 만약 의도했던 거라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직은 독서 경험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인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와 현실과의 대립이 이렇게까지 ‘광기’ 어릴 정도인가 싶다. 아직은 내가 십대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과 대립하는 정도를 말이다. 그런데 그 것이 너무도 작고 미약해서, 이 <영이>를 읽는데, 그리고 해설을 읽는데 공감하지 못했던 점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폭력성도 마찬가지다. 이렇게까지 폭력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 어쩌면 이게 현실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똬리를 틀듯 피어올랐다.
만약 누군가 <영이>에 대해 표현해보라고 말한다면, 나는 분노, 광기, 정신분열, 대립 등으로 이 <영이>를 표현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은 강렬했다. 여러모로 말이다. 김사과 작가의 작품은 사실 처음 읽어봤다. 장편소설을 주로 냈던 작가였기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이 작품들을 읽어보게 된다. 기대했던 것보다 이상이었다. 물론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분노, 광기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김사과 작가의,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도 내심 기대가 된다. 아직은 거북스러움을 남겼지만, 앞으로 발표될 김사과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이 조금은 해소되고,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