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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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 포함! 

조금은,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지만, 내 나름대로는 동성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나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어나가면서 아, 그래도 내가 조금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위선을 떨고 있었던 꼴이 된 것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한다는 말을 듣고 읽게 된 책이다. 물론 초입을 읽는 도중 결국은 못 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나름의 위안을 삼고자 끝까지 읽어 나갔다. 읽으면서, 이전까지 읽어왔던 책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용면, 그리고 읽고 난 뒤에 감흥도 마찬가지였다. 읽는 내내, 감옥에서 벌어지는 두 인물의 대화가 내가 흔히 생각하는 어두운 이야기라고 느껴지기 보단, 밝은 이야기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내 독서의 깊이가 낮을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첫 장을 펼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혼란스러워 한 것이었다. 오직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누가 몰리나, 이고 누가 발렌틴, 인지 구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는 어투나 말투 같은 걸로 구분하긴 했지만, 처음, 속도가 붙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웠다. 인물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소설을 나는 처음 경험했다. 대화체로 가는 서간체나 한 인물의 독백체로 가는 텍스트들이나 책들은 많이 봤지만, 두 인물이 나와 자신의 입으로 대화해 가는 형식은 내 기억 상으로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그 형식이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일반 텍스트들처럼 이어졌더라면 오히려 더욱 반감이 들었을 것 같다. 이 <거미여인의 키스>는 대화체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을 모두 갖춘 책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스러운 장면도 대화만으로 처리해 오히려 이럴 수 있겠구나, 하며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일반 텍스트의 형식으로는 어림없는 방법이다. 그 외에도 인물들의 심리 등도 대화체로 사용하니 오히려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엄청난 심리묘사 문장보다 단 한 줄의 대화체로 심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 아닌가 싶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져 감옥에 들어온 몰리나와, 혁명가 발렌틴. 이 둘의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게 이어진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표범여인부터 마법사와 좀비, 그리고 사랑의 가사를 붙이고 노래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물론 대부분은 비극으로 끝나버리지만, 어떻게 보면 이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전체 안에 속하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이 <거미여인의 키스>도 그렇게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지진 않으니 말이다.


감옥 안에서 이루어지는,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말해주는 영화 이야기들을 나는 큰 뼈대가 되는 <거미여인의 키스>보다도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그런 식의 내용이 나오면 책장을 빨리 넘겨버리는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부가적인 이야기가 재미있을 줄이야, 하면서도 나는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읽으면서 조금은 의문점이 생겼다. 아마도 내 부족한, 얕은 독서깊이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대화체 안에 중후반 부분으로 흘러가면 두 사람의 대화 끝이나 첫 부분에 이탤릭체로 기울어진 문장들이 등장한다. 읽으면서 이게 뭐지?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발렌틴이 독백하듯 흘러가는, 이탤릭체의 부분은 조금의 의문점을 남겼다. 이게 뭐지, 하는 의문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중후반에 나온다는 이탤릭체는 이 뒷부분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만약 다시 읽을 기회가 된다면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자, 하는 메모를 남겨놓는 것으로 끝내게 되었지만, 다 읽고 나서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지금도 그 부분이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푸익의 책은 처음 읽어 본다. 가끔은 늘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템포 있게 치고 나가는 서사가 좋았다. 영화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기억에 남았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표범여인. 아마도 푸익이 만들어낸 이야기 인 것 같지만, 그래도 뭐 괜찮았다. 라틴 아메리카 작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한 번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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