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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
이종욱 지음 / 뜨인돌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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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요즘 유행하는 어반 스케치를 권했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 했더니 요즘은 누구나 한다고 하면서 재차 권했다. 누구나 하지만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고 정중히 사양하고 나니 어반 스케치 책이 왔다.
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그림을 못 그리지만 보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 책은 서울을 그린 책이다. 정동과 서촌, 명동, 남산 아래 동자동과 후암동, 해방촌을 그렸다. 그리고 서울역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돌아 돌아 절두산까지 그렸다.
그림도 너무 좋았지만 건물과 동네, 길과 길 사이에 있는 역사까지 자분자분 설명하시는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박자박 내가 걷는 것처럼.
워낙 촌사람이라 그런지, 서울이 너무 커서 그런지 아지 서울이 낯설다. 학교를 다니고 결혼식을 그렇게 다녔는데도 지금도 서울에 가면 어리숙하게 목적지만 겨우겨우 다녀온다. 하지만 이 책을 들고 간다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그럴 수 있는 첫째 이유는 드로잉으로 내 마음이 서울에게 활짝 열렸으며, 건물과 길이 거기 그렇게 있는 이유를 너무나 잘 설명했기에 익숙하게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비호감이 호감으로 전환되자 가장 먼저 궁금해진 것은 다름 아닌 서울역의 역사였다.
15쪽
내 말이~ 내 말이~!
서울역의 처음 명칭이 남대문역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성역으로 새로 지어지면서 해방과 정쟁, 민주화 운동, 외환위기를 지나온 역사의 산물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만나는 순간에 나는 서울역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 "안녕하세요~"라고.
정동 로터리와 네 길에 자리한 건물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건축물 외벽면의 재료, 붉은 벽돌이다.
33쪽
정동의 건물은 중국 상해 건설국에서 짓기로 했는데 마침 그때 붉은색 벽돌 마감이 유행했었다고 한다. 영국 공사관을 시작으로 그 뒤 지어진 건물들은 한결같이 적벽돌로 마감되었으며 서양 건축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신식을 좋아하던 시대에 신식이 아닌 걸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알고 나니 다시 보이는 것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거기가 붉은색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구나!
오늘날 2000년대 이후는 이전 시대와 달리 다양한 방향성 사이에서 갈팡질팡,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앞서 걸어본 수많은 동네와 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구도심 속 역사, 평범한 동네가 갖고 있는 공동체, 오래된 건축이 품고 있는 도시 등의 시대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318쪽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울시장이 달라지면서 정책을 갈아타며 하던 걸 멈추고 새로 시작하다가 다시 뒤엎어 버리는 작태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단 뜻으로 읽혔다. 오히려 나무의 나이테처럼 흔적들로 남았고, 인간의 사유를 깊게 하는 풍경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한데... 책의 끄트머리에 다다를수록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난 원주민들의 팍팍한 삶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도시의 변화에 외곽으로 밀려난 사람들,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밀려난 분들이 도시의 역사로 포장되는 것 같아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작가님이 이 현상이 단지 속도가 다를 뿐이지 서울 어디서나 일어났다고 한 문장에서 특히 그랬다.
300쪽이 넘는 책이었고, 글도 많고 그림도 많았다. 서울의 역사뿐만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지나온 기록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뭐를 발췌해야 할까... 고민스러울 정도로 지나칠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2021년 연말에 이 책을 만난 것이 인연일까 싶다. 내년에 서울 둘레길을 걸어볼까 남편과 이야기했었는데 이 책의 지도를 보고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궁금해졌다. 분명 이 도시에 대한 책도 있을 것 같은 너낌적인 너낌. 내 시야를 넓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