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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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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에세이라니... 에세이 중에 그런 에세이도 있구나 싶었다. 지하철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이유는 대중교통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씩 타는 지하철은 탈 때마다 새롭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지하철이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이었기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개 있다.
2호선이 푹푹 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이 워낙 많이 걸어간다기보다는 인파에 쓸려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문이 열리면 몸을 열차 안쪽으로 막 밀어 넣어야 하는데 나름 조신한 여대생이었던지라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연거푸 두 대를 그냥 보낸 상태였다. 그나마 사람이 적다고 판단한 맨 앞 칸에 줄을 서 있었는데 옆에서 남자 두 분이 언성을 높이길래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기관사가 타고 있는 조그만 문을 열고 상체부터 밀어 넣다가 기관사는 나가라고 하고 아저씨는 타겠다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거, 좀, 태워줘요. 늦었단 말이에요.
여기는 승객이 타는 곳이 아닙니다!
자리 있잖아요!
여기는 승객이 타는 곳이 아니라고요!
어쩌라고요!
여기 타시면 안 된다고요!
나는 양복 입은 아저씨가 술에 취한 줄 알았다. 거길 왜 탄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관사 한 명도 서 있기 좁은 곳인데 저길 왜 들어가겠다고 난리일까 싶었고, 열차는 곧 출발했다. 양복 아저씨는 씩씩 숨을 거칠게 내뱉으면서도 누구 하나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걸 느꼈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그 기관사님은 굉장히 황당해하셨고 재차 밀어내며 위험하다고 경고하셨다. 이 책을 읽자마자 그 장면이 정확하게 떠올랐고 내가 느낀 것보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글에서 재미와 공감 그리고 '쟈철'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쟈철이 지하철을 뜻한다는 걸 검색해 보고 알았다. ㅋㅋㅋ
마찬가지로 승객 여러분들은 지하철이 아닌 삶에서도 어떤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때가 있을 텐데, 그때도 포기하지 말고 찾아라. 누군가 우리처럼 당신의 것을 찾아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39쪽
이렇게 따진다면 나는 늘 기관사를 만난 셈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주는 사람이 여럿이다. 다시 말해 나는 무언가를 흘리고 다닌다. 물건과 기억과 약속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 덕분에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다. 허허. 주변에 기관사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요즘 세대 차이가 심각하다지만 사실 세대 차이는 항상 문제였다. 베이비붐 세대, 86세대, X 세대, MZ 세대, 알파 세대...
새로운 세대는 끊임없이 나타났고, 기성세대들은 매번 당황했다. 그렇다면 이건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 그냥 변해가는 과정 아닐까?
88쪽
하기는. 2000년 전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불평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 과정에서 다른 게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와 외루의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쟈철 에세이 재밌네!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기관사가 아닐까? 그때 나는 기관사만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114쪽
기관사, 관제사, 역무원, 운영 직원, 토목 직원, 경비 아저씨, 그리고 직원 직원 직원. 마지막으로 승객까지 모여야 지하철이 완성되는 일종의 퍼즐 같았다.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어우러지기 위함으로 쓰고 읽는 독자에게 이르는 모든 과정이 좋았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 더 눈여겨 읽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어우러지기 위한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 기관사는 잘 모르겠다. 시간 약속에 강박 관념에 그냥 역사에서 살 것 같아 피식 웃으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