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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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흡사 한 편의 훌륭한 논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강대국들이 개발도상국과 약소국들에 대해 요구하는 자유무역은 세계화의 흐름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분명 가진자(사마리아인)들의 이기적인 정책에 지나지 않으니, 힘없는 나라들은 각각의 특성에 맞게 수정보완된 보호무역이 필요하다라는 것...

위와 같은 내용을 뒷바침하기위해 저자는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한 자유무역의 실패사례와 보호무역의 성공사례를 차례로 나열하고 있다. 따라서 책은 비슷한 내용들을 계속적으로 반복하고있으며, 독자는 저자의 주장에 자연스럽게 세뇌당하게 된다. (물론 나쁜 뜻의 세뇌는 아니다.)

저자는 막연한 주장이나 어중간한 논리를 펴지않고,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자료와 정확하게 검증된 데이터만 끈기있게 제시할 뿐이다. 나머지는 결국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세계를 상대로한 정치와 무역은 결코 일반인들이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저자인 장하준 교수가 설사 우리나라의 경제결정권을 가진 장관이 된다해도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상적인 정책을 펴기란 사실상 힘들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무조건 강대국들을 색안경끼고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속내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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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3CD] - DG Originals
Eberhard Waechter 외 노래, Reinhardt Wagner 외 지휘 / DG / 196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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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전설을 다룬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일화도 알게된다. 비록 어릴적 만화영화나 청소년용 문고본 등이 기억의 전부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때문에 같이 죽기위해 마신 약이 결국 사랑의 약으로 밝혀진다는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스토리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소위 바그네리안으로 불리는 골수팬들이 따로 있을 만큼, 사실상 일반인들이 즐기기가 힘든 장르이다. 흔히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오페라와 달리 '악극'이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독일어 특유의 딱딱한 발음도 그렇거니와 서곡 등의 몇몇 유명 관현악곡을 제외하면 곡 전반에 걸쳐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이 거의 없는 것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오페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아리아의 경우엔 널리 연주되는 곡이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푸치니의 서정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나 역시 바그너의 작품은 너무 어렵고 무거워서 그나마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음반이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196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실황음반으로 저 유명한 볼프강 빈트가센, 브리기트 닐손 등 당대 최고의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들이 총출동하고 있어, 이 한 작품만으로도 바그너의 진면목을 충분히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솔직히 가사도 모르고 무대상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곡의 분위기와 느낌만 가지고 4시간이나 되는 작품을 집중해서 감상한다는 것은 문외한으로서 너무나 힘든 여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그너의 서사적인 큰 스케일과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무게감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매력이었다.  

실황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음질은 상당히 좋은 편인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관중들의 박수소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음반의 런닝타임에 맞추려고 그 부분을 잘라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남을만큼 화려한 출연진으로 비추어볼 때, 관중들의 호응도 정말 대단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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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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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일본 추리소설들 중에 가장 참신하고 임펙트가 강하다. 그리 길지않은 분량에 작가는 스토리를 부풀리는 감상적인 설정이나 묘사 따위는 과감히 잘라버리고 꼭 필요한 부분만 농축시켜 담았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치밀한 계산 아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호흡을 놓치지 않도록 페이스가 잘 조절되어 있다.

싸이코패스를 설정함에 있어 작가들이 흔히 이용하는게 바로 '트라우마'라는 장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화를 소재로 하지않는 이상,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게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치밀한 사전조사와 객관적인 데이터의 근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한다. 만약 이도저도 아니고 작가 개인의 상상력만 가지고 캐릭터를 구축한다면, 압도적인 필력으로 독자들이 다른 생각할 여지를 아예 봉쇄해 버리는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그런면에서 그 실체가 무엇이건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거의 없다.

특별히 잔인한 묘사나 격한 액션이 없음에도, 게다가 모든 문장이 제목처럼 독백 또는 일기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릴을 만끽하게 해준다. 작가의 내공과 필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책을 덮고나니 바둑에서 늘 비슷한 상대와 대국하다 오랜만에 뛰어난 고수에게 제대로 한 수 배운 듯한... 비록 졌지만 좋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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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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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웰메이드 액션스릴러 영화가 따르고있는 여러가지 공식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플롯을 보여주고있다. 인질사건의 발생, 잔악한 범죄자, 주인공인 노련한 협상가, 동료들간의 불협화음과 인질범과의 밀고당기는 심리전, 단순무식한 진압대원들과의 마찰, 인질들 내의 현명한 조력자, 등 액션매니아라면 상당히 익숙한 장치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익숙한 재료들을 작가가 과연 어떠한 양념과 솜씨로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검증된 작가 '제프리 디버'이기에 그만큼의 기대감으로 작품을 대하게 된다.

초반 몇페이지를 읽다보면 학생들과 선생님 사이에 대화들이 오가는데, 도대체 누가 하는 말인지 분간이 안가는 몇몇 대사들과 다소 산만한 상황묘사들을 보면서, 그의 작품이 맞는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동안 이 작가의 링컨라임 시리즈를 6작품이나 읽었던 터라 나름 작가의 글쓰는 스타일에는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그의 작품들은 모두 한 번역가가 일임해서 해왔는데, 이 책은 출판사가 달라서인지 번역가도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작가의 데뷔작이다보니 아직 문장의 노련미가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이것은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협상가라는 특이한 직업이다보니, 범죄자들과의 '대화'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처음에는 그의 능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동료들도 그가 무력이 아닌 대화만으로 적을 설득하고 인질들을 하나씩 구출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존경을 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한 스릴만점의 과정을 즐기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중요한 대화들이 등장인물들의 어정쩡한 어투와 불명확한 심리묘사로 인해 작가가 의도한 본래의 긴장감이 많이 퇴색된 느낌이었다.

주인공은 시종일관 '~이럴걸세', '~저럴걸세', 또는 '~하게'라는 우유부단한 어투를 쓰고있는데,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 이런식이니 나중에는 대사 읽는게 짜증날 정도였다. 영어와 달리 상대의 나이와 지위에 따라 어체가 다른 한글을 구사함에 있어 이 부분은 분명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것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오로지 번역가의 몫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등장인물 각각의 대화체가 유기적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고있다. 난 주인공이 협상가로서의 능력 자체가 있는 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대사가 거슬렸다. 그러다보니 긴장감이 느껴져야할 인질범과의 대화들이 지루할 정도로 재미없고 답답했으며, 동료들간의 미묘한 심리묘사도 생뚱맞은 표현으로 인해 잔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후반부에 진압대의 지휘관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완고하면서도 독선적인 성격으로 주인공의 충고를 무시하다 오히려 작전에 차질을 빚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이 지휘관마저 자기 부하에게 분명 고압적인 명령조로 얘기해야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자넨~하게'라고 지시하는 장면에선 정말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심지어 어느 부분에선 역자도 도저히 해석이 안되었던지, 뜻모를 단어를 써놓고 그옆에 조그맣게 영어단어를 직접 붙여놓은 문장도 등장한다. 독자들보고 알아서 해석하라는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그나마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의 반전을 포함한 액션시퀀스가 일정부분 작품의 재미를 보상해주고는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뭉텅 빠져버려 나에겐 반쪽짜리 책이 되어버렸다.

작가가 독자를 위해 애써 준비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내용들이 형편없는 번역으로 인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을 번역한 '최필원'씨라는 번역가는 이전에 읽어본 다른 작품에서도 전문용어와 심리묘사 부분에서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해석으로 뒷맛이 개운치 않았는데,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번역하든 다시는 읽지않을 것 같다.

<사족> 링컨라임 시리즈의 번역가 '유소영'씨는 법의학에 관한 전문용어 때문에 실제로 현직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등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그의 번역은 깔끔하고 세련되어 디버의 진면목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시리즈 중 '12번째 카드'같은 경우는 흑인들의 슬랭어가 많이 나오는 해석이 까다로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세심한 번역으로 다듬은 솜씨에 오히려 감탄을 하면서 읽었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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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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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의 소설은 그동안 수많은 히트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비록 그 내용은 틀릴지언정 매 작품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일관된 주제의식을 투영하고 있는 작가라는 점은 익히 알고있었고, 이 책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제목만 봐도 틀림없었다. 

흥행이 보증된 상업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기대치도 그만큼 높다는 핸디캡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자칭 영화매니아라면 초반 5분정도만 봐도 감독의 연출수준을 가늠하듯, 책도 초반 몇페이지만 읽으면 작가의 스타일과 필력을 대번에 알아보는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강우석 영화감독이 생각났다. 나름 영화 좀 본다는 매니아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지만,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실미도 같은 영화로 천만관객을 달성해버린... 소수 매니아보다 대다수의 일반대중들을 타겟으로 어필하는 감독말이다. 이 책도 그렇게 눈높이가 낮은 소설이다. 추리스릴러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 선생이 학생 가르치듯 너무나 친절하고 수고스럽게도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독자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만큼 주입식 교육을 받고도 모른다면, 딴생각 하면서 읽었다는 말밖에 안된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나오는 장황한 역사 브리핑은 작가가 그동한 조사한 자료들의 요약본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보니 순수한 소설로서의 재미가 많이 반감되어 버렸다. 문장의 기교나 흡입력도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기대를 해서일까, 아뭏든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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