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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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전작 '캐비닛'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만으로 김언수라는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가늠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만큼 본작 '설계자들'은 스탠스가 약간 애매한 구석이 있다.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을 구분짓는 경계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말초적인 재미 이상의 어떤 깊이있는 주제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글쓰기의 테크니컬적인 측면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이 무엇이든 희미하게나마 그 구분선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이 작품은 킬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흥미로운 소재에 이끌려 구매목록에 넣었던 책인데, 실제로 읽어보니 액션스릴러나 하드보일드같은 장르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문학이라는 테두리에 넣자니 군데군데 대사처리나 상황묘사 등에서 격에 맞지않는 부분 또한 눈에 제법 들어온다. 묘하다.

회색빛 책표지와 같이 온통 우울한 잿빛으로 물든 세상을 보는 듯하다. 설계자, 트래커, 푸주와 같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소재와 고민이 묻어나는 대사들...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비정한 현실세계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듯한 뉘앙스도 감각적이다. 하지만 B급액션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발사니 헨켈식칼이니 뭐니하는 과잉스러운 면과 세련미가 떨어지는 결말부분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마디로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의 경계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가 영화화를 심각하게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신경숙 작가같은 분이 '양들의 침묵' 스타일의 서스펜스 스릴러물을 쓴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세월이 흐를수록 장르의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질 수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문학에도 그 수준차이는 있을지언정 장르 자체의 귀천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러한 흐름을 어렴풋이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면 분명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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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이동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2 미치 랩 시리즈 1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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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플린의 글은 전작 '임기종료'에서도 충분히 감지한 바 있지만, 이미 10년이나 지난 1999년작임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들지않고 여전히 무시무시한 속도감을 자랑한다.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FBI, CIA, 그리고 대통령경호실 등, 미국 특수기관들의 시스템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감넘치는 상황묘사와, 영화 시나리오를 방불케하는 드라마틱하고 직선적인 대사들은 이 작가의 독보적이면서도 차별화된 특징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전작에서 느꼈던 사소한 문제점이 이 작품에 와서는 심각한 수준으로 부각되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가 없다. 부패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적인 살인을 자행하던 주인공을 영웅화시켰던 전작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적어도 그런 순진(?)하고 위험천만한 발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너무나 도식적으로 굳어져버린 선악구도와 미국최고를 부르짖는 노골적인 우월주의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있다.

액션영화를 보다보면 당연히 주인공의 편에 서서 감정이입이 되어야함에도, 오히려 악인의 편을 들게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주인공이 부상을 당한다거나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는 정도의 진부한 장치 따위로는 무마되기 힘든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캐릭터와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향적인 시각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 악의 무리들이 상황을 장악하는 듯 보이지만, 남은 것은 결국 듬직한 미국의 초강력 주인공 무리들에 의해 무참하게 괴멸될 장면일 뿐이며, 그러한 영웅만들기에 집중하는 작가의 사고방식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부통령과의 갈등 등 곁가지를 치긴 했지만 이미 예상된 결말에는 전혀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미국국민들에게 델타포스니 대테러 특수요원이니 하는 세계최고의 인재들이 있으니 안심하시라는 홍보영화를 보는 듯하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별로 긴장이 되지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발전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퇴보하거나 작가의 한계가 보이는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단순하고 시원한 액션만을 원한다면 충분한 만족감을 얻겠지만, 작가의 스타일상 그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 듯 하다. 앞으로 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굳이 찾아 읽을것 같지는 않다. 

<사족> 이 작가가 FOX사의 인기드라마 '24'시리즈에 자문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는데, 24의 전시즌을 이미 감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몇몇 시즌에서 차용한 듯한 설정도 보인다. 백악관 공격은 시즌7, 부통령의 도발은 시즌6에서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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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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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아처'라는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데도 왠지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작가 프로필을 보면 영국출신으로 상원의원까지 거친 이색적이면서도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소개되어 있다.

다소 심심한 책표지 디자인과는 달리 초반 몇페이지를 읽는 순간 작가의 필력이 심상치않음을 느꼈다. 캐릭터 구축력과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이 좋고, 또한 대단히 스피디하다. 내용에 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미술품에 관한 고풍스런 스토리를 예상하다가, 초반부 9.11테러사건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이 작가의 글은 자연스럽게 '시드니 셀던'을 떠올리게 한다. 글쓰는 스타일이 너무나 흡사하다. 7~80년대를 주름잡았던 셀던의 작품들은 이후 수많은 소설가와 지망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데, 이 작가도 예외는 아닌듯 하다.

문제는 이미 셀던류의 스타일은 흘러간 트렌드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초중반부까지 짧게 끊어치는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와 드라마틱한 대사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하지만 마치 드라마의 하일라이트만 계속해서 보는 듯한 숨가쁜 전개에 오히려 감정이입이 안되고 점점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단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유불급이란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사전조사가 동반되었을 작가의 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또한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낼만 하다.  


이 작품의 모티프라 할 수 있는 붕대를 감은 반고흐의 두 가지 자화상

이 책에서는 특히 왼쪽에 있는 일본그림을 배경으로 둔 자화상을 둘러싼 암투를 그리고 있는데, 개인소장품이라고 한다. 덕분에 미술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자그마한 미덕이라 생각해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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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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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작이며 데뷔작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작품이라는 얘기다. LA형사인 주인공을 비롯하여 FBI요원 등 모든 등장인물들은 호출기(일명 삐삐)를 사용하고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격세지감이라 해야 하나...

이미 다른 작품들을 통해 작가에 대한 믿음을 충분히 확보한 터라, 그의 첫작품은 조금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시대적인 배경도 그렇고 왠지 추억을 회상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고난 필력이야 데뷔작이라고 크게 다를바 없지만, 아무래도 노련함이 쌓이기 전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살짝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낭만적인 매력이 있다. 소니 롤린스와 웨인 쇼터 같은 연주자들의 째즈음악이 있고 화가들의 그림도 있다. 주인공 해리 보슈는 본명이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라고 하는데, 15세기 네델란드 화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화가를 좋아했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으로, 실제 발음이 '히에로니무스'인지 '히로니뮈스'인지, 또 '보스'인지 '보슈'인지, 아니면 '보쉬'인지 도무지 알 길은 없다. 어쨌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소재들은 작가 본인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 분명한 만큼, 한층 더 친근해진 느낌도 든다.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1503)


해리 보슈의 집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파트너인 위시요원과의 정서적 교감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화가의 대표작으로 각각 천국, 연옥, 지옥을 표현한 세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나이트호크(Nighthawks,1942)


반대로 위시요원의 집에 있던 있던 그림으로 보슈와의 로맨스를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두 주인공은 이 그림에 대해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마이클 코넬리 본인의 남다른 애착과 추억이 실려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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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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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사이 책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리처드 도킨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친숙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 할 만 한데, 놀랍게도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저 유명한 도킨스와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을 알게된다. 자기과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도킨스 외에도 수많은 스타급 학자들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시는 분이라고 소개가 되어있는데, 학문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분명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그리 무겁거나 학문적이지 않다.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의 대중적 가십거리를 다룬 칼럼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솔직히 별로 대수롭지않은 문화적 현상을 굳이 왜 이렇게 고상한 단어를 써가며 세세하게 학문적의미를 부여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없지않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랄까...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글을 읽고자 한다면,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도킨스나 스티븐 핑커의 책들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을 너무 의식한듯한 가벼운 문체(네티즌스러운)와 내용들은 기대에 비해 실망감을 안겨준다. 솔직히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요점을 잘 모르겠다. 단지 진화심리학의 친숙화 정도만 기대했다면 그 목적은 이룬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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