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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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의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 이후, 이른바 '팩션(Faction)'이라는 장르가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며 수많은 아류작들이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윤복을 소재로 한 '바람의 화원'의 성공 등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류에 편승한 아류작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신중하게 옥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굳이 '살인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Murder)'인 이유는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위대한 저서 '꿈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에 대한 오마쥬라 보면 되겠다. 물론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태생인만큼 원제목은 독일어로 된 'Die Traumdeutung'이다.

프로이트와 융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작가가 이 방면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자료조사를 얼마나 철저히 했을지 미루어 짐작케 했다. 우려와는 달리, 당시 시대상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품격있는 대화체는 작가의 내공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한다. 이런 장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수준높은 대화들은 이 책이 선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의 장점은 거기까지다. 작가는 프로이트를 전면에 내세우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분야는 바로 '셰익스피어'이며, 특히 '햄릿'에 대한 고찰을 심도있게 다루고 싶어한다.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을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한데 묶긴 했는데, 이것이 소설이라는 매개로 그리 잘 융화되지는 못한 느낌이다.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상 홈즈 역의 프로이트는 별 역할이 없다. 융의 수상한 행보도 궁금증만 유발한 채 흐지부지 덮어버리고, 사건의 핵심인 살인사건과 범인 역시 따지고보면 별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다. 중심을 잡아주는 주제가 없으니 후반부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햄릿에 관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살인사건과 연관시켜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내려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기대에 비해 그리 성공적인 결과물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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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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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이후 최고의 작품이라는 광고문구를 내세운 이 소설은 내용의 주요부분으로 거론되는 디지털카메라라는 매체가 최초로 등장할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있듯이 1996년작이다. 요즘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대부분의 추리, 스릴러물이 그러하듯 강산이 변하고도 한참 지났을 무려 15년전 작품이란 얘기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유독 장르문학에 있어서 왜 이렇게 뒷북만 치는지 모르겠다.

당연한 결과로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도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는 꼴이 되었다. 검색해보니 해리 보슈라는 시리즈물을 비롯하여 20편 가까이 되는 흥행작을 보유한 엄청난 인기작가인 모양이다. 뭐, 어쨌든 이렇게 뒤늦게라도 알게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또한번 자위할 수밖에 없다.

최근 그럴듯한 홍보문구나 광고와는 달리 형편없는 졸작들을 적잖이 경험한지라, 이런 장르의 소설들을 선택함에 있어 나름대로 신중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조정한 터였다. 초반 몇페이지를 읽는 순간 이 작품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곧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작가의 필력은 제프리 디버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탑클래스 수준이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분위기와 약간 느린듯한 템포로 서서히 몰아부치는 솜씨가 진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각각의 캐릭터들도 살아있고 대사 역시 군더더기없이 세련된 모습이다. 모든 문장은 철저하게 계산되어 치밀하게 구성된 탓에 독자의 심리를 확실하게 쥐락펴락한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속편에 대한 여운을 주려고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반전을 한번 꼬는 바람에 범인의 정체와 범죄의 이유에 관한 설명이 다소 미흡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작가 역시 의외의 범인설정이라는 장치에 대해서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양들의 침묵이 의외의 범인이나 반전때문에 명작으로 칭송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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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7 링컨 라임 시리즈 7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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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언제나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기때문에, 그 신뢰도가 대단히 높은 작가이다.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A급작가다운 노련한 필력이 곧바로 느껴지고 그와 동시에 즐거운 기분으로 몰입이 된다. 지금까지 출간된 링컨 라임 시리즈를 꾸준히 맡아온 유소영씨의 깔끔한 번역 또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측면과 함께 믿음직스럽다. 독자로서는 더 바랄게 없다.

이 시리즈는 내용의 재미면으로만 본다면 2편 '코핀댄서'의 압도적인 그것을 기점으로 그 후속작들은 솔직히 고만고만한 수준을 유지하고있다. 시리즈의 기본골격인 증거물들의 치밀한분석과 의외의 범인등장이라는 작가의 패턴에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7번째인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그 익숙함을 보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다. 스토리를 두세번 꼬아놓음으로써 일반적인 예측을 빗나가도록 의도한 것은 어찌보면 작위적이라 좀 과한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동작학전문가 '캐스린 댄스'라는 새로운 캐릭터는 작품의 신선함을 높여주는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물들간의 '대화'가 한층 더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을 한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또다른 시리즈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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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셀렉션
데이브 프리드먼 지음, 김윤택 외 옮김 / 지성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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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킹콩'이나 '죠스'같은 영화의 성공 이후, 변종 괴생명체 또는 돌연변이 짐승을 다룬 일명 '크리쳐물'은 헐리우드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아류라는 오명을 벗기 힘든 식상한 구성과 진부한 클리셰의 남발로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고 그저그런 3류공포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간혹 뛰어난 감독들의 연출에 힘입어 탄생한 '쥬라기공원'이나 '에일리언' 같은 작품은 극히 드문 경우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장르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도전한 듯한데, 아쉽게도 3류크리쳐물의 수준에서 단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졸작이라 평할 수 밖에 없다. 작품의 내용을 떠나서 일단 문장력 자체가 도저히 프로작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떨어진다. 캐릭터의 구축도 부실한데다 대사도 재미없으며, 분위기나 액션시퀀스의 묘사도 이 방면에 경험이 전혀 없음을 드러낸다. 영화의 교차편집을 흉내낸 듯한 어설픈 장면전환은 그저 실소만 나올 뿐이다. 

글쓰기에 관한 천재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데뷔작부터 범상치않은 작품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저자는 그전에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경력이라든지 분명 글쓰기에 관한 나름대로의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특출난 천재가 아닌 이상 프로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소설작법에 관한 기본적인 공부가 분명 선행되어야만 한다. 적어도 불특정다수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글이 읽히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이 소설은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성에서 최소한의 기교라든지 고심한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괴물가오리의 이빨을 발견하면 주인공들은 곧바로 이빨전문가와 연락이 되고, 그 전문가는 순식간에 대단히 위험한 포식자 운운하며 보지도 못한 괴물의 구체적인 특징을 주억거린다. 그리고 또다시 사체에서 뇌를 채집하면, 금새 뇌전문가가 등장해서는 단 몇시간만에 엄청난 지능과 총알 몇방으론 어림도 없을 괴물의 가공할 맷집에 대해 줄줄 읊어댄다. 모든 상황은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짜맞추기위해 억지로 끌어와서 붙이는 형국이다.

이 책은 저자도 문제가 많지만, 번역 또한 그에 못지않게 조악하다. 번역은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나 되는데, 보아하니 부녀지간 아니면 사제지간인 듯 싶다. 생물학교수란 분이 전문용어에 대한 감수를 맡았을 테고, 실제 번역은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딸 또는 제자가 비교적 손쉬운 작품이라는 판단아래 연습삼아 했을거라는데 내기를 걸어도 좋다. 

아마추어 작가에 아마추어 번역이 만났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렇게 밑천이 훤히 드러나는 글솜씨를 가지고 책을 펴낸 저자와 역자의 용기가 가상할 따름이다. 이러니 요즘은 개나소나 소설쓰고 번역하는 세상이라고 하나보다.

<사족> 요즘 소설책은 두께로 가격을 매기는지, 페이퍼백 재질의 싸구려 재생종이를 써서 무지막지하게 두껍기만 한 이 책의 정가는 무려 17,800원이다. 어이없는 출판사에, 어이없는 작가에, 어이없는 번역... 그저 쓴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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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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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통해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추리소설'이란 장르에 대해 깊은 애정과 함께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저급한 3류소설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자랑스레 내놓을만한 추리작가가 전무한 반면, 일본에서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막대한 수입을 올리며 주류스타작가로 대접받는 것은 이러한 상반된 문화에서 탄생한 당연한 결과이다. 관중들이 열렬히 응원을 하면 할수록 선수들은 자극받아 더좋은 플레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만큼 오늘날 일본의 A급추리작가들은 그 수준이 영미권의 유명작가들에 결코 뒤지지않으며, 모두 상향평준화되어 있는듯한 느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일본추리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본다. 2년전에 책을 사놓고도 그 엄청난 두께때문에 쉽게 손이 안가다가, 밀린 숙제를 하듯 1주일만에 완독을 했다.

명성이 높은 만큼 충분히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필력이 좋다. 일본 작가들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설득력있는 트라우마 구축과 스토리의 흐름을 조절하는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노련함이 물씬 풍긴다. 도합 1600페이지에 이르는 장대한 분량을 별다른 지루함없이 이끌어가는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기나긴 이야기의 마무리도 극적 긴장감이 훌륭하고, 더불어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모방범'인가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납득하게 된다. 

<사족> 마지막 장면은 마치 영화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에서 잭 니콜슨이 보여주었던 소름끼치는 마지막 클라이막스 씬이 연상되어 더욱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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