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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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가 또는 일본문학의 신이라 부를 정도로 일본이 자랑하는 작가이고 인간실격은 그런 그의 대표작이다. 작년에 전도연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작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제목만 동일한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 덕분에 갑자기 이 책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서점에서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 버전이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 김춘미씨 번역의 민음사판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약 13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작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도입부의 첫 문장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라는 문장인데 이것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김춘미씨가 번역한 버전을 우리는 거의 정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번역판들은 어떤가 궁금해서 미리보기 서비스로 이 부분만 비교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이 민음사판이 착 달라붙으면서 감기는 느낌이 강했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느낌이랄까... 번역가가 최대한 원문의 문장배열과 구성을 살린 직역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이질감없이 스며들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의 선택에 촛점을 맞춘 듯 했다



일본 작가의 글에는 고질적인 일본 특유의 화법이 있다. 예를들면 '이중부정'같은 것인데 '~なければならない' 즉 '~하지 않으면 안된다'같은 표현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처럼 쓸데없이 말꼬리를 길게 늘려서 표현하는 습성이 있다. 어떻게보면 일본의 국민성이 묻어있는 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교묘하게 본인의 의지가 빠져버린 책임회피형 또는 유체이탈형 화법이다. 


그래서 번역가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들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직역하지않고 적당히 우리식으로 의역해서 현지화하는 경우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원래 일본문학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날아가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가능한 한 원문의 느낌을 해치지않기 위해 번역가가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필력을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작품은 거의 대부분 주인공 화자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부분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공감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심리 그 자체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며 따라가게 된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압축된 간결한 대사들과 때로는 짧게 때로는 아주 긴 호흡의 문장들을 다채롭게 구사하기도 하고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보여주는데도 전혀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 등, 이 작가가 정말 똑똑하고 글을 잘 쓴다 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느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생으로 3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온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 修治)이고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는 필명이다. 본작 인간실격은 그가 죽은 해인 1948년작으로 거의 마지막 후기 작품에 해당한다. 부유한 집안에서의 출생과 내연녀와의 동반자살 시도라든지 정신병원 입원 등,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48년이면 일본이 2차대전의 패배로 인한 혼란과 침체를 겪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 젊은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들에게 가면처럼 이용했던 '익살'이라는 돌파구는 보는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그 익살이라는 가면이 벗겨질 때마다 주인공은 끝없이 추락하게 된다.


SNS로 실시간 소통하며 거침없이 감정표현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너무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화두가 아닐까 싶다. 다만 작가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관한 문제에 너무 과하게 몰두했던 것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참 생각이 많아서 슬픈 짐승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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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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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여기 알라딘에서 3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재작년인 2020년에 나온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작년말에 번역되어 나왔다. 원제는 'Why Fish Don't Exist' 직역하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고, 사실 책의 내용에 비추어 엄밀하게 번역한다면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냥 좀 더 알기쉽고 직설적이면서도 강한 화법으로 처리를 한 것 같다. 이 제목을 보니까 갑자기 오래전에 제목만으로도 엄청난 어그로를 끌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유튜브도 썸네일이 중요하듯이 책도 제목이 중요하긴 하다.


저자 룰루 밀러는 직업이 과학 전문 기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녀의 논픽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장르가 굉장히 특이하고 복잡하다. 기자출신답게 기본적으로 필력이 좋아서 이야기를 시종일관 흥미롭게 끌고가는데 정말 책을 딱 잡으면 중간에 끊기가 힘들 정도로 대단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번역도 흠잡을 곳이 없고 각 챕터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삽화도 인상적이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과 '어류', 즉 물고기다. 거기에 작가 자신의 내면적 성장과 치유의 코드를 섞어넣었다.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는 각각 '우생학'과 '분류학'이라는 반전 키워드가 등장하여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의 흐름을 180도 뒤엎어버리는 구성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마치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되짚어보는 전기물처럼 보이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의 자기계발서인가 싶기도 하다가, 후반부에는 업계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사회고발 르포같은 느낌도 난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절묘하게 섞여있고 거기에 충격적인 반전까지 더해져서 색다른 재미의 책읽기와 함께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한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어류학자로 생물학계에서는 대단한 업적과 함께 존경받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나면 이 낯선 인물에 대해 거의 박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되는데 작가가 그의 모든 저서와 기록물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재조명하고있는 덕분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의 치부까지도 들여다보게 되고 알고보니 열렬한 우생학 지지자였다는 것...



초반에는 저자의 인생멘토처럼 화려하게 등장시켜 본받고싶게 만들다가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나락으로 보내면서 독자들에게 확실한 충격요법을 선사한다. 어떻게보면 이미 죽은지 한 세기가 다되어가는 사람을 거의 부관참시하는 수준인데, 이것이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가 최초로 밝혀낸 새로운 사실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전부터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별 관심이 없던 것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이겠지...


저자가 진짜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흐름 그대로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되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좌절에도 굴하지않는 긍정적 에너지에 감동받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가 우생학을 지지했던 그의 비뚤어진 사상을 뒤늦게 알게되어 크게 충격을 받고 실망을 하게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알려진 우생학과 관련한 그의 논란을 먼저 접하고서 이것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책을 쓰기로 하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왕이면 드라마틱한 재미가 가미된 구성이 낫겠다 싶어서 일부러 모른척 하다가 뒤늦게 알게되는 설정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후반부에는 또 '캐럴 계숙 윤'의 'Naming Nature'라는 책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분류학을 다룬 그 책에서 발견한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과연 저자에게 얼마나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전세계의 물고기를 찾아서 이름 붙이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한 인물과 절묘하게 대칭선상에 위치하는 이 명제를 엮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어류'라는 종은 사실 하나의 종으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이론을 확신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에게 연락해서 일일이 확인을 받는 장면도 나오기는 하는데... 글쎄... 어류, Fish, 물고기라는 이름이 의미가 없는 말이라면 벌써 학계에서 난리가 났을테고 생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당연히 교과서에도 적용이 되었겠지...


구글에서 캐럴 계숙 윤과 Naming Nature를 검색해보면 별거 안 나온다. 세계적으로 대단한 주목을 받았던 흔적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학계에서도 그냥 흥미로운 관점 정도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신경 안쓰는 화두인데, 작가 혼자 너무 호들갑떠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얻게 되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편견들을 버리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계발서에서 흔하게 나오는 이런 아전인수격 궤변을 제일 싫어한다. 마지막에 저자가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듯 흥분해서 반복적으로 얘기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꺼내는 느낌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동성 배우자에 관해 필요이상으로 많이 언급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양성애적 성향에 고민하다 결국은 편견을 버리자는 결론을 통해 자기합리화와 함께 스스로 당당하고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뭏든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이기는 한데, 그 주제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관을 좀 억지로 끼워맞추듯이 엮고있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이 책이 나왔던 2020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는 결국 관계자와 학생들의 건의에 의해 '조던 홀' 등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관련한 기념관의 이름을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류'라는 명칭이 없어졌다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과는 달리, 한 역사적 인물의 의미있는 업적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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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살인자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 1
스테판 안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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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고 원제는 'Offer Uten Ansikt', 구글번역으로 돌려보면 '얼굴 없는 희생자' 정도로 해석이 된다. 영문번역판 제목도 'Victim without a Face'로 거의 그대로 직역을 한 셈인데, 우리나라에서만 피해자를 살인자로 제목의 의미를 완전히 정반대로 바꿔놓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제목이 내용과 훨씬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스테판 안헴은 1966년생으로 현재 50대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다. 2000년대에는 주로 범죄스릴러 장르의 TV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다가, 2010년대에 와서는 책을 쓰는데 주력하면서 이 작품의 성공을 발판으로 주인공인 파비안 리스크 형사의 시리즈물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오고 있다.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할 정도의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현재까지 이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는 모두 6편이 발표된 상태이고, 우리나라에는 그 중에서 초기 두 작품이 순서대로 먼저 번역되어 나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파비안 리스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리즈 1편이 되겠다. 북유럽 스릴러는 이제는 일본 추리물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로 형성해도 좋을만큼 다양한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나름 확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북유럽이라 하면 일단 스칸디나비아 반도, 즉, 노르웨이, 스웨덴 , 핀란드 이 세나라가 딱 떠오르는데 여기에 보통 덴마크, 그린란드, 아이슬란드까지도 포함해서 지칭하고 있다. 그린란드야 뭐 어차피 덴마크 땅이니까...



아뭏든 차가운 날씨와 백색의 눈, 투명한 얼음, 끝없는 숲... 그리고 왠지모를 적막함과 고요함이 연상되는 지역답게 북유럽 스릴러들은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렛미인'이라는 영화만 보더라도 스웨덴판 원작과 미국판 리메이크작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짐에도 작품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천지차이다. 뭔가 살을 에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 그런게 있다. 이 작품도 읽다보면 그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와 함께 수위 높은 잔인함과 선정성 등, 북유럽 스릴러만 가지고있는 특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단 이 작가는 필력이 아주 좋다. 프로작가다운 노련미가 있으며, 특히 '서사'를 짜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의외의 범인이나 기발한 반전 같은 트릭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해나간다는 큰 줄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 보다는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간의 이해관계와 갈등 등, 풍성하고 디테일한 스토리의 '흐름'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작가가 쌓아올리는 치밀하고 디테일한 서사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난 좋았다.



각 캐릭터들의 개성도 강하고 잘 절제된 대사들도 수준이 높다. 다만 주인공 캐릭터와 관련한 사연에 관해서는 떡밥만 뿌리고 설명을 안해주는데 이것은 은근히 후속편을 염두에 둔 장치로 보여진다. 확실히 시즌제 드라마를 써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작가도 '요 네스뵈'처럼 주인공을 좀 가학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같은 경우만 봐도 어떤 편에서는 손가락이 잘리고 또 어떤 편에서는 입이 찢어지는 등 회가 거듭될수록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파비안 리스크도 처참할 정도로 거의 당하기만 한다. 혼자 멋있는건 다하는 얄미운 주인공보다야 차라리 이런 캐릭터가 낫긴 한데... 하여튼 북유럽의 주인공 형사들은 보는 사람을 좀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의 주요배경은 스웨덴의 '헬싱보리'라는 도시다. 처음에 주인공이 스톡홀름에서 이 헬싱보리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옆이 덴마크라 마치 옆 동네 드나들듯 쉽게 왔다갔다 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심지어 맥주 사러 독일까지도 마실가듯 다녀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좀 신기했다. 그리고 중간에 아이들과 해수욕하러 간다는 대화 같은 걸로 추측하자면 북유럽치고는 상당히 따뜻한 지역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스웨덴 소설에서도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가 나와서 의아했는데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아래위로 길쭉해서 다양한 날씨가 존재하는 것 같다.


번역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거슬리는 부분이 거의 없는데, 외국 장르소설들 번역이 이 정도만 되어준다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범죄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최종 빌런 즉, 범인에 관한 캐릭터 구축이 좀 부실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흡인력있는 서사와 드라마가 정말 강력해서 600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에도 흥미를 잃지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아마 다음에도 이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는 한 편쯤은 더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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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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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Blacktop Wasteland'이고 Wasteland야 당연히 황무지, 불모지라는 뜻인데, Blacktop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서 찾아보니까 '아스팔트'를 뜻하는 말이었다. 도로 포장할 때 쓰는 아스팔트가 검정색이라서 현지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것 같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배합된 재료들의 비율과 가열 온도의 차이에 따라 블랙탑과 아스팔트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던데... 어쨌든 황무지의 비포장도로와 아스팔트를 넘나드는 자동차 액션과 미국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흑인들의 삶이 주요 소재로 활용되고 있어서 아마도 작가가 중의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로 선택한 제목이 아닐까싶다.



작가 S.A.코스비는 미국 버지니아주 출신이고 영미권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흑인 작가다. 그런데 구글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작가의 나이는 나오지 않는다. 트위터에서 쓰는 아이디를 겨우 힌트삼아서 아마 73년생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현재 50대로 접어드는 나이다. 



이 작품은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이고 재작년인 2020년에 발표되었다. 범죄 스릴러와 관련한 수많은 수상 이력이 눈길을 끄는데 처음 책을 펼치면 무려 8페이지에 걸쳐서 각종 언론들과 다른 유명 작가들의 찬사와 추천사가 도배되어 있다.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있나 싶을 정도여서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아뭏든 이 작품과 또 작년 21년에 연이어 발표한 최신작 'Razorblade Tears'가 모두 영화 판권이 팔렸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도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본작 '검은 황무지'는 흑인 작가의 작품답게 주인공 및 주요인물들이 모두 흑인이다. 그리고 작품배경이 되는 지역이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버지니아주인데, 이 부분을 좀 주목할 필요는 있다. 버지니아는 미국에서 남부로 분류되는 지역이며 전통적으로 극우성향이 강하다. 책에서도 남부연합을 상징하는 '딕시 플래그'가 수차례 등장할 정도로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다.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빌런들 거의 대부분이 백인으로 설정된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무려 2010년대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등장인물들의 대사 곳곳에서 미국에는 여전히 인종차별 문화가 뿌리깊게 배어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전형적인 하이스트 케이퍼 장르에 미국의 올드카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동차 액션도 끼워넣고 그것을 하드보일드 느와르 스타일로 풀어가는 그야말로 극한의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훨씬 더 치중하고 있기때문에 사실 흑백갈등과 같은 요소는 스토리를 좀더 풍성하게 만드는 디테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이러한 지역정서를 미리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는 요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작가의 필력은 예상외로 좋은 편이다. 스토리 자체가 이미 각종 영화들에서 수없이 다루어온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너무나 익숙한 플롯으로 손쉽게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기때문에 신선함이나 독창성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지만 그 익숙한 스토리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풀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작가는 기발한 반전이나 충격적인 시퀀스 같은 잔재주를 쓰지않고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흔한 이야기를 흡인력있게 끌고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주는 자잘한 에피소드의 흐름도 좋고 지역정서가 녹아있는 대사들도 적당한 유머와 함께 잘 짜여져 있다.


다만 마지막 클라이막스 액션시퀀스는 너무 헐리우드 스타일의 식상한 클리셰로 좀 안일하게 처리한 듯해서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중간중간 절묘한 타이밍에 마치 갱스터랩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올 것만 같은 전형적인 웰메이드 액션영화 한편을 기분좋게 감상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들었던 점이라면 역시나 '번역'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기본적으로 어릴때부터 인종차별이 심한 우범지역에서 자라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 살인 등에 끊임없이 물들어온 밑바닥 인생들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도입부 드레그 레이싱 장면부터 이미 번역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초반부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라 대사를 그 성격에 걸맞는 톤으로 번역해야하는데 전혀 고려하지를 않았다.



이 부분은 낯선 남자가 자신의 차를 보고 칭찬 한마디 툭 던지는 장면인데 주인공이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건장한 피지컬의 캐릭터와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톤이라 좀 황당하다. 그냥 '고맙소'라고 하는게 맞을거다.



그리고 연이어 가짜 경찰들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친구 아닙니다', '돈은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번역하면서 주인공의 성격을 정말 나약하고 고분고분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도 그냥 '친구 아니오', '돈은 못 주지' 정도로 하는게 훨씬 어울린다.



'당신이 레이지입니까?' 이것도 '당신이 레이지요?' 해야 캐릭터가 살아난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톤도 역시 황당한 번역들이 많다.



이런 것도 그냥 '내가 왜 그런 걸 갖고있다고 생각해? 왜? 흑인이라서?'라고 당연히 거친 반말로 툭툭 내뱉는 톤으로 처리해야하는 장면이다. 그래야 그 다음에 나오는 약간 미안하게 생각하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흑인 갱스터 무비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거친 캐릭터들이 즐비한데,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지않은 대사톤들은 정말 읽다가 확 깨게 만든다.


대사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도 조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 '에어컨이 공기를 컨디셔닝하지 못했다'라고 순진하게 직역해버렸는데, 에어컨은 영어로 '에어 컨디셔너'다. 그래서 원문은 아마도 '컨디셔너가 컨디셔닝을 하지 못했다'라는 식의 결국 그 이름값을 하지못했다는 의미로 작가가 말장난 조크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어차피 디테일한 조크까지 살리지 못할거면 그냥 '공기를 차갑게하는 기능은 하지못했다'라고 하면 된다. 컨디셔닝하지 못했다는 말은 도대체 뭔가?



또 여기 '앞범퍼가 원래 범퍼가 있던 자리를 키스하듯 스쳤다'는 도대체 무슨 말일까? 몇번을 다시 읽어도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액션씬들은 글을 통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져야 현장감이 살아나는 것이고, 이 작가는 그런 점을 상당히 디테일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도 번역이 제대로 살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세 명의 남자가 밴이 아니라 SUV에서 나왔다고 해야한다. 후반부 중요한 액션씬인데 밴과 SUV 두대 중에 SUV에서 나와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명백한 번역오류에 해당한다. 이거 읽다가 인물들의 행동에 앞뒤가 안맞아서 몇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전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실력없는 번역가들이 쓸데없는 주석을 많이 단다.



여기 '존 휴스', '몰리 링월드'는 앞뒤 문맥 흐름상 정확히 누군지는 몰라도 각각 영화감독과 배우일 것이라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 굳이 주석이 필요없고 '하이스트 무비'같은 대중적인 단어도 당연히 필요없다.



이렇게 '토크컨버터'처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유추되는 단어는 주석이 필요없는 것이다.



정작 주석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다. '산모기 득실대는 촌구석엔 안간다. 리치몬드로 와라. 거기는 모기가 트럭을 몬다며?' 이런 말에 '걱정마. 딕시플래그만 달고오면 별일 없을거다'라고 대꾸하고 있다. 느낌상 인종차별이 가미된 지역정서를 풍자한 조크가 들어있는 장면이다. 미국 현지인이라면 분명히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듣고 재미있어할 대사들인 것이다. 바로 이런 부분에 주석을 달아서 유머코드를 이해하도록 해줘야 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단어들에 쓸데없이 주석달아서 생색내는 번역가치고 실력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이 네버모어라는 출판사는 전에 리뷰했던 '고리키 파크'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라는 책을 펴낸 곳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그 두 작품도 번역이 좋지 않았다고 얘기한 바 있다.


요즘 사람들이 워낙 책을 안 사 읽으니 출판사들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또 그러다보니 비용절감을 위해 어쩔수없이 실력 좋은 번역가를 못쓰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게 결국은 고스란히 독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좋은 작품을 좋은 번역으로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번역이 작품의 완성도를 적어도 20% 이상 깎아먹고 있다. 다행히 스토리가 워낙 단순하고 직선적인데다가 작가가 문장에 그다지 고급 스킬을 구사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나마 작품의 재미가 크게 반감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다. 


참고로 작품에서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는 애마로 등장하는 차량인 '더스터'는 크라이슬러 산하의 브랜드였던 플리머스가 70년대초에 내놓았던 모델이다. 물론 책에서는 이에 대한 주석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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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man 2022-01-31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가 문제 정말 공감합니다.
번역가 때문에 읽기를 미리 포기한 시리즈도 있는 지라...

실버북 2022-01-31 12:1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무리 읽고싶은 작품이라도 이제는 특정 번역가의 이름이 보이면 미련없이 패스해버립니다. ㅎㅎ

blackrain 2023-10-01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괄호 안에 굳이 마침표를 다 찍는 편집도 많이 거슬리더군요. 괄호가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있는데 그걸 전혀 인식을 못 하는 건지...
말씀하신 부분도 공감하는 게, 약간 오역이라도 드라마 속 인물의 대사처럼 자연스럽게 다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군데군데 참 어색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는 재밌어서, 아쉬움이 더 큰 듯.

실버북 2023-10-01 18:08   좋아요 0 | URL
네버모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대부분 번역이 좋지 않았습니다. 좋은 번역가를 쓸 만한 여건이 안되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이 작가의 후속작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도 정말 고민 많이 하다가 구매했습니다. 엉터리 번역가거든요. 그래도 작가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 같아서 번역 무시하고 그냥 제가 알아서 적당히 감 잡아서 읽으려고요. 어떤 스토리인지 궁금해서...^^; 댓글 감사합니다~
 
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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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판사가 '인플루엔셜'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신생업체인데, 최근에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예고편같은 경우에도 최근에는 기존의 하이라이트 영상편집 방식에서 벗어나 무삭제 예고편이라 해서 일부 구간을 편집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 출판사도 그러한 무삭제 예고편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초반 약 1/3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만 떼내어 티저북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제작해서 신청자들에게 무료배포하는 형식으로 작품 홍보를 하는 식이다. 일단 초중반부까지만 읽어보고 뒷부분이 궁금하다면 본책을 사보라는 그런 전략...



실제로 네이버에서 이 책의 리뷰를 검색하면 티저북에 대한 글들이 많다. 어차피 요즘 포털사이트의 리뷰들이야 거의 대부분 홍보 아니면 광고인데, 이 책의 경우는 정식 출판이 되기도 전에 티저북으로 아예 미리 홍보를 한 셈이다. 출판사의 이런 새로운 홍보전략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꽤 성공적인 마케팅이라 봐야겠다.


작가 'S.K.바넷'은 1954년생으로 현재 60대 중반이고 소개란에도 나와있듯이 필명인데, 찾아보니 본명이 '제임스 시겔'이다. 제임스 시겔은 예전에 '탈선'이란 작품을 썼던 작가다. 원제가 '디레일드(Derailed)'인데... 2003년도에 발표되었던 소설이고 우리나라에는 2006년에 번역소개되었다. 2005년에는 클라이브 오웬과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이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영화의 각본에도 직접 참여했었다.



당시에 영화와 책을 모두 다 봤기때문에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기억나는데, 일단 이 작가는 스토리를 정말 재미있게 끌고가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작품도 다른건 몰라도 재미면에서는 충분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왜 필명을 썼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다. 이미 알려진 작가가 갑자기 필명을 쓰는 경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기존의 스타일을 벗어난 시도를 하고싶을 때 많이들 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J.K.롤링'도 범죄 스릴러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임스 시겔은 2000년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몇권의 책을 발표했지만, 앞서 언급한 디레일드 한 작품 이외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주지사나 대통령 선거운동 등 주로 정치 관련 일에 몸담아오다가 실로 오랜만에 다시 소설가로 컴백한 작품이 바로 이 '세이프'인데, 작가로서 이미 잊혀져간 이름은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예전 '탈선'때와 비교하면 글쓰는 스타일이 좀 달라졌다. 비교적 단순하고 쉬운 글쓰기로 스토리와 반전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작품은 문장들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기교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런 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등장인물의 현재 생각과 과거 기억들이 별다른 구분없이 뒤섞이며 서술되는 형식이라 평범한 장면도 뭔가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듯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예를들어 여기 '사진을 갖고 있어요'라는 말은 이 장면에서 긴장감을 폭발시키는 중요한 대사인데, 이런 식으로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계속 환청처럼 맴도는 듯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식의 대사와 생각이 뒤섞이는 현란하고 감각적인 서술법을 적극 활용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는 것은 확실히 영리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술방식의 기교에만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스릴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빌런'에 대한 캐릭터 구축이 부실해서 절대악을 대면한다는 당위성과 공포감도 부족하고 감정이입이 힘들다보니 후반부의 긴장감은 아무래도 좀 반감되는 느낌이다.


사실 문장의 문학적인 감성이나 기술(記述)적인 테크닉, 그리고 서사를 쌓아가는 방법적인 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본다면, 작가의 필력이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확실히 자신의 작품으로 영화 각본까지 참여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작품도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컴퓨터 해킹으로 중요한 단서를 손쉽게 풀어간다든지 중간중간 뿌려놓은 떡밥들을 막판에 회수하는 방식 등 후반부는 거의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도 이미 영화사에서 판권을 샀다고 하니까...


'유괴'라는 어쩌면 너무나 식상한 소재임에도 새롭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는 역시나 나쁘지 않다. 나중에 영화로 나온다고해도 킬링타임용에 걸맞는 재미는 충분히 보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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