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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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가 또는 일본문학의 신이라 부를 정도로 일본이 자랑하는 작가이고 인간실격은 그런 그의 대표작이다. 작년에 전도연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작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제목만 동일한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 덕분에 갑자기 이 책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서점에서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 버전이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 김춘미씨 번역의 민음사판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약 13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작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도입부의 첫 문장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라는 문장인데 이것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김춘미씨가 번역한 버전을 우리는 거의 정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번역판들은 어떤가 궁금해서 미리보기 서비스로 이 부분만 비교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이 민음사판이 착 달라붙으면서 감기는 느낌이 강했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느낌이랄까... 번역가가 최대한 원문의 문장배열과 구성을 살린 직역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이질감없이 스며들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의 선택에 촛점을 맞춘 듯 했다



일본 작가의 글에는 고질적인 일본 특유의 화법이 있다. 예를들면 '이중부정'같은 것인데 '~なければならない' 즉 '~하지 않으면 안된다'같은 표현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처럼 쓸데없이 말꼬리를 길게 늘려서 표현하는 습성이 있다. 어떻게보면 일본의 국민성이 묻어있는 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교묘하게 본인의 의지가 빠져버린 책임회피형 또는 유체이탈형 화법이다. 


그래서 번역가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들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직역하지않고 적당히 우리식으로 의역해서 현지화하는 경우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원래 일본문학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날아가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가능한 한 원문의 느낌을 해치지않기 위해 번역가가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필력을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작품은 거의 대부분 주인공 화자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부분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공감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심리 그 자체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며 따라가게 된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압축된 간결한 대사들과 때로는 짧게 때로는 아주 긴 호흡의 문장들을 다채롭게 구사하기도 하고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보여주는데도 전혀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 등, 이 작가가 정말 똑똑하고 글을 잘 쓴다 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느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생으로 3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온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 修治)이고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는 필명이다. 본작 인간실격은 그가 죽은 해인 1948년작으로 거의 마지막 후기 작품에 해당한다. 부유한 집안에서의 출생과 내연녀와의 동반자살 시도라든지 정신병원 입원 등,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48년이면 일본이 2차대전의 패배로 인한 혼란과 침체를 겪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 젊은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들에게 가면처럼 이용했던 '익살'이라는 돌파구는 보는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그 익살이라는 가면이 벗겨질 때마다 주인공은 끝없이 추락하게 된다.


SNS로 실시간 소통하며 거침없이 감정표현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너무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화두가 아닐까 싶다. 다만 작가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관한 문제에 너무 과하게 몰두했던 것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참 생각이 많아서 슬픈 짐승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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