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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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판사가 '인플루엔셜'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신생업체인데, 최근에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예고편같은 경우에도 최근에는 기존의 하이라이트 영상편집 방식에서 벗어나 무삭제 예고편이라 해서 일부 구간을 편집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 출판사도 그러한 무삭제 예고편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초반 약 1/3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만 떼내어 티저북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제작해서 신청자들에게 무료배포하는 형식으로 작품 홍보를 하는 식이다. 일단 초중반부까지만 읽어보고 뒷부분이 궁금하다면 본책을 사보라는 그런 전략...



실제로 네이버에서 이 책의 리뷰를 검색하면 티저북에 대한 글들이 많다. 어차피 요즘 포털사이트의 리뷰들이야 거의 대부분 홍보 아니면 광고인데, 이 책의 경우는 정식 출판이 되기도 전에 티저북으로 아예 미리 홍보를 한 셈이다. 출판사의 이런 새로운 홍보전략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꽤 성공적인 마케팅이라 봐야겠다.


작가 'S.K.바넷'은 1954년생으로 현재 60대 중반이고 소개란에도 나와있듯이 필명인데, 찾아보니 본명이 '제임스 시겔'이다. 제임스 시겔은 예전에 '탈선'이란 작품을 썼던 작가다. 원제가 '디레일드(Derailed)'인데... 2003년도에 발표되었던 소설이고 우리나라에는 2006년에 번역소개되었다. 2005년에는 클라이브 오웬과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이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영화의 각본에도 직접 참여했었다.



당시에 영화와 책을 모두 다 봤기때문에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기억나는데, 일단 이 작가는 스토리를 정말 재미있게 끌고가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작품도 다른건 몰라도 재미면에서는 충분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왜 필명을 썼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다. 이미 알려진 작가가 갑자기 필명을 쓰는 경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기존의 스타일을 벗어난 시도를 하고싶을 때 많이들 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J.K.롤링'도 범죄 스릴러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임스 시겔은 2000년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몇권의 책을 발표했지만, 앞서 언급한 디레일드 한 작품 이외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주지사나 대통령 선거운동 등 주로 정치 관련 일에 몸담아오다가 실로 오랜만에 다시 소설가로 컴백한 작품이 바로 이 '세이프'인데, 작가로서 이미 잊혀져간 이름은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예전 '탈선'때와 비교하면 글쓰는 스타일이 좀 달라졌다. 비교적 단순하고 쉬운 글쓰기로 스토리와 반전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작품은 문장들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기교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런 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등장인물의 현재 생각과 과거 기억들이 별다른 구분없이 뒤섞이며 서술되는 형식이라 평범한 장면도 뭔가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듯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예를들어 여기 '사진을 갖고 있어요'라는 말은 이 장면에서 긴장감을 폭발시키는 중요한 대사인데, 이런 식으로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계속 환청처럼 맴도는 듯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식의 대사와 생각이 뒤섞이는 현란하고 감각적인 서술법을 적극 활용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는 것은 확실히 영리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술방식의 기교에만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스릴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빌런'에 대한 캐릭터 구축이 부실해서 절대악을 대면한다는 당위성과 공포감도 부족하고 감정이입이 힘들다보니 후반부의 긴장감은 아무래도 좀 반감되는 느낌이다.


사실 문장의 문학적인 감성이나 기술(記述)적인 테크닉, 그리고 서사를 쌓아가는 방법적인 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본다면, 작가의 필력이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확실히 자신의 작품으로 영화 각본까지 참여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작품도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컴퓨터 해킹으로 중요한 단서를 손쉽게 풀어간다든지 중간중간 뿌려놓은 떡밥들을 막판에 회수하는 방식 등 후반부는 거의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도 이미 영화사에서 판권을 샀다고 하니까...


'유괴'라는 어쩌면 너무나 식상한 소재임에도 새롭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는 역시나 나쁘지 않다. 나중에 영화로 나온다고해도 킬링타임용에 걸맞는 재미는 충분히 보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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