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인 2011년에 이스라엘에서 처음 발표되었던 책인데, 2014년에 영문판이 나오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다음해인 2015년에 번역 소개되어 당시 서점가를 휩쓸었던 책이다.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1976년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이다. 현재 40대 중반이니까 이 책은 겨우 30대 중반에 썼다는 얘기인데... 대단하다. 원제 역시 'Sapiens'이고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제목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총균쇠의 아류작 수준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총균쇠에서 검증했던 인류의 차별적 성장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관한 통찰력이 이 책에서 다루고있는 내용을 지탱하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훨씬 폭넓은 관점에서 날카롭고 새로운 시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마치 '대부1'을 뛰어넘은 '대부2'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동안 무수히 나왔던 다른 역사책들이나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에서 이미 수없이 다루었던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의 반복에 불과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에 관한 에피소드는 벌써 몇번째 읽는 이야기인지도 모를 정도다. 하지만 최초에 인류가 생성된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만큼 깔끔하고 흥미롭게 정리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마치 '라쇼몽'처럼 특정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여러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넓혀가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멀리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중간중간 필요할 때마다 살짝 깊이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흐름에 집중하면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잘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일 수도 있는 저자의 주장들이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면서 강력하게 다가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이다.


초반부에 저자가 농업혁명으로 인해 과연 인간들의 삶이 예전 수렵채집의 시절보다 나아졌는가? 라고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편하게 살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상 더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아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많은 베스트셀러들 중에 초반부 강한 충격요법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서술법을 쓰는 책들이 많다. 예를들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경우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은 알고보니 엉터리였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서는 일본인들은 지하철에서도 대부분 책을 읽을 정도로 근면하다고 알고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웬걸 전부 눈감고 자고있더라... 우리랑 다를바 없더라...라고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통념을 정반대로 깨면서 관심을 확 끌어들이고 그 여세를 몰아서 서서히 본인의 주장에 동조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책이든 강연이든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긴 하다. 다만 그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와 충분한 자료조사가 뒷바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단순히 관심을 끌기위한 목적으로 어설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저자가 결코 허술하게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기존의 통념을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과학적 증거나 통계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충분히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듯한 만족감도 높다.



일단 저자가 글을 정말 재미있게 잘 쓴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임에도 너무나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총균쇠를 읽을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안들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고등학생인 내 딸아이도 꼭 읽어봤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알기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번역도 아주 좋다. 군데군데 오래된 인용문들의 말투라든지 센스있는 주석들이 가독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지금 현재 나의 삶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가치있는 삶, 그리고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 말이다. 역사책을 읽었는데 마치 훌륭한 자기계발서를 읽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이 쓰여진 후 또다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했고 계속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저자도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현 시점의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역사를 통해 되돌아봄으로써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색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던 것 같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어쩌면 근미래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야말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스트리밍, 전기차의 시대가 아닌가...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테슬라... 이런 거대기업들이 합병을 거듭해서 나중에는 '구글 유니버스'같은 미지의 존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아뭏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때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들이 가득하며 저자가 제시하는 화두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뒤늦은 깨달음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특히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큰 딸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할텐데 과연 읽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책 열심히 읽어도 아이들은 여가시간에 스마트폰밖에 안보니까... 어른이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 그대로 이것 또한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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