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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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만화책이고 작가 역시 유태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만화책을 '코믹스'보다는 '그래픽노블'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결국은 똑같은 말이고 성인 독자들을 겨냥한 좀 더 고상한 표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마블이나 DC의 원작만화들이 들어오면서 그래픽노블이 이젠 하나의 장르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 같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1948년생으로 현재 70대 중반의 만화가이다. 이 쥐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고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원래는 1권 2권이 따로 나온 작품인데 지금은 합본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1권은 1986년에 2권은 1991년에 각각 발표되었던 고전 명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올해초 미국 테네시주의 모 교육위원회에서 그동안 8학년 교과과정에 있던 이 작품을 폭력과 노출의 이유로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소식이 현지에서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슈화되면서 그 결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이 책이 갑자기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하며 역주행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올라오면서 현재 그래픽노블이나 청소년역사 분야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만화는 확실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있는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물론 캐릭터를 묘사하는 화풍에서도 제법 큰 차이가 있지만 페이지 전체를 구성하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이질감이 훨씬 크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흔히 일본만화로 대표되는 동양권의 만화는 행동과 대사의 연속성이 강하고 특히 대사들이 소설보다 훨씬 현실감있는 구어체라 그림과 완벽한 일체감을 가진다.그래서 컷과 컷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서양권의 만화는 컷분할과 대사에서 일단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인물들의 행동에 연속성이 별로 없어서 정적인 구도로 느껴지는 컷이 많고 대사톤도 다소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이라 뭔가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릴때 이현세나 허영만, 그리고 일본의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동양스타일의 만화만 접했던 사람들에겐 그래픽노블은 처음에 좀 적응하기 힘들 가능성이 많다. 예전에 '앨런 무어'라는 작가가 그래픽노블의 거장이라는 칭송이 자자해서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라는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처음 몇 페이지 읽다가 도통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미가 없어서 찔끔찔끔 읽는둥 마는둥 하다가 결국 팔아버렸던 경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서양스타일의 그래픽노블이면서도 의외로 전세계 누구나 쉽게 접근가능한 보편적인 화법과 구성을 취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런 위화감이나 불편함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 만화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이 작가의 그림스타일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빈틈이 전혀 없다고 해야할까... 작은 컷 안에 대충 휘갈겨 그린 것 같지만 필요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컷 한컷 그릴 때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구도를 만들고 대사를 넣고 또한 갖가지 디테일을 깨알같이 심었는지 정말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빛과 그림자 등 흑백만화의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명암대비가 돋보이고,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라는 식의 나라별로 다른 동물로 표현하는데 폴란드인인 척하는 유태인은 간단하게 돼지가면을 쓴 모습으로 그리는 등의 만화적 상상력과 직관적 표현이 극대화된 센스가 그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작가가 철저한 계산하에 그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증언을 토대로 가족의 실화를 만화로 옮긴 것이다. 실화라서 사실감 넘치고 생생한 현장감이 피부에 와닿는 건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나치의 잔악함이나 수용소의 참혹함에만 촛점을 두고있지는 않다. 그에 못지않게 전쟁의 휴유증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시각을 넓혀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이라든지,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저자가 '이스라엘'의 유태인은 어떤 동물로 할거냐는 질문에 '두더지'라고 대답하는 모습 등 의외의 생각할 거리들도 많이 던져준다.



비록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생존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용소에서 부부가 마침내 재회하는 부분에서 많이 울컥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세월을 겪어왔기때문에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동변상련의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내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도 새삼 깨닫게되었고 늘 옆에 있는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화 그 자체에서 오는 생생한 간접 체험과 탁월한 만화가의 손길이 만났을 때 관연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바로 이 작품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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