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장소/서울역

1900년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고, 현재는 철도와 지하철, 공항철도가 이어진 대한민국 교통의 심장부다. 서울역을 기점으로 북쪽에는 남대문, 시청, 광화문,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중심로가 있고 이 길의 왼편에는 서대문역, 독립문역을 지나 은평구로 이어지는 중심도로가 있다. 오른편에는 남대문시장, 명동,
충무로, 왕십리로 이어지는 대로가 펼쳐진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용산을 거쳐 한강을 지난 후 노량진, 영등포로 나아가니 이보다 교통의 요지일 수는 없을 것이다.

구한말 철도만큼 중요한 수단은 없었다. 철도가 놓이는 곳에서 교통 혁명이 일어났고 근대 문물의 유입, 물자의 유통을 비롯한 엄청난 사회 혁신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철도는 식민지 개척의 수단이기도 했다. 철도를 놓으면 군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역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놓이기전에 조선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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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없는데도 온 세상이 살판난 것처럼 들떠 있는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가 참을 수 없더니, 내 아들이 없는 세상 차라리 망해버리길 바란 거나 아니었을까. 내 무의식을 엿본 것 같아 섬뜩했다. 아아, 천박한 정신의 천박한 꿈이여. 내 아들아, 어쩌면 에미를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니.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런고로 그분을 덧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恐懼)하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나서 한 생각 중 꽤 괜찮은 생각은 앞으로 나에겐 기쁨도 없겠지만 근심도 없으리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람. 남이 안하는 걱정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내 걱정을 요약하면 또다시 사랑하는 이가 죽는 것을 볼까 봐였다. 아직도 나에게 걱정거리가 많은 것은 아직도 사랑이 안 끝났음인가. 병적인 걱정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 돌아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사후의 생명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보증이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신의 명확한 계산서였다. 이런 나에게 나 자신도 도무지 속수무책이었다.

하나의 죽음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사랑과 기쁨, 고통과 슬픔, 체험과 인식 등, 아무하고도 닮지 않은 따라서 아무하고도 뒤바뀔 수 없는 그만의 소중하고도 고유한 세계의 소멸을 뜻한다.

그 아들에 그 에미랄까, 나 또한 아들의 마음이 끌린 쓸쓸함에 무조건 마음이 끌려 그 애가 원하는 것을 쾌히 승낙했다. 늘 사랑과 칭찬만 받으면서 자라 명랑하고 거침이 없고 남을 웃기기 잘하고 농담 따먹기에 능하던 아들의 전혀 새로운 면이었다.
나는 그때 아들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 품안의 자식인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알아버렸다가 아니라 알아야 할 무진장한 걸 가진 대상으로 우뚝 섰을 때 얼마나 대견했던지, 그리고 그때의 그 앎의 시작에 대한 설렘까지 꼬박이 밝힌 새벽빛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며칠째 시간 감각이 마비가 된 건지 착란을 일으킨 건지 시시각각이 여삼추 같다가도, 지내놓고 보면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건너뛴 것처럼 기억이 지워지곤 한다. 죽음이란 숨쉬지 않음인가, 기억 없음인가.

오늘의 바다 빛깔은 오염이 심할 때의 한강의 해빙기 같다. 해변 가까이는 얼음판 같은 빛깔이고 먼바다는 탁한 회색이다. 그리고 그 두 빛깔 사이의 경계 또한 강의 얼음장이 수심이 얕은 데만 남아 있을 때처럼 부드럽고 모호하다. 수평선도 다른 날보다 훨씬 다가와 보이건만 대마도는 지워진 듯 안 보인다. 나는 이런 풍경을 망막에 새기듯이 무턱대고 마냥 주시한다.
내 아들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의 무의미성에 그만 진저리를 친다.

당직이라 안 들어올 때는 내가 직접 먹을 것과 잠자리를 챙겨주지 못하는 허전함을 기도로써 대신하려 했고, 그 애를 위해 기도할 때처럼 내 정성이 하늘에 닿는 것처럼 느낀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내 정성은 결코 하늘에 닿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느님 같은 건 있지도 않다. 나는 억지를 부리듯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래도 신의 문제는 나를 쉽사리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아들이 없는데도 축제가 있고 환호와 열광이 있는 세상과 내가 어찌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혼자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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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인물/대조영

대조영(?~719년)은 발해를 건국한 고구려 유장이다. 발해의 건국은 7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 변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돌궐이 세력을 만회하여 북방에서 당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 거란족의 일파였던 이진충은 영주(오늘날 랴오닝성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진충의 난은 당나라에 의해 진압되지만 오히려 동북방 일대에서 당의 지배력은 약화된다. 거란은 물론 동호족 계통인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등이 당나라의 지배를 거부하고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 대조영의 아버지였던 걸걸중상 그리고 걸사비우 등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역사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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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사건/삼별초의 항쟁

삼별초는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됐다가 탈출한 이들을 중심으로 만든 신의군을 통합한 부대로,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든 야별초가 확대 발전했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만들었고 최씨 무신 정권의 핵심 무력 기반으로 발전한다.

삼별초의 항쟁은 오랜 기간 ‘외세에 대항한 민족 항쟁‘ 정도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무신 정권이 몰락하고 왕권이 회복되는 가운데 벌어진 ‘내전‘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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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을 땐 평화도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간간이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내 뜻과는 상관이 없었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 들볶이는 참깨처럼 온몸이 바삭바삭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탈진해서라도 잠들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고통을 살아야 할 까닭으로 삼아서라도 질기게 살아가게 될 내 앞으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늙은인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예절, 체면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내가 받은 벌은 내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니 나는 엄중하지만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견디기 위해서 왜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알아야만 했다. 아들을 잃은 것과 동시에 내 교만도 무너졌다.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그러나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내 죄목이 뭔지 알아냈다고 생각하자 조금 가라앉은 듯하던 마음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듯 비참해지고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뭔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에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란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젯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아침에 눈을 뜨자 잘 잤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나 그 애를 잃은 게 꿈이기를 바라는 몽롱한 순간 없이 곧장 의식이 명료해지고 말았다. 또 하루를 살아낼 일이 힘에 겨워 숨이 찼다. 이런 속도로 세월이 가서야 언제 내 아들에게 이르를 거나.

나는 남의 운명을 점치듯이 담담하게 내 앞날의 모습을 내다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수영만의 바다빛이 꼭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다. 문인들하고 유럽을 여행하면서 탄성을 지른 지중해 빛깔도 저러했던가. 그때가 언제더라. 먼먼 옛날의 일 같았다. 내가 문인이었던 것도.

새벽엔 뒤척이기도 지겨워 베란다로 나가 앉아 날이 밝아오는 걸 지켜보았다. 엷은 어둠이 지워져 가는 동안의 바다 빛깔의 변화가 말할 수 없이 미묘했다.
어느 순간 수영만의 빛깔이 정신이 아찔하도록 새파란 속살을 드러내면서 눈높이까지 차올랐다.

보이는 것이라고 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억하는 것이라고 다 존재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않나. 연일의 불면 때문인가, 기억과 보임, 실재와 감수성이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진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은 다행히 몽롱하다.

내 딴에 이성이나 지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절망적인 내 정신의 한계를 느낀다. 눈 딱 감고 부수든지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못 그러도록 나를 강하게 옭아매고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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