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보 1호는 남대문, 보물 1호는 동대문이다. 문화재를 지정하고 보호하는 제도는 일제 강점기부터였다. 남대문의 경우 일제 강점기 보존령에 따라 보물 1호로 정해졌다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국보 1호가 됐다. 일부시민단체는 남대문이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바꿔야 한다고 경험히 주장했다. 2008년 남대문에 화재가 나면서 목조 구조물이 대부분 타버리자 이러한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이러한 논란의 배경에는 1호가 가장 좋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보가 보물보다 좋은 것이고, 국보 중에서도 낮은 숫자일수록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보와 보물은 단지 구분 방식에 불과하고 번호는 편의상 필요한 것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

북한의 국보 1호는 평양성이다. 552년부터 성을 쌓았고 586년에 완공했다. 성의 규모는 매우 큰데 내성, 중성, 외성, 북성 4개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에는 궁궐과 관청이 있었고, 외성에는 백성의 거주 공간이 있었다. 대동강과 보통강이 성을[둘러싸고 있고, 북쪽에는 모란봉 을밀대, 만수대 등이 있어 지형이 험하다. 성벽에는 고구려 특유의 축성술이 반영돼 있다. 평양성의 문들도 국보유적인데 보통문, 대도문, 칠성문 등이 남아 있다. 외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멀리서도 볼 수 있고, 군사 지휘를 할 수 있는 장대가 일곱 개나 성안에 만들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을밀대 최승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여군 부여읍은 정말로 작다. 인구 2만 명이 채 안 되고 시가지라고 해야 사방 1킬로미터도 안되는 소읍(小邑)이다(2010년에야 규암에 리조트가 문을 열었고 백제문화테마파크가 조성되었다). 그래서 가람 이병기 선생도 「낙화암」이라는 기행문에서 부여의 첫인상을 "이것이 과연 고도(古都) 부여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허망부터 말했다.(김동환 편 『반도산하』, 삼천리사1941)
부여에 얽힌 이런 허망은 어쩌면 우리 머릿속에 은연중 들어앉은 부여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123년간의 도읍지로, 백제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다는 성왕, 위덕왕 시절 위업도 들은 바 있어서 고구려의 평양, 신라의 경주에 필적할 백제 왕도의 유적이 있으리라 기대해보게 된다. 최소한 공주 크기만할 것도 같다. 그러나 막상 부여에 당도해보면 왕도의 위용은커녕 조그만 시골 읍내의 고요한 풍광뿐이다.

육당의 부여에 대한 사랑의 예찬은 이처럼 끊임없는 사설로 이어져 만약 삼도 고적을 심리적으로 나눈다면 고구려는 의지적이고, 신라는 이성적임에 반해 백제는 감정적이면서 더 나아가 관능적이고 촉감적인 고적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보드랍고 훗훗하고 정답고 알뜰한 맛은 부여 아닌 다른 옛 도읍에서는 도무지 얻어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찬미했다.

부여 답사는 순서와 시간대를 적절히 배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나는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부여 답사의 일정표를 하나의 모범 답안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출발하든 광주 혹은 대구에서 출발하든, 또 공주를 거쳐 오든 곧장 오든 오후 서너 시에는 부여 초입에 있는 능산리(陵山里) 고분군에 들르는 것으로 부여 답사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왕도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되며, 거기에서 나성의 등줄기를 어깨너머로 바라보며 부여로 들어갈 때 곧 부여 입성(入城), 백제행을 실감케 된다.

백제고분모형관을 능산리 고분군 산자락 반대편에 유적 자체를 방해하지 않고 세운 뜻부터 훌륭하다. 모형관 안에는 서울 가락동 제5호 돌방무덤, 영암 양계리의 독무덤, 부여 중정리의 화장무덤 등 종류별로 아홉 개의 무덤 내부를 해부하듯 재현해놓아 그 까다로운 백제의 분묘 구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능산리 고분군| 사비시대 왕릉묘역으로 온화한 백제의 분위기가 잘 느껴진다. 여기와 인접한 곳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

능산리 고분군은 예부터 왕릉이라 전해져왔고 또 사신무덤 같은 특수한 예를 볼 때 더욱 왕릉으로 추정케 된다. 그러나 그 모두 왕릉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비시대 백제의 왕은 모두 여섯 분인데 그중 무왕은 익산, 의자왕은 중국에 그 무덤이 있다고 추정되고 있으니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네 분이 여기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능산리는 왕가(王家)의 묘역이거나 어느 왕, 아마도 위덕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하들의 딸린무덤〔陪塚〕이 된다. 아무튼 귀인의 무덤인 것은 틀림없다.

백제금동대향로 | 백제 금속공예의 난숙함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금동향로는 디테일이 아름다워 연판과 산봉우리마다 백 가지 도상이 조각되어 있다.

능산리 고분군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다. 1993년 고분모형관이 있는 바로 옆 논에서 그 유명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다. 이 자리는 원래 절터로 전형적인 백제의 가람배치인 1탑 1금당식 구조인데 공방(工房)으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이 향로가 발견됐다. 그리고 목탑 자리에서는 화강암으로 만든 사리감이 발견됐는데, 이 사리감에는 "백제 창왕(昌王,즉 위덕왕) 13년(567)에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의 글자가 써 있어서 이 절은 왕궁의 원당사찰, 말하자면 백제의 정릉사(定陵寺)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부여 하면 듣고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이 백마강, 낙화암, 부소산, 고란사 등이다. 조금 주의 깊은 사람이면 학창시절에 정림사 오층석탑과 능산리 고분군을 배운 것(사실은 외운 것)을 기억할 터이고 부여 나성 같은 유적은 거의 초면인 셈이다.

낙화암에서 본 백마강 | 부소산성의 누각과 정자들은 모두 이처럼 아름다운 한 폭의 강변 풍경화를 연출한다. 나는 그중에서 이 경치를 제일로 치고 있다.

그래서 부여에 오면 우선 부소산에 올라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거지 같은’ 전설의 절벽과 백마강을 내려다보고, 고란사에 가서 고란초라도 봐야 부여에 다녀왔다 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부소산에 오르는 사람은 또다시 부여를 욕되게 말할지도 모른다. 엉겁결에 보는 낙화암은 그 스케일이 전설에 어림없고, 고란사는 초라한 암자로 절맛이 전혀 없으며, 부소산성이라는 것은 말이 산성이지 뒷동산 언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게 잔망스러워서 무슨 전설과 역사를 여기다 갖다붙인 것이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날 것이다.

어느 옛 시인이 읊었다는 ‘강산여차호 무죄의자왕(江山如此好無罪義慈王)’이다. 풀이하자면 ‘강산이 이토록 좋을지니 의자왕은 죄가 없도다’.

부여 답사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정림사터 오층석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림사탑은 멀리서 보면 아주 왜소해 보이지만 앞으로 다가갈수록 자못 웅장한 스케일도 느껴지고 저절로 멋지다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본래 회랑 안에 세워진 것이니 우리는 중문(中門)을 열고 들어온 위치에서 이 탑을 논해야 한다. 이 탑의 설계자가 요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볼 때 정림사탑은 우아한 아름다움의 한 표본이 되는 것이다. 완만한 체감률과 높직한 1층 탑신부는 우리에게 준수한 자태를 탐미케 하며 부드러운 마감새는 그 고운 인상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헌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그러나 단정한 몸가짐에 어딘지 지적인 분위기, 절대로 완력이나 난폭한 언행을 할 리 없는 착한 품성과 어진 눈빛, 조용한 걸음걸이에 따뜻한 눈인사를 보낼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석탑이다. 특히 아침 안개 속의 정림사탑은 엘리건트(elegant)하고, 노블(noble)하며, 그레이스풀(graceful)한 우아미의 화신이다.

정림사터 오층석탑 | 우아한 백제미의 상징이 된 석탑이다. 1층은 성큼 올라서 있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알맞은 체감률을 지니고 있다.

요네다가 제시한 측량에 의하면 모든 수치에서 5층이 관계되면 반드시 다른 층보다 약간씩 커짐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5층은 4층까지의 체감률을 적용하지 않고 약간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요네다가 제시하는 치수들이 약간씩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5층이 약간 커야만 했던 이유는 도면상의 문제가 아니라 완성된 탑을 절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실제로 느끼는 체감률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5층이 약간 커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례가 맞다고 느낄 수 있다. 정림사탑의 설계자는 바로 이 점까지 고려하여 설계했던 것이다.
이 점은 고대국가 시절의 조각과 건축에 자주 나타나는 고대인의 체험 논리이다. 석굴암 본존불, 경주 남산 보리사 석불은 얼굴이 크게 되어 있다. 아이들 표현으로 짱구라고 할 정도로 눈에 두드러지게 머리를 크게 한 것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의 비례감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감은사탑은 2층과 3층의 탑신 높이가 똑같은 치수지만 탑 앞에서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3층이 약간 작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니까 도면상에서는 7:7.2로 나타나지만 실제 눈으로 볼 때는 7:7이 되는 것이다. 이 실제 체감에 적용될 비례를 위해 고대인들은 슬기롭게 도면상의 비례를 파기했다.

나는 부여 답사에서 국립부여박물관을 들르지 않으면 백제 답사가 아니라 부여 지방 풍광 기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부여 답사의 핵심은 어쩌면 이 박물관 관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종합박물관이 아니라 부여를 중심으로 한 백제 문화권 지방 박물관으로서 아주 특색 있게 꾸며져 있다. 그러니까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백제의 유산을 땅속에서 찾아 다시 지상에 복원한 것이 국립부여박물관이다.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 본래 불상과 보살상은 당시의 미인관을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이 규암리 출토의 보살상은 어여쁜 맵시를 하고 있어서 미술사학도들은 ‘미스 백제’라고 부른다. 이 보살상은 특히 뒷모습도 아름답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불, 보살, 나한상이 모두 소품인지라 그 감동의 폭이 작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 분들의 아쉬움을 한번에 달래주는 유물이 청양 본의리에서 출토된 테라코타 불상 좌대다. 저 큰 좌대에 앉아 있을 불상은 어떤 모습이겠으며, 저 맵시 있게 반전된 연꽃에 어울릴 옷주름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노라면 금세 보았던 백제의 불, 보살, 나한상 들이 열 배, 스무 배 크기의 영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 백제의 숨결은 살아나고 백제의 미학은 고양된다.
그러나 꼭 크고 웅장해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가치관일 뿐만 아니라 거의 병적인 현상이다. ‘작은 것이 위대하다’는 격언도 있다. 그것을 소중현대(小中現大)라 한다. 즉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다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명나라의 문인화가인 동기창(董其昌)이 작은 화첩에 역대 명화 대작들을 축소하여 복사하듯 그려보고는 그 표장에 ‘소중현대’라고 적어서 유명한 말이 되었는데, 나는 지금 우리야말로 소중현대의 철학을 배워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백제의 유물들이 시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요컨대 백제의 미학은 ‘검이불루 화이불치’에 ‘소중현대’를 합치면 제격을 갖추게 된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나라 예술 속에서 그리움을 노래한 몇몇 대가를 알고 있다. 한 분은 김소월(金素月)이다. 그분의 시는 거의 다 그리움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이다. 「초혼」 같은 시는 그리움에 지쳐 쓰러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소월이 보여준 그리움이란 항시 이루어보지 못한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절한 동경의 그리움이었다.
이에 반하여 이중섭(李仲燮)의 그림은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감정을 황혼녘에 울부짖는 「소」 「달과 까마귀」 「손」에 실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겪는 그리움의 고통을 보편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그래서 그의 그리움에서는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김소월과 이중섭의 그리움에는 치열한 현실의식이나 역사인식이 들어 있지 않다. 역사의 아픔과 그 아픔을 넘어서는 희망까지를 말하는, 역사 앞에서의 그리움은 신동엽의 차지였다. 그의 「산에 언덕에」에는 그런 그리움의 감정이 남김없이 서려 있다. 지금도 백마강변 나성에 세워져 있는 신동엽 시비에는 이 「산에 언덕에」가 조용한 글씨체로 잔잔하게 새겨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고민거리를 오직 두 가지로 나눈다. 내가 걱정해 해결할 수 있는 고민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우산을 준비하면 된다. 비를 멈추는 일은 당신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신에게 맡겨라. 그리고 오직 당신이 걱정해 풀 수 있는 문제들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라.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건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보라. 틀림없이 서너 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몇 줄 안 되는 문제에 대해 10분 안에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으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10분을 질질 고무줄처럼 늘려 가면서 하루를 허비하고 한 달을 죽이며 1년을 망쳐 버린다. 머리가 복잡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해결방안도 알고 있으면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앤드류 매튜스는 〈마음 가는 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나는 올빼미 체질이어서 늦게 자기에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숨 쉬지 마라. 고민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라.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라. 고민하나 안 하나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민은 10분만 하라.

고민과 문제를 혼동하지 마라. 고민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는 뜻이고, 문제는 해답 혹은 해결이 요구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고민이 어떤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민은 중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학벌이 중시되는 집단은 가능한 한 멀리해라. 한국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은 파벌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며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학벌이 신통치 않으면 학력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은 제쳐진다. 학벌 쟁쟁한 인사권자들이 이류대 졸업자들의 서류들을 거들떠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은 전산학과 출신을 채용할 때 일류대 졸업생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을 판매하기도 했던 내 경험으로도 그렇다. 전 과목 모두 잘하는 사람은 정작 필요한 업무에서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히려 일류대가 아닌 이류대에 전산에 미친 사람들이 많다. 일류대 출신을 선호하는 회사는 이미 일류대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더 많다.

코스닥 등록 기업들의 경영자들 중 대학 출신이 많은 이유는 그 기업들의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고졸자들도 분명 있음을 기억하라. 학벌이나 학연이 보잘것없다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 역시 그랬다. 분명히 말한다. 대졸자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4년과 동일한 기간 동안 어느 한 분야에 홀로 파고든다면 그 어떤 분야에서건 대졸자보다도 더 큰 실력을 갖추게 된다.

학력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일을 배우려 하지 않고 돈을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학벌이 신통치 않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이 사회에서 일하는 데 있어 필요한 칼과 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갈고닦아라. 이러한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결국 이 문제는 한가한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일상에 쫓겨 시간이 모자란다면 과감히 6개월 이상을 그 일상에서 벗어나라. 휴학도 좋고 휴직도 좋다. 백수라면 더 좋다.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말고 배우고자 하는 분야에 100% 미쳐라.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라.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 라면 1개도 많다. 그냥 씹어 먹어라.

학벌이 좋건 나쁘건 부자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게임 (games people play) 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그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아동도서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 같은 쉬운 책부터 읽어 보라. 하루에 3시간 이상 자기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라. 학벌이나 학력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의 능력이 문제가 된다.

좌우지간,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일부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사업화시켜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홀로 활동하는 전문직이 아닌 한 99%는 이른바 ‘좋은 직장’을 원하기 때문에 대기업 같은 조직의 일원이 된다. 능력별 연봉제를 실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학력과 학벌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 당신은 절대 유별난 존재가 아니기에 월급의 차이가 큰 것도 아니다.
특히 조직 내 일차적 기회는 학력과 학벌 게임에서 최고의 졸업장을 갖고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거나 오너의 친족들이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배제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대조직일수록 내부에서 은연중 파워 게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술술 풀려 나가지는 않으며 아부도 좀 하고 줄도 잘 서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조직 내에서 계속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면 탈출하여 ‘길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체면이나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서 여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문직업인들을 제외하고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연봉을 누가 누가 더 받나’ 게임에서는 학력과 학벌이 좋을수록 처음에는 일단은 유리하지만, 불행하게도 ‘홀로 독립하여 누가 먼저 부자 되나’ 게임에서는 그것들이 정말 별 의미를 주지 못한다. 부자가 되려면 미국인들이 ‘길거리 지식(street knowledge)’이라고 부르는 총체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대조직에서 배우기는 대단히 어렵다. 언제나 일 전체보다는 일부분만 배우게 되고 맡은 분야 이외에는 관심을 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실물 경제 속에서 돈 냄새를 잘 맡아야 하는데 학교 공부만 하였기에 실제 상황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지식들을 얼마나 자기 머릿속에 이전시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과 응용력이 얼마나 개발되어 있고 부가가치 창출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가 결정 요인이다.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학교와 관련된 몇 가지 거짓말들이다.
첫 번째 거짓말은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다.

두 번째 거짓말은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말이다.

교육계에 대한 내 불만은 이쯤에서 그치자. 오해하지 말라. 학교 교육에 그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공부를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성공과 부를 잡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부자가 되지는 못할 수 있어도 적어도 가난에서 분명하게 탈출할 수는 있다.
첫째, 이 사회로부터 기회를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갈림길의 방향이 일단은 학력과 학벌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을 배워 독립을 하려면 우선 어떤 조직이나 정보 공유 집단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학력이 너무 낮으면 그 문턱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학교 교육을 무시한다면 사회로부터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확률적으로는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명심하여라. ‘학교에서 뭔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식해서’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학벌과 학력 이외에는 달리 사람을 판가름할 만한 방법이 없다 보니’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 여러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능력만 보고 채용하겠노라고 선언하였지만 도대체 그 능력이란 것은 일을 시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에 결국은 다시 학력과 학벌을 보는 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점도 기억하여라.

둘째, ‘일류대’ 졸업자가 되면 일단은 고졸자보다 인건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셋째, 학력이 높거나 학벌이 좋으면 능력마저 뻥튀기시킬 수도 있다.

넷째, 학력이 높고 학벌이 좋을수록 인맥 형성이 손쉽다.

다섯째,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그들이 배웠던 것들이 쓸모가 있건 없건 간에 적어도 학습 능력만큼은 인정받는다.

기억해라. 일자리를 주는 집단에서의 일차적 잣대는 학력과 학벌이다.

그렇지만 명심해라.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첫 출발점에서 폼 나게 설 수 있으며 가난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동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출발점에는 비슷한 학력과 학벌 소지자들이 다 같이 경쟁자로 서 있기 때문이다.

법칙 1: 공평하지 않은 게 인생이다.

법칙 2:이 세상은 학교에서처럼 너희들의 자부심을 키워 주려고 하지 않는다.

법칙 3: 꿈 깨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연봉 4만 불은 절대 못 받는다.

법칙 4:학교 선생이 정말 엄하다고? 직장에 들어가 상사를 만나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법칙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한다고 해서 네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칙 6: 부모 잘못이 아니다. 뭔가 잘못되어 엉망진창이 되었다면 바로 네 책임이다.

법칙 7: (부모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너희 부모의 삶이 지금처럼 무미건조해진 것은 너희가 태어나고 나서부터였다.

법칙 8: 학교에서는 너희를 승자와 패자로 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에서는 그렇지 않다.

?법칙 9: 인생은 여러 학기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며 여름방학도 없다. 부활절 휴일도 없다.

법칙 10: TV는 현실 속 삶이 아니다. 네 인생이 시트콤은 아니다

법칙 11: 공부벌레들에게 잘해라. 네가 결국에는 그들 밑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될 수 있다.

법칙 12:흡연이 너를 멋지게 보이도록 해 주진 않는다. 흡연은 너를 멍청이로 보이게 만들 뿐이다

법칙 13: 너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법칙 12를 봐라)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죽음으로써 아름다운 시체를 남기는 것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분명 너는 최근에 (방 안에서 뒤늦게 발견되어) 실온에서 방치된 네 친구의 시체를 본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법칙 14: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놓아라. 분명 너희에게 부모는 고통스럽고 학교는 지루하며 삶은 울적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너희도 깨닫게 될 것이다. 청소년 시절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던가를. 지금부터라도 (삶을) 즐기기 시작해 보아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80. 장소/종묘

종묘는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위패가 보관된 장소다. 《주례》에 따르면 궁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종묘는 위치상 경복궁의 왼편, 창경궁 아래편에 위치한다.
종묘는 오묘제라는 제도 때문에 만들어졌다. 오묘제란 나라를 세운 시조와 그의 조상 4대, 즉 5대의 위패를 모시는 제도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500년이 넘게 왕조가지속되면서 보관해야 할 위패가 늘었고, 늘 때마다 계속 건물을 옆으로 증축했기 때문에 일자형의 독특한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세월이 만든 예술품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할 때는 피를 토하는 자세로 하라고 한다. 특히 삼십 대 중반 이전에는(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적어도 2~3년 동안은(길면 길수록 좋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없어야 하므로 최대한 일터나 학교에 가깝게 살면서 시간을 아끼고, 밥을 많이 먹으면 졸려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므로 밥을 굶거나 조금만 먹으라고 하고(내가 밥을 굶으라고까지 하는 것은 실제로 쫄쫄 굶으라는 뜻이 아니라 밥 대신 다른 것을 간단히 먹으라는 뜻이다), 시간을 철저하게 아끼려면 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하므로 그냥 생으로 씹어 먹으라고까지 말한다(너무했나? 실제로 나는 5~6개월을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미리 삶아 놓은 계란 두 개 혹은 라면 부스러기나 찬밥 물에 말아 먹기, 저녁밥은 작은 공기 하나 정도로 때운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아침을 전혀 먹지 않으며, 오후의 식곤증을 없애고자 점심을 반만 먹을 때가 많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다가 건강을 해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말이다. 자기도 그렇게 해 보았는데 위장병만 생기는 바람에 아직도 고생한다는 말도 하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요통만 생겼다고 하기도 하며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역시 건강이 최고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면 건강 걱정하면서 그렇게 계속 튼튼하게 살아라.

10여 년이 지난 뒤 통계청이 내놓은 "99년 한국인의 사망원인분석"에서도 자살자는 10~30대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고, 그들 세대에서 자살은 교통사고 다음의 최대 사망원인으로 나타났다. 즉, 자살자들은 젊고 싱싱하고 건강한 10~30대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며 건강 상실이 동기가 되어 자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흔히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면 당연히 절망하여 자살할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보다는 건강하고 탱탱한 몸을 갖고 있음에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 말이다. 건강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왜들 그렇게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갖게 되어 고민 끝, 절망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아닌가.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신체적으로 병이 없는 상태이면서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안녕인 상태’라고 정의한다. 몸 건강한 노숙자는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는 아니므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몸 하나 튼튼하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가 아니면 육체적 건강은 위협을 받는다. 핀란드의 투르크시 직업병전문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경기가 침체 국면에 있을 경우 근로자들은 더 많은 질병을 앓게 되는데, 고용불안과 일터에서의 분위기 변화 등으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하며, 실제로 실직하게 되면 사망률마저 높아진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연구팀은 25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업률이 낮을 때 실직하면 사망하기 쉬우나 실업률이 높을 때는 그럴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연구팀은 실업률이 낮을 때 실직한 사람은 본래부터 건강에 나쁜 생활 습관과 성격 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에 사망률이 높은 것이며, 실업률이 높을 때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도 실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주변에 실직자가 많다 보니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어들어 사망률이 낮다고 덧붙였다.

물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엄살은 부리지 말라

내가 20대부터 40대 초까지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뭔가를 읽고 배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신체리듬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한창 일하였던 시기에는 취미 생활을 위해 몸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였는데 그다음 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밤에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나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새벽까지 술을 마심으로써 다음 날 엉망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10년에 한 번 정도뿐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직원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셔 대는 사람들, 교회에서 철야예배를 마치고 출근하는 사람들, 일요일에 등산이니 뭐니 하면서 몸을 극도로 사용한 뒤 월요일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육체의 리듬을 깨는 일은 토요일에 할 것을 권유한다.

그렇다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가시적 결과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부에서 찾아라. 당신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하여야 할 주체는 타인이나 직장이나 사회가 아니다.

둘째, 쉬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여 보라.

셋째,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라.

넷째, 긴장감을 잃지 말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