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빠르게 달리는데도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끼지 못했다. 더 많이 이룰수록 더 공허해했다. 하지만 스털버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고 진로를 바꾸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그러면 동력을 잃고 뒤처질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스털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범인은 ‘영웅적 개인주의’다. 이는 더 나아져야 한다고, 기분이 더 좋아져야 한다고,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입하는 문화 때문에 지속된다. 남성들은 이 문화에 대해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는 천하무적이 되어야 하는 무거운 부담’이라고 설명하고, 여성들은 ‘언제나 무엇이든 해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불가능한 기대를 끊임없이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두기.
물러서기.
재정비하기.
이 단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같은 전략을 뜻한다. 세상을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는 제로섬게임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때로는 누구나 승자도 패자도 될 수 있는 곳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삶을 혼자 올라가야 하는 산으로 여기지 않고, 나와 같은 의심과 슬픔을 품고 분투하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하는 여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내고 변화하고 싶은 욕망과 맞물려 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한 욕망이며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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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유적•유물/목화씨

목화씨는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왔다. 이때부터 면화가 생산되기 시작했고, 의류생활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문익점 이전에도 면화 생산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보편적으로 보급되지는 않았고, 문익점이 들어온 이후 조선 시대에 면화가 일반화됐다.
문익점이 원나라에 방문하여 몰래 목화씨를 들여온 것은 맞지만 ‘붓두껍에 넣어서 왔다‘는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장인 정천익과 함께 시험 재배에 나섰고 정천익이 재배에 성공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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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팅이 나오는 장면들은 대체로 문화적 규범을 벗어난다. 그래서 사회질서를 뒤엎는 데 대함 대리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만두는 장면이 누군가가 최후통첩을 날리고 휘몰아치듯 나가버리는 식으로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장면이 유발하는 감정이 사실상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면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퀴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만두는 순간은 엉뚱하고 유쾌하며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현실이 보이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간결한 글로 힘주어 말하는 거라며 몹시 강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시로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퀴팅이라는 문제는(이 시의 경우 삶을 그만두는 문제는) 우리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여행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로르샤흐 심리검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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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장소/양림동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동네로, 현재는 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양림역사문화마을이 조성됐다.
양림동에는 오웬기념각, 어비슨기념관, 피터슨 선교사 사택, 윌슨 선교사 사택, 유진벨기념예배당 등 기독교 유적이 집중돼 있다. 오웬기념각에서는 1920년 ‘김필례음악회‘가 열렸는데, 이는 광주에서 처음 열린 음악회였다. 중앙에 휘장을 치고 남녀가 드나드는 출입문을 따로 두어 남녀의 유별함을 지켰다고 한다. 어비슨기념관은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올리버 에이비슨의 아들 고든 에이비슨을 기념하는 건물이다. 고든 에이비슨은 이곳에 정착하여 두유를 보급하는 등 농업 기술전파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유진벨 선교사는 광주를 비롯한 전라남도 일대에서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수피아여학교, 숭일학교, 광주기독병원을 세웠고목포에는 정명학교, 영흥학교를 세웠다. 그를 통해 수많은 인사가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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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인물/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 중

윤동주(1917년~1945년)는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적은 없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다. 북간도 명동촌 출신으로, 이곳은 할아버지 대에 함경북도의 다섯 가문이 집단 이주하여 정착한 마을인데 그중 지도자였던 김약연에 의해 명동학교가 세워지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등 민족주의적인 기풍 가운데 성장했다. 연희전문학교를 나왔고 일본 릿쿄대학교에 입학했다. 학업 도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생체 실험의 도구가 돼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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