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모든 게 끝난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조개는 살아남기 위해 진주를 만들어낸다. 진주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로 생성된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활동할 때 왕모래 같은 이물질이 들어온다. 조개는 분비물을 내뿜어 이물질을 감싸기 시작한다. 이물질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자꾸 감싸는 것이다. 이것이 진주가 된다. 진주는 살아남기 위한 조개의 몸부림인 셈이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난데없는 침입자를 맞이한 것은 분명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개는 그런 순간을 받아들이고 품어내어, 마침내 자신보다 더욱 아름다운 진주를 창조해낸다. 자신의 고통을 ‘~때문’이라면서 탓하지 않고, 오히려 ‘~덕분’이라며 진주를 키워내는 셈이다. 고통을 ‘~덕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된 자세다.
성장은 완성된 목표를 향한 일사불란한 행진곡을 지향한다. 성장은 양적 발전을 추구한다. 당연히 속도를 중시한다. 반면 성숙은 미완성 교향곡이나 변주곡을 지향한다. 성숙은 질적 반전을 추구한다. 당연히 모든 순간의 밀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성장이 효율을 추구하면서 빠른 길을 찾는 데 반해 성숙은 우회축적을 통해 이른 길을 찾는다. 성장은 계획 대비 목표 달성과 실적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비해 성숙은 실적보다는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는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숙한 사람은 예기치 않은 변화에 휘둘리지 않으며 이익의 탈을 쓴 위험을 분간해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무한 성장을 잠시 멈추고 내면적 성숙을 기할 때다. 성숙을 통해 성장도 의미변화를 겪는다. 무엇이 성장이고 왜 성장하려고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물어보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들은 어떤 사태든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최악, 그 이상의 상황도 닥칠 수 있다고 마음에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가능성을 열어두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잡초는 어떤 상황에도 버티면서 자란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든, 거기서 희망의 싹을 틔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그다음 자신의 생존을 모색한다. 잡초는 위로 자란 줄기와 가지보다 아래로 자란 뿌리가 훨씬 깊다. 잡초들의 질긴 생명력, 그 원천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땅속 뿌리에 있다. 2할이 겉모습이라면 8할이 뿌리다. 식물들은 고산지역으로 올라갈수록 덜 자라면서 뿌리를 깊게 내린다.
닌텐도는 히트작을 개발한 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주는 일이 없다. 스타 직원을 키워 대외적으로 홍보하지도 않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임기업의 태생적 한계와 위험성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뼛속 깊이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오르막길을 신나게 오르고 있다고 해서 남들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 오를 때부터 최악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붙박이 의자에 앉은 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거품이 부풀든 터지든 그들 자리는 항상 일정하다. 그들은 언제나 꿋꿋하다. 이런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최악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기 때문이다. 최악, 그 이상을 염두에 놓고 리스크를 관리해온 결과가 오늘의 생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 웬만한 위험이 다가와도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여유는 위험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까지 챙길 수 있게 해준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해 위험을 돌파할 지혜를 모아낸다.
만족으로 뾰족한 것을 감싸지 않으면, 내면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공포에 질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결국에는 밧줄을 놓아버리는 비이성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염없이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시기, 자책은 스스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행위나 다름없다. 우리는 내려가면서 마음 연습을 해야 한다. 만족하자고 말이다. 만족으로 아픔을 감싸면 언젠가 진주처럼 영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먼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목표에 집착하지 말자. 천천히 한 걸음씩 옮겨도 충분하다. 잡초처럼 질기고 강하게 살아남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하자. 마음속의 마지막 뚜껑을 열자.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두자. 우리는 그 속에서 잡초처럼 성숙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난초가 되지 말고, 잡초가 되자. 잡초는 힘겨울수록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먼동이 터오는 것이 보인다. 이제 곧 아침이다. 덩달아 희망도 터온다.
약속을 칼처럼 지키는 정확한 사람은 일을 진행할 때 실수가 드물고 매듭도 잘 짓는다. 그들은 회사의 구조조정 때문에 안절부절 떠는 경우가 없다.
시간관념이 흐린 것은, 위험을 불러들이는 습관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은 공교롭게 돈과도 맞물려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셈에도 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공은 ‘시간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시간을 잘 활용한 것이 성공이고, 성공은 그 대가로 보람찬 시간을 선물해준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시간을 아까워한다. 남의 시간 역시 소중하게 생각한다. 양측의 시간들이 어우러지면서 더욱 성공적인 시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나의 성공에 대한 포기다. 약속시간에 늦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 시간만큼을 어디선가 생산적으로 활용한 다음에 나타나는 법이란 없다.
지각습관은 나의 성공에 대한 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시간을 도둑질함으로써 남의 성공적 시간을 방해하는 행위다. 상대방이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 타격을 매우 크게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패는 우리가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쌓였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의 복수극’이다. 나의 시간 외에, 내가 낭비했던 남들 시간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최악의 상황은 최악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매 순간이 기적이고 경이로운 감동의 순간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살면서 타성에 젖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마주침에도 감탄하는 시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습관의 덫에 걸려 살아가는, 의미와 감동을 잃은 사람도 많다.
빙하기는 성공과 위협이 민감하게 교차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성공보다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거의 모든 위협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관계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높았던 내 시간에서 낮았던 남의 시간으로 내려가자. 남의 시간에서 바라본 내 시간이 그동안 얼마나 높았는지 깨닫자. 우리는 시간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 평상시에는 적이 많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빙하기다. 모두가 생존 스트레스로 눈이 벌겋다. 예전의 게임 규칙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온갖 반칙이 난무할 수도 있다.
자존심. 물론 중요하다. 자아를 떠받치는 정신적 주춧돌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리다가 엉뚱한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자존심을 유예하기로 규칙을 정했다.
로스 컷은 우리말로 ‘손절매’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손절매를 뜻하는데, 주가가 떨어질 때 과감히 팔아 손해를 보더라도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길 기다리다가 오히려 경영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규칙이다. "본전 생각을 손절매하고, 남을 치켜세워주어라. 그러면 위험은 피할 수 있다."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본전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본전’ 생각하다 ‘본질’까지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본전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다. 본전은 이해타산으로 얽혀 있는 경제적 가치지만, 본질은 근본과 핵심이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가치다. 본전의 경제적 가치보다 본질이 내포하고 있는 본연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본질은 나목(裸木)처럼 모두 버리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선에 설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빙하기는 어쩌다 재수 없게 찾아온 환경적 위협이 아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첩첩산중 내리막길이다. 올라갈 때는 정상만 보고 가뿐하게 움직였지만, 내려갈 때는 눈보라까지 휘날려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세상이다. 빙하기 세상은 눈과 얼음에 덮인 하얀 세상이다. 튀면 쉽게 눈에 띈다.
성공한 사람들은 최단 거리로 질주해 지금 그 자리에 이르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을 관리해왔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성공이란 위험 관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언제나 최악을 염두에 두자. 방심으로 인한 실패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손절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싸움을 내주고 큰 싸움에서 이기는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더욱 더 내려가보아야 한다. 지혜는, 이겨서 오를 때보다 패배하고 내려갈 때 비로소 얻어지는 법이라고 선현들은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