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필요하지 않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제품의 기능만 강조하는 기관은 사라지지만, 제품이 담고 있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기능’을 제공하는 ‘기관’은 사라지지만, ‘본능’을 강조하는 ‘감각기관(경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조된다는 의미다. 오프라인 점포에서 금융업을 했던 금융 기관은 사라지고 있지만, 금융 자체의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아날로그 은행은 사라지지만, 온라인 중심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디지털 금융이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해가는 이유다.
고객의 필요나 요구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보다 고객의 잠재된 욕망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순식간에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차경진 교수의 책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에 따르면,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의미나 경험을 구입한다.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은 다양한 기술과 소비자의 욕망을 접목, 최상의 해결대안을 모색하다 찾아낸 혁신적 솔루션이라는 것이다
이제 고객이 당장 원하지는 않지만 잠재적으로 내면에 갖고 있는 비기능적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 제품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신념으로 사고 싶은 고객의 욕망을 자극하면 시장은 언제나 무한대로 열려 있다.
경제 빙하기에 접어들수록 과거 비즈니스 혁신을 통해 성공한 경험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혁신을 거듭해야 살아남는다. 경제 빙하기가 지속될수록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객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 그들이 경험에서 얻는 통찰을 활용, 제품과 서비스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팔아야 한다. 단순히 경쟁사와 품질 경쟁을 통한 차별화에 집중하기보다 고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듯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철저한 노력 와중에 혁신적 씨앗은 발아된다.
돼지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볼 수 없는 동물이다. 원래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데, 아주 오랜 기간 땅에서 먹이를 찾다 보니 목뼈가 퇴화되었다.
이런 돼지에게도 하늘이 보일 때가 있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혔을 때다. 뒤집힌 돼지는 처음으로 하늘을 발견한다. 돼지에게는 신세계가 열리는 셈이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넘어지고 뒤집혀야만 발견할 수 있는 진실들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성공의 오르막길을 전력 질주해 올라간 사람들은, 인생에는 성공 이외의 다른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을 추앙하고, 올라오다가 포기한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성공이 무너져 내리막길로 내몰린 뒤에야 세상에 또 다른 귀중한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는 그동안 돼지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정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렸고, 지금 이렇게 내리막길에서 버티다가 넘어져 있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힌 김에 하늘을 조금만 더 보자. 그리고 한동안 잊었던 감정들을 되살려보자.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선수들로 하여금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게 하려면 ‘최고의 경쟁자’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쟁을 통해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가고, 그런 경험이 쌓여 자신감이 생길 때에야 선수들이 거듭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 사람이 섞여 지내다 보면, 먼 나라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데 오히려 주변 국가 사람들과 불화를 빚는 경우가 많다. ‘잘 안다’고 생각해 방심하기도 하지만, 깔보는 심리가 은연중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존스는 이런 측면까지 면밀하게 간파해 합동훈련을 실시했고, 그의 경쟁을 통한 윈윈(win-win)전략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정말로 최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경쟁자와 훈련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계속 내려간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이런 위기를 겪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잘 버티며 내려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 덕분이다. 오를 때는 치열하게 경쟁했던 사람들. 우리는 경쟁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눈여겨보면서 따라 내려간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어기적거리면서 우왕좌왕 간다. 내려가는 일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은 없다. 각자가 시행착오를 나누면서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상호협조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경쟁자들 덕분에 이 추위에서 얼어 죽지 않은 것이다. 경쟁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가며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함께 내려가기 때문에 외롭지 않은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발을 헛딛고 굴러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겠다. 그다음은 내 차례니까. 경쟁자들은 적(敵)이 아니다. 동반자다. 그들이 나를 성숙하게 해준다. 그들은 위대하다.
쓰러지고 넘어져봐야 비로소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이다.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다. 쓰러지고 넘어진 다음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실패다. 실패는 그만두는 순간 시작된다.
실패는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실패로 인해 우뚝 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를 통한 학습(learning?by?failure)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남들의 성공은 한결같이 ‘완성형’이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회의와 좌절, 실패의 흔적은 보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그런 재능을 주지 않은 신을 원망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점은, 쓰러질 때마다 기꺼이 배운다는 것이다. 노여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도전을 반복하는 것이다.
많이 넘어져본 아이가 빨리 걷는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넘어질 수밖에 없다. 넘어져봐야 안 넘어지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 넘어진다. 실패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과 다른 점은, 넘어졌을 때 그냥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몸은 넘어져도 마음은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넘어지는 데는 ‘마지막’이 없다. 수도 없이, 하염없이 넘어질 수 있다. 풀잎도 바람보다 먼저 넘어진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는 않는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일어선다.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게 인생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는 새로운 가능성을 물구나무 세운 것이다. 실패는 재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실패는 망각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대상이다. 잘되는 방법만이 아니라 안 되는 방법까지 배워야 성공할 수 있다. 실패의 안쪽에는 성공의 불씨가 잠자고 있다.
사랑까지 잃지 않았다면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는 우리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주는 압착 롤러다. 우리들의 사랑과 믿음도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거듭난다. 끊임없는 깨달음을 주는 실패에게 오히려 감사의 뜻을 전하자.
시련에게로 기꺼이 내려가자. 시련이 우리를 더욱 단련시킬 것이다. 우리는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정상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여유를 찾아낸다. 여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 바닥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내려가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배운다.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경쟁자들에게 고마워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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