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반응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건강한 간병인들조차 장기간의 모호한 상황에 직면하면 자신의 삶을 관리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지면 무력감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무력해진다. 많은 사람이 이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는 존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질병에 대처하는 데 꼭 비탄에 빠져 지낼 필요가 없음을 배운다. 존은 매번 위기에 직면했으나 적절한 결정을 내려서 대처했고,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땐 휴식을 취하거나 휴양을 하고, 공동체와 이웃들로부터 지속적인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주변 사람들이 모호한 상실을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의 상실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도움은 기대하기 힘들다

불행하게도, 모든 공동체가 간병인이 필요한 것까지 헤아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들의 나약함을 탓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묵인하는 경향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상실감은 우리 자신의 취약성을 상기시켜주므로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

모호함이 줄어들 때의 비통한 감정은 점차 건강한 방향으로 극복될 수 있다.

가족들의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을 부정하는 것은 가끔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사실 자체를 무효화시키거나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 정도라면 오히려 해롭다.

외상후 일시적 충격이 신체를 보호하듯, 부정 반응은 잠재적 상실로 인한 혹독한 심리적 현실로부터 잠시 분리되게 만든다. 또한, 불확실한 부재나 존재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사고의 틀 안에 갇히면 높은 대가가 뒤따른다. 양쪽(누군가를 너무 빨리 포기하거나, 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끝에서 부정은 궁극적으로 모호한 상실에 직면한 가족들이나 부부에게 스트레스를 덜어주기보다는 오히려 가중하는 결과를 안겨준다. 결국, 상황은 무효화되고 분리되며, 누가 부재하고 존재하는 것인지 개인적인 해석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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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장소/평양

평양은 북한의 수도로, 서울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고조선이 후기에 이곳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장수왕이 이곳에 천도하면서 고구려의 세번째 수도가 되기도 했다. 고려 시대 때는 서경이라고 칭하며 제2의 수도 대우를 받았고 북진 정책의 상징이기도 했다. 인근에는 대동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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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도,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가슴에 두 개의 영혼이 있다.
?오이겐 블로일러, 『정신의학 교과서』

모호한 상실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상반되는 생각과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회복될 가망 없이 병든?혹은 오랫동안 의문의 실종 상태에 있는? 가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하루빨리 종결짓고 헛된 기다림이 끝나기를 또한 희망한다.

한 세기 이상의 시간 동안, 양가성의 개념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주로 상반되는 감정 충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 그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고착된 생각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사이의 갈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양가성은 가족의 외부적 결함?끝내 실종자를 찾지 못하거나, 의료진들이 명확하게 진단을 내릴 수 없거나, 또는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없을 때?에 의해 대개 그 정도가 심해진다. 사람들은 그런 모호함 때문에 상황을 이치에 맞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끌려간다

모호한 상실은 부부나 가족의 명확한 경계를 흐리게 하며 가장 친밀한 관계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누가 경계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공포와 분노가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양가성과 모호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현대의 반전이 숨어 있다. 의료 기술은 병을 진단하고 특정 질병에 걸릴 사람들을 미리 식별하는 데 있어 큰 발전을 이룩했고,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정보를 얼마나 미리 파악할 것인지 여부는 이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아는 것보다 모호함을 선호한다. 모르고 있을 때 무서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의 암흑 속에 있기를 선택할 때는 대가가 따른다.

대부분 모호한 상실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줄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만, 사용 가능한 정보가 없다.

사람들의 정신과 자아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항상 양가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그들이 모든 증상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게 될 여지도 있다. 양가성 해결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식은 사람들에게 감정의 양면을 인식하도록 돕는 데 달려 있지만, 모호한 상실로 인해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날 때는 외부 상황도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힘든 상황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불행한 상황들이 그들의 잘못으로 초래된 것이 아님을 안다면, 감정의 모든 변화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나 상담에 보다 덜 저항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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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인물/김원봉

김원봉(1898년~1958년)은 의열단을 조직했고,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를 창설해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해방 이후 좌익 계통에서 활동하다 월북하여김일성에게 숙청을 당한다.
김원봉은 191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의열단을 조직하고 여러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키며 독립운동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3.1 운동 같은 비폭력 평화운동을 거부했고, 임시정부가 표방한 외교독립론도 거부했다. 이념적으로는 아나키즘을 표방했고 적극적인 테러리즘을 투쟁의 수단으로 수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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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사건/5.18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7일 전국 비상계엄 확대에 맞서 10일간 광주 일대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 사건은 한 해 전인 1979년 12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26 사태를통해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유신 체제가 해체되고 민주화를 향한 여러 조치가 시행됐다. 하지만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군사반란을 일으켜서 권력을 장악한다.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불법적으로 체포했으며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하여 내각을 무력화시키는 등 단계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나갔다. 이에 반해 민간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열기가 끓어올랐고 5월에는 수만 명의 대학생이 서울역까지 행진하며 민주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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