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즐거움에는 주관적인 면이 객관적인 것보다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요하다. 그것은 배고픔이 가장 훌륭한 요리사이며, 노인이 젊은이의 여인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부터, 천재나 성자의 인생까지에서 모든 면에서 나타난다.

우리 인생의 행복에 가장 우선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것은 바로 우리 그 자체인 인격이다. 인격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 번째 자산인 인격은 다른 두 가지 범주의 자산과는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에 묶여 있지도 않고,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도 없다. 그것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으로, 반대로 다른 두 가지 범주의 가치는 그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격에 맞는 것에 힘을 쏟고, 개성에 적합한 수준의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맞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하며, 거기에 맞는 위치와 직업, 생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첫 번째 범주에 속한 것이 다른 두 가지 범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부를 얻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건강을 유지하고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업에 힘을 기울이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사람들은 지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부를 얻기 위해 수천 수백 배의 노력을 하지만, 인생 자산의 첫 번째 범주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이 두 번째 범주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행복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부를 더 늘리기 위해 마치 개미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들의 영혼은 텅 비어 있어 다른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한다. 가장 수준 높은 정신적인 기쁨은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시간이 많이 들지 않지만 많은 돈이 드는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기쁨을 가끔 누리고자 하는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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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사건/거란의 침입

고려 전기에 거란이 세 차례 쳐들어왔다. 1차 침입 당시에는 서희의 능란한 외교술로 3차 침입 때는 강감찬이 귀에서 승리를 이끌면서 거란을 물리쳤다.

고려 현종 대에 거란과 두 차례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고려는 의주 일대부터 영흥 도련포까지 이어지는천리장성을 쌓고 개경에 외성을 하나 더 쌓았다. 요나라가 침략 당시 10만에서 40만의 대군을 동원할 때 고려 역시 20만 대군을 동원하는 등 조선 시대에는 볼 수 없는 강력한 무장 체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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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명문장/강주룡

우리 49명의 파업단은 우리의 임금 감화를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침내는 평양의 2,300명 고무 직공의 임금 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죽기로써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 나는 (…) 근로 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1931년 7월 <동광>이라는 잡지에 소개된 강주룡(1901년~1932년)의 외침이다. 평양평원고무공장에서는 아사동맹파업이 일어나는데 당시 강주룡은 대동강변 을밀대의 12m 높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9시간 이상 밤을 새며 ‘고공농성‘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이자 여성노동운동의 효시 정도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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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행동, 행위, 방법 또는 합의를 위해 확립된 지침이나 규정’으로 정의된다. 이번 장에서 나는 이 따분한 정의를 집어 던지고, 규칙이 사실은 가정 내에서 극도로 영향력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개인으로서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신이 지키고 사는 인생 규칙들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목표다. 아마 당신은 미처 인식하지도 못한 규칙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가족의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고 말한 가족이 많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내가 아는 걸 남들도 다 알고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규칙을 종이에 적고 그에 대한 오해를 해소했다면,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현재까지도 유효한 규칙과 이제는 별 쓸모가 없어진 규칙을 구분하는 것이다. 세상이 빨리 변하는 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규칙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가정이 오래된 규칙을 고집하는 우를 범한다. 당신의 가정은 어떤가? 시대 변화에 맞춰 규칙을 새롭게 갱신하고 낡은 규칙들을 버릴 수 있는가? 양육적인 가정의 한 가지 특징은 규칙을 항상 최신 상태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감정을 갖든 그것이 인간적이고, 따라서 수용 가능하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면 자아는 성장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납된다는 건 아니다. 다만 감정이 환영받을 때, 다양한 행동 경로를 세우고 좀 더 적절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인간은 두려움, 고통, 무력감, 분노, 기쁨, 질투,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을 끊임없이 경험한다. 감정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그냥 생겨나는 것이다. 가정생활의 모든 부분을 직접 접해보기로 스스로 마음을 먹으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대화의 소재가 되고, 인간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다. 당신도 하나 정도는 몰래 품고 있지 않은가? 양육적인 가정은 이것을 단지 인간의 나약함을 상기시키는 요소로 받아들이며, 그에 대해 부담 없이 이야기하고 교훈을 얻는다. 반면 양육적이지 않은 가정은 비밀을 숨기느라 급급하고, 그것을 인간의 사악함을 상기시키는 기분 나쁜 요소로 취급하며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식구들은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상황을 이겨내며 심지어 개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규칙은 가족의 체계와 기능에서 아주 실질적인 부분이다. 규칙을 바꿀 수 있다면 가족 간의 상호작용도 바꿀 수 있다. 당신이 지키고 있는 규칙들을 점검해보라. 이제 가정 안에서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가?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면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오래되고 부적절한 규칙을 버리고 새로이 유용성을 알게 된 규칙을 더하라.

가정이라는 건축물에는 사랑과 더불어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어느 쪽도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방식이 희망과 꿈을 채워주지 못하면 사랑은 사라져버린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사랑을 밀어내는 것이 그 프로세스라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함께 생활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은 악몽과도 같을 수 있다. 나는 종종 결혼이란 마치 기업을 세우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성공 여부가 조직의 운영 방법, 즉 프로세스에 달렸다는 점에서다.
다시 말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끌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배우자와의 호흡, 결혼에 대한 기대치, 둘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은 어떤 결혼 생활을 영위하느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랑을 갉아먹고 파괴하는 또 다른 요인은 사랑이 동일성을 의미한다는 착각이다.

동일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차이점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기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은 차이점이 갈등 또는 싸움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차이점을 두려워하도록 배우며 자랐다. "싸움은 분노를 뜻하고 분노는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남과 달라지는 걸 피하라."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똑같다면 인생이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을지 상상해보라. 차이점은 흥분, 재미, 생동감을 가져다준다. 물론 종종 문제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차이점에 건설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하면 다양성을 차별과 전쟁의 빌미가 아닌 학습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까?
현명한 부부는 일찌감치 서로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그럼으로써 자존감을 높이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기 위해 자극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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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학문•철학/천도교

1905년 3대 교조 손병희에 의해 동학에서 개칭된 종교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단순한 명칭 변경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오늘날 높은 평가를 받지만, 당시에는 민란에 불과했다. 1차 봉기 때는 조선 왕조를 대상으로 거병했고, 2차 봉기 때는 일본군을 몰아내려 봉기했지만 조정에서는 농민군을 위협적으로 인식했고, 결국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을 와해시키고 만다. 당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졌던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금치 전투때 관군을 지휘했던 이가 바로 지석영이다(그는 종두법을 보급하고 한글 연구에서 중요한역할을 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도 몹시 비판적이었고, 안중근은 자서전을 통해평생의 업적 중 하나가 황해도 동학도를 물리친 일로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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