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서도 행복의 길은 있습니다
Henri Matisse
앙리 마티스


The Dream, 1940

야수파의 창시자 마티스는 삶에 닥친 여러 번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활동을 이어간 화가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고, 색채를 풍성하게 표현하며 자신만의 길을 발견한 그는 매일의 어려움 속에 오히려 행복의 길이 있다고 강조했다. 1869년 프랑스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21세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법학도였다. 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사다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다소 어두운 색조를 띠었으나, 1896년 브르타뉴의 해안에서 보낸 여름휴가를 계기로 마티스의 색조에는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그곳에서 고흐의 작품을 접한 이후로는 자연광의 색조가 가미된, 활기 넘치는 그림들을 선보였다.

"하루의 노동과
우리를 둘러싼 안개를 비추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세요."

앙리 마티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정도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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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문화/민화

조선 후기 중인과 서민층이 향유했던 그림이다.

민화는 작가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예술적 정교함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무병장수와 현세의 복을 기리기 때문에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잉어, 까치, 액운을 방지하는 호랑이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만큼 민중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최근에는 민화가 가진 독특한 색감과 미색을 활용하여 다양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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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유적•유물/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는 1861년 김정호가 편찬한 전국 지도다.

지도 제작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정상기가 ‘동국지도‘를 만들었고, 김정호도 대동여지도에 앞서 ‘청구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대동여지도다. 전국을 동서 80리, 남북 120리로 나누어 총 22개의 목판에 나누어 그렸다. 전체 가로4m, 세로 6.6m의 크기를 자랑하는데, 따로 필요한 부분만 펼쳐 볼 수 있고 전국을 한눈에 볼 수도 있는 등 여러 장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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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장소/금강산

한상억 작사, 최영섭 작곡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가곡으로, 1960년대 초반 한국 전쟁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노래라고 한다. 아름다운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의 강렬한 반공주의, 북진 통일적인 기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많이 불리고 조수미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의 관심으로 해외에 알려지기도 했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화엄경>에서 연원하는데, 그만큼 금강산은 절이 많고 불교 유적과 유물이 넘치는 곳이다.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자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아버지와 작별하고 이곳에 들어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조선 시대 때는 세조가 이 산에 다녀갔다고 하고, 성종 때는 사신 격으로 온 일본의 승려가 금강산에 방문하고 싶다고 해 신하들 간의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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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은 흘러가도록 두세요
Grandma Moses
그랜드마 모지스

창밖 후식밸리의 풍경
Hoosick Valley (From the Window), 1946

지극히 보통의 삶을 살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놀랍게도 76세부터다. 관절염 때문에 자수 놓기가 어려워지자, 그녀는 누군가는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나이에 붓을 들었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거치지 않았기에 데생이나 채색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농장 마을 풍경과 이웃과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그림들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창밖 후식밸리의 풍경은 하늘하늘한 커튼 사이로 봄이 찾아온 미국의 시골 마을, 후식밸리의 풍경을 담고 있다. 평면 지도처럼 펼쳐지는 마을 풍경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생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그랜마 모지스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Edvard Munch
애드바르 뭉크

태양
The Sun, 1911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뭉크의 삶이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예술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뭉크는 몇 년에 한 번씩 가족을 잃는 비극을 평생에 걸쳐 겪었고, 불안에 대한 공포와 환청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갔다. 그 와중에도 그는 불안한 현대인들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작품을 여럿 남겼다. 뭉크는 누구보다도 자기 내면의 불안들과 마주할 용기를 지닌 화가였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오슬로의 에케베르그 언덕에 있는 다리 위를 걸으며 그가 느꼈던 바를 그린 것이다. 곧게 뻗은 다리에 서 있는 무심한 두 남자, 차가운 색에 둘러싸인 작은 배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뭉크 내면의 힘겨움을 보여준다.1911년 그의 나이 50세에 발표한 태양은 뭉크 생애 가장 밝고 힘찬 그림이다.

"두려움과 질병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에드바르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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