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문제가 되는 건 그러니까 정확히는, 울프의 돌멩이다. 죽음 쪽의 욕망에 무게를 달아, 삶 쪽의 욕망을 패배시키는 도구. 삶을 향한 욕망과 죽음을 향한 욕망이 서로 포개져 있음을 아는 사람이 마땅히 선택할 만한 도구. 욕망의 다층을 안다는 것은 그러므로 꼭 돌멩이만큼 무거운 일일까. 욕망 자체도 무거운데 말이다.
글을 쓰는 일은 쉬지 않고 ‘경계’를 의식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삶과 죽음 사이의 거대한 틈을 노려보다가, 사실은 그 경계가 믿기 어려울 만큼 희미하다는 것을 눈치채는 일. 세상이 나눈 선과 악의 경계를 부수며 선을 열 겹으로 쪼개고 악을 스무 겹으로 다시 나누는 일. 인간의 욕망은 선명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분열한다는 것을 아는 일. 어쩌면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욕망 또한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살하는 것은 세상에 진지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라는 모리스 바레의 말에 동의한다면.
모든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 삶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도 그것이 도무지 단순해지지 않음을 아는 일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나는 오래도록 하고 있다. ‘어떤’ 글쓰기 또한 그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고백건대 그래서, 글 쓰는 삶은 어쩔 수 없이 불행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들은 대체로 고통 속에 살다 헤밍웨이처럼, 로맹 가리처럼, 실비아 플라스처럼,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흔히들 ‘비극’이라고 말하는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두렵기도 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게 됐지만, 글을 쓰는 일이 다시 많은 것들의 ‘견딜 수 없음’을 일깨우는 역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은, 특히 한 인간의 생산성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자본의 세상은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품위를 절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품위가 훼손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훼손된 인간은 공통적으로 모멸을 느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유독 모멸에 예민하다. 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멸을 느낀다는 게 아니라, 공기 같은 억압과 소리 없는 차별처럼 자신이 훼손될 만한 상황을 신속히 감지한다는 뜻이다. 감지한 사람들이 글을 쓴다. 씀으로써 그들은 모멸에서 벗어난다. 수시로 모멸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모멸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그들이 ‘가장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달아난다면 더욱. 엄마이건, 회사원이건, 가게 주인이건, 투잡을 뛰는 아르바이트생이건 간에.
안갯속에 길을 잃었을 때 오직 안개만을 감각하는 사람은 제자리를 맴돌지만 이슬을 감각하는 사람은 풀과 바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를 둘러싼 거대한 미지를 구획하여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 내가 처한 상황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단어는 언제나 모자랄 수밖에 없다.
삶이 너무 지독할 때는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지독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 그 중간의 어딘가에 모든 글쓰기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 사이에 오가는 공기를 파악하는 게 습관이었고, 그 기압에 쉽게 휘둘렸다. 내가 자주 휘둘리다 보니 내가 남을(본의 아니게) 휘두르는 데도 신경이 곤두섰다. 늘 감정이 문제였다. 넘쳐흐르는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흘러넘쳐 나를 덮치고 타인에게까지 쏟아지는 그것을, 어떻게 수습하며 살 것인가.
어린아이를 아끼는 어른의 마음은 양가적이다. 아이가 고작 『인어공주』 보고 우는 것만으로 맘이 부서지는 동시에, 아이가 더욱더 풍요로운 서사 속에서 생을 누리길 바란다. 아이의 앞날에 되도록 애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동시에, 아이의 마음이 메마르지 않기를 바란다.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동시에, 타인의 불행을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한다. 염병하지 말고 하나만 해라, 하나만. 내가 나를 다그쳐본다. 양립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걸 안다. 풍요로운 서사를 이해하는 인간이라면 인어의 슬픔에 공명하지 않을 수 없다. 애가 탄다는 건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인생이 온통 꽃길일 리가 있을까.
그사이 내게도 눈물바다에서 헤엄칠 뗏목이 몇 개쯤은 생겼다. 아이에게도 생길 것이다. 아니, 벌써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믿어줄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관계에서 내가(아무리 용써도) 어쩌지 못하는 부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아보면 그것이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기도 했다. 나의 부피를 줄여 몸을 가볍게 했을 때,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어디까지인지 알 때, 진짜 상대방을 위한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대단하지 않아도 소중한 관계. 내가 당신을 돌보고 당신이 나를 돌봐줄 때 우린 연결되지만, 그 끈은 상대의 존재를 쥐고 흔들 만큼 지배적일 수 없고 지배해서도 안 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계에 크게 허덕이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아는 자신과 타인의 거리를 왜곡하지 않는 정도의 크기인 듯했다.
그러니까 선생은 미쳐야 마땅한 고통 속에서 도무지 ‘미쳐지지’ 않았다. "정신이 미치기 직전까지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가 어떤 강인한 저지선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걸" 수시로 느꼈다. 그것이 선생을 다른 차원에서 괴롭혔다. 미쳐버리면 차라리 편할 것 같은데 미쳐지지 않고, 미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자식을 잃은 극한의 처지에서도) 미침을 강하게 거부하는 에너지, 그러니까 생에 대한 ‘민망한’ 의지가 있기 때문 아닐까,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는 것이었다.
유튜브에 새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진정한 욕쟁이 할머니의 스웩이란 저런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어김없이 넋을 놓고 킬킬거리지만, 동시에 얼떨떨한 마음으로 짐작해본다. 여름밤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는 손녀에게 ‘나는 내 인생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던 할머니의 심정을. 저승에서 만난다 해도 멱살 잡고 싶을 남편의 기일에 음식을 만들다가, 같이 산 기간이 짧아서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하는 70대 여성의 블랙코미디를.
내게는 그런 긍지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고작 된장찌개 한 냄비를 끓이고 나서 드러눕는 종류의 사람이다. 나의 두 손은 감자 두 개를 30분 동안 깎는다. 평소엔 이런 얘기를 ‘자학 개그’처럼 던지곤 하지만, 몸을 움직여 삶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내겐 분명히 있다.
박막례 할머니의 ‘편’이라면 이 또한 다들 알겠지만, 할머니의 피디이자 손녀인 김유라 씨와 할머니의 관계는 혈연이 보여주는 평면적인 애정을 넘어선다. 그들을 잇는 건 자매애(sisterhood)에 가까워 보인다. 페미니즘이 낯설지 않은 세대의 손녀는 할머니의 설움에 공명한다. 하지만 결코 할머니를 연민의 대상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무서운 인생’에 짓눌린 사람은, 그래서 자기 연민에 갇혀버린 사람은 결코 자기 입으로 인생을 말하며 웃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 인정하면 되지, 감정적으로 곡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 나를 나쁘게 생각해도 그걸 바꾸려고 애쓰지 않게 되는 상황이 점점 많아진다. 나이가 드니 인간관계가 부질없게 느껴진다거나, 사람에게 공을 들이는 일이 귀찮아서가 아니다. 나와 정서적으로 긴밀한 사람들을 나는 끊임없이 염려한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은 내게 옮아오며, 나의 기쁨과 슬픔 또한 그들과 결속한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일 또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중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데는(그게 합리적이든 아니든) 그만의 이유가 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어찌할 수 있다 해도, 어찌하는 데 사용할 에너지나 마음이 내게 없다면, 또다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글쓰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헛된 기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글은 글일 뿐 글이 사람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청년 시절의 많은 부분을 글쓰기에 할애한 결과 깨달았다. 생의 초반에는 생의 뒤통수에 관해 생각할 일이 많지 않듯, 창작을 꿈꾸던 청춘의 초반에는 글의 뒤통수를 대번에 알아차리진 못했다.
시간에 저항할 수 없다면 시간과 화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굴종도 타협도 아닌 온전한 화해. 내가 더 이상 보살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내가 보살펴야 할 존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내게는 시간과의 화해였다. 책임과 인내를 가까이하고, 미움과 미망(迷妄)에서 멀어지는 것이 화해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제 나이는 낯설고 마음속엔 자라지도 가출하지도 않는 어린애가 칭얼대고 있으므로, 시간과 화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저만치 앞서가는 시간의 꽁무니에 대고 읍소를 한들 욕을 한들, 시간은 귀먹은 강물처럼 제 갈 길을 갈 뿐이니.
아주 조금씩, 누군가 노력해줄 때 인간은 나아질 수 있다. 인간은 너무 복잡하기에 수많은 형태로 망가지지만, 또 너무 복잡하기에 수많은 형태로 나아질 수 있다.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괴물’들에게, 과거의 어느 시점에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면, 그와 주변인들이 겪는 불행의 크기가 지금보다 작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의 개입으로 어떤 불행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
나에게 개입하는 몇몇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들 덕에 나는 지나치게 망가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아주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불 동굴 밖으로 나온다. 글도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며 수시로 내게 개입한다. 글을 통해 세상에 개입한다. 그렇게 매일 ‘고쳐질 가능성’을 타진한다. 포기하지 않고.
어린 시절이 끝나고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되면, 취하지 않고 오늘을 견디는 인간을 찾기 어려워진다. 불안을 피하려 일에 취하든, 상처를 덮으려 술에 취하든, 수치를 잊으려 명예에 취하든, 고독을 이기려 시선에 취하든, 열등감을 지우려 폭력에 취하든, 무엇에도 취하지 않은 채 오감을 깨우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어린 시절을 끝낸 인간은 어딘가 취한 채, 자신의 과거와 싸우느라 매일을 소비한다. 이 싸움은 잘해야 본전이다. 이겨야 기껏 ‘사람 꼴’이며, 졌을 때의 상황에는 바닥이 없다. 바닥 없음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 잔인해서, 다시 취할 거리를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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