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뭘 어째보겠다는 요량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때때로 혼자 있고 싶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좋은 딸들을 둔 것도 복에 겨워 저런다고 흉잡힐 만한 청승인지라 될 수 있는 대로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이런저런 부자유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미사 보는 동안도 내내 자식 잡아먹은 내 모성의 독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그 애가 누워 있는 산에도 못 가봤다. 즈이 아버지 발치에 누워 있다니 내 발길이 여러 번 미친 산이건만, 그 애가 묻힐 때도, 묻힌 후에도 못 가봤으니 그 산은 나에게 미지의 산일 수밖에 없다. 에미가 눈 뜨고 살아 있으면서 그 애가 어떻게 묻히고 어떤 모양으로 누워 있는지 확인도 안해봤으니 세상에 그런 못된 에미가 어디 있을까.
나는 그때 분명히 기절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주사로 일부러 기절을 시켜 장례에서 빼돌려버렸다. 당해야 할 고통은 아무리 못할 노릇이라도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 게 옳다. 일생 피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그 애의 피곤보다도 그 크림통보다도 작은 필름통 속에 유명(幽明)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유람선 사진 몇 장만 빼고는 다 그 애가 죽은 후의 날짜로 돼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리의 단위나 감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길 없이 멀고 먼 이승과 저승이 어쩌면 그 작은 필름통 안에 그리도 친근하게 밀착돼 있었더란 말인가. 나에겐 그 필름통이 마치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가련한 인간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할머니한테 선물이라며 주머니에서 산에서 주웠다는 알밤을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고맙다, 고마워. 나는 선물도 고맙고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온 건 더 고마웠다.
아무리 좋은 일도 그걸 못이 박힌 가슴으로 느껴야 할 때 어떠하다는 걸 네가 알 리가 없지, 또 알아서도 안되고, 그러나 너도 손가락에 가시 같은 게 박혀본 적은 아마 있을 것이다. 가시 박힌 손가락은 건드리지 않는 게 수잖니? 이물질이 닿기만 하면 통증이 더해지니까. 에미에게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아라. 만약 손가락 끝에 가시라도 박힌 경험이 있다면 그 손가락으로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설사 아기의 보드라운 뺨이라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 테지. 그런 손가락은 안 다치려고 할수록 더욱 걸치적거린다는 것도. 못박힌 가슴도 마찬가지란다. 오오, 제발 무관심해다오. 스스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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