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지나는 구름과 햇빛의 농도에 따라 바다 빛깔은 시시각각 요변을 한다. 어느 땐가는 수평선 쪽이 초록색 띠를 두른 것처럼 선명하게 바다의 남색과 경계를 이루면서 그쪽에 떠 있는 양식장의 흰 스티로폼이 초원에 노니는 양 떼처럼 보였다. 이 환상의 초원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쪽에 초원이 있고 없음이 뭐 그리 중요한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물 중 다만 보였다는 것 이상의 관계를 맺은 게 몇이나 된다고.
자식의 보호를 벗어나려는 게 객쩍은 오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벗어나겠다는 게 아니라 벗어나면 내가 어떻게 되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 또한 걷잡을 수가 없다. 뭔가 내 정신이 아니다.
딸애는 그 동안 그렇게 지성껏 봉양을 했건만 뭐가 부족해서 저러나 싶은 얼굴로 쳐다봤지만 나는 그 애에게 딴소리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어디서 뭔가 강력한 힘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도무지 지접을 못하는 에미를 딸은 딱한 듯, 슬픈 듯 바라보더니 말없이 짐을 들고 따라나섰다. "모셔다나 드릴게요." 딸의 지친 듯한 목소리를 듣고 나는 문득 나를 그 애의 에미가 아니라 자식처럼 느꼈다. 자식 중에서도 에미 속이나 썩이는 못된 자식처럼.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과 ‘아직은 안돼’라는 오기가 속에서 싸움질하듯 보깼다. 늙은이의 어리광이야 망령밖에 더 되나.
나에겐 잡아줄 손이 필요했다. 죽는 날까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원통(寃痛)함에서만은 놓여나고 싶었다.
그러나 떠나갈 땐 주제넘게도 어린 자식을 험한 고장에 떼어놓고 가는 에미 같은 얼굴을 하더니, 기어코 눈물을 보였다.
그 애가 떠나고 나서 잠깐 혼자가 되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고비를 맞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비였지만 두려웠다.
마리로사 수녀님만 특별히 명랑하고 발랄한 게 아니었다. 다들 그늘이라곤 없이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수녀님도 있었다. 이상도 하지, 저 젊음과 저 미모로 무얼 못해서 하필 수녀가 되었을까. 나는 누가 부른 것처럼 이곳에 이끌렸고, 지금 여기 당도해 있건만 왜 이런 곳이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세속의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을 수가 있는지 그저 이상하기만 했다.
참척의 쓰라림으로 내 마음은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나 수녀님은 딴소리만 했다. 어떻게 해서 화제가 거기 이르렀는지는 모르지만 수녀님은 아주 열렬하게 감동적인 어조로 교황 요한 23세 얘기를 했다.
수녀님은 어린애한테 위인전 얘기를 해주듯이 재미있고 신바람나게 요한 23세 얘기를 다 해주고 나서 비로소 나더러 이곳에 잘 왔다고, 마음 편히 지내길 바란다는 뜻의 인사말을 했다. 연민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말투여서 고마운 한편 조금은 서러웠다. 그 동안 나는 싫어하는 것처럼 굴면서도 실은 얼마나 남이 나를 불쌍히 여기면서 비위 맞추고 위해주는 데 길들여졌던가.
이제야말로 혼자가 된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왜 그렇게 혼자 있고 싶어했는지 생각도 안 나고 이해도 안되어 우두망찰을 했다. 그리고 누가 떠다민 것처럼 비실비실 방구석으로 가서 찰싹 붙어섰다. 인기척 없는 언덕방의 공기가 사방에서 화살처럼 내 몸에 꽂혀오는 것 같았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잖아. 자업자득이야. 이렇게 자신을 윽박질러보았지만 완벽한 고립감은 고약했다.
워낙 정신적이지 못한 나는 고립감도 감각적이었다. 무서움증만 해도 상상의 소산이니 정신적이라 하겠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다만 등더리에 누가 자꾸자꾸 눈덩이를 한 움큼씩 집어넣는 것처럼 차가운 전율이 간단없이 지나갔다.
그래, 나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보려고 이곳에 이끌렸고, 혼자돼보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 나는 방바닥으로 무너져내렸고 몸부림을 쳤다. 방안을 헤매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마침내 하나의 작은 돌멩이가 되었다. 돌멩이처럼 보잘것없었고, 돌멩이처럼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지려고 기를 쓰듯이 한 말씀을 얻어내려고 기를 썼다.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질 리 없듯이 한 말씀은 새벽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도 들려오지 않았다. 처절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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