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 불리는 존재여! 인간을 만든 조물주여! 당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는 지금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만약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부디 이 사람을 버리지 마세요. 제발!’

의식이 없는 이들에게도 나는 힘주어 편지했다. 죽지 말라고,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악착같이 깨어나서 보란 듯이 살아야 한다고….
그러나 그들은 매번 한마디 말도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그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군가는 생과 사를 바라보는 직업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인간과 세상을 만든 존재에 대한 원망이 점점 커지다가 ‘그 존재’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불신만이 생겼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능함과 좌절감에 빠질수록 그 의문은 더욱 커졌고, 그럴수록 이 다이어리에 쓰는 수취인 없는 편지는 점점 늘어났다. 그런 편지조차 쓰지 않는다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잡다한 지식만이 쌓일 뿐 인간과 이 세상을 만든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만들었는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명쾌한 답은 얻지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집착과도 같은 나의 의문조차 점차 무뎌져 갔다.

낡은 아버지의 신발과 지갑, 빈 약통, 깨진 안경, 그리고 볼펜 하나가 다였다. 선물은 아마도 사고 현장에서 분실된 것 같았다.
한동안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존재’에 대한 원망이 솟아났다. 무슨 말이든 쓰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덮었던 다이어리를 펴고 아버지의 낡은 펜을 잡았다.
‘살려-주세요.’
이 한 문장을 쓰자,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끝이 내 왼쪽 갈비뼈 사이를 뚫고 들어와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적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기적.
‘제발, 아빠를 살려주세요. 제발.’
글자 위로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참아보려 했던 눈물은 결국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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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는 ‘위대한 연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탈무드를 보면 수많은 학자가 여러 문제를 놓고 4개월이나 6개월 혹은 7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계속 토론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그러다보면 결론이 안 나는 주제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맨 끝에 ‘알 수 없다’고 적어놓았지요. 이것이 주는 교훈은 ‘정말 알 수 없을 때에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또한 탈무드에는 다양한 결정을 정리한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소수 의견도 들어갑니다. 소수 의견은 기록을 안 하면 없어지니까요.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

게으른 사람은 하루가 너무나 길다. 하지만 허송세월 하다보면 일 년이 순식간에 지난다. 아무것도 못 이룬 채.

‘현명한 사람 한 번 꾸짖는 편이 미련한 사람 백 대 치는 편보다 낫다(잠언 17장 10절)

"무슨 일이 있어도 장례를 지내며 슬피 울어선 안 됩니다. 자살은 살인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이에게 말로 겁주지 마십시오. 아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벌을 주거나 입을 꾹 다물어야 합니다."

자녀는 다섯 살에 부모의 주인이 되고 열 살에 부모의 하인이 되며 열다섯 살에 부모의 복사판이 된다. 열다섯 후로는 이때까지 자란 방식에 따라 부모의 친구도 될 수 있고 적도 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앞뒤가 뒤바뀐 해결책을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그런 해결책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건의 본질을 꿰뚫고 그에 따라 해결책을 내놓는 능력이다.

현자는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장황한 이론이 아니라 당사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며 한발씩 앞서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금, 은, 보석처럼 허무한 대상에 마음을 두어 번뇌에 빠지지 마라. 인생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래서 덕을 많이 쌓으려고 노력하라. 죽은 후에 남는 건 자기 이름 몇 자란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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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 명문장/조선경국전

옛날에는 토지를 관에서 소유하여 백성에게 줬으니, 백성이 경작하는 토지는 모두 관에서 준 것이었다. 천하의 백성으로서 토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은 빈부나 강약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토지의 소출이 모두 국가에 들어갔으므로 나라 역시 부유했다.

<조선경국전>은 조선 건국 후 국가 운영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법전 중 하나로 정도전이 썼다. 조선은 건국 1년 전 과전법을 단행하여 권문세족의 토지를 혁파하고, 소작농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대대적인 토지 개혁을 실시했다. 토지문제를 경제 모순의 근원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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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이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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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83년생이다.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나와 같은 부류(?)라고 하면 불쾌하시려나?^^;;
왜 인지 마지막으로 갈수록 나와 겹치는 부분이 여러가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완독을 하게 된 책이다.
사춘기 시절에도, 대학때까지도 쫑알거리기를 즐겨했던 것 같은데 어떤 일을 만난 후로 점점 말을 덜 하게 된 것 같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너무 힘들기도,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 말하거나 혼자 쓰는 게 더 편하다. 지금까지 일기라는 것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일기까지는 아니고 댓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줄 정도 쓰는 날도 많고 거의 자기 못남을 시인하거나 욕(그렇다고 육두문자를 쓰는 건 아니다 ㅎ)도 쓰고 낙서도 많이 한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결국 작가님이 하고자 한 말은 저 한 마디가 아닐까?
‘글이든 말이든 그것이 삶을 넘을 수는 없다’

📚p12
소속감과 친화력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내성적인 사람들이 짊어지는 부담이 커진다. 활동의 반경이 곧 경쟁력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 멀리, 더 넓게, 더 많이, 에너지는 외부를 향하도록 독려된다. 에너지가 밖으로 뻗기보다는 안에 머무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에겐 유리하지 않다. 그들은 ‘그런’ 세상에서는 조금 더 애를 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언제나 몇 걸음은 더 움직여야 하고, 몇 마디는 더 말해야 한다. 몇 번씩은 더 웃어야 한다.

📚12p
‘거리’는 본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조건이다. 그들은 틈과 간격 속에서 판단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대꾸하고, 말하자마자 행동하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속도다. 말보다 글이 편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글에는 내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틈과 간격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바심이 생기지 않고, 내성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는 조바심이 없을 때 발휘된다.

📚p13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교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덜한 게 아니다. 다만 빨리, 한꺼번에 하지 못할 뿐이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기 좋은 틈과 간격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더 깊고 단단한 통로를 낸다.

📚p13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리가 몇 미터이든 그가 가닿고자 하는 거리는 그보다 멀다.

📚p16
글쓰기는 자문자답의 과정 자체가 처방이 된다는 점이었다. 쓰면 나아졌다.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진 않아도 쓰기 전보다는 나아졌다. 어지러움의 일부가 고요를 되찾고, 우울은 서핑 가능한 수준의 파도가 되었다. 활화산 같던 일들이 성냥불처럼 소박해졌다. 나는 입김을 후 불어 불씨를 껐다. 성냥불을 끄는 건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p25
세상은, 특히 한 인간의 생산성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자본의 세상은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품위를 절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품위가 훼손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훼손된 인간은 공통적으로 모멸을 느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유독 모멸에 예민하다. 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멸을 느낀다는 게 아니라, 공기 같은 억압과 소리 없는 차별처럼 자신이 훼손될 만한 상황을 신속히 감지한다는 뜻이다.

📚p34
삶이 너무 지독할 때는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지독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
그 중간의 어딘가에 모든 글쓰기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p44
나는 모든 관계에서 내가(아무리 용써도) 어쩌지 못하는 부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아보면 그것이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기도 했다. 나의 부피를 줄여 몸을 가볍게 했을 때,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어디까지인지 알 때, 진짜 상대방을 위한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대단하지 않아도 소중한 관계. 내가 당신을 돌보고 당신이 나를 돌봐줄 때 우린 연결되지만, 그 끈은 상대의 존재를 쥐고 흔들 만큼 지배적일 수 없고 지배해서도 안 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계에 크게 허덕이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아는 자신과 타인의 거리를 왜곡하지 않는 정도의 크기인 듯했다.

📚p54
그러니까 선생은 미쳐야 마땅한 고통 속에서 도무지 ‘미쳐지지’ 않았다. “정신이 미치기 직전까지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가 어떤 강인한 저지선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걸” 수시로 느꼈다. 그것이 선생을 다른 차원에서 괴롭혔다. 미쳐버리면 차라리 편할 것 같은데 미쳐지지 않고, 미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자식을 잃은 극한의 처지에서도) 미침을 강하게 거부하는 에너지, 그러니까 생에 대한 ‘민망한’ 의지가 있기 때문 아닐까,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는 것이었다.

📚p61
내게는 그런 긍지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고작 된장찌개 한 냄비를 끓이고 나서 드러눕는 종류의 사람이다. 나의 두 손은 감자 두 개를 30분 동안 깎는다. 평소엔 이런 얘기를 ‘자학 개그’처럼 던지곤 하지만, 몸을 움직여 삶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내겐 분명히 있다.

📚p64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 인정하면 되지, 감정적으로 곡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p64
누군가 나를 나쁘게 생각해도 그걸 바꾸려고 애쓰지 않게 되는 상황이 점점 많아진다. 나이가 드니 인간관계가 부질없게 느껴진다거나, 사람에게 공을 들이는 일이 귀찮아서가 아니다. 나와 정서적으로 긴밀한 사람들을 나는 끊임없이 염려한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은 내게 옮아오며, 나의 기쁨과 슬픔 또한 그들과 결속한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일 또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중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데는(그게 합리적이든 아니든) 그만의 이유가 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어찌할 수 있다 해도, 어찌하는 데 사용할 에너지나 마음이 내게 없다면, 또다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p67
글쓰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헛된 기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글은 글일 뿐 글이 사람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청년 시절의 많은 부분을 글쓰기에 할애한 결과 깨달았다. 생의 초반에는 생의 뒤통수에 관해 생각할 일이 많지 않듯, 창작을 꿈꾸던 청춘의 초반에는 글의 뒤통수를 대번에 알아차리진 못했다.

📚p71
시간에 저항할 수 없다면 시간과 화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굴종도 타협도 아닌 온전한 화해. 내가 더 이상 보살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내가 보살펴야 할 존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내게는 시간과의 화해였다. 책임과 인내를 가까이하고, 미움과 미망(迷妄)에서 멀어지는 것이 화해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제 나이는 낯설고 마음속엔 자라지도 가출하지도 않는 어린애가 칭얼대고 있으므로, 시간과 화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저만치 앞서가는 시간의 꽁무니에 대고 읍소를 한들 욕을 한들, 시간은 귀먹은 강물처럼 제 갈 길을 갈 뿐이니.

📚75
아주 조금씩, 누군가 노력해줄 때 인간은 나아질 수 있다. 인간은 너무 복잡하기에 수많은 형태로 망가지지만, 또 너무 복잡하기에 수많은 형태로 나아질 수 있다.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괴물’들에게, 과거의 어느 시점에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면, 그와 주변인들이 겪는 불행의 크기가 지금보다 작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의 개입으로 어떤 불행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

📚p76
나에게 개입하는 몇몇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들 덕에 나는 지나치게 망가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아주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불 동굴 밖으로 나온다. 글도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며 수시로 내게 개입한다. 글을 통해 세상에 개입한다. 그렇게 매일 ‘고쳐질 가능성’을 타진한다. 포기하지 않고.

📚p127
세상에는 보풀을 꼭 떼야 심신에 안정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세상에 별다른 해악을 주지도 않으며, 오히려 니트의 미감에 복무한다.

📚p127
나는 내가 이런 종류의 ‘멈칫’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흐릿하고 납작한 일상에 침입하는 낯선 단어들. 어휘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너무 달라서 어떤 이에게는 이런 일들이 ‘쓸데없이 어려운 말’, ‘먹물스러움’, ‘오글거림’으로 느껴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물질은 압축될수록 좋고 정신은 확장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박절하다’가 있는 일상이 내겐 확실히 덜 박절하다.

📚128
나도 ‘부캐’2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이름은 이조금이다. 세상에 ‘조금’만 해를 끼치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스스로 바꾼 이름이다.

📚p134
오늘도 나에겐 밤이 있지, 심지어 밤은 매일 있어,
라고 생각할 때의 은밀한 희열이 있다.
밤에 읽는 책은 낮에 읽는 책보다 명료하다.
밤에 듣는 음악은 낮에 듣는 음악보다 우아하다.
밤에 하는 생각은 낮에 하는 생각보다 반자본적이다.

📚p135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더럽혀지지 않고, 동시에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깨끗해지지도 않는, 어떤 작은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다가 ‘아아-’ 하고 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나만 말하는 집, 나만 듣는 집.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집.

📚p139
무엇보다 ‘밤’을 얻었다. 밤에 대한 내 감정은 이중적이다. 일조량에 예민하기 때문에 해가 짧아지면 기운이 달리면서도, 달이 뜨고 세상의 소란이 잦아들 때부터 느껴지는 느슨한 감각을 사랑한다. 그것은 하루가 또 무탈히 소멸했다는 데 대한 안도감이기도 하다. 눈알을 굴리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뒷목을 잡고, 악다구니를 쓰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는 시간. 눈에 힘을 풀고, 신경을 해산하고, 뒷목을 베개에 대고, 목소리를 아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 아무 죄책감이 없기에 뭐라도 해보고 싶은 시간.

📚p145
한 사람에게 필요한 끈은 어느 정도이며,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끈은 또 어느 정도일까.
당연히, 관계의 ‘양’이 정신의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드레스룸에 온 동네 사람이 입고도 남을 옷이 가득해도 철이 바뀌면 웬일인지 입을 게 없다.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수천 개여도 전 지구에 나보다 찌질한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싶은 어느 새벽의 외로움은 전혀 경감되지 않는다

📚p1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고독을 방어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미니멀로 사느냐, 맥시멀로 사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죽을 때까지 오늘은 이 끈, 내일은 저 끈, 돌아가며 만지작거리더라도, 외롭다고 해서 아무 끈이나 동여매 질식하는 일은 없는 것이 좋겠다.

📚p181
여전히 글은 편하고, 말은 편하지 않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단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다. 말은 매번 마음을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수많은 마음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혼탁하거나 납작해진다.

📚p182
몇 번이고, 그에게 말이 아닌 글을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글이 편한 상태로 살아왔으니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에 꾹꾹 쌓여 있는 공감과 응원의 소리를. 하지만 쓰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삶의 어떤 부분은 글 ‘따위’가 부연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조금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마음을 따라잡지 못할 때가 있다면 글은 마음을 윤색할 때가 있다. 윤색이 나쁜 게 아니라도, 어쨌든 그게 ‘마음’은 아니다.

📚p182
글이든 말이든 그것이 ‘삶’을 넘을 수는 없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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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은 너의 몫, 우리의 고독은 우리의 몫이라는 듯이. 운명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건, 아시아 작은 반도의 빽빽한 도시 한구석에서 발버둥하는 여자 사람이나, 아프리카 동부의 국립공원에서 삶을 이어가는 ‘종의 최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지만 그들이 나를 냉대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모녀는 그렇게 멀찍이 있다가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천천히 걸어간다. 운명이 어디를 향할진 몰라도 그 끝에 ‘끝’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모두를 위로한다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다음은 바로 달고 깊은 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것은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을 자극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를 한번 듣기 시작하면 그것을 듣지 않고 지냈을 때의 감각이 상실된다는 걸 알았다.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모르고 살았는지 의아했다. 이 많은 일을 여전히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것은 지적인 기쁨과는 조금 달랐다. 편집국이라는 공간이 반복적으로 자아내는 긴박함은 일종의 중독적인 항진을 일으키는 듯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취재 기자들의 삶을 어깨너머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입’이 되고, 또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크든 작든) 본질적으로 여느 직종의 사람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힘이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세상에 이런저런 영향을 주지만 기자라는 사람들의 영향력은 매우 직관적이고 가시적인 것이었다.

‘현실을 상상해야 하는’ 잔혹함 속에서도 그것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 기자의 자질이라면, 나는 적절하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현실을 잡으려 애쓰고 싶지 않아졌다. 빈손을 빈손인 채로 내버려두고 싶어졌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자체로 누군가의 입이 되고, 또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하는’ 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으며 그중에는 내가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쓰고 싶은, 아니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압도당해도 괜찮고, 현실을 비틀거나 때론 무시해도 되며, 은유와 상징이 팩트를 넘어서는 글로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문학이었다.

경비아저씨는 물론이고 총 30세대의 이웃 전체, 아니 그 동네를 오가는 모든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물론 신뢰라는 개념 자체가 공고했던 게 아니다. 불신이란 개념을 몰랐던 거지.

할머니가 "얘"라고 말을 걸어오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홍시 심부름을 할 때마다 기분이 묘해졌다. ‘할 때마다’라고 했지만 겨울철 두세 번쯤이 다였고 수박이나 파인애플을 사 와서 잘라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게는 더 이상 언덕 같지도 않게 된 그 언덕을 내려갈 때 느꼈던 불편한 마음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니까 전형적으로,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을 지나치게 자주 하면서 죽음을 몹시도 두려워하던 노인이었다. 욕망을 감추려 하지만 번번이 지나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실패하던 노인. 마음에 없는 소리가 습관이 되다 보니 본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고, 그 마음을 헤아려야만 그를 케어할 수 있는 주변모든 사람을 지치게 만들던 노인. 심지어(당신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들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면서까지. 그랬던 할머니가 홍시에 대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낼 때 나는 복잡해졌다. 모든 욕망을 거꾸로 말하는 저 노인이, 예외적으로 표출하는 이 욕망은 무언가. 고봉밥이나 짜장면에 비해서, 홍시 정도는 욕망해도 되기 때문인가. ‘얻어먹지 않고’ 본인이 2천 원을 지불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인가.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책을 사랑하게 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친구가 수년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났음을 고백하며 말했다. 친구가 떠난 뒤 『벗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책을 읽었는데, 아픈 김유정을 안타까워하는 채만식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고 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고. 그게 딱 자기 마음이었다고. 그 물러오고 싶은 마음을, 남은 사람들에게 물려주고 박지선은 갔다. 물려받은 한 사람은 이렇게라도 적어두고 넘어가야 일도 하고 티비도 보고 라면도 먹겠어서, 마구 적었다.

여전히 글은 편하고, 말은 편하지 않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단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다. 말은 매번 마음을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수많은 마음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혼탁하거나 납작해진다.

몇 번이고, 그에게 말이 아닌 글을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글이 편한 상태로 살아왔으니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에 꾹꾹 쌓여 있는 공감과 응원의 소리를. 하지만 쓰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삶의 어떤 부분은 글 ‘따위’가 부연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조금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마음을 따라잡지 못할 때가 있다면 글은 마음을 윤색할 때가 있다. 윤색이 나쁜 게 아니라도, 어쨌든 그게 ‘마음’은 아니다.

응, 가보자. 나의 기도를 얼마나 잘 전달할지 고민하는 삶보다, 그저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삶 쪽으로.

글이든 말이든 그것이 ‘삶’을 넘을 수는 없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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