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독은 너의 몫, 우리의 고독은 우리의 몫이라는 듯이. 운명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건, 아시아 작은 반도의 빽빽한 도시 한구석에서 발버둥하는 여자 사람이나, 아프리카 동부의 국립공원에서 삶을 이어가는 ‘종의 최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지만 그들이 나를 냉대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모녀는 그렇게 멀찍이 있다가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천천히 걸어간다. 운명이 어디를 향할진 몰라도 그 끝에 ‘끝’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모두를 위로한다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다음은 바로 달고 깊은 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것은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을 자극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를 한번 듣기 시작하면 그것을 듣지 않고 지냈을 때의 감각이 상실된다는 걸 알았다.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모르고 살았는지 의아했다. 이 많은 일을 여전히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것은 지적인 기쁨과는 조금 달랐다. 편집국이라는 공간이 반복적으로 자아내는 긴박함은 일종의 중독적인 항진을 일으키는 듯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취재 기자들의 삶을 어깨너머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입’이 되고, 또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크든 작든) 본질적으로 여느 직종의 사람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힘이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세상에 이런저런 영향을 주지만 기자라는 사람들의 영향력은 매우 직관적이고 가시적인 것이었다.
‘현실을 상상해야 하는’ 잔혹함 속에서도 그것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 기자의 자질이라면, 나는 적절하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현실을 잡으려 애쓰고 싶지 않아졌다. 빈손을 빈손인 채로 내버려두고 싶어졌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자체로 누군가의 입이 되고, 또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하는’ 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으며 그중에는 내가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쓰고 싶은, 아니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압도당해도 괜찮고, 현실을 비틀거나 때론 무시해도 되며, 은유와 상징이 팩트를 넘어서는 글로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문학이었다.
경비아저씨는 물론이고 총 30세대의 이웃 전체, 아니 그 동네를 오가는 모든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물론 신뢰라는 개념 자체가 공고했던 게 아니다. 불신이란 개념을 몰랐던 거지.
할머니가 "얘"라고 말을 걸어오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홍시 심부름을 할 때마다 기분이 묘해졌다. ‘할 때마다’라고 했지만 겨울철 두세 번쯤이 다였고 수박이나 파인애플을 사 와서 잘라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게는 더 이상 언덕 같지도 않게 된 그 언덕을 내려갈 때 느꼈던 불편한 마음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니까 전형적으로,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을 지나치게 자주 하면서 죽음을 몹시도 두려워하던 노인이었다. 욕망을 감추려 하지만 번번이 지나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실패하던 노인. 마음에 없는 소리가 습관이 되다 보니 본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고, 그 마음을 헤아려야만 그를 케어할 수 있는 주변모든 사람을 지치게 만들던 노인. 심지어(당신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들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면서까지. 그랬던 할머니가 홍시에 대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낼 때 나는 복잡해졌다. 모든 욕망을 거꾸로 말하는 저 노인이, 예외적으로 표출하는 이 욕망은 무언가. 고봉밥이나 짜장면에 비해서, 홍시 정도는 욕망해도 되기 때문인가. ‘얻어먹지 않고’ 본인이 2천 원을 지불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인가.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책을 사랑하게 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친구가 수년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났음을 고백하며 말했다. 친구가 떠난 뒤 『벗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책을 읽었는데, 아픈 김유정을 안타까워하는 채만식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고 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고. 그게 딱 자기 마음이었다고. 그 물러오고 싶은 마음을, 남은 사람들에게 물려주고 박지선은 갔다. 물려받은 한 사람은 이렇게라도 적어두고 넘어가야 일도 하고 티비도 보고 라면도 먹겠어서, 마구 적었다.
여전히 글은 편하고, 말은 편하지 않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단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다. 말은 매번 마음을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수많은 마음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혼탁하거나 납작해진다.
몇 번이고, 그에게 말이 아닌 글을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글이 편한 상태로 살아왔으니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에 꾹꾹 쌓여 있는 공감과 응원의 소리를. 하지만 쓰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삶의 어떤 부분은 글 ‘따위’가 부연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조금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마음을 따라잡지 못할 때가 있다면 글은 마음을 윤색할 때가 있다. 윤색이 나쁜 게 아니라도, 어쨌든 그게 ‘마음’은 아니다.
응, 가보자. 나의 기도를 얼마나 잘 전달할지 고민하는 삶보다, 그저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삶 쪽으로.
글이든 말이든 그것이 ‘삶’을 넘을 수는 없다고 믿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