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으로 의무교육을 받고도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아직 경주에 가보지 못한 인생이야 있겠지만 경주를 보러 가서 불국사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국사는 우리나라 문화재 중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불국사를 보고 나서 멋지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불국사를 보고 나서 시시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국사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얼굴이며 한국미의 한 상징이다.
나의 주관적 견해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건축을 논하려면 반드시 사찰 건축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뛰어난 절집이라면 당연히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경주 불국사가 꼽힐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절은 건축적 지향점, 특히 자연과의 조화 관계가 아주 다르다. 부석사는 백두대간의 여맥을 절 앞마당인 양 끌어안는 장엄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선암사는 부드러운 조계산 자락이 사방에서 감지되는 아늑한 산중에 자리 잡았는데, 불국사는 산자락을 타고 올라앉았으면서도 비탈을 평지로 환원하여 반듯하게 경영되었다. 그래서 부석사는 자리앉음새(location)가 뛰어나고, 선암사는 건물과 건물 간의 공간(space) 운영이 탁월하며, 불국사는 돌축대의 기교(technic)와 가람 배치(design)의 묘가 압권이다. 그런 저마다의 특징으로 인하여 한국 사람은 부석사를, 일본 사람은 선암사를, 서양 사람은 불국사를 더 좋아한다. 한국 사람은 부석사의 호방스러운 기상을, 일본 사람은 선암사의 유현(幽玄)한 분위기를, 서양 사람은 불국사의 공교로운 인공(人工)의 멋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불국사 전경| 회랑이 있는 쌍탑 1금당의 정연한 자태는 화엄불국토의 장엄한 모습이자 고대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보탑 | 석가탑과 달리 대단히 화려한 구성이지만 전혀 이질감이 없고 오히려 불국사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관음전에서 내려다본 회랑과 다보탑 | 불국사 가람 배치의 엄정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불국사 축대| 불국사 건축이 다른 사찰과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축대다. 반듯한 석축과 자연석을 서로 이가 맞도록 조성한 석축이 잘 어울린다.
불국사 건축의 아름다움은 석축(石築)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국사 석축은 누구에게나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석축과 청운교·백운교 | 산자락을 다져 평지로 환원하기 위한 이 석축에는 불국토로 이르는 길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한 고대국가의 조화적 이상미가 구현되어 있다.
불국사의 석축은 곧 천상의 세계로 오르는 벽이다. 그 정상이 수미산인데 범영루가 이를 의미한다. 그래서 「역대기」에서는 ‘수미범종각’이라고 이름하였고, 그 정상의 누각에는 108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였다. 108은 물론 백팔번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천상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는 모두 33계단으로 곧 33천(天)의 세계를 의미한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위치는 책마다 다르게 나오는데 「역대기」에 의하면 위가 청운교, 아래가 백운교로 되어 있고, 「동경기행」에서도 위가 청운, 아래가 백운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래 계단이 끝나면서 무지개다리 모양으로 돌이 깔려 있는 부분이 백운교이고, 위의 계단이 끝나면서 자하문(紫霞門) 문턱에 다리를 가설하듯 돌을 깐 것이 청운교라고 했다. 어느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위가 청운교이고, 아래가 백운교이다.
불국사가 아무리 훌륭한 교리적 상징체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것을 받쳐주는 형식을 제시하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로나 건축으로나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파노프스키의 친구로 그의 도상학에 동조하여 인도, 인도네시아의 불교미술을 해석한 쿠마라스와미(A.Coomaraswamy)는 『시바의 춤』(DanceofSiva)이라는 책에서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다"(The Art without science is nothing)라고 단언하면서 수리적 체계의 조화를 강조했는데 불국사는 그에 걸맞은 비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은 요네다가 발표한 「불국사 조영계획에 대하여」라는 논문에 수치와 도면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치란 비례 관계이며 그것이 조화(harmony)와 균제(symmetry)의 근거가 된다.
석가탑, 다보탑, 석등과 배례석,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 불국사 사리탑, 그 어느 것 하나 나라의 보물 아닌 것이 없고, 명품 아닌 것이 없다.
첫 번째는 대웅전 정면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소맷돌 측면의 살짝 둥글린 곡선의 아름다움이다. 마치 옷깃의 선 맛을 낸 것도 같고, 소매끝의 곡선 같기도 한데 그 날카로운 듯 부드러운 아름다움엔 더할 수 없는 기쁨이 일고, 그런 미세한 아름다움을 구사한 옛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놀라움이 일어난다. 우드 관장을 이 자리에 끌고 오자 그는 "믿을 수 없다!"(unbelievable)를 여러 번 되뇌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번째는 석가탑의 탑날개 직선의 묘이다. 사람들은 다보탑을 볼 때 그 화려한 구조의 묘를 자세히 살피면서도 석가탑은 전체적 인상만 즐길 뿐 세부적 관찰은 포기하곤 한다. 석가탑은 무엇보다도 지붕돌이 상큼하게 반전한 맵시가 일품이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살피면 지붕돌은 기울기가 직선으로 되어 있고 반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처마를 직선으로 뻗게 하다가 추녀 부분에서 살을 두툼히 붙여 급하게 깎아낸 것인데, 그것을 밑에서 올려다보니까 살포시 반전한 느낌을 갖게 된다. 착시 현상을 이용하여 곡선의 느낌을 창출한 것이다. 석가탑의 아름다움은 바로 우아한 부드러움이 있으면서도 견실한 힘이 느껴지는 이런 디테일의 묘에 있다.
세 번째는 석축의 그랭이법으로, 자연석 위에 얹힌 장대석을 자연석 모양에 따라 깎은 것이다. 외국인들은 대개 여기에서 자지러지듯 놀라며 인공과 자연의 조화에 얼마나 많은 공력과 계산이 들었는가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극락전 바깥쪽 서쪽 면의 축대 쌓기에 이르면 그 감동은 절정에 이른다. 불국사 석축 정면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비탈길에 드러난 극락전의 석축이 있는데, 곧게 세운 세로줄 장대석을 가로지르는 허리축 걸림돌이 수평으로 뻗어가다가 오르막에서 급격한 꺾임새를 나타내는 동세는 천하의 일품이다.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장대석을 마치 목조건축의 가구(架構)인 양 못처럼 박아놓은 동틀돌로 조이면서 입체적으로 돌출시킨 아이디어도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다. 우드 관장과 경주를 함께 답사하고 헤어지면서 경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 하나만 꼽아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어려운 문제라며 머뭇거리더니 결국은 이 극락전 서쪽 석축의 짜임새를 꼽았다. 그때 우드 관장은 정말 "경이롭다"(marvelous)라고 했다.
네 번째는 극락전 안양문에서 연화교를 내려다보면서 연꽃 무늬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계절과 시각과 광선에 따라 선명도에 차이는 있지만 육안으로 반드시 간취된다. 우드 관장은 이 조각 새김을 보는 순간 "믿기지 않는다"(incredible)라고 했다. 다섯 번째는 관음전에 올라 관음전 남쪽 기와담 너머로 보이는 회랑과 다보탑을 꼭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시각이, 회랑이 있는 절집의 정연한 기품이 무엇인가를 남김없이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불국사 석축 정면 | 90미터에 달하는 석축은 자연석과 인공석의 다양한 벽화로 이루어졌다. 돌계단의 설치로 긴 석축이 지루해 보이지 않고, 자연석 위에 인공석이 올라앉아 아주 조화롭다.
여섯 번째, 불국사 서북쪽의 빈터에는 불국사 복원 때 사용되지 않은 석조 부재들이 널려 있는데 이중 주춧돌이야 누구나 알 만한 것이지만, 뒷간에 사용되었던 타원형으로 구멍난 돌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또 한쪽에는 완벽한 단독 뒷간이 있다. 그것은 상상 외로 멋있고 조형적이다. 우드 관장이 이 멋있는 단독 뒷간을 보면서 왜 이것만 이렇게 잘 만들었는지 묻자 나는 즉흥적으로 "관장님 전용"(Director’s only)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내가 유머 책을 쓰면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랭이법 석축| 자연석의 초석을 깎는 것이 아니라 위에 얹는 장대석을 자연석에 맞추어 깎았다. 이런 기법을 목조건축에선 그랭이법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엔 예가 없다.
언젠가 나는 답사엔 초급, 중급, 고급이 있다고 했는데 불국사는 당연히 초급 코스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급자가 초급 코스를, 중급자가 중급 코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초급자가 오히려 중급 코스를 더 가고 싶어 하고, 중급자는 고급 코스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고급자가 되어야 비로소 초급 코스의 진가를 알고 거기를 즐겨 찾게 된다. 그런 진보와 순환의 과정이 인생유전의 한 법칙이고 묘미인지도 모른다. 결국 불국사는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작은 일각문 너머 있는 뒷간에 다녀오는 일이다. 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서 멀리 불국사 강원(講院)을 합법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보이는 강원, 그것은 우리가 늘 보아온 산사의 한 정경인데 불국사가 회랑이 있는 평지 사찰로 경영되는 바람에 여기서 보는 산사의 편안한 분위기가 새삼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그것을 우리는 불국사의 여운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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