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명문당/파한집
햇곡식 푸릇푸릇 아직 논밭에 자라는데 아전들 벌써 세금 걷는다 야단이네.힘써 농사지어 나라를 살찌우는 것은 우리이거늘어째서 이리도 극성스럽게 침탈하는가.(・・・) 붉은 알몸 짧은 갈옷으로 가리고 하루에도 밭 갈기를 얼마였던가?벼 싹 파릇파릇해지면 가라지 김매기에 괴로울 따름.풍년 들어 천 종의 곡식을 거둔다 해도 한갓 관청에 바치는 것일 뿐.어쩌지 못하고 다 빼앗긴 채 돌아오니 가진 것이라고는 한 알도 없네.
이 글은 고려 농민의 어려운 사정을 읊은 것이다. 사실 조선 시대에서도 이와비슷한 글을 찾기란 어렵지 않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농민의 삶은 고됐고 국가나 지배층은 백성을 행복하게 이끌지 못했다. 그나마 안정적일 때는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했지만 전란이 일어나거나 역병이 돌면 그마저도힘들었고, 귀족이나 지주의 착취가 심해지면 도망을 가서 산이나 섬에서 생계를연명하거나 도적떼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