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민거리를 오직 두 가지로 나눈다. 내가 걱정해 해결할 수 있는 고민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우산을 준비하면 된다. 비를 멈추는 일은 당신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신에게 맡겨라. 그리고 오직 당신이 걱정해 풀 수 있는 문제들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라.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건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보라. 틀림없이 서너 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몇 줄 안 되는 문제에 대해 10분 안에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으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10분을 질질 고무줄처럼 늘려 가면서 하루를 허비하고 한 달을 죽이며 1년을 망쳐 버린다. 머리가 복잡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해결방안도 알고 있으면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앤드류 매튜스는 〈마음 가는 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나는 올빼미 체질이어서 늦게 자기에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숨 쉬지 마라. 고민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라.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라. 고민하나 안 하나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민은 10분만 하라.

고민과 문제를 혼동하지 마라. 고민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는 뜻이고, 문제는 해답 혹은 해결이 요구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고민이 어떤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민은 중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학벌이 중시되는 집단은 가능한 한 멀리해라. 한국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은 파벌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며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학벌이 신통치 않으면 학력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은 제쳐진다. 학벌 쟁쟁한 인사권자들이 이류대 졸업자들의 서류들을 거들떠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은 전산학과 출신을 채용할 때 일류대 졸업생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을 판매하기도 했던 내 경험으로도 그렇다. 전 과목 모두 잘하는 사람은 정작 필요한 업무에서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히려 일류대가 아닌 이류대에 전산에 미친 사람들이 많다. 일류대 출신을 선호하는 회사는 이미 일류대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더 많다.

코스닥 등록 기업들의 경영자들 중 대학 출신이 많은 이유는 그 기업들의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고졸자들도 분명 있음을 기억하라. 학벌이나 학연이 보잘것없다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 역시 그랬다. 분명히 말한다. 대졸자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4년과 동일한 기간 동안 어느 한 분야에 홀로 파고든다면 그 어떤 분야에서건 대졸자보다도 더 큰 실력을 갖추게 된다.

학력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일을 배우려 하지 않고 돈을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학벌이 신통치 않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이 사회에서 일하는 데 있어 필요한 칼과 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갈고닦아라. 이러한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결국 이 문제는 한가한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일상에 쫓겨 시간이 모자란다면 과감히 6개월 이상을 그 일상에서 벗어나라. 휴학도 좋고 휴직도 좋다. 백수라면 더 좋다.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말고 배우고자 하는 분야에 100% 미쳐라.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라.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 라면 1개도 많다. 그냥 씹어 먹어라.

학벌이 좋건 나쁘건 부자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게임 (games people play) 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그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아동도서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 같은 쉬운 책부터 읽어 보라. 하루에 3시간 이상 자기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라. 학벌이나 학력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의 능력이 문제가 된다.

좌우지간,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일부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사업화시켜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홀로 활동하는 전문직이 아닌 한 99%는 이른바 ‘좋은 직장’을 원하기 때문에 대기업 같은 조직의 일원이 된다. 능력별 연봉제를 실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학력과 학벌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 당신은 절대 유별난 존재가 아니기에 월급의 차이가 큰 것도 아니다.
특히 조직 내 일차적 기회는 학력과 학벌 게임에서 최고의 졸업장을 갖고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거나 오너의 친족들이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배제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대조직일수록 내부에서 은연중 파워 게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술술 풀려 나가지는 않으며 아부도 좀 하고 줄도 잘 서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조직 내에서 계속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면 탈출하여 ‘길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체면이나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서 여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문직업인들을 제외하고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연봉을 누가 누가 더 받나’ 게임에서는 학력과 학벌이 좋을수록 처음에는 일단은 유리하지만, 불행하게도 ‘홀로 독립하여 누가 먼저 부자 되나’ 게임에서는 그것들이 정말 별 의미를 주지 못한다. 부자가 되려면 미국인들이 ‘길거리 지식(street knowledge)’이라고 부르는 총체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대조직에서 배우기는 대단히 어렵다. 언제나 일 전체보다는 일부분만 배우게 되고 맡은 분야 이외에는 관심을 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실물 경제 속에서 돈 냄새를 잘 맡아야 하는데 학교 공부만 하였기에 실제 상황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지식들을 얼마나 자기 머릿속에 이전시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과 응용력이 얼마나 개발되어 있고 부가가치 창출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가 결정 요인이다.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학교와 관련된 몇 가지 거짓말들이다.
첫 번째 거짓말은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다.

두 번째 거짓말은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말이다.

교육계에 대한 내 불만은 이쯤에서 그치자. 오해하지 말라. 학교 교육에 그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공부를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성공과 부를 잡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부자가 되지는 못할 수 있어도 적어도 가난에서 분명하게 탈출할 수는 있다.
첫째, 이 사회로부터 기회를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갈림길의 방향이 일단은 학력과 학벌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을 배워 독립을 하려면 우선 어떤 조직이나 정보 공유 집단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학력이 너무 낮으면 그 문턱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학교 교육을 무시한다면 사회로부터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확률적으로는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명심하여라. ‘학교에서 뭔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식해서’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학벌과 학력 이외에는 달리 사람을 판가름할 만한 방법이 없다 보니’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 여러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능력만 보고 채용하겠노라고 선언하였지만 도대체 그 능력이란 것은 일을 시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에 결국은 다시 학력과 학벌을 보는 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점도 기억하여라.

둘째, ‘일류대’ 졸업자가 되면 일단은 고졸자보다 인건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셋째, 학력이 높거나 학벌이 좋으면 능력마저 뻥튀기시킬 수도 있다.

넷째, 학력이 높고 학벌이 좋을수록 인맥 형성이 손쉽다.

다섯째,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그들이 배웠던 것들이 쓸모가 있건 없건 간에 적어도 학습 능력만큼은 인정받는다.

기억해라. 일자리를 주는 집단에서의 일차적 잣대는 학력과 학벌이다.

그렇지만 명심해라.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첫 출발점에서 폼 나게 설 수 있으며 가난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동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출발점에는 비슷한 학력과 학벌 소지자들이 다 같이 경쟁자로 서 있기 때문이다.

법칙 1: 공평하지 않은 게 인생이다.

법칙 2:이 세상은 학교에서처럼 너희들의 자부심을 키워 주려고 하지 않는다.

법칙 3: 꿈 깨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연봉 4만 불은 절대 못 받는다.

법칙 4:학교 선생이 정말 엄하다고? 직장에 들어가 상사를 만나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법칙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한다고 해서 네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칙 6: 부모 잘못이 아니다. 뭔가 잘못되어 엉망진창이 되었다면 바로 네 책임이다.

법칙 7: (부모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너희 부모의 삶이 지금처럼 무미건조해진 것은 너희가 태어나고 나서부터였다.

법칙 8: 학교에서는 너희를 승자와 패자로 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에서는 그렇지 않다.

?법칙 9: 인생은 여러 학기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며 여름방학도 없다. 부활절 휴일도 없다.

법칙 10: TV는 현실 속 삶이 아니다. 네 인생이 시트콤은 아니다

법칙 11: 공부벌레들에게 잘해라. 네가 결국에는 그들 밑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될 수 있다.

법칙 12:흡연이 너를 멋지게 보이도록 해 주진 않는다. 흡연은 너를 멍청이로 보이게 만들 뿐이다

법칙 13: 너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법칙 12를 봐라)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죽음으로써 아름다운 시체를 남기는 것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분명 너는 최근에 (방 안에서 뒤늦게 발견되어) 실온에서 방치된 네 친구의 시체를 본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법칙 14: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놓아라. 분명 너희에게 부모는 고통스럽고 학교는 지루하며 삶은 울적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너희도 깨닫게 될 것이다. 청소년 시절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던가를. 지금부터라도 (삶을) 즐기기 시작해 보아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80. 장소/종묘

종묘는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위패가 보관된 장소다. 《주례》에 따르면 궁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종묘는 위치상 경복궁의 왼편, 창경궁 아래편에 위치한다.
종묘는 오묘제라는 제도 때문에 만들어졌다. 오묘제란 나라를 세운 시조와 그의 조상 4대, 즉 5대의 위패를 모시는 제도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500년이 넘게 왕조가지속되면서 보관해야 할 위패가 늘었고, 늘 때마다 계속 건물을 옆으로 증축했기 때문에 일자형의 독특한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세월이 만든 예술품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할 때는 피를 토하는 자세로 하라고 한다. 특히 삼십 대 중반 이전에는(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적어도 2~3년 동안은(길면 길수록 좋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없어야 하므로 최대한 일터나 학교에 가깝게 살면서 시간을 아끼고, 밥을 많이 먹으면 졸려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므로 밥을 굶거나 조금만 먹으라고 하고(내가 밥을 굶으라고까지 하는 것은 실제로 쫄쫄 굶으라는 뜻이 아니라 밥 대신 다른 것을 간단히 먹으라는 뜻이다), 시간을 철저하게 아끼려면 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하므로 그냥 생으로 씹어 먹으라고까지 말한다(너무했나? 실제로 나는 5~6개월을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미리 삶아 놓은 계란 두 개 혹은 라면 부스러기나 찬밥 물에 말아 먹기, 저녁밥은 작은 공기 하나 정도로 때운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아침을 전혀 먹지 않으며, 오후의 식곤증을 없애고자 점심을 반만 먹을 때가 많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다가 건강을 해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말이다. 자기도 그렇게 해 보았는데 위장병만 생기는 바람에 아직도 고생한다는 말도 하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요통만 생겼다고 하기도 하며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역시 건강이 최고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면 건강 걱정하면서 그렇게 계속 튼튼하게 살아라.

10여 년이 지난 뒤 통계청이 내놓은 "99년 한국인의 사망원인분석"에서도 자살자는 10~30대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고, 그들 세대에서 자살은 교통사고 다음의 최대 사망원인으로 나타났다. 즉, 자살자들은 젊고 싱싱하고 건강한 10~30대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며 건강 상실이 동기가 되어 자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흔히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면 당연히 절망하여 자살할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보다는 건강하고 탱탱한 몸을 갖고 있음에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 말이다. 건강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왜들 그렇게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갖게 되어 고민 끝, 절망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아닌가.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신체적으로 병이 없는 상태이면서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안녕인 상태’라고 정의한다. 몸 건강한 노숙자는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는 아니므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몸 하나 튼튼하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가 아니면 육체적 건강은 위협을 받는다. 핀란드의 투르크시 직업병전문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경기가 침체 국면에 있을 경우 근로자들은 더 많은 질병을 앓게 되는데, 고용불안과 일터에서의 분위기 변화 등으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하며, 실제로 실직하게 되면 사망률마저 높아진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연구팀은 25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업률이 낮을 때 실직하면 사망하기 쉬우나 실업률이 높을 때는 그럴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연구팀은 실업률이 낮을 때 실직한 사람은 본래부터 건강에 나쁜 생활 습관과 성격 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에 사망률이 높은 것이며, 실업률이 높을 때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도 실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주변에 실직자가 많다 보니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어들어 사망률이 낮다고 덧붙였다.

물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엄살은 부리지 말라

내가 20대부터 40대 초까지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뭔가를 읽고 배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신체리듬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한창 일하였던 시기에는 취미 생활을 위해 몸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였는데 그다음 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밤에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나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새벽까지 술을 마심으로써 다음 날 엉망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10년에 한 번 정도뿐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직원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셔 대는 사람들, 교회에서 철야예배를 마치고 출근하는 사람들, 일요일에 등산이니 뭐니 하면서 몸을 극도로 사용한 뒤 월요일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육체의 리듬을 깨는 일은 토요일에 할 것을 권유한다.

그렇다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가시적 결과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부에서 찾아라. 당신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하여야 할 주체는 타인이나 직장이나 사회가 아니다.

둘째, 쉬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여 보라.

셋째,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라.

넷째, 긴장감을 잃지 말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포평야 | 내포땅의 풍요로움을 남김없이 느낄 수 있는 이 평화로운 길은 평범한 것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해준다.

이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들판길은 찻길이 항시 언덕을 올라타고 높은 곳으로 나 있기 때문에 넓게 내려다보는 부감법의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란 흔히 강을 따라 난 길, 구절양장으로 기어오르는 고갯길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평범한 들판길이 오히려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59년 4월, 오랫동안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장(오늘날의 국립부여박물관장)을 지낸 금세기의 마지막 백제인 연재(然齋) 홍사준(洪思俊,1905~1980) 선생이 보원사터로 유물 조사 온 길에 마애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홍사준 선생은 이를 즉각 국보고적보존위원회(오늘날의 문화재위원회)의 이홍직(李弘稙), 김상기(金庠基) 교수에게 보고하였으며 위원회에서는 그해 5월 26일 당시 국립박물관(오늘날의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 김재원(金載元) 박사와 황수영(黃壽永) 교수에게 현장조사를 의뢰하였고 조사단은 이 마애불이 백제시대의 뛰어난 불상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이 불상을 서산 마애불 또는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산 마애불의 발견 아닌 발견은 실로 위대했다. 서산 마애불의 등장으로 우리는 비로소 백제 불상의 진면목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서산 마애불 등장 이전에 백제 불상에 대하여 말한 것은 모두 추론에 불과했다. 저 유명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나 일본 광륭사(廣隆寺,코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 일본 법륭사(法隆寺,호류지)의 백제관음 등은 그것이 백제계 불상일 것이라는 심증 속에서 논의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서산 마애불은 이런 심증을 확실한 물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산 마애불은 미술사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나는 삼존불 형식이면서도 여래입상 양옆의 곁보살〔?侍菩薩〕이 독특하게 배치된 점이며, 또 하나는 저 신비한 미소의 표현이다.

서산 마애불의 옛 모습 | 용현계곡 한쪽 벼랑에 새겨진 마애불의 옛 모습. 한때 보호각이 설치되었으나 지금은 보호각을 걷어내서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59년 11월 이경모 촬영)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작년(1959)에 발견된 서산 마애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서산 마애불 전경| 은행알 같은 눈으로 활짝 웃고 있는 여래의 모습은 ‘백제의 미소’라는 찬사를 자아내게 한다.

서산 마애불은 한동안 보호각 속에 고이 보존되어왔지만, 발견 당시의 상황을 보면 주변의 자연경관과 흔연히 어울리면서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서산 마애불은 과학적 계산을 고려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구사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계적 계산을 넘어 진짜 과학적 배려에서 위치와 방향을 설정한 결과다.
서산 마애불이 향하고 있는 방위는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그것은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하며, 일조량을 가장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이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본존불이 향하고 있는 방향과 같다.
마애불 정면에는 가리개를 펴듯 산자락이 둘러쳐져 있다. 이는 바람이 정면으로 마애불을 때리는 일이 없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애불이 새겨진 벼랑 위로는 마치 모자의 차양처럼 앞으로 불쑥 내민 큰 바위가 처마 역할을 하고 있어서 빗방울이 곧장 마애불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마침 마애불이 새겨진 면석 자체가 아래쪽으로 80도의 기울기를 갖고 있어서 더욱 효과적으로 빗방울을 피할 수 있다. 한마디로 광선을 최대한 받아들이면서 비바람을 직방으로 맞는 일이 없는 위치에 새긴 것이다.

서산 마애불의 경우 바위의 조건이 왼쪽은 높고 오른쪽은 낮다. 그래서 가운데 여래상의 조각을 보면 오른쪽 어깨가 바위에 얕게 붙어 있는데 왼쪽 어깨는 바위면에서 높이 솟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로 인해 보는 사람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서산 마애불이 기법상으로 가장 절묘하게 구사된 점은 뭐니뭐니 해도 야외 조각의 특성에 맞춰 얼굴은 높은 돋을새김으로 하고 몸체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차츰 낮은 돋을새김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 점은 실로 놀랍다.
서산 마애불은 이처럼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제작되었으면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제작된 결과인 듯한 편안한 인상을 준다. 바로 소리 없는 공력과 드러내지 않는 기교의 미덕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점은 실로 귀하다.

"이 마애불의 미소는 아침저녁으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아침에 보이는 미소는 밝은 가운데 평화로운 미소고, 저녁에 보이는 미소는 은은한 가운데 자비로운 미소입니다. 계절 중으로는 가을날의 미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어느 시인은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라고 읊었지만 강냉이술이 붉어질 때 마애불의 미소는 더욱 신비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가을해가 서산을 넘어간 어둔 녘에 보이는 잔잔한 모습입니다."

성원할아버지 | 30여년 마애불과 함께해온 성원 할아버지가 삿갓등으로 마애불의 미소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광선의 방향에 따라 미소가 달라진다.

성원 할아버지는 마애불이 바라보는 앞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 산신각을 모셔놓았다. 언젠가 내가 물으니 산이 좋아서 신령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보원사터 |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서산 마애불과 연관된 백제의 고찰로 생각되며 통일신라, 고려로 이어지는 많은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당간지주, 오층석탑, 승탑과 비가 작은 내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있다.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감은사탑 같은 중후한 안정감과 정림사탑 같은 경쾌한 상승감이 동시에 살아난 명품이다. 기단부 위층에 새겨진 팔부중상은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릴리프(relief,돋을새김 조각)로서 손색이 없고 기단부 아래층에 새겨진 제각기 다른 동작의 열두 마리 사자상은 큰 볼거리다. 아래위로 튼실하게 짜여진 기단부 위의 오층 몸돌은 정림사탑에서 보여준 정연한 체감률도 일품이지만 마치 쟁반으로 떠받치듯,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리듯 넓적한 굄돌을 하나 설정한 것이 이 탑의 유연한 멋을 자아내는 요체가 되었다.

보원사터 오층석탑 |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백제 전통과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기단 형식이 결합된 고려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 안정감과 상승감이 빼어나다.

나는 보원사터를 유난히 좋아했다. 폐사지인데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좋았고 전국의 어느 답사지보다도 여기처럼 산천의 자연과 농촌의 사계절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더욱 좋아했다.

보원사터 출토 철제여래좌상| 완벽한 몸매의 균형과 유연한 옷주름의 표현이 돋보이는 이 불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불로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8세기 설과 10세기 설로 나뉘고 있다.

요컨대 그것을 수입해서 우리의 삶이 고양된다면 얼마든지 수입해서 쓰는 겁니다. 그것은 주체성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 포용력의 개방성이라고 해야 해요. 불교미술은 결코 이교도들의 신앙물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방식의 정직한 표정이고 사상의 산물이지요. 보십시오. 서양 중세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했고 기독교 건축과 조각이 발달했지요. 그런데 오늘날 어느 누구도 유럽의 중세 문화를 이스라엘의 아류라고 하지 않아요. 필요하면 얼마든지 갖다 쓰는 것이지요. 다만 맹목적 모방이었냐, 주체적 수용을 통한 재창조였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백제의 미학은 그래서 빛나는 겁니다. 그들이 우리 고대국가의 세련된 고전미를 창출해냈거든요. 인도·중국·일본에선 볼 수 없는 화강암의 건축과 조각, 즉 석탑과 석불이 그 대표적 예인데 우리는 그중 석불의 아름다움을 답사한 것입니다. 저 잔잔한 ‘백제의 미소’에는 그런 뜻이 서려 있는 겁니다.

서산 마애불의 보호각은 통풍의 문제로 더 이상 둘 수 없어 2007년에 철거되었고, 성원 할아버지는 정년 뒤 몇해 더 근무하다 결국 자리를 떠나게 되었으며,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외지에서 들어가는 길이 아주 쉬워졌다.

비바람 속에 깨지고 마모되긴 했어도 그 남은 자취가 하나같이 명물이어서 일찍부터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통일신라 때 만든 당간지주건 고려시대 때 만든 석탑과 물확이건 유물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멋스러움에 백제의 숨결이 느껴진다. 미술사가들은 그것이 백제 지역에 나타난 지방적 특성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서산 마애불에 보호각이 준공된 때는 1965년 8월 10일인데 그때부터 오늘(1996)에 이르기까지 30년도 넘게 마애불의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계신 분이 있다. 이름은 정장옥(鄭張玉), 수계한 법명은 성원(性圓)인데 스님은 아니고 속인으로서 한평생을 이 마애불과 함께해왔다. 성원 아저씨는 작년(1995)에 환갑이었다고 하니 30세 때부터 여기를 지키고 계신 것이다.
성원 아저씨는 작은 키에 언행이 조신하고 느려서 옆에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분이다. 그러나 이 마애불에 대한 존경과 자랑, 믿음과 사랑은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어서 어떤 답사객이 오고 참배객이 오든 해설을 부탁하면 수줍어 하면서도 사양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성원 아저씨는 마애불의 미소가 보호각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 암막을 설치하고는 긴 장대에 백열등을 달아 태양의 방향에 따라 비추면서 미소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를 해놓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79. 인물/궁예

후삼국 시대에 후고구려를 건국한 왕. 정확한 출생 경위는 모르지만 신라 진골귀족의 후예라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 말기 진성여왕 때가 되면 지방 반란이 본격화된다. 숙주의 기획, 북원의 양길 등이 등장하는데 승려였던 궁예(?~918년)는 이들의 수하에 들어가서 강릉 일대에서 세를 도모한다. 이후 철원, 개성 등으로영역을 확대했고 결국 양길 세력을 물리친 후 후고구려를 세운다.
궁예는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자주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국호를 901년에 후고구려, 904년에는 마진, 911년에는 태봉으로 바꿨고 수도도 송악(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긴다. 불안정한 정국 운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데 다만 국호의 의미만큼은 곱씹어볼 만하다. 마진은 대동방국이라는 의미이고, 태봉은 서로 화합하는 세상이라는 의미인데 고구려를 계승하고 백제와 신라를 포괄하는 삼한통일의이상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