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사건/YH사건

1979년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다가 강제 진압 당한 사건으로, 유신 체제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경공업이 발전한다. 가발이나 운동화를 생산하거나 전자 제품의 조립이 주요한 일이었기 때문에여성 노동력의 필요가 급증했다.
여성 중심의 노동자 계급이 급증함에도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예를 들어 서울 동대문 일대 평화시장 노동 환경은, 저임금에 야근이 반복되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고강도의 노동이 계속됐다. 수출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잔업이 매우 많았고, 잔업 수당을 받기 위해 잠이 안 오는 약으로 버티는 일이 빈번했다. 노동 현장에서 폭력, 구타, 성추행 등 각종 문제가 넘쳐났다.

YH 사건은 YH 무역의 회사 폐업 조치에 저항한 여공들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YH 무역은 당시 대표적인 가발 수출 업체였는데 사주가 경영 의지를 포기한채 자산을 빼돌리고 일방적으로 폐업을 선언하여 수백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만다. 정부는 기업 회생에 무성의했고 경찰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진압하는 데만 골몰했기 때문에, 결국 172명의 노동자는 도시산업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 들어가서 농성을 한다.
하지만 농성 이틀 후인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경찰은 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01호 작전‘을 개시한다. 진압 과정 중에 노동자들은 물론 당사에 있던 신민당 의원, 관련 인사, 취재 기자까지 엄청난 폭행을 당했고 무엇보다 노동자 김경숙이 추락사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신민당은 이에 격렬히 항거했고 이후 김영삼총재 제명, 부마항쟁 같은 여러 사건이 이어지면서 유신 체제는 몰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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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간에 신입 사원이 대학에서 뭔가를 전공하였다고 해서 그 분야의 일을 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비전공자보다야 좀 나으려니 생각하면서 잠재능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는 전공 졸업자들을 데려와도 당장은 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기다려야 하므로 점점 더 신입 사원을 채용하기를 꺼려 하고 경력자 위주로 인사정책을 펴게 된다. 신입 사원들에게 일을 할당할 때 종종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이 주어지는 이유도 ‘어차피 새로 가르칠 텐데’ 전공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기업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바라는 것은 실전 능력이다.

결국 진짜 공부는 사회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요약을 하여 보자.
1.학벌과 전공이 좋아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어도 실전 공부는 새로 해야 한다.
2.학벌은 안 좋지만 전공이 취업에 유리하다면, 또는 학벌은 좋지만 전공이 돈 버는 것과 거리가 멀다면, 중소기업은 갈 수 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실전 공부는 새로 해야 한다.
3.학벌도 전공도 신통치 않지만 취직을 하여야 한다면 당연히 실전 공부를 미리 하고 그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4.학벌이고 뭐고 아예 없어서 독립을 하고자 한다면 실전 공부를 해야 한다.

1. 일당직 노가다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을 잘하는 방법부터 배워 나가고 그 일과 관련된 책부터 먼저 읽어라.

2.무슨 일을 하건 일 못한다고 따돌림당한 경험이 많다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고 오로지 일에 대한 숙련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여야 한다(

3.나이에 상관없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EXCEL이다

4.그다음에는 다른 어떤 외국어보다도 먼저 영어 공부를 하여야 하는데 어중간한 실력이면 실전에서 사용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5.그다음에는 자신의 문과 적성과 이과 적성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스스로 파악하여야 하는데 나는 각종 적성 검사들을 크게 믿지는 않는다.

6. 이제 다시 무엇을 배워야 할까를 생각하여 보자. 우선은 강 건너 저쪽에서 발생하는 일들보다는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 중 당신이 모르는 것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학습 능력을 길러야 한다

결론적으로 성격 자체는 어떤 일 혹은 환경 속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문제가 되는 것이므로 자기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원숭이는 모두 벗겨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앉아 있는 원숭이의 엉덩이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서 있지 못하겠으면 앉아 있으라는 말이다.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본 경험에 의하면 가장 골치 아픈 직원은 자기 기준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실은 어리석음의 총체적 집합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 일을 좀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면 반드시 개선점을 찾아내라.

둘째, 행동하기 전에 그 일에 필요한 지식을 반드시 흡수하여라

셋째, 실수하지 말라.

넷째, 효율적으로 일해라.

다섯째, 그 일을 이미 해 본 경험자들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라.

당신이 받는 대가가 고객의 수와 관련 없이 정해져 있다면, 또는 자신의 노력 여하보다는 근무 연한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그곳을 빨리 뛰쳐나와야 할 것이다. 일한 대가가 노동시간의 양과 비례하기만 하는 일 중에는 금으로 만든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부자가 되어 경제적 육체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조직 내에서 기계 장치를 관리 감독하거나 지나치게 연구 위주이거나 세분화되어 있는 일 역시 부자가 되기에 적합한 일은 아니다. 조직 내에서 이득 창출과 직접적 관련은 없이 그 조직을 유지 관리하는 일들 역시 부자 되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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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명문장/화왕계

문득 한 아리따운 사람이 나타났는데, 붉은 얼굴에 옥같이 하얀 치아에 얼굴을 곱게 단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하늘거리며 천천히 다가서며 말하기를 첩은 눈처럼 흰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대하면서 봄비에 목욕을 하여 때를 벗기고 맑은 바람을 쏘이며 스스로 즐기는 장미입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실까 하오니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또 한 대장부가 있어 베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둘렀으며, 흰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노쇠하여 비틀거리며 굽어진 허리로 걸어와 말하기를 "나는 서울 성밖의 큰길가에 살면서 아래로는 넓은 들의 경치를 바라보고, 위로는 뾰족하고 높다란 산에 기대어 사는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좌우에서 갖다 바치는 것이 비록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술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옷장에 옷을 가득 저장하고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약으로 기운을 북돋우고 아픈 침으로 독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실을 만드는 삼(麻)이 있더라도 따를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무릇 모든 군자는 어느 세대나 없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왕께서도 그러한 뜻이 있으신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화왕이 말하기를 장부의 말에도 합당한 것이 있으나 아름다운 사람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이를 어떻게 함이 좋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장부가 다가가 말하기를 "저는 왕께서 총명하여 이치와 옳은 것을 알 것으로 생각하여서 왔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무릇 임금이 된 자가사특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음이 드뭅니다."

《삼국사기> <설총열전>에 나오는 ‘화왕계‘의 일부다. 미색을 자랑하는 장미와볼품은 없으나 지혜가 깊은 할미꽃 중에 꽃의 왕인 화왕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더구나 열전에서는 장미를 여성으로, 할미꽃을 남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막강한권력을 쥐고 있던 신문왕에게 간사한 자를 멀리하고 인재를 가까이하며 훌륭히통치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설총의 유교적 세계관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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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학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교육제도권 내에서의 공부와 능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제도권 밖에서의 공부가 그것이다. 나는 제도권 밖, 즉 사회에서 여러 책들을 보며 하는 공부를 대단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경영자로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볼 때 대학원은 이 사회에서 최고로 인정해 주는 학교와 잘 팔리는 전공을 선택하여야 경제적 투자 가치가 높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공부를 상대적으로 ‘아주 잘하며’, 전공이 ‘돈 버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나이가 많지 않다면 고학력을 추구한 대가를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투자 대가를 경제적으로 크게 기대하지는 말아라.

나는 자격증이 당신의 연봉을 제한하고 당신이 부자가 되는 길에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보면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든지 간에 몇 개월 학원에서 배워 획득한 자격증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는 사람들이 많다. 취직을 하기 위한 보조 도구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건 직업 선택으로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건 간에 그 자격증이 자신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자격증은 당신을 봉급생활의 쳇바퀴 속에 던져 넣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운신할 공간을 제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방향으로 나갈 기회를 당신 스스로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군다나 국가나 민간단체에서 주는 자격증(이 두 가지 종류를 구분조차 못 하는 사람들도 많다)의 상당수에는 엄청난 환상이 들어가 있다.

그 어떤 경우든 자격증이나 면허증이 당신을 평생 편안하게 벌어먹게 해 줄 것이라는 환상은 조금도 갖지 말라.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진짜 실력이지 이론 나부랭이가 아니다.

전문직들이 대체적으로 다른 직업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우월한 가치와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딱 잘라 말해서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큰 부자가 나오기도 쉬운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 어떤 유망한 전문직이라도 동일한 자격증이나 면허를 보유한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 자격증에 대한 사회의 대가는 갈수록 적어지게 된다.

공부를 많이 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하였으므로 돈을 많이 벌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로 갖지 말라. 이 세상에는 당신보다 가방끈이 더 긴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당신이 갖고 있는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똑같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경쟁자들은 비자격자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과 똑같은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전문직 종사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먼저 약점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첫째는 자부심이다. 자기를 대단한 전문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것은 특정 분야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뿐이지, 같은 직종의 다른 전문가들과는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객이 볼 때는 ‘그놈이 그놈’일 수도 있다.
둘째, 직원들에 대한 대우가 일반적으로 형편없다. 자기의 면허증으로 직원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교육이나 고객 서비스에 대하여 무심하다. 그리고 그 직원들 때문에 고객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셋째,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른다. 마케팅이나 경영, 고객만족, 재테크 등에 관하여 잘 모르는 것을 은근히 자랑으로 생각하는 풍조도 있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건물을 사면 대부분 바가지를 쓴다(새겨들어라. 나는 부동산을 팔 때 구매자가 전문직 종사자일 경우를 제일 좋아한다). 팔 때는 시세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싸게 내놓는다(그래서 나는 부동산 매입 시에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기 수입이 적으면 그저 세상 탓만 하고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넷째, 자기가 관련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속도가 뜻밖에도 느리다. 그저 자기가 공부하였을 때의 교과서에 담긴 지식만을 꽉 껴안고 사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실력들이 고만고만하게 된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갑자기 떼돈을 벌 기회가 거의 없다. 면허증 하나 믿고 섣불리 빚을 지지 말라는 말이다. 월수입이 다른 봉급생활자보다 많다고 해도 그 수입은 언제나 경기에 민감하게 변동한다. 그러므로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경제신문을 반드시 읽어라. 특히 부동산에 대하여 많이 배워 두어라. 생명보험도 반드시 들어라. 당신이 갑자기 죽으면 당신 가족은 정말 살기 힘들어진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학벌과 전공을 따지지만 다른 선발 기준이 마땅한 것이 없다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지, 학벌이 좋고 전공이 기업의 구미에 맞는다고 해서 졸업자들이 뭘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차 서류전형에서 통과한 자들 중 합격자를 가려내는 기준은 전공 관련 지식이 아니라 정말 엉뚱하게도(그리고 우스꽝스럽게도) 면접에서 파악된 ‘기본적인 인성이나 태도, 의사표현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같은 것이다. 정작 필요한 실무 지식은 회사에서 재교육시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지금까지 나는 이른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학벌도 좋고 전공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류대 갈 실력은 안 된다면? 일류대 수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서 ‘돈 버는 일’과 관련된 전공을 택하여라. 공부를 못해서, 혹은 안 해서, 일류대와는 거리가 먼 이름 없는 대학을 갈 수밖에 없다면?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면 그저 효도하는 마음으로 다니되 대기업에 취직하고자 생각하기보다는 공무원 시험을 보든지 아니면 작은 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닦으면서 조속히 학벌을 세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돈이 있으면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라는 말이다(대학 학점이 좋아야 한다).

이상야릇한 자격증에 혹하여 시간과 돈을 뺏기는 어리석음은 일찌감치 버려라. 그보다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일을 배우며 경력을 쌓은 뒤 전직을 시도하여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기술 계통이 아닌 한 전공에 크게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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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궁궐의 도시’다. 세계 어느 나라든 한 시대의 수도였던 왕도(王都)의 상징물은 궁궐이다. 그리고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 등 자그마치 5개의 궁궐이 있다.
세계 어느 역사도시에도 한 도성 안에 법궁이 5개나 있는 곳은 없다. 서양에 팰리스(palace), 팔레(palais)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이 많다지만 이는 왕이 통치하는 궁궐이 아니라 왕가의 집인 경우가 많다. 서울의 운현궁·남별궁·연희궁·육상궁·경모궁 등과 비슷한 곳들이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으뜸은 역시 국초와 왕조 말기의 법궁이었던 경복궁이라는 데 아무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역대 임금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하여 여기에 기거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더 많이 살았다. 임진왜란으로 두 궁궐이 모두 소실되었을 때도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을 먼저 복원했다. 오늘날 외국인 관광객들도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복궁이 권위적이라면 창덕궁은 인간적인 분위기가 짙다. 창덕궁이 경복궁과 이렇게 차별화된 건축 양식을 갖게 된 이유는 그 창건 과정에 잘 드러나 있다.

창덕궁 전경|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조선 궁궐의 멋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창덕궁이다.

돌이켜보건대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년(1395)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년(1405)이었다. 조선 개국 후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당시 이 엄청난 두 차례의 대역사(大役事)에 동원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던 조상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희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창덕궁을 제대로 답사할 양이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月臺)에서 시작해야 한다. 궁궐의 모든 주요 건물 앞에는 지표에서 높직이 올려쌓은 평편한 대가 있는데 이를 월대라 한다

우리나라 조원(造園)의 중요한 특색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나무들이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느낌을 주고 인공적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꾸미긴 꾸몄는데 꾸민 태를 내지 않는다. 있어도 있는 태를 내지 않아 창덕궁을 답사하고서도 이 공간이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런 편안한 공간을 여느 궁궐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창덕궁에서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긴다고 하는 것이다.

형식에 치우친 번거로운 일로 비칠지 모르나 찬수개화는 자연의 섭리를 국가가 앞장서서 받들고, 백성으로 하여금 대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삶의 조건을 확인시켜주는 행사였다. 절기가 바뀌었음을 생활 속에서 실감케 하는 치국과 위민(爲民)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창덕궁 내병조는 바로 이 찬수개화를 했던 곳이다.

돈화문 안쪽 빈 마당엔 원래 어도가 깔려 있었다. 순종의 자동차가 궐내로 들어오면서 없어졌지만 어도를 복원해야 궁궐의 동선이 명확해지고 공간의 의미도 살아난다. 어도는 금천을 가로지른 금천교에서 직각으로 꺾여 다리 건너 진선문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진선문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인정문 너머 인정전에 다다르게 된다. 돈화문에서 인정전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ㄱ자로 꺾였다가 다시 ㄴ자로 꺾이는 동선이다. 바로 이 점이 창덕궁 궁궐 배치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일직선으로 놓인 것이 아니라 동선이 계속 꺾이면서 공간이 자잘하게 분할되어 여러 개의 블록을 이룬다. 그래서 경복궁은 장중한 궁궐 의식과 어울리는 반면 창덕궁에서는 임금과 신하들의 생활이 그려진다. 창덕궁이 경복궁보다 더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궁궐에는 반드시 금천이라는 냇물이 흐르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에는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인공적인 물길을 만들었지만, 창덕궁의 금천은 북악산 줄기의 매봉에서 돈화문 쪽으로 흘러내리는 자연 계류이며, 장대석으로 호안석축(강변의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축대)을 둘러 궁궐답게 말끔히 정돈했다. 〈동궐도〉 그림을 보면 냇물이 장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물길이 바뀌고 지하수가 고갈되어 비가 올 때만 금천 역할을 할 뿐 대개는 맨바닥을 드러내는 마른 내〔乾川〕가 되고 말았다.

금천교는 상판을 약간 둥그스름하게 다듬은 쌍무지개 다리다. 난간엔 연꽃 봉오리가, 양쪽 기둥엔 네 마리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어떤 동물도 마주치기만 하면 도망치고 만다는 전설 속 백수(百獸)의 왕인 산예(?猊)다. 상상의 동물인 산예는 대개 사자 모양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고려청자 ‘산예 출향(出香)’을 흔히 ‘청자 사자모양 뚜껑 향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인정전은 정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으로, 품위 있고 듬직하고 잘생겼다. 낮은 듯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올라앉아 있어 대지에 내려앉은 안정감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3단의 석축 위에 난간석이 둘려 있으나 창덕궁 인정전은 월대가 2단으로 되어 있고 건물의 크기도 약간 작아 검박하지만 궁궐의 품위는 잃지 않고 있다.

창덕궁의 하이라이트 인정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면 인정전은 회랑으로 둘려 있어 품위와 권위가 살아나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정전 | 정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으로, 품위 있고 듬직하고 잘생겼다. 낮은 듯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올라앉아 있어 대지에 내려앉은 안정감이 있다.

대체로 궁궐이란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하는 곳이다. 사방에서 우러러 바라보고 신하와 백성이 둘러 향하는 곳이므로 부득불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여야 하며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하고 송축하는 뜻을 부치는 것이다.(절대로) 그 거처를 호사스럽게 하고 외관을 화려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창덕궁 궁궐 건축의 미학| 후원의 아름다움에 가려 종종 그 건축적 가치가 지워지곤 하는 창덕궁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미학을 구현해놓은 대표적인 궁궐이다

조선의 궁궐은 외국의 예에 비해 소박한 편으로 결코 화려하지 않다. 백성들이 보아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화려함이라고나 할까. 그 이유는 조선 건국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한양의 도시 설계와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찾을 수 있다.

궁원(宮苑)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新作宮室儉而不陋華而不侈

그러고 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의 아름다움은 궁궐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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