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한 아리따운 사람이 나타났는데, 붉은 얼굴에 옥같이 하얀 치아에 얼굴을 곱게 단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하늘거리며 천천히 다가서며 말하기를 첩은 눈처럼 흰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대하면서 봄비에 목욕을 하여 때를 벗기고 맑은 바람을 쏘이며 스스로 즐기는 장미입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실까 하오니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또 한 대장부가 있어 베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둘렀으며, 흰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노쇠하여 비틀거리며 굽어진 허리로 걸어와 말하기를 "나는 서울 성밖의 큰길가에 살면서 아래로는 넓은 들의 경치를 바라보고, 위로는 뾰족하고 높다란 산에 기대어 사는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좌우에서 갖다 바치는 것이 비록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술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옷장에 옷을 가득 저장하고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약으로 기운을 북돋우고 아픈 침으로 독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실을 만드는 삼(麻)이 있더라도 따를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무릇 모든 군자는 어느 세대나 없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왕께서도 그러한 뜻이 있으신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화왕이 말하기를 장부의 말에도 합당한 것이 있으나 아름다운 사람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이를 어떻게 함이 좋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장부가 다가가 말하기를 "저는 왕께서 총명하여 이치와 옳은 것을 알 것으로 생각하여서 왔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무릇 임금이 된 자가사특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음이 드뭅니다."
《삼국사기> <설총열전>에 나오는 ‘화왕계‘의 일부다. 미색을 자랑하는 장미와볼품은 없으나 지혜가 깊은 할미꽃 중에 꽃의 왕인 화왕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더구나 열전에서는 장미를 여성으로, 할미꽃을 남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막강한권력을 쥐고 있던 신문왕에게 간사한 자를 멀리하고 인재를 가까이하며 훌륭히통치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설총의 유교적 세계관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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