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지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다나무는 하늘을 이기기 위해 뻗어가는 느리고 영원한 힘이라니, 눈부시다. 나도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때로 우리의 능력은 타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위별로 산산이 조각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경제적 능력을 착취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관계 맺기 능력을 이용하며, 어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써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잎사귀,그런 목재가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통째로 존재하는 나무다. 때로는 다 타버린 목재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저마다 지상에 단하나뿐인 나무다. 나는 때로 세상의 비바람에 휘어지고 관계의가뭄에 목이 마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하늘로 조금씩 끝내 뻗어가는 나무이고 싶다. - P39
길들인다는 것은 외로움을 나누는 것 생텍쥐페리는 마주치는 모든 낯선 것들을 길들이려 한다. 그 길들임은 ‘너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어떤 끊을 수 없는 매듭,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드는 것‘이다.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조금은 무서운 카멜레온마저 길들이려 하는 그는 단지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존재들‘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길듦을 통해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존재, 외면할 수 없는 존재, 언제나 걱정하고 돌보고 싶은 존재가 됨으로써 삶의 의미는 더욱 커지고, 깊어지고, 따스해지니까. - P47
서로를 향한 아주 작은 배려만으로도, 아주 사소한 따뜻함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환해지고, 너그러워지고, 푸근해진다. - P61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제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고 하는 순간에, 진짜 희망은 시작된다는 것을. 무엇을 가지고, 집착하고, 경쟁하는 데서 나오는 희망이 아니라 무엇을 버리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타인을 배려하는 데서 나오는 희망이 진짜임을,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야 발견하게 된다. - P72
조금 더 ‘말 뒤에 숨은 뜻‘을 헤아려주는 여유를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다른 사람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 다른 사람의 글에 함축된 의미를 좀더 깊이 빨아들이는 것. 그런 느리디느린 ‘읽기‘와 ‘듣기‘의 훈련을 통해 글쓰기를 위한 감수성은 더 잘 길러진다. 우리의 삶은15분으로 요약할 수 없고, 지혜 또한 오지선답형으로 항목화할수 없다. 어린 왕자의 말처럼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 P81
우리는 이렇게 자꾸 잊는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무엇이 나중으로 미뤄도 될 일인지, 외물에 현혹되어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는 것을 자꾸만 잊는 것이다. - P101
‘중독‘이라는 마음의 의존 상태술의 축복과 술의 저주는 서로 맞물려 있다. 이 시간 이 장소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것이 바로 술의 축복이지만,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잊게 만드는 것도 술이다. 술은 때와 장소를 가려 마시지 않으면 인간에게 큰 고통을 준다.어린 왕자가 만난 술꾼은 ‘내가 부끄럽다는 것을 잊기 위해‘술을 마신다고 하지만, 왜 부끄럽냐고 물으니 ‘술을 마시는 내가 부끄럽다‘라고 말한다. 그는 술이라는 늪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잊고자 하지만, 결국 자신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술은 자꾸만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서 이 세상에 제대로 발 딛지 못하게 한다. 아,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려 ‘올바로 마시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떤 물질에도 ‘중독‘되어본 적이 없는 어린왕자는 술독에 빠진 술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술보다 더 무서운 건 ‘중독‘이라는 마음의 의존 상태가 아닐까. - P106
무언가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하루 종일 가로등을 끄고 켜는 일을 하느라 잠잘 시간이 늘 부족한 가로등지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뭔가 교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것’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찬미해달라고 조르는 남자나, 종일 별만 세고 있는 장사꾼이나, 오직 술로 자신을 잊으려고만하는 주정뱅이와 달리, 가로등지기는 자신의 욕망이 아닌 ‘책임‘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에게 ‘무엇이 인간인가‘라고 묻는다면, 우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무언가에 책임을 질줄 아는 존재가 진정한 인간이라고, 타인과의 관계에 책임질 줄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훌륭한 인간이라고. - P109
어른이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특별해지기는 점점 힘들고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소중한 삶의 순간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남들보다 눈에 띈다는 의미의 특별함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 나의 말, 나의 됨됨이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 아무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조금씩 특별해진다는 것을 내 삶이라는 토양 위에서 나는 나만의 장미를 가꾸어야 함을. - P115
여우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알고 있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맺음이라는 것을. 그 관계를 진정으로 오래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일시적인 호감이나 상대방의 매력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내가 쓴 시간이라는 것을 나의 취향에 맞게 타인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 단지 그와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인생의 축복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소중한 길들임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가 어려워지면 그를 버리는, 그가 귀찮게 하면 애정을 철회해버리는 인스턴트식 사랑은 결코 길들임이 아니다. - P118
오직 마음으로 볼 때만 분명하게 보인다.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싱가폴에 다녀 온 후 오늘에야 한국에서 아침다운 아침을 맞으니 이런 메일도 보이네요^^;다른 분들 활동에 비하면 작은 거지만 자랑해 보아요~ :D
언제부터인가 나는 무엇을 하든 뜨개를 빼놓을수 없게 됐지만, 내 일상이 이렇게 바뀐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이따금 처음 뜨개를 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조용히 찾아온다고했던가. 뜨개를 시작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랄 게 없었다. 내가 뜨개를 선택한 게 아니라 뜨개가 나를 찾아왔다고 할 수밖에. - P17
부유하든 가난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누구나 정해진 만큼의 밥을 먹고 숨을 쉬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인생이 된다.한 번에 한 걸음씩을 좋아하는 내가 뜨개를 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뜨개는, 아니 뜨개야말로 한 번에 한 코씩만 뜰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P38
애호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겹겹의 우주가 있다는 걸 안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안다. 그리고 나의 그우주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의 우주를 가진 사람이다. 우주를 부유할 때만 알 수 있는 가치와 시간이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는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거리를 하염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를 몸소 가로지르는 이들은 정교하게 계산한 시간표에 맞춰도착 지점에 근접하겠다는 목표하나로 온 하루를쓴다. 그런 하루가 모여 달이 되고 해가 된다. - P43
새 실의 라벨을 풀어 코를 잡으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이어지는 질문."저번에 뜨던 목도리는 다 떴어?"앞선 질문보다 한층 호기심 어린 목소리다.‘당연히 다 안 떴지. 그걸 꼭 물어봐야겠어?‘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소리 내어 말한 대답은 이거다."목도리는 겨울 거고 이제 여름이니까 여름 거먼저 하나 뜨려고."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코를 잡기 시작한다. 먼저 뜨던 걸 다 떠야 새걸 시작할 수 있다고 법에 정해져 있기라도 한가. 뜨고 싶으면 뜨는 거지.그때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남편이 뉴스를 보며 기도를 하고 있다. TV에서 안타까운 뉴스를 볼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는 건 얼마 전천주교 세례를 받은 남편에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뜨던걸 완성하지 않은 채 새로운 걸 시작해도 되느냐는 질문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남편의 목소리로 재생한 것이었다. - P55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하루가 짧다. 아마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좁히지는 못할 것이다. 더 넓어진다 해도 자제할 마음은 없다.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 좋아하는 일을 늘려갈 생각이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재미있는 건 뭐든 다. - P66
엉킨 실을 풀다 보니 요령이 생긴 것도 같았다.그 요령이란 엉킨 한가운데, 즉 카오스의 핵부터 건드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손가락도 아프지만, 어쩌다 매듭 하나를 풀었다 해도금세 다른 매듭에 가로막혀 인내심이 바닥나기 쉽다.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달콤한 유혹이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엉킨 실을 푸는 데 가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엉킨 실 한 덩이를 두 덩이로 나눠놓을 뿐. - P73
지퍼백에 담은 손 염색실은 여전히 서랍 안에 잠들어 있다. 그런 실도 있다. 뜨개는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풀지 못한 실로는 뜨개를 할 수 없다. 풀어낸 해봤자 얼마 뜨지 못하고 카오스를 만날 테니까. 그런 실로 하는 뜨개는 흉내일 뿐이고,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더는 예쁘지도 부드럽지도 않지만 내 소란했던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잠든 실. 그런 실이 있다. 그 곁에 나와 함께 엉킨 실을 풀어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 P77
‘존버‘는 뜨개에서도 진리다. - P139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책이 인생을 바꾼다고요?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서평가 금정연은 원고지 1매의 가치를 택시비로 헤아리고, 작가 구달은 원고료 1매의 가치를 양말값으로 가늠한다. 나는 원고지 1매의 가치를 실과 바늘값으로 셈한다. 원고지 1매로는 여름이라면 면 100퍼센트 오가닉 실 한 볼을, 겨울이라면 메리노울에 아크릴이 조금 섞인 트위드 실 한 볼을 살 수 있다. 손잡이가 실리콘으로 마감된 코바늘 두 자루, 전체가금속으로 된 코바늘 네 자루, 대나무로 만들어진 중간 두께의 줄바늘 네 개를 살 수 있다. - P7
나는 뜨개 덕분에 다른사람을 숨 막히게 하지않는다. 오랜 취미 방랑에 종지부를 찍고 뜨개에 정착한 비결이 바로 이 문장 안에 담겨 있다. 거창한이야기를 하려니 부끄럽지만, 나는 뜨개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불안감에 못 이겨 주변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힘들게 하지 않게 됐고, 그런 면에서 뜨개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 P8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뜨개를 만났고, 나는 뜨개인이 됐다. - P9
자고로 착한 아이는 성실해야 하고, 훌륭한 사람은 바빠야 하는 법. 착하기 위해 성실한 아이였던 나는 훌륭하기 위해 바쁜 사람이 됐다. 하지만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도 그 끝에 남는 건 뿌듯함이 아니라 불안감이었다.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 P10
이대로 백수가 되면 오쩌지. 경제활동이 가로막힌다는 실질적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더 컸다. 그러다 우연히 뜨개를 시작했고, 뜨개빠졌고, 더는 다른 취미를 찾아 헤매지 않게 됐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