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장소/인천

대한민국의 대표 도시이자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가 있는 곳이다. 인천은 서울의 관문이자 서해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전쟁과 관련이 깊다. 러일 전쟁 당시 이곳에서 러시아 군함 바락호와 카레에츠호가 침몰한다. 제물포해전 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2003년 러시아는 제물포해전 100주년 기념식을 인천에서 치르기도 했다.
연안부두 친수공원에 관련 추모비가 남겨져 있다. 친수공원 일대는 한국과 러시아의 우호 교류를 상징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광장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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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인물/김영삼

김영삼(1927년~2015년)은 정치가이자 14대 대통령이다. 국회의원을 아홉 번 하면서 반독재 투쟁을 주도했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래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문민정부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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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사건/동학농민운동

1894년 전봉준(585878~1899)과 동학교도를 중심으로 진행된 반봉건 반외세운동동작은 경주 몰락 양반 최제우에 의해 창도됐다. 유교, 불교, 도교는 물론 무속신말까지 받아들였고 서학(천주교)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동학 농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1대 교주 최제우는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했고, 2대 교수 최시형이 (동경대전>, <용담유사> 같은 경전을 편찬하면서 발전했다. 초기에논 억울하게 죽은 교주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하라는 운동(교조신원운동)으로 시작했예만 점차 사회 배역 외서 배격 같은 당시 농민들의 보편적인 의식과 궤를 같이하며 무장 저항운동으로 발전했다.

동학농민운동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사태를 수습하러 왔던 안사 이용태가 조병감의 편을 들면서 사태가 악화냈다. 이에 반발하면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김개남 등 각지의 동학 지도자들과 농민들이 합세, 백산에 집결하여 조선왕조에 대항하는 거대한 농민운동이 시작된다. 황토현과 황동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라북도의 중심지 전주를 점령했고 전라 감사 김학진 동화에 크게 강화가 돼 전봉준과 함께 전라도 개혁 정치를 주도하고 무기를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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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완전히 건강하고 완벽하지만 몸에 작은 상처가 있거나 아니면 통증이 있는 경우에는 몸 전체의 건강보다는 상처 부위의 통증에만 관심이 쓰이기 때문에 삶에게 느낄 수 있는 전반적인 편안한 기분이 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우리의 의도대로 잘 진행되더라도 한 가지가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계속 그것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계속 그 일만 생각하게 되고, 뜻대로 진행되는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럴 경우 손상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이다. 하나는 신체적으로 객관화된 의지이고, 다른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객관화된 것이다. 두 가지 경우 우리의 의지의 만족은 항상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기껏해야 성찰의 단계에서 의식된다. 반면에 의지의 억제는 긍정적이고 그렇기에 적극적이다. 모든 즐거움은 단지 이 억제의 제거, 그것에서 해방하는 데 있기 때문에 수명이 짧다.

그렇다, 행복론은 그 이름 자체가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덜 불행하게 사는 것, 즉 참을 정도만큼 산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인생은 실제로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고 끝내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노년에는 위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커다란 고통 없이 인생을 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운명을 가진 것이지, 가장 큰 기쁨이나 엄청난 즐거움을 누린 것이 아닌 것이다. 최고의 기쁨을 누린 것으로 인생의 행복을 측정하려는 사람은 잘못된 기준을 선택한 것이다. 쾌락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인생의 기쁨을 좇다가 자신이 배반당한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재앙을 피한다.

어떤 사람이 행복의 관점에서 그 상태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하는지 묻지 말고, 무엇이 그를 슬프게 하는지 물어야 한다. 사소한 일에 민감하려면 행복한 상태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불행한 상태이면 그러한 사소한 것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다른 일반적인 건물이 바탕이 넓을수록 견고한 것과 달리 우리의 행복이라는 건물은 반대다. 그러므로 스스로 가진 모든 종류의 수단에 균형을 맞추어 요구 수준을 적정하게 낮추는 것이 커다란 불행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미래를 위한 계획과 걱정에만 몰두하거나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는 대신 현재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이고,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만이 진실된 것이고 실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성취된 시간이며, 우리의 존재는 전적으로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직접적인 고통이나 불쾌감 없이 견딜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즐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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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훌륭한 것들이 천천히 성숙하듯이, 일반적으로 명성도 늦게 나타나는 것이 더 오래 지속된다. 사후에 얻는 명성은 씨앗일 때 아주 천천히 자라는 참나무와도 같다.
반면에 일시적인 명성은 빨리 자라는 일년생 식물과도 같고, 거짓된 명성은 빠르게 자랐다가 금방 제거되는 잡초와도 같다. 이러한 과정은 어떤 사람이 후세, 실제로는 일반적인 인류에 속하게 될수록 그 당시에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명성은 원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나머지 사람도 그와 같은 명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 명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한 인간의 가치와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그 존재는 아주 비참할 것이다. 모든 존재는 오히려 그 자체를 위해 살고 존재한다. 그 때문에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종류이든, 어떤 사람을 이루는 것은 그 자체의 존재이다. 여기에 큰 가치가 없다면 그는 별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의 생각에 비친 그 존재의 이미지는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것이며 우연에 따른 것이라 진정한 본질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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