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한지 4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신입 경비원들이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는 주변에 엉거주춤 줄지어 서 있었다. 살짝 늦은 나는 서둘러 배치 사무실로 갔고 밥은 한참을 헤맨 다음 내 이름이 적힌 타일을 겨우 찾아냈다.
나는 오가는 잡담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입들을 자세히 살폈다. 푸른색 경비 근무복 위로 낯선 얼굴이 보이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것도 딱 일주일뿐이고 그 다음부터는 그 얼굴들이 사복을 입고 나타나는 게 더 이상해진다. 신입들 중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은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조셉은 참을성 있고 집중력이 뛰어나며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지만 마침내 낮은웃음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는다. "거짓말했어요." 그가 사과한다. "월 스트리트를 잘 알아요. 거기서 오래 일했거든요."
그 정보는 대단히 흥미로운 퍼즐의 첫 조각이었다. 나는 조셉이 토고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나가 뉴욕이라면 토고는뉴저지죠." 그는 설명한다. 그곳에서 금융쪽 일을 했고 뭔가 극적인 계기로 뉴욕으로 오게 된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행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뉴욕에 온 뒤에는 그가 얼버무리며 넘어가버린 또 다른 우여곡절 끝에 여기 나와 함께 서서 이 파사드를 바라보고 있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여기저기 빈 곳들을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걸로 메운다.
나는 조셉을 창문 쪽으로 데리고 가서 아메리카 전시관의 중정을 내려다본다. 조셉과 나는 지금 월 스트리트 파사드를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서 있는 이 사람과 편안한 유대감이 느껴지고 그 벅찬 마음이 내 판단력을 흐린다. 나는 평소에는 부끄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신념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빠른 말투로 이 일에 내가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토로한다.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사실 내 직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화가 난다. 이렇게 평화적이고 정직한 일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바보 같으며, 심지어 배신 행위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무 바닥과 천 년묵은 예술품에 감사하는 마음, 뭔가를 팔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포스기를 두드리는 등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쪽을 택할 것이다.
포인트는 미술관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사교적인일터다. 두 명의 경비원이 일부러 좁게 만들어놓은 입구 양옆에 상당히 가까이 마주보고 서서 온종일 수다를 떨 수 있다. 물론 전혀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안내도 해야하고 상습 위반자들을 꾸짖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대화에서 내 몫을 다하고자 의욕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리고 서서히 대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날마다 "산타나가 요즘 꽤 괜찮죠?" 같은 말을 건네기 위해 평소보다 야구 뉴스를 더 신경 써서 확인한다. 정치, 음악, 책, 직장 이야기를 나누고 특히 다들 즐겨하는 직장에 관한 불평을 할 때면 약간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바로 그런 불평이야말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중 어느 것도 내 성격 자체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주파수대로 들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고의 대화 요령은 질문, 그중에서도 기나긴 대답이 필요한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건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일단 대답하기 시작하면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내 무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몰도바요? 믿지 못하겠지만 내가 몰도바에 관해 하나도 아는 게 없다는 거 알아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내가 몰도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믿는다. 경비원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지식에 난 커다란 구멍들을 잘 참아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이미 튼 셈이다.
그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예술과 거리가 먼 수십 명의 동료들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고, 축하하고, 웃고, 공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등을 툭 치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긍지 높은 경비원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내가 경비원 근무복 아래 비밀스러운 자아를 숨겨오고 있었던 것일까? 흠, 물론이다. 경비원이라면 누구라도 어두운 푸른색 근무복 아래 슬쩍 숨겨둔 비밀스러운 자아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다른 경비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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