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이 둘 사이를 연인 관계로 파악해 이를 스토킹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가해자의 행위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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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인터뷰를 여러 번 하면서 찾아온 기자분들이나 피디분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대체로 남성이었는데, 젊은 기자들이기도 하고 피해자를 만나고 온 경우도 있어서 생각을 물으면 "가해자가 나쁜 놈인 건 맞다. 남자가 봐도 생양아치다"라고 혀를 찬다. 그러면서도 한편, ‘피해자가 왜 당하고만 있었는지’ 안타까워한다. 신고를 하든가 가족에게 알리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사실, 피해자에게는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 ‘왜 맞고만 있었느냐?’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맞고만 있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질문과 평가 자체가 상처가 된다. 나아가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보자. 가해자가 얼마나 악랄했기에 피해자가 감히 빠져나올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까? 어떠한 공포와 두려움이 피해자를 압도해 하루하루 숨죽이는 생활을 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길래 그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했던 것일까?

가해자는 피해자를 옭아맬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어떻게든 피해자의 취약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는 피해자가 벗어나거나, 달아나거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사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고, 고립시켜 자신에게만 의존하게 만들려 한다. 폭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것은 필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립’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거나 연락이 끊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가해자가 물리적으로 감금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는 충분히 고립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통제, 협박, 폭행을 순차적으로 행하면서 피해자를 옭아맨다.

연인, 배우자 혹은 파트너에게 폭력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거나 그들만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피해자가 문제를 쉽게 제기하지 못하게 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을 탓하게 하며, 가해자를 의기양양하게 만든다. 피해자가 되는 특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에서 피해자가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끝내 구제되지 못하는 현실의 특징만이 존재할 뿐이다.

비열하고 비굴한 가해자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교묘히 이용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고립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피해자가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조차 없다면 폭력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상황을 상의할 사람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피해자의 잘못도, 친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나 불운하게 폭력적인 상대를 만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앞서 살펴봤듯, 가해자는 자신의 본모습을 철저히 숨기고 다가오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대의 폭력성을 알아차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시스템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현재 교제폭력을 규제할 법이 충분하지 않아, 경찰 신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 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피해 사실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즉, 증거를 남기는 것인데, 피해 사실을 일지로 기록하거나 사진 촬영, 녹음, 병원 방문 기록 등을 보관해두면 이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혼자 감내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아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립되어 있을수록 위험은 커진다. 비록 현재 정부가 가해자 제재에 적극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편이 마련되어 있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여성긴급전화1366,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해바라기센터 그리고 지역의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 등에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연락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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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오늘날,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이 스트레스라는 괴물은 어디서나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를 방치해두면 결국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부에서 압박이 오면 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견뎌보아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구부러지는 쪽을 택해야 한다. 히말라야삼나무처럼 한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스트레스에 짓눌리거나 부러지지 않을 수 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스트레스와 필연적으로 직면한다. 이때, 히말라야삼나무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깨 위에 쌓인 부담을 내려놓자. 그래야 부러지는 일 없이 다시금 허리를 곧게 펼 수 있다.

스트레스가 범람하는 오늘날,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때로는 구부릴 줄도, 돌아갈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곧은 나무는 부러지기 쉽다.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고집스레 곧게 뻗은 큰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따라 몸을 휠 줄 아는 유연한 나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상황에 맞게 구부릴 줄도, 펼 줄도 아는 사람은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낸다.

삶은 거울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얼굴로 있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도 달라진다.

똑같은 일을 당해도 그 일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르냐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거지가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생은 없다. 당연히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단,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복제되며 그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을 얻는 가장 좋은 비결임을 잊지 말라.

신은 세상에 고통과 기쁨을 동일한 비율로 흩뿌린다. 그래서 늘 행복하기만 하거나 항상 불행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어려울 때가 있으면 순조로울 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어려울 때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에 인생 전체의 모양이 달라진다.

역경과 고통은 한 사람의 정신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한다. 그래서 사람의 진가는 모든 일이 순조롭고 평탄할 때가 아니라 온갖 고난과 역경이 몰려올 때 비로소 드러난다. 어떠한 시련에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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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비교해야 한다. 지금의 자신을 예전의 자신과 비교하고,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라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자신의 과거가 되면 삶은 훨씬 풍성하고 행복해진다.

오늘 하루가 평범하게 지나갔다면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대신 무사히 하루를 보냈음에 감사하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일상의 행복은 따로따로 흩어진 구슬과 같기 때문에 하나하나 주워서 감사라는 실로 엮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지금부터 주의 깊게 자신의 주변에 흩어진 작은 행복이라는 구슬을 찾아보자.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건강이 그렇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가 그렇다.

현대인이 피곤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근원을 파고들면 의외의 답이 튀어나온다. 바로 욕심이다. 좀 더 높은 자리를 바라는 욕심, 더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욕심, 체면을 차리고 싶다는 욕심 등······. 많은 사람이 이런 수많은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극도로 피곤해하면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운다.

행복은 단순하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우리 곁에서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맹목적인 비교는 하면 할수록 피곤하고 괴로워질 뿐이다. 지금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면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돌아보자. 혹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무조건 남을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이 가진 명예나 물질, 지위는 모두 나와 무관하다. 이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만족하는 비밀을 깨우치면 더 이상 맹목적인 비교를 하지 않게 된다.

평안함은 축복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들 머리로만 알 뿐, 가슴으로 절감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조용하고 평안한 나날이 지속될 때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 누리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지만, 이것도 잘 활용하면 삶의 지혜가 된다. 단, 비교의 목적은 자기계발과 만족이어야 한다. 비교 후에 얻어지는 것 없이 무조건 불쾌한 감정적 반응만 남는다면 바른 비교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생활에서는 아래를, 일에서는 위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동시에 더 나은 실적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

인생의 참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

위와 아래를 균형 있고 바르게 비교하면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자신을 죽이는 비교가 아닌, 살리는 비교를 시작하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어째서 우리는 낯선 사람이 잠시 베푼 친절에는 고마워하면서 낳고 수십 년 동안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일까? 어쩌면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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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이나 교제살인과 관련해, 왜 피해자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을 만나는지 의아해하며 은근히 피해자를 비난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가해자들이 처음부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자상함과 예의 바른 태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에게 ‘왜 나쁜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비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여성차별적 문화의 태도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나쁜 남자를 피하면 되겠구나’ ‘폭력적인 사람을 처음부터 안 만나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고, 폭력적인 남자라면 질색이기 때문에 결코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고, 그래서 교제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성차별적 사회는 이처럼 여성들에게 잘못되고 위험한 신호를 준다. 단언컨대 교제폭력, 교제살인에 희생된 여성들은 남성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매력으로 여긴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과,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러는 것을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가까워지고, 성관계를 맺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면 점차 폭력적인 성향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둘 것이 있다. 의심과 집착은 연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유형의 애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의 시작이자 징후다.

가해자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의심이다. 이를 사랑이라고 포장하거나, 애정 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거짓말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이미 폭력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하든 폭력을 피할 수 없다. 피해자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폭력은 시작되고 점점 심해진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가해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가해자들이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으로 착각될 때도 있지만,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인 것이 전부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들은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당신이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늘 눈치를 보고 있고, 지금은 잠시 평온해 보여도 언제 상대가 돌변해 화를 낼지 몰라 늘 불안하다면, 이미 폭력의 피해자다. 어떻게 맞춰줄지 고민하거나, 상대를 화나게 한 자신을 자책할 일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관계를 어떻게 단절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폭력은 여성을 빈곤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폭력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 특히 경제 활동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자살 협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력성과 비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결별 의사를 밝힐 때 자주 벌어진다. 이때 가해자의 협박은 이별 통보의 충격으로 인한 진정한 자살 의도라기보다는 상대에게 심리적 부담을 전가해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통제의 수단인 경우가 많다.3 따라서 이러한 위험 신호를 인지하고, 피해자의 주변 사람이나 수사기관은 적절한 대응과 지원을 해야 한다.

경찰의 위험 불감증은 가해자 대면 이후의 조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찰 수사 과정들을 살펴보면, 경찰이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가해자는 경찰 앞에서는 대체로 온순한 태도를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했던 것처럼 난동을 부리거나 위협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경찰은 자신들 앞에서 온순하고 때로는 협조적으로 보이는 가해자를 임의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경찰의 태도와 인식 수준으로는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피해자의 입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해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평가해야 함에도, 경찰은 이러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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