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문화/헐버트

헐버트(1863년~1949년)는 미국 선교사로,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개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 조정은 세계 각국에 시찰단을 보낸다. 일본에는 두차례 수신사와 신사유람단이라 불렸던 조사시찰단을 보냈고 청나라에는 영선사를 파견했다. 그리고 민영익을 필두로 1883년에는 미국에 보빙사절단이 방문한다. 이후 미국과 각양의 교류가 시작되는데 그 성과 중 하나가 육영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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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집단에 속한다. 부모님의 자식인 동시에 자녀가 있다면 부모이기도 하다. 형제자매, 배우자나 애인, 친한 친구, 이웃, 친척, 상사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다. 우리를 아끼고 우리에게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 기대가 길잡이나 자극이 되기도 하고 휘청댈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감은 일이든 학교든 관계든 무언가를 그만두는 결정에 맞닥뜨렸을 때, 나의 의견 외의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그만두는 게 우리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고 그 사람들이 믿는다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바로 그 자애로운 힘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이 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이 반대하며 추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또는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를 보며 품은 꿈을 길잡이 삼아 살아온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퀴팅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수치심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치심이란 우리가 포기했을 때 내면화하는 수치심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코치를 비롯해 우리를 믿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겼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수치심도 포함한다. 우리는 이를 회피하려고 쉴 때가 되었다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만두라는 권유와 끈기 있게 버티라는 압박 사이의 적절한 균형은 어디일까? 어떻게 하면 인간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면서도 과잉보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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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유적•유물/서울미래유산

근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활용을 목적으로 서울시가 주도하여 만든 문화재 보존 제도다. 2004년 근현대 문화유산을 목록화하는 과정 중에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옛집, <운수 좋은 날>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근대 소설가 현진건의 생가, <풀> 등의 시로 유명한 김수영의 가옥 등이 소유주에 의해 철거되거나 자연재해 등으로 파손된 것을 발견한다.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 가치 있는 각종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이라는 정의 아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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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장소/백두산

최남선과 이광수는 직접 백두산을 답사했고 여러 글을 쓰며 백두산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높였다. 식민지 조선의 슬픈 처지를 이겨내기 위한 상징으로 백두산을 활용한 것이다. 또 단군을 믿는 대종교 역시 큰 역할을 했다. 환인이 지상에 강림한 태백산이 백두산이라 주장했고 교인들에 의해 신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근거 없는 주장이다. 신화적 허구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민족의 역사에서 백두산이 강조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나 부여에 있어 백두산 일대는 그다지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발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마저도 멸망 이후 우리 영토에서 오랫동안 이탈하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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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인물/연개소문

연개소문(?~665년경)은 642년 영류왕을 제거하고 보장왕을 세우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었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안시 성주와 충돌하는 등 여러 갈등이 이어졌다. 김부식은 그가 잔악하고 권력을 전횡했다고 보았다. 국왕을 죽이고 권력을 독점했던 인물에 대한 유학자의 전형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 역사학자 신채호나 박은식은 그를 독립 자주정신의 상징처럼 받들었다.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 나라를 잃은 역사학자들에게는 큰 의미가되었던 것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당태종에게 승리를 거둔 연개소문이군대를 끌고 만리장성을 넘었다고 했지만 특별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집권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결국 644년 당태종이 쳐들어오지만 안시성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당나라 군대를 쫓아낸다. 당시의 일화가 중국인들에게 인상적이었는지 여전히 경극의 소재로 등장한다. 당태종을 괴롭히는 귀신같은 용장의 형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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