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 집단에 속한다. 부모님의 자식인 동시에 자녀가 있다면 부모이기도 하다. 형제자매, 배우자나 애인, 친한 친구, 이웃, 친척, 상사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다. 우리를 아끼고 우리에게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 기대가 길잡이나 자극이 되기도 하고 휘청댈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감은 일이든 학교든 관계든 무언가를 그만두는 결정에 맞닥뜨렸을 때, 나의 의견 외의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그만두는 게 우리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고 그 사람들이 믿는다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바로 그 자애로운 힘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이 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이 반대하며 추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또는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를 보며 품은 꿈을 길잡이 삼아 살아온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퀴팅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수치심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치심이란 우리가 포기했을 때 내면화하는 수치심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코치를 비롯해 우리를 믿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겼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수치심도 포함한다. 우리는 이를 회피하려고 쉴 때가 되었다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만두라는 권유와 끈기 있게 버티라는 압박 사이의 적절한 균형은 어디일까? 어떻게 하면 인간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면서도 과잉보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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