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생활이 점점 더 바빠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다채로움에 점차 무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땅히 감동해야 할 인생살이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실제로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삶은 점차 빛을 잃어간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알 수가 없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때쯤 되면 더 이상 젊지 않다.

사실, 행복은 하나의 감각이다. 행복을 위한 조건은 없으며,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행복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길가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끼니를 해결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욕심과 이해득실에 얽매여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 산해진미를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고 천하의 절경을 보아도 피곤할 뿐이다.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라는 옛말처럼 지나친 욕심만 버린다면 행복을 얻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돈과 행복은 질 높은 삶의 필수요건이다. 물론 행복감이 물질적 수준과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은 행복지수도 낮다. 그러나 생계 걱정 없는 부유한 이들이 꼭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가 돈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과연 행복이나 기쁨이 있을까? 이에 대해 샤하르는 말한다.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물질을 행복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그들의 결정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화려한 외피에 매혹되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다른 사람의 기대를 자신의 목표로 착각 내지 혼동한다. 그러다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자신이 여태껏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를 깨닫는다.
다른 사람의 기대란 이웃집 정원에 핀 화초와 같은 것이지,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게다가 오히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고 행복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기대 속에 살지 말라!

인생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결정해야 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혹은 아무런 흥미도 없는 길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잃어버리고, 길지 않은 인생을 헤매며 허비한다. 이러한 인생에서 얻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진정으로 풍성한 소득을 얻고 싶다면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생은 짧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진실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 속에 사는 인생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다. 그것은 절대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혹은 남의 말을 따르느라 자신의 본능이 이끄는 길을 멀리한다면 이미 인생의 운전대를 스스로 놓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겨버리고 정작 자신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끌려가고만 있는 셈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행복한 삶은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오류에 빠질 때가 많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더 큰 명예를 얻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진정한 행복을 놓치고 마는 그런 오류 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으로는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는지 모른다. 혹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애써 어깨를 펴며 억지로 웃음 짓고 있는지 모른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시선 속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속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뭐가 나쁜가? 좀 더 나답게, 자유롭게 살라. 그러면 갈수록 편안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용감하게 인정하고 솔직한 태도로 삶을 대할 때, 우리는 존중과 인정의 박수갈채를 받고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기쁨까지 얻을 수 있다. 인생에는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림자는 없고 빛만 있다면 빛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완벽한 사람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추구하는 마음이나 마침내 그것을 얻었을 때의 환희를 평생 알 도리가 없다. 어쩌면 부족함이 있기에 비로소 완전함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 역시 완전무결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결점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완벽해지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티끌 없이 완벽한 옥은 존재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오히려 한 점의 티가 옥을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강점과 장점에 집중하라. 완벽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과 재능이 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일밖에 없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해도 괜찮다. 자신에게도 남이 부러워할 만한 장점이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단점 역시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럼에도 장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스스로 재능 없고 평범하다고 단정하지 말라.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 안의 빛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일 날이 온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담담히 직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과 조화롭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점이다.

인생은 짧다. 그러니 나중에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많은 사람이 신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작은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자신에게 좀 더 아량을 베풀자. 잘못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거나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큰 문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일단 잘못했다면 어느 정도는 자책도 하고 반성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 완벽해야 한다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일이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돌이킬 수도, 바꿀 수도 없다면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라. 자기 자신에게서 행복의 가능성을 빼앗지 말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과거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는 잊어버려라. 스스로를 자책의 감옥에 가두고 사지로 몰 필요는 없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심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그런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자신만의 개성과 특색을 잃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대개 결과도 좋지 않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사람마다 기준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최대한 그들의 요구에 맞추려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모두가 자신에게 만족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사사건건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법을 배워라.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도 없다!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는 순간, 남에게 완벽하기를 강요하거나 자기 자신이 완벽해지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누리는 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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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어릴 적의 자신을 사랑해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래서 마음아이가 더는 그 어둠 속에 멈춰 있지 않고 커 나갈 수 있게 해 줘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처럼, 진정한 공감이 필요합니다. 마음으로부터의, 네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 되는, 내가 정말로 너의 편이 되는 진짜 ‘공명’입니다.

어쩌면, 공명을 하는 과정은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유일한 한 명뿐인 당신이니까요. 당신이 가장 아끼고 누구보다 우선해야 할 당신, 받고 싶은 것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당신, 가장 잘 돕고 보듬을 수 있는 당신이니까요. 그러니 절대 손을 놓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닿을 때까지 손을 뻗어 주세요.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데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감정은 번거로운 문제처럼 덮어 놓고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게 되지요. 당장의 해야 할 일, 회사 문제, 가족이나 아이들 문제도 산 너머 산이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 치여 감정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지나가다 보니, 이 감정들이 복리처럼 불어나서 점점 더 눈덩이처럼 커졌을 거예요. 그렇게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쌓이고 쌓인 감정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잔을 넘치는 물이 됩니다.

상담을 오는 분들은 대다수가 오래된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트라우마이기도, 오래되었음에도 낫지 않고 계속 덧나고 덧난 아픔이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증상으로 표출될 정도가 되었다면, 과거의 깊은 곳과 연결된 무언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대다수의 큰 상처는 주로 어린 시절, 대부분 가족에게서 출발합니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도, 모든 이에게 나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서로 얼마나 잘 맞고 소통이 잘 되느냐의 문제인 거지요.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서, 부부나 연인 관계가 극단적으로 나빠진 경우에는 보통 특정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나쁜 쪽으로 주고받으면서 악화해 간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그 과정에서 각자의 내면에 오래도록 자리해 온 상처들이 자극을 받고, 그걸 방어하다 보니 서로 더 공격하게 되는 흐름인 거지요. 그런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상대방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 상대를 다시 제대로 보려면, 우선 눈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는 다들 이런 식입니다. 다들 어떻게든 견디려, 지나가 보려, 억누르고 모른 척도 해 보려 애쓰지만 결국 속에 켜켜이 쌓이고 쌓여 우리가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고개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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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건축에는 자연사상이 들어있습니다. 가우디는 "모든 것은 자연이 써 놓은 위대한 책을 공부하는 데서 태어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품은 모두 이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라고 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 돌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산의 뾰족뾰족한 봉우리 모습을 성당의 첨탑에 반영했다는 겁니다.

성당은 구역별로 예수의 생애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당의 북동쪽, 그러니까 연못이 있는 공원 쪽에 가까운 곳은 ‘예수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cade)’입니다. 가장 먼저 지은 겁니다. 정문에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부조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연상케 하는 조각과 부조들이 장식

스페인은 고속철도운영사가 3개입니다. 렌페(Renfe, Red Nacional de los Ferrocarriles Espanoles), ILSA(레반테운송회사, Intermodalidad de Levante S.A.) 그리고 SNCF(Societe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cais)가 그것입니다. 왜 이렇게 많냐고요? 유럽에서 고속철도운영사가 3개인 건 스페인이 유일합니다.

가톨릭 문화유산만 있다면 굳이 유럽의 외곽 지대인 스페인까지 외국 관광객들이 올 이유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나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을 관광하면 되니까요. 스페인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관광 수입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된 건 스페인만의 ‘공존 문화’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세비야는 스페인에서도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입니다. 세비야에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스페인의 많은 도시 중에서 스페인의 정열적인 이미지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세비야란 얘기가 공연히 나온 게 아닙니다. 투우와 플라멩코의 본고장입니다. 오페라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5편의 배경도 세비야입니다. 당시의 예술가 중에도 세비야 출신이 상당히 많습니다. "세비야를 보지 않고는 세계의 경이로움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스페인의 속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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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왜 순식간에 망했을까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졌기 때문일까요? 한 나라의 역사가 단 한 번의 전투 패배 때문에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누적된 잘못이 전투의 패배로 이어질 때만 나라가 망합니다.

스페인은 오랫동안 외적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였습니다. 1492년 처음으로 외적의 지배를 물리치고 독립 국가가 됐습니다. 또 무려 800년 가까이, 정확히 780년간 이슬람 국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 나라가 갑자기 세계 최대 강국이 돼 ‘팍스 에스파냐’ 시대를 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스페인이 느닷없이 세계의 대제국이 됐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이슬람 제국의 식민지였지만, 그 기간에 많은 걸 배우고 익혔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은 중세 암흑기의 시대였지만, 이슬람은 달랐습니다. 과학과 기술, 문화가 유럽을 압도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습니다.

파올로 코엘료는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런 말을 생각하게 된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평균 해발 660미터로, 스위스 다음으로 고지대 국가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산맥은 역시 유럽에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려면 꼭 넘어야 하는 북쪽의 피레네산맥입니다. 동서로 가로놓여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평균 1,500m의 높이로 스페인을 여타 유럽대륙과 분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 모양은 다릅니다. 이베리아반도는 소의 모양입니다. 한반도는 아시다시피 호랑이나 토끼 형상입니다.

어떻든 스페인은 지역적으로 언어와 민족이 달라 지방색이 강합니다.

스페인 국기는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제작하고 이를 왕령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국기의 황금색은 국토를, 적색은 국토를 지킨 피를 상징합니다. 이름은 로히괄다(Rojigualda)입니다. 4등분 된 방패 문양 속의 왼쪽 위에 있는 성채는 카스티야 왕국을, 오른쪽 위 사자는 레온 왕국을, 왼쪽 아래 네 개의 적색 세로줄은 아라곤 왕국을, 오른쪽 아래 황금색 쇠줄은 나바라 왕국을 각각 나타냅니다.

또 스페인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49개나 갖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1984년으로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과 왕궁, 카사 밀라가 그것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밖에 카탈루냐 음악당과 상 파우 병원도 문화유산입니다. 세고비아의 구시가지와 로마 수도교, 톨레도의 구시가지, 세비야의 대성당과 중남미 원주민들에 관한 고문서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등 3곳, 코르도바의 구시가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구시가지, 알타미라 동굴 등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습니다. 이탈리아, 중국, 독일에 이어 프랑스와 공동 4위입니다(2023년 기준).

마지막으로 다른 점은 스페인은 역사 발전단계에서 봉건제를 겪었지만 우리는 겪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봉건제에서는 봉건 영주의 권한이 막강해서 분권적 경향이 강하고 때로는 왕권보다 더 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봉건제를 겪지 않았기에 분권적 경향이 약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의 기원이 다양하다는 것은 청각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입니다. 카스티야 지방의 언어가 표준어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스페인의 중심부에 있는 카스티야 왕국이 스페인 통일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양쪽에 있는 기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지브롤터와 세우타를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도 우리나라처럼 반도입니다.

인구와 민족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지형과 기후도 서로 다릅니다. 스페인은 ‘무척추 스페인’이란 별칭처럼 나라의 중심을 이루는, 척추처럼 남북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없는 지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척추만 없을 뿐, 동서로 뻗은 산맥과 나라의 옆쪽에서 남북으로 뻗은 산맥들, 그리고 거기서 흘러나온 산줄기는 꽤 많습니다. 전 국토의 ⅓이 산지라서 유럽에서는 스위스 다음으로 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스페인은 정말 다양한 나라입니다.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국가입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베리아족과 켈트족, 게르만족, 아랍족에다 집시 등 여러 민족이 같이 사는 다민족 사회입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페인어뿐 아니라 3개의 공용어가 더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등 종교도 오랫동안 공존했습니다.

스페인은 다민족국가로 각 지방의 인종이 다릅니다. 카스티야인, 카탈루냐인, 안달루시아인, 갈리시아인, 바스크인 등으로 나뉩니다. 이민의 물결을 따라 이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의 자손들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4,835만 명입니다. 한국은 5,171만 명이니 스페인이 땅덩어리는 우리보다 훨씬 크고, 인구는 약간 적다는 얘기입니다.

각 지역의 기후도 북쪽은 연중 서늘한 기후입니다. 연평균 기온은 14℃ 정도로 북부를 북동부와 북서부를 나눌 수 있는데 바스크와 아스투리아스, 나바라, 리오하, 아라곤 자치주 등이 있는 북동쪽 스페인은 ‘태양 없는 스페인’으로 불립니다. 잿빛 하늘에 비가 많고 녹색 목초지와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시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나 지형, 주민들의 성격 등이 남쪽과 확연히 다릅니다.

반도의 동쪽으로 피레네산맥과 지중해 사이에 카탈루냐 자치주가 있습니다. 지중해를 따라 위아래로 뻗어 있어 온화한 기후에 수량이 풍부한 강들이 많아 스페인에서 가장 비옥한 곳입니다.

북서쪽은 더 다릅니다. 굴곡이 심한 화강암 해안, 대서양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차고 습한 안 개, 푸른 언덕과 골짜기들, 겨울의 폭풍을 이겨내기 위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과 슬레이트 지붕들입니다. 산티아고 성지 순례의 종착지인 갈리시아 자치주의 얘기입니다.

기후는 스페인의 역사와 더불어 지역민의 기질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지역민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낙천적이고 유머 감각이 많으며 허풍이 심한 안달루시아인은 기도를 하고, 명예에 집착하며 일을 경시하는 카스티야인은 꿈을 꾸고, 거칠고 부지런하고 근면한 바스크인은 일을 하고, 경제관념과 이익에 밝아 구두쇠라는 별명이 있는 카탈루냐인은 저축을 한다."

스페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영국보다 먼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나라, 무적함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영국에 패배한 나라,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등입니다. 또 투우, 플라멩코, 축구, 피카소 등도 있습니다. 어두운 기억도 있습니다. 남미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오를 학살한 나라, 독립을 외치는 바르셀로나가 있는 나라, 2012년 경제위기를 겪었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중의 한 나라 등입니다. 모두 스페인의 일면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각도에서 스페인을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점, 다른 점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먼저 비슷한 점입니다. 스페인은 민족성과 지형 및 역사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략 5가지입니다.
첫째는 외적으로부터의 침략과 식민 피지배의 경험입니다.

넷째는 스페인도 우리처럼 오랜 독재로 국민의 고통이 상당했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점은 스페인은 대제국이었던 나라라는 점입니다. 영국보다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영광을 누렸던 대제국입니다.

스페인의 정식 국가명은 에스파냐 왕국(Reino de Espana)입니다. 영어로는 스페인 왕국(Kingdom of Spain)이고, 국왕이 있는(지금은 펠리페 6세)입헌군주국이며, 내각책임제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정치체제입니다.

마드리드의 평균 기온은 겨울이 6℃, 여름은 30℃ 정도입니다. 반면 남부의 안달루시아 자치주는 여름에 몹시 더워 40℃를 넘기도 하며 비가 적어 습도가 낮고 건조합니다. 푸른 하늘과 올리브나무, 포도밭에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태양의 땅’으로도 불립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인 무어족의 건축물과 플라멩코(Flamenco)의 정열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비야와 코르도바, 그라나다라는 세 개의 큰 도시가 있고, 그 외 카디스와 말라가, 알메리아, 하엔 등의 도시가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둘째는 끈질긴 저항 정신과 독립 투쟁입니다. 그리 오래 식민 지배를 받았으니, 독립의 열망이 오죽했겠습니까?

노후를 보내기 가장 좋은 곳이라든가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나라 1위 등의 설문조사도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에서는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이들의 관광산업은 국가 전체 GDP의 약 12%를 차지하고, 자국 무역 적자의 65%를 해결해 주는 효자 산업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스페인 방문객은 2023년 기준으로 43만 4,372명이었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콜럼버스 묘를 4명의 국왕이 메고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이들 나라입니다. 석류꽃은 그라나다를, 중앙의 나리꽃 세 개는 현재의 왕실인 부르봉 가문을 뜻합니다. 방패 문양 위의 왕관은 왕실의 관으로 왼쪽 기둥 위에도 있으며, 오른쪽 기둥 위의 왕관은 황제의 관을 나타냅니다.

스페인의 정식 나라 이름은 에스파냐 왕국입니다. 그러면 왜 에스파냐라고 이름을 붙였을까요? 이베리아반도의 라틴어가 ‘히스파니아(Hispania)’입니다. 로마인들은 ‘히스파니아’라는 말을 지금의 스페인에만 사용하지 않았으며, 포르투갈과 안도라, 프랑스 일부를 포함하는 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즉 이베리아반도가 히스파니아입니다. 그런데 라틴어가 스페인어로 진화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에스파냐’로 변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세 가지가 크게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첫째는 오랜 식민지 시절의 문화를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유산을 자신들의 관광 자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게 스페인 관광산업의 경쟁력으로 작용해 지금은 스페인인 관광객 수나 관광 수입이 세계 2위의 관광대국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입니다.

스페인어는 스페인 및 중남미 20여 개국에서 약 4억 명의 인구가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 공용어 중 하나입니다. 유엔(UN)의 5대 공용어가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인데 여기에 스페인어가 당당히 들어가 있습니다. 사용자 수에 있어서도 중국어와 영어에 이어 세계 제3위의 언어입니다. 미국에서도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남서부 지역과 마이애미를 포함한 플로리다주 지역, 그리고 뉴욕 등 북동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역에서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전 지역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인 카스테야노 말고도 세 개의 공식 언어가 별도로 있습니다. 북서쪽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사용되는 가예고(gallego), 북동쪽의 카탈루냐 지방에서 사용되는 카탈란(catalan), 중북부의 바스크 지방에서 사용되는 바스크어(vascuence)가 그것입니다. 스페인 헌법은 카스테야노가 아닌 다른 언어도 자치주의 법령에 따라 그 지역의 공식 언어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페인의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카스테야노)지만 지역에 따라 두 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마치 소(牛)처럼 생긴, 서유럽 남부의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스페인은 영토 면적이 50만 5,990㎢로 대한민국의 5배, 북한까지 합친 한반도로 따지면 우리나라의 2.3배입니다.

셋째는 스페인도 우리나라처럼 3년간의 내전으로 동족상잔을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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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끔은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나 희미하게 느껴지는 심장박동처럼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다 걱정이 생기면 불안함을 느끼면서 이유도 모른 채 투쟁 도피 반응을 보이게 된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기록이다. 생각을 기록하려고 하면, 맨 처음에는 단어로 옮겨 적는 것마저도 매우 힘들게 느껴진다. 생각에는 언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 오래된 추억, 음악, 이미지 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걱정이 지나친 사람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떠올릴 때 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거나 재앙화하는 것이다. 걱정하는 일이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

반추는 말 그대로 비생산적이다. 우리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다는, 불안과 죄책감 또는 압박감을 조장한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은 거대한 산을 움직이려고 힘을 쏟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산이 그곳에 있듯 과거는 이미 정해져 있고 움직일 수 없다. 이미 정해진 현실을 밀어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고통만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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