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 이 ‘쓸데없다’는 것만 찾아 모은 분이 계세요. 바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입니다. ‘유遺’라는 한자에는 ‘버리다, 유기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유사遺事’라는 건 말 그대로 ‘버려진 것들을 모은 역사’입니다. 버려졌다는 말은 곧 이미 무언가를 취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선택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삼국사기』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유학자 김부식이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서입니다. 어느 연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인물이 있었는지를 쭉 정리한 책이지요. 나라가 주도하여 편찬한 정사正史이기 때문에 신비하고 기이한 일을 전하는 야사野史는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확인, 즉 팩트 체크가 된 사건만 담은 겁니다.

그렇게 버려진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렸습니다. 고려 후기에 살았던 일연 스님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꼬깃꼬깃해진, 한마디로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꺼내 하나하나 펴서 기록한 것입니다. 일연 스님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청년 시절부터 사료를 모았다고 합니다.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전설, 민담 등 정식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모은 거예요. 그걸 다시 다듬고 정리해서 썼습니다. 그래서 참 재미있어요. 재미도 없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대대손손 전해질 리는 없으니까요.

저는 일연 스님이 안데르센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이거든요. 그런데 일연 스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지나치게 고정적입니다. 어쩌면 『삼국유사』의 콘텐츠가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 귀족들이 즐겨 하던 고급 스포츠는 매사냥이었어요. 매를 날려 보내면 이 매가 토끼나 꿩 같은 작은 짐승들을 탁 잡아채 오거든요. 저마다 자기 매를 가지고 모여서 내기를 하는 거죠. 귀족들에게 인기 만점인 스포츠였는데, 사냥용 매가 굉장히 비쌌어요. 야생에 있는 매를 그냥 날려 보낼 수는 없잖아요. 새끼일 때부터 훈련하며 길러야 합니다. 오랫동안 길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귀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매 주인은 자신의 매에 하얀 깃털을 매달아뒀습니다. 자기 이름을 써서 달아둔 거예요. 한마디로 이름표였던 거죠. 이걸 떼면 도둑질입니다. 이 이름표를 뭐라고 불렀을까요? 이게 제가 자주 내는 퀴즈입니다.
아는 분도 있을 거예요. 정답은 ‘시치미’입니다. 매가 비싸니까 어떤 사람들은 시치미를 떼어내고 마치 그 매가 자기 것인 양했습니다. 시치미를 떼고도 모르는 척했어요. 여기에서 시치미 떼지 말라는 말이 유래된 겁니다. 요즘도 많이 쓰는 말이죠.

앞에서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면 많은 분이 제게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냐고요. 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모두 다릅니다. 질문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저의 대답 역시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은 새날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인물들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볼 때 기본적으로 원인, 전개, 결과 그리고 의의를 다룹니다. 갑신정변의 엘리트 청년, 동학농민운동의 농민 모두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어요. 그렇다고 이들의 운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의 주장은 1차 갑오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됩니다. 조정 역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까닭이죠.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신분제와 함께 반상班常의 구별도 사라집니다. 비록 당대에는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역사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점, 그 선택은 때때로 예측 불가능할 만큼 기상천외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 그리고 한 번 선택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선택을 한 이상 무를 수 없습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선택한 자의 몫이에요. 그래서 후회는 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가 적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선택에 내몰립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과거를 알 수 있습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수천 년의 시간,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사례가 역사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참고 자료가 이토록 많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미래는 몰라도, 지금의 우리처럼 사는 내내 수많은 갈등 속에서 결정을 내렸을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말이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 닥친 상황과 욕망에 자꾸 눈이 멀어요. 그래서 과거의 무수한 사례를 까먹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십상입니다. 그 잘못 하나 때문에 그때까지 쌓아온 모든 공이 다 무너지기도 해요. 내가 내뱉는 말과 지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살펴볼 수 있다면 선택은 한결 쉬워질 겁니다.

저는 품위 있는 선택에 역사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현재만을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아요.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게 역사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말, 의견이 누군가의 나쁜 선택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 편인데 공정한 평가뿐만 아니라 제 말이 어떻게 해석되고 사용될 수 있을지 점검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의 강의를 듣고 제 의견을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대통령들 모두 적당한 때에 물러났으면 명예와 품위를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과욕을 부리다가 내려올 때를 놓쳐버렸죠.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크고 작은 곳에서 이 사회를 이끄는 사람일수록 역사의식을 갖추는 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더 많은 사건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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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03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치미‘의 어원이 매에서 온 줄은 잘 몰랐던 사실인데 하나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이야 2024-01-03 11:02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저같은 분이 계시다면 같이 공유하고 싶어 밑줄을 그었는데 제가 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셔요~~
 

114.인물/이봉창

이봉창은 독립운동사에서 예외적이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애초에 독립운동의지가 없었고 식민지 조선 아래서 개인적인 출세를 염원했다. 기노시타 쇼죠를 비롯한 여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만주와 일본 본토에서 10여 년간 개인적 영달을 위해 노력했다. 이 와중에 이봉창은 식민지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조선인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신분적 한계에 대한 자각,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극도의 무례함과 차별적인 처우에 크게 좌절한 것이다. 이때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봉창은 망명을 결심한다. 독립운동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살고 싶은 개인적 욕망 때문이었다.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능숙했고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독립운동가에게 의심받았으나 결국 그는 민족 문제 앞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그의 결기를 인정한 김구는 자금과 폭탄을 건넸고 1932년 1월 도쿄에 잠입하여 천황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다. 하지만 폭탄의 성능이 약해 거사는 실패한다. 이봉창의 거사는 항일 여론이 뜨거웠던 중국인들을 감복하게 했다. 한편 김구는 폭탄 성능 개선에 주력하여 이후 윤봉길 의거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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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존재 방식에 대한 고민

Aegrimonia de esse et modo essendi.
애그리모니아 데 에쎄 에트 모도 에쎈디.

분명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과격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있는 것을 논외, 별종, 변태 취급하고,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무화시킬 때 인간다움은 퇴보합니다. 수많은 소수와 경계를 더는 아무렇지 않게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소수와 경계들을 우리는 더 호명해야만 합니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보편의 개념은 아직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의 울타리에서 밀려난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불완전을 메꿔가며 새로운 보편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이 곧 역사의 진보일 것입니다.

미래 사회를 상상하다.

Invenire societatem futuram.
인베니레 소치에타템 푸투람.

우리의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미래 사회가 ‘꼴값을 떨며 인정머리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냥 좋게 좋게 가자’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좋게 좋게’라 말하지만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자의 입장에서의 ‘좋음’일 뿐, 상대방이나 전체 사회에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간의 인정과 후덕함 속에서 따스하게 좋게 좋게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그 온기 속에서 많은 부조리함이 곰팡이처럼 번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와 비리는 결국 조직과 사회를 질식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살해합니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인정의 올가미 속에서 개인이 죽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저마다 꼴값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도래하길 꿈꿉니다. 당신이 그리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고요한 밤!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Nox silens!
녹스 실렌스!
Est quod habemus.
에스트 쿼드 하베무스.

우리는 누가 우리의 좋은 점을 말해주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장점을 말해주어도 듣기 좋으라고 하는 형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요. 내가 떠올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제안, 어깨를 펴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들도 지나친 겸손이나 조심스러움으로 오히려 낮춰서 평가하는 것을 차라리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고 우리가 애초에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Vanitas vanitatem.
바니타스 바니타템.

땅 위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나 권좌의 정점에 있던 인간도, 부와 존귀함의 바닥에 깔려 있던 이도 결국 숨이 다하면 같은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Adulescentia enim et
아둘레쉔티아 에님 에트
voluptas vana sunt.
볼룹타스 바나 순트

젊은 날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눈이 이끄는 데로 가서 몸과 마음이 기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심히 한 어떤 말과 행동이 예기치 않게 커다란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시간이야말로 가장 상급심의 재판관임을 절감하지요. 그러므로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다 해서도 안 됨을 아는 것이 청춘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잊지 마세요.

Ne obliviscaris talentorum tuorum.
네 오블리비스카리스 탈렌토룸 투오룸.

재능을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만 측량한다면 정말 아무런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재능, 그림 그리는 재능, 남을 웃기는 재능, 운동 잘하는 재능 등 이런 또렷한 재능은 없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재능은 범용적이어서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할 때 유머러스해지는 재능, 무뚝뚝해도 한두 마디에 진심을 잘 담는 재능, 조용히 누군가를 응원하는 재능…… 사실 우리 사회엔 이런 조용한 일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재능, 당신 안에도 있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Iste finis.
이스테 피니스.

모든 터널에 끝은 있습니다. 다만 끝까지 간 사람에게만 한해서. 이것이 터널의 끝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스스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마다 제가 기도하듯 읽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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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타인의 증오에
짓눌리지 말아야 한다.

Non debet aliquis alterius odio
논 데베트 알리퀴스 알테리우스 오디오
praegravari.
프래그라바리.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

Imperare sibi maximum
임페라레 시비 막시뭄
imperium est.
임페리움 에스트.

인간에게는 삶을 ‘막 살아갈’ 자의적인 권리도, ‘아님 말고 식’의 태도로 타인의 삶을 침해할 권리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흔히 주관과 의지와 가능성을 강조하지만, 저는 진짜 인간다움은 나의 권리가 아닌 것을 헤아리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생에서 겨우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

너는 네가 키케로임을 잊지 마라.

Neli te oblivisci Ciceronem esse.
넬리 테 오블리비쉬 키케로넴 에쎄.

키케로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정치가였으나 철학자로서 더 큰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가 쓴 글들은 읽노라면 지성과 품격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정치적 야심이 강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Interarmasilentleges;인테르 아르마 실렌트 레제스"●는 현실에서 자신이 로마 공화정을 구할 적격의 인물이라고 자신했습니다. 끊임없이 생生을 갈망하면서도 사死에 집착하는 마음처럼 그는 시골에서 조용하게 사는 즐거움에 대해 아름다운 문체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현실적으로는 원로원과 법정의 고위직을 갈망했습니다.
● 키케로, 『밀로를 위하여ProMilone』, IV, 11; 직역하면 "팔 사이의 법은 침묵한다"인데 ‘전시에 법은 침묵한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로 옮길 수 있다.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나는 언제나 갈등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거룩하지도 항상 완벽할 수도 없기에 그렇게 부딪치는 마음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순과 고뇌까지도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키케로의 글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새롭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로 누추한 외투 속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다.

Saepe est etiam sub palliolo
새페 에스트 에티암 숩 팔리올로
sordido sapientia.
소르디도 사피엔티아.

지혜에는 발이 달려 있어서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이를 찾아갑니다. "누추한 외투 속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깨어 있는 영혼에게 지혜는 스스로 걸어가 자신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위대한 신성이 있는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깊은 곳까지 가보면 얼룩이 먼저 보입니다. 진정 위대한 첫걸음은 그 얼룩을 마주한 뒤에 신성을 향해 다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은 나를 붙잡고 있는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사람들이 말씀에 목말라했고 오늘의 우리 역시 말씀이 간절한 이유는 바로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이듯, 우리가 깊은 데로 가는 것은 그 심연으로부터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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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사건/무왕의 중국 침공

무황(7~957년)은 발해의 2대왕이자 대조영의 아들로, 대당 강경책을 펼쳤던 인물이다 해가 건국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위태로웠다. 돌궐과 당나라의 갈등이 심각해졌고 발해가 흥기하자 신라도 이에 대응하여 강릉 일대에 장성을 쌓는 등 당, 신라 그리고 돌궐, 발해, 왜 사이에서 복잡한 국지전과 외교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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