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인물/박헌영

박헌영(1900년~1955년)은 공산주의 지도자로, 일제 강점기에 화요회, 경성콤그룹 등을 이끌며 조선공산당운동을 주도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공산당, 남조선노동당의 지도자로 활약한 후 북한에서 부수상을 역임하면서 한국 전쟁을 주도했다.
박헌영은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3.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서회주의운동에 투신했는데, 이동휘가 민족운동의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수용하려 했다면 박헌영 등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자체를 수용해 독립운동사의 새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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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지금 죽지 마

김옥선 씨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버석거리는 발을 손에 쥐어 본다. 외할머니가 자신의 ‘큰 발’을 남세스러워했다는 게 문득 떠올랐다. 그래 봤자 250mm였다. 발을 부러 힘껏 주물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초점 없는 눈이 손녀를 보는 둥 마는 둥했다. 외할머니에게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당신이 1938년생 범띠 여자라 팔자가 드세서 자식을 죽였다고, 집에서 기르는 짐승마저 당신을 잘 따르지 않는다며 조그맣게 한숨 쉬던 어느 날의 얼굴이 기억났던 건 왜일까.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전쟁 통에 아이를 낳고 또 잃고, 그 와중에 내 어머니를 길러 낸 몸이 병원 침대 위에서 저물고 있다.

가족들은 각자의 이유로 할머니가 ‘숨만 붙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온몸을 저려 했다.

나는 무력했다. 나는 의학의 실패를 목격하면서도 환자 보호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의학의 기적을 바랐다.

나는 외할머니의 우선순위와 욕구를 모른다. 가족 중 누구도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하루 두 번 20분씩, 한 번에 두 사람씩만 입장하도록 허락되는 면회 시간을 가족들은 분과 초 단위로 쪼개 썼다. 내 순서가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가 멀건 죽이 지겹다고 의사 표시를 해 줘서 고마웠다. 정작 밥알을 씹어 삼키는 일은 어려워했다. 나는 준비해 간 요거트를 대신 내밀었다. 외할머니는 200밀리미터짜리 한 병을 천천히 빨대로 마셨다. ‘살고 싶구나, 할머니.’ 문득 연명 치료 중단을 떠올렸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당신은 내 눈물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빈 요거트 병을 소리 없이 내밀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보호자는 병원 복도에서 멍하니 앉아 외할머니 집을 구석구석 떠올렸다. 지난여름 나와 짝꿍은 외할머니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땄다. 일생 의지했던 밭은 당신의 나이와 함께 쪼그라들었다. 어느 해인가 자루째 오던 옥수수와 박스째 오던 감자가 멈췄고, 어느 해부터는 김장김치가 오지 않았다. 모두 할머니가 손수 가꾸던 땅에서 출발해야 했던 것들이다. 돌아가시기 직전 해에는 노인 걸음으로 꼭 스무 걸음만큼의 밭뙈기만 겨우 일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밭에서 제멋대로 자란 노각·고추·파·애호박·가지 따위를 한두 개씩 챙겼다. 호박인지 오이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도 얻었다. "네가 지금 딴 게 토종오이야. 피난 짐에 챙겼던 씨앗을 여태 심는다." 나는 그 말을 김옥선 씨의 삶이, 역사가, 시간이 그 안에 모조리 들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제 다시는 그 못난 오이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사무치게 떠올렸다.

외할머니는 나와 헤어질 때면 슈퍼에서 과자를 사곤 했다. 검은 비닐 안에 든 봉지과자는 하나같이 부피가 컸다. 어떤 날은 내가 멘 가방만 했다. 나는 "짐만 된다"며 타박했다. "내가 애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SNS에 올리며 외할머니에게 사랑받는 손녀딸이라는 걸 자랑도 했다. 정작 그 마음을 당신에게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당신이 누군가 버린 유모차를 얻어 보행 보조기를 대신해 쓴다는 걸 알게 된 날도 떠올랐다. 나는 당장 인터넷으로 보행 보조기를 주문했다.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전화한 당신에게 "할머니가 거지야?"라는 말을 굳이 더했다. 미운 말이 얹혀서 잠을 설쳤다. 다음 날 휴가를 내고 강원도행 버스를 탔다. "할머니, 내가 사 준 핸드폰도 보행 보조기도 막 써. 막 험하게 많이 쓰란 말이야. 그래야 내가 또 사 줄 수 있지." 그러겠다고 약속한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내가 선물한 보행 보조기를 ‘애지중지’ 모셔만 뒀다.

당신은 평생 강원도 밖을 벗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못했다. 당신이 가 보지 못했던 지역을 출장가거나 여행할 때면 나는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과일을 택배로 부쳤다. 그럴 때면 외할머니는 굳이 노인정까지 내려갔다. 내게 전화를 걸어 당신 할 말만 하고 끊기 위해서였다. "아유, 너는 왜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걸. 돈 벌어 가지고 할머니한테 다 쓰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래, 전화세 많이 나온다, 끊어." 그 속 보이는 ‘자랑’이 웃기면서도 듣기 좋아서 나는 매번 과일을 샀다.

새해에는 신분증에 스티커를 한 줄 더 추가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내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위급 상황에 처했을 경우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짝꿍과 나는 이 주제로 여러 번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생각을 지지하며 공감한다.

나는 때때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죽음은 공평하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연인 죽음은 늙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온 것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 날은 좀 더 씩씩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외할머니는 어땠을까. 외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고민해 본 적 있을까. 우리는 왜 이 주제를 한번도 나누지 못했을까.

외할머니에게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니 한라봉이 남아 있고 보행 보조기를 ‘모셔 놓은’ 당신 집으로, 당신이 돌아오면 좋겠다. 나는 당신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속에서 완화 치료 전문가인 수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제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당신이 생명 유지를 위해 얼마만큼 견뎌 낼 용의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상태면 사는 게 괴롭지 않을지 알아야만 해요." 그래서 당신 대답에 따라, 당신 뜻대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좋겠다. "결국은 이기게 되어 있는 죽음"을 주제로 우리가 오래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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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사건/갑신정변

1884년 급진개화파의 정변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난다. 흥선대원군이 1873년에 실각하고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는 등 조선 조정은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개화 정책은 곧장 격렬한 찬반론을 불러일으키고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등으로 세력이 분화된다. 개화파는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 통상 개화파의 맥을 잇는 세력이다. 이들은 김옥균, 박영효를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 김홍집 등을 중심으로 한 온건개화파로 분화돼 있었다. 김옥균 등은 일본식의 급진적이고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고, 김홍집 등은 청나라의 양무운동 같은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선호했다. 김옥균은 일본에서 자금 지원을 받아 유학생을 보내고 통화 개혁을 비롯한 각종 부국강병책을 제안했다. 박영효는 강병 양성에 주력하는데 이런 노력이 민씨 척족에게 미움을 사면서 문제가 된다. 더구나 급진개화파는 청에 대한 사대를 철폐하는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한 데 반해 온건개화파는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강조하고 청나라의 보호 아래 역량 강화를 선호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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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의 기준 목표가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보통 생애 주기를 성공과 실패로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수식어를 붙여 쿼터라이퍼를 조롱하는 용도로 사용하고는 한다.

이 시기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원인은 어느 시기든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유행을 타면 다들 그 단어에만 집착하는 풍조다. 이렇게 한 세대에 꼬리표를 붙이는 행위는 그 세대가 쿼터라이프에 진입했을 때 이루어지고는 한다. 과거의 ‘밀레니얼’, 최근 ‘Z세대’를 보면 알 수 있듯, 특정 세대를 일컫는 말은 ‘요즘 애들’(이것도 흔히 쓰는 말이다)에게 주로 사용된다. 세대를 지칭하는 말인데도 그 세대만의 특징보다는 특정 나이대를 묘사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이는 막대한 혼란과 오해를 낳는 심각한 문제다. 현재 많은 밀레니얼이 정확히 쿼터라이프 시기를 지나고 있고 나머지는 중년에 진입했다. 매일 더 많은Z세대가 쿼터라이프에 진입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청소년기와 아동기에 머물러 있다.세대와 생애 주기는 같은 것이 아니다.

같은 나이대에 속한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것도 아니다. 한 세대를 향한 편견은 다른 세대의 관점을 기반으로 하고, 역사적으로는 미국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생성된 후, 다른 인종과 다양한 경제적 계층의20대와30대에게 투사되었다. 게다가 이런 편견은 주로 무시하고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 같다. 연장자가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통탄할 때 활용되는, 정말이지 오래되고 지겨운 현상이다. "역사상 어느 시기든 노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20년 전의 젊은이들만 못하다고 말하면서 새롭고 진실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1968년에 기록한 씁쓸한 관찰이다.

나는 쿼터라이프 시기를 지날 때 "끝없이 도약하려 애쓰지만 발조차 떼지 못하는 상황"을 줄곧 견뎌야 했고, 내 또래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담을 시작한 후로는 같은 상황의 내담자도 거듭 마주치게 되었다.

쿼터라이프는 여성의 가임기와 겹치기 때문에 결혼과 양육에 관한 고민, 혹은 두 과제를 해야만 한다는 확신이 커지기 마련이다. 성역할은 단호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 보부아르가 말한 것처럼, 여성이 쿼터라이프에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희망과 야망"을 향한 본능이라든지 "삶의 의지와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의지"는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고 기대하는 수동성과 의존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겪은 다양한 정서적?신체적 증상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쿼터라이프는 전 세계적으로 신화와 민담에서 가장 자주 묘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문화권에는 쿼터라이프에 관한 구비문학이 전승되는데 이는 그저 흥미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젊은이를 향한 심리 교육의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귓가를 맴돌던 이야기들은 명확하게 말해주었다. 삶에는 성공과 좌절이 있을 테고 좌절 때문에 죽을 지경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좌절을 이겨낼 방법이 있다고, 그 방법은 이상할 수도 있다고. 그래도 위험과 혼란을 이겨내면 더 나은 자신이 되어 있을 테고, 그것은 성장하고 변화한 자신일 것이라고. 이런 이야기들은 소위 현대의 명언 중 하나인 "당신을 죽이지 못한 것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보다 훨씬 더 깊고 긍정적인 무언가를 알려주었다. 인생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관해 알려주었다. 외로움과 고통, 두려움, 지겨움, 혼란을 이겨내고 그 경험을 소화한 후에는 기쁨과 쾌감,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신을 신뢰해야 한다고, 삶이란 의미를 찾아가는 미지의 개인적인 여정이고 사회적 성공과 실패는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알려주었다.

아기들이 비슷한 시기에 네발로 기거나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처럼, 성인들은 비슷한 시기에 자기만의 인생을 향해 떠난다. 전통적으로 쿼터라이프는 원가족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도모하는 시기다. 처음 집중하는 대상이 일, 육아, 결혼, 학업 중 어떤 것이든 모두가 세상으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쿼터라이프 여정의 목표는 단순히 파트너를 구하거나 경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만의 개인적이고 진실한 삶 말이다. 쿼터라이프 발달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온전한 자신을,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정의 목표는지금과 다른 무언가,지금 이상의 무언가를 향한 가슴 저릿한 갈망이 멈추는 것이다. 쿼터라이퍼는 삶의 기반, 안전함, 사회적 안정을 원하기도 하고, 모험, 경험, 자기만의 의미를 원하기도 한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굳건한 체계를 구축해야 하지만, 삶에 온기와 동기를 부여하는 수수께끼, 친밀감, 심지어 불안 같은 것도 끌어안아야 한다. 쿼터라이프 심리학을 논할 때, 나는 이러한 모순을 ‘안정과의미를 향한 혼란스러운 갈망’이라고 설명한다.

성인기

20세기 중반에는 ‘중년의 위기’라는 개념이 새로이 주목받았고 이를 경험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성인기의 행동 양식과 목표에 관한 굳건한 믿음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중년의 위기를 겪으면서 무어라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갈구했다. 중년의 위기는 심리적 변화의 기점으로 정의되었다. 자식들이 독립한 후 부모가 ‘빈 둥지’의 허전함을 느끼는 시기,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 시기, 부모의 죽음 같은 힘든 사건들이 실존적?정신적 고민을 낳는 시기로 중년기를 해석하게 되었다. 중장년 성인이 생존 기반, 안정감, 가정을 이뤘다고 해서 당연히 만족하며 살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옅어졌다. 수많은 중산층 중년이 자기 삶에 부족한 것이 있고 자신에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쿼터라이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만의 독립적이고 고유한 삶을 구축하는 것,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이 정확히 어떤 삶인지개인적이고구체적인 방식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쿼터라이프를 잘 살아낸다는 것은 ‘정상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성공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 그런 서사를 더 오래 지속하면서 쿼터라이퍼에게 천성과 가치에 맞지 않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면, 그들은 치솟는 정신병 확진율에 지배당할 것이고, 길을 잃었다는 심정으로 미래를 향하게 될 것이다. 안정과 의미 둘 다 적절하고 건강한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수록, 성인기를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경향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껏 세상에는 두 종류의 쿼터라이퍼가 존재했다. 안정을 먼저 추구하면서 자신의 우선순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의미를 먼저 추구하면서 종종 자신이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실 안정과 의미는 명확하게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스펙트럼를 이루고 있지만, 나는 전자를 ‘안정형’, 후자를 ‘의미형’이라고 부른다.
두 가지 유형의 쿼터라이퍼, 즉 의미형과 안정형을 이해하는 일은 쿼터라이프의 심리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다. 자신이 의미와 안정의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가려내면 더 강력한 동기와 열의를 갖춘 채 쿼터라이프의 온갖 과제를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고 혼란스러운 말들, 고루한 기대와 조언에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다.

의미형

역사적으로 의미형은 전형적인 ‘중년의 위기’를 겪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삶 자체가 하나의 길고 긴 위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의미형이 살아남아 중년기에 진입했다면 이미 세상에서 살아가고 성장하는 방법을 깨달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의미형은 균형을 찾는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처음에는 안정을 목표로 삼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내면의 의미 감각과 연결을 유지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안정적이고 기능적인 사회생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안정형

더 성공적이고 건실하며, 더 ‘체계적인’ 쿼터라이퍼들. 나는 이들을 ‘안정형’이라고 부른다. 의미형이 한마디로 ‘예술가’, 철학자나 음악가인 것과 달리, 안정형은 한마디로 ‘변호사’, 이를테면 금융에 종사하거나 사업을 운영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안정형 쿼터라이퍼를 "굳건하다", "정상적이다", "안정적이다"라고 묘사한다.

안정형은 종종 의미형보다 불안과 자기 보호가 심한 것처럼 보이고, 극단적인 경우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가 되어 자신을 방어한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종하면서 삶의 기능을 유지하기도 한다.

안정형은 인생의 발전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지력이 높지만,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안정형은 중년기쯤 한계점에 도달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에서 유지하던 외양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사회가 정해준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바로 이때부터 외부의 기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삶의 더 큰 의미를 탐색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중년의 위기’의 기원이다. 중년의 위기란 안정형의 위기인 것이다.

안정형이 자신이 추구하던 목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그의 세상은 무채색으로 변한다. 자신이 지금과는 다른 어떤 것에,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거대한 것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쯤이면 그들은 의미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발달 과정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온전한 삶을 향한 갈망

쿼터라이프는 안정적인 관계와 경제적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를 향한 개인적인 여정이다. 진정한 성인기는 심리적인 것이다.

심리적 의미에서 진정한 성인기란 균형을 추구하는 성숙한 탐색의 과정, 공동체의 일원이자 의식 있는 개인으로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안정과 의미를 모두 추구하는 여정이다. 질서와 혼란, 문명과 자연, 인간성과 신성을 결합하는 시기다. 두 특성이 각각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생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온전한 삶이라는 안정형과 의미형 공동의 목표는 서사의 결말에서 상반되던 것들이 결합하는 상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핵심적인 개념이 재현되는 방식은 수없이 많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있는 삶은 기울어진 삶, 불완전한 삶이다. 기울어진 삶에는 명명하기 힘든 충동,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충동이 언제든 찾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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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럭키박스’를 제안한 쪽은 나였다. 우편으로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보내자고 했다. 독서 안목과 취향을 확인하고 싶었다. 출신 학교, 나이, 사는 곳, 직업 따위는 내게 어떤 사람에 대한 주요 정보가 되지 못했다.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책 선물’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보여 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선물로 보낼 책 목록 안에 일정 부분 담기게 되리라 여겼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청혼은 내 쪽이 먼저였다. 카페에서 레고 블록을 맞추고 있던 그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충동’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는 승낙의 말 대신 "잘 생각해"라고 답했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답이었다. 나는 결혼을 인생의 목적이나 목표로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비혼이야말로 나를 지키며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정 부분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금’ 같이 놀고 싶은 친구를 만났고, 같이 놀면 재밌는 사람을 만났으니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우리는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같을 수 없는 한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치관 우선순위를 체크하는 테스트를 했을 때 우리는 둘 다 최우선 순위로 ‘나’를 꼽았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돌보고 아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의 건강함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에 걸쳐 정말 ‘잘’ 생각한 끝에 나는 그에게도 청혼을 요구했다. "《행복한 질문》이라는 그림책을 나에게 선물해. 청혼 대신 받아 줄게."

나는 사랑을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지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어떤 맹세보다 중요한 사랑의 태도가 짧은 그림책 안에 깊고 빼곡하다. 책을 펼치면 아무런 글자 없이 개 부부가 길가의 꽃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온라인상에서 주로 쓰는 이름은 ‘둥글게’이다. 많은 사람이 동요 제목으로 착각하지만, 이상은의 노래 제목이다.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던 너와 부딪혔어
함께 웃음이 나왔어
하늘이 투명해서 너도 빛났지
- 이상은 작사·작곡, <둥글게>, 2005

가사를 처음 접했던 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내 그 가사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바로 그 사람이 있었다.

뒤에 숨는 마음

"술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약간의 막막함을 느낀다. 성인이 되어 술을 경험한 이래 나는 술 앞에서 단 한 번도 호오를 따져 보지 않았다. 불성실로 점철된 내 인생에서 평생에 걸쳐 가장 꾸준하게 해 오고 있는 드문 일 중 하나가 음주다.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최선의 이유는 ‘세상 탓’일 테다. "설명하기 어렵군요. 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제가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은, 이 빌어먹을 세계 때문이죠."

일과 세상에 대한 푸념을 안주 삼아 마시는 동안 긴장이 풀리고 안도가 몰려왔다. 물론 더 많은 날을 자괴감과 더불어 폭음을 일삼았다. 어쨌든 무사히 한 주가 지나갔고, 나는 아무튼 마감을 했으며, 그러니까 마실 ‘자격’이 있었다.
사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었다. 취재나 마감이 뜻대로 안 될 때는 그 핑계로 마시는 법이다.

누군가 건강을 이유로 술을 끊겠다고 하면 그렇게 서운했다. 나이 먹을수록 그런 사람은 하나둘 늘어만 갔다. 외로운 나는 캐롤라인 냅처럼 혼잣말을 하곤 했다. "별 웃기는 유행 다 보겠네. 이게 도대체 무슨 재미야?" 그럴 때면 이상한 다짐을 하곤 했다. 어차피 한번은 죽으니까 좋아하는 술 담배라도 마음껏 하자고. 내 인생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공드리의 9년은 내가 지나온 9년이기도 했다. 공드리의 맥주가 모나고 상처 난 마음을 동글동글 뭉툭하게 만들어 줬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술은 제2의 따옴표다. 술로만 열리는 마음과 말들이 따로 있다.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뾰족한 연필심은 뚝 부러져 나가거나 깨어지지만, 뭉툭한 연필심은 끄떡없듯이, 같이 뭉툭해졌을 때에서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이제 그 말들을 나누려면 460km를 날아가야 한다. 오늘은 그 이유로, 술을 마셨다.

그해 여름은 비가 지독했다. 장맛비가 자주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축축한 등이 먼저 알았다. 그럴 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곤 했다. 물이 차오르는 모양을, 빨간 쓰레받기를 들고 물을 걷어 내는 엄마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비가 그치면 물에 불어 망가진 책을 추려 쓸모를 구분했다. 이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유년의 책들은 그런 식으로 수장되었다.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니다, 가지 못했다. 문에서 세 계단, 다시 두 계단을 딛고 오르면 공기가 달랐다. 햇볕의 틈을 찾아 젖은 책을 널어놓으며 신에게 빌었다. ‘2층으로 이사 가게 해 주세요.’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일찌감치 상업계고 진학을 마음먹었다. 나는 지하에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난이 지겨웠다. 진학 서류를 요청했을 때 담임선생님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엄마에게는 합격하고서야 알렸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선택’이라고 믿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믿으려고 했다. 좀체 나아지지 않는 형편의 이유가 온전히 우리에게만 있는 거라면, 더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이 수렁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믿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시간이었다.
편모 가정인 것, 사글세 지하에 사는 그런 것들. 중학교에서는 매우 소수의 친구에게나 겨우 나눌 수 있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은 감춰지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친구들 사이에서 배제됐다. 고등학교에서는 달랐다. 나는 그곳에서 내 불행과 가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때로는 아버지가 없다는 게 ‘자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도 ‘고3’ 시절이 있었다. 80%에 가까운 또래들이 수능 준비에 열을 올리는 동안, 20% 안에 속한 우리는 반을 합치고 밥을 합쳤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취업으로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반의 취업되지 않은 아이들이 와서 채웠다. 3학년 2학기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나는 교육 이슈 앞에서만큼은 중요성을 가늠하지 못해 허둥댄다. 정확히는 교육이 아닌 ‘대입’이다. 나는 늘 대입을 둘러싼 이 사회의 풍경이 기이하다. 대입개편공론화위원회를 꾸리고, 그 결과를 내가 속한 매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대입만을 관장하는 게 아닌 교육부장관이 이 문제를 이유로 개각 대상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다, 안다. 대입 전형에 사활을 걸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과대 대표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의 부제는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이다. 500쪽 가까운 책을 한 달에 걸쳐 어렵게, 어렵게 읽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 때문이었다. 정임, 소영, 세진, 윤주, 연재‘들’의 얼굴이 행간 위에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16년 차지만 고졸이라 여전히 주임 직급을 달고 있는,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너무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원치 않는 전업주부가 된 나의 그때 그 친구들. 우리에게는 특별히 운이 좋은(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에어백’이 없었다.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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