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감정을 다스리려면 먼저 그 감정이 드러나기 전의 상태, 즉 평상심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다. 평상심이 사욕 때문에 욕심에 치우쳐 있거나,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외부의 반응에 조화롭게 대응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수양과 공부가 필요하다. 내버려두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 마음을 묶어둘 수 있는 방법은 날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다. 이를 위해 새벽과 잠자기 전,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다.

말이란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수습할 수 없다. 취소할 수도 없고 번복하기도 어려운 것이 바로 말이다. 스스로 말을 절제하기를 원한다면 날마다노력했던 남용의 자세를 배워보자. 스승의 조카사위가 되는, 인생의 특별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지금 가진 것, 지금 누리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 일이다. 행복은 언제나 발밑에 있다.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행실을 닮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함께할 사람은 누구인가? 또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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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에 맞지 않고, 제 구실을 하지도 못하고, ‘세상이 정한 대로’ 생기지도 않은 쓸모없는 몸에 갇힌 느낌 말이다.

사실, 나는 매일 밤마다 가련한 내 자신만 아니라면 아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도 알고 있다.

내가 해낸 일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 안에 자부심을 가진 엄마로 비쳐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다.
바라는 게 있다면, 딸아이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이다. 가련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보기를

엄마의 슬픔도 우리와 함께 이사를 온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이 이 새 집으로 옮겨왔는지, 예전 집, 아이를 잡아먹는 광견병 걸린 개 옆집에 남아 있는지?

언어를 좋아했다. 문장의 리듬과 흐름, 그것이 함께 모여 자기만의 세상을 만드는 방식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나 단조롭고 일차원적인 교과서에 흥미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영영 사라지지 않는 슬픔이 가득했다. 사방에서 그걸 느꼈다.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풀 뜯는 소처럼, 슬픔도 또렷이 보였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코를 찌르던 고양이 오줌 냄새처럼, 슬픔의 냄새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방치해놓은 잡초가 무성히 자라 다리를 간지럽히던 정원처럼, 그 슬픔은 실재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내향적인 사람은 내적인 세계(즉, 우리의 가련한 자아)에 집중하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주위의 외부 세계에 더 끌린다는 것이다(<X팩터> 참가자들과 <로열 버라이어티>[4]쇼 공연을 생각해보라). 인생이 그렇듯이, 그 무엇도 어느 한쪽에만 완전히 해당되는 것은 없고, 마이어스와 브릭스는 훗날 이 이론을 발전시켜 우리는 모두 그 중간의 어디쯤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러한 발상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 등급의 어딘가 중간쯤에 위치하는 반면, 가장 내향적인 쪽 가장자리에는 분명 엄마가 있을 것이다.

내 자신이 중간쯤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나는 내향적인 쪽에 가깝고 거기 만족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이고 싶지도 않고, 그럴 욕구도 없다. 조용한 몇몇 사람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바쁜 삶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한다. 그러나 마이어스-브릭스의 이론이 보여주듯이 나의 이런 성향은 바뀌기도 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내향적인 것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아니라는 것이다. 내향적인 성격이 양극성 정동장애(혹은 과거에‘조울증’이라고 부르던 장애)와 늘 함께 다니는 것은 아니다. 정도와 관계없이, 내향적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납득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그렇다. 여러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토요일 밤에 시끄러운 노래방에 나가고 싶지 않은 것,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 우울한 쇼핑센터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 박싱 데이 세일(12월26일 영국 상점들이 실시하는 대대적인 세일?옮긴이) 때 그곳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사람들은 ‘기운’이나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엄마 주위에서 받는 느낌은 숨 막히는 불편함, 어색함, 당혹감이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루한 슬픔이었다.

요즘 우리는 다행히 숱한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고, ‘우울증’이라는 용어는 별 생각 없이(완전히 오해되어 오용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분명한 부작용을 제쳐두고 나면, 지금은 예전보다 우울증의 고통을 인정받고 지지받기가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즉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아무도 우울증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유토피아에 산다는 말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그런 상태가 실제로 존재하며, 삶의 어려움을 감추기 위해 써먹는 허구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예전보다는 커다란 진일보라는 말이다.

타고난 것이든지, 습득한 것이든지, 혹은 두 가지 모두였든지, 나는 똑같은 특징을 내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내 머릿속에는 ‘자아’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바보처럼 보일까, 부족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게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두려웠다. 두렵고 불안한데, 그게 무엇 때문일까? 사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라는 사실이 두렵고 불안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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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 스마트폰 전화번호부를 훑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더 처질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대뜸 아버지의 입에서 대화와 상관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뜬금없는 그 말을 듣고 나니 확신이 섰다. 아버지는 내가 회사를 관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게 마음을 써주느라 일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던 것뿐이다.

나는 아직 어설프다. 하지만 언젠가 존경하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싶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진짜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루는 날이 오면….
아버지 방에서 그 술병을 열고 싶다.

인생을 살다 보면 굴곡이 많지만, 그래도 인생은 끝까지 살아낼 가치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달 들어 건강이 나빠진 며느리가 병원에 갔다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론 아이 아버지는 죽은 제 아들, 신이치로입니다. 우리 가족은 살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굴러떨어지던 돌도 때가 되면 멈추듯이, 이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빛나는 미래를 선사합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얄궂지요.
언젠가 당신의 미래에 눈부신 빛이 비치기를 기원하고.
믿고.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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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아는 사람, 특히 자신의 장점뿐 아니라 부족한 점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아야 그것을 고쳐나갈 수있고 매일 매일 발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잘못된 말을 하기는 쉽지만 그 말을 수습하기는 어렵다. 그 말을 뒤집는데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한 말을 쉽게 뒤집거나 약속을 자주어기면 그 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평생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있다. 영원히 신뢰를 잃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연결지점이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모든 지식은 단절돼 있지 않고 계승 발전한다. 옛것과 새로운 것을 연결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설사 고전에 정통하지는 못하더라도 고전을 가까이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지식은 끊임없는 열망을 가지고 추구해야 한다. 배움이 주는 즐거움을누리고 그 지식을 삶에서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함께 덕을 쌓아나가야 한다. 덕과 인격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지식이 완성된다.

우리는 흔히 윗사람을 비난하고 아랫사람에게 불만을 품는 일이 많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나 역시 내가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일때가 많다. 내가 싫어하는 윗사람의 모습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 내가 불만을 느끼는 아랫사람의 모습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 주위에서 보는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언제나 갈등과 이해의 충돌은 바로 옆 사람과 일어난다. 세상의 공정을 말하기 전에 바로 곁의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일도 공부도 인간관계도 성공의 비결은 바로 정성이다.

오리의 다리가 짧은 것과 학의 다리가 긴 것은 타고난 본성이다. 이처럼 사물에는 모두 타고난 본성이 있다. 그 자체로 모두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
따라서 섣부른 판단으로 함부로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선의로 그 일을 하지만 그 일을 당하는 사물이나 동물들에게는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재능과 장점이 있는 법이다. 한 사람의 장점은 다른 사람에게는 단점으로 보일 수도있는데, 타고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내 의견만 고집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말 한마디의 무게는 결코 다르지 않다. 한마디 말 때문에 인격적으로 치명상을 입고, 공들여 힘겹게 쌓아올린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특히 유명인이나 정치인들이 예전에 했던 한마디 말 때문에 망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고 있다. "물고기는 입에 낚시가 걸리고 사람은 입에 재앙이 걸린다." 촌철살인의 유대인 속담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자신의 말에 온 인생을 걸어라.

오늘 만나고 온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집에 돌아왔을 때 내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운이 깊고 오래가면 좋은 친구다. 마음이 공허하면 좋은 친구가 아닐 수 있다. 무언가 얻은 것이 있고 배운 것이 있으면 좋은 친구다.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좋은 친구가 아니다. 내가 어려울 때 변함없이 곁에 있으면 좋은 친구다. 즐거울 때는 곁에 있지만 어려울 때 찾을 수 없다면 좋은 친구라 할 수 없다.

증삼살인고사가 있다. 공자의 제자이자 효자로 이름이 높은 증삼의 어머니조차 세 사람이 연이어 "증삼이 살인을 했다."고 하자 그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듭되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도망쳤다. 그만큼 뒤에서 하는 말은 독한 위력이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한 사람을 모함하면 신임받던 충신조차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뜻을 지닌 중구삭금이 정곡을 찌른다. 함부로 남의 말을 믿으면 정작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기준이 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원망을 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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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오류에 빠지고 만다. 예문과 함께 실려 있는 다음 글이 이를 잘 말해준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크게 교묘함은 서툰 것 같고, 아주 훌륭한 언변은 어눌한 듯하다." 세상의 많은 것이 사람의 눈을 현혹시킨다. 사람은 더욱 그렇다. 내 눈에 보이는 현상과 외양보다 그 이면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통찰력‘이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정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얻어야 한다. 정의로운 방식으로 부자가 되고, 그 부를 통해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이자 정립해야 할 부의 철학이다.

분명히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내 귀로 들은 사실조차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본 것, 내가 들었던 말, 나의 관점만 갖고 세상을 본다면 진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내 태도가, 내 생활이, 나아가 내 삶이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모든 일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또한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고 하찮아 보이는 재주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이든 무능한 사람이든 자신만의 강점을 찾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발견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지혜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 (지인知人)라고 고전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도 그런이유에서다.

정의롭지 않은 이익 앞에서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그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질 앞에서 탐욕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매 순간,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한번 뱉은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남을 해치는 말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무엇보다도 남에게 했던 흉한 말은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속된 말을 하면 속된 사람이 되고, 과격한 말을 하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결국 다른 사람의 허물을 내가 뒤집어쓰는 것이 되니 나를 지키려면 내 입을 지켜야 한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자신의 가피관이나 사상만을 고집한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사람이 되고 만다. 정치, 이념, 의식, 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세상이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흰색도, 검은색도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도 있다. 옳고 그름에 관해서는 양보도, 타협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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