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유적•유물/고구려 벽화

고분은 부장품, 묘지석 등 당시의 유물과 기록이 남아 있어 고대 사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고구려는 돌무지무덤과 굴식돌방무덤이 발전했다. 돌무지무덤은 돌을 쌓아만든 무덤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돌을 다듬어서 쌓는 등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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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백 년 전,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처절하게 절망하던 한 시인이 이런 예언을 썼습니다. "여명이 밝아 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저는 예지자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 출신입니다. 가장 버림받은 시인이었고, 저의 시는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과부는 불끈 쥔 주먹을 오지랖 주둥아리에 날려 버리든지 실팍하기는 하지만 무절제하기 이를 데 없는 불알을 발로 짓이겨 버리든지 할 참이었다. 하지만 마침 영감이 번뜩였고 속담을 사용하는 편이 보다 품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님 덕에 나발 부는군!"
과부가 말을 끝내고는 문을 요란하게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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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장소/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몽촌토성이 공원화되면서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풍납토성은 아파트 개발 붐으로 인해 성벽과 일부시설만이 간신히 복원된 상태다. 개발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도모하려고 했던 지역 주민들과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싶었던 학자들 간에 오랜 갈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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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마리오는 목구멍에 온갖 메타포가 걸린 채로 일주일을 보냈다. 베아트리스는 방에 갇혀 있거나, 어머니의 손아귀에 팔뚝을 내맡긴 채 물건을 사러 나오거나 바윗가를 산책했다. 마리오는 자신이 베아트리스 어머니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고 확신했기에 모래 언덕 사이로 숨어 다니면서 먼발치서 쫓아다녔다. 소녀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과부는 귀를 잡아채 되돌려 세웠다. 보호의 손길이라 하더라도 소녀를 아프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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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로써 가장 아끼던 컬렉션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오래된 책들을 사랑하시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사서 일을 하시며 파기 예정인 책을 모아두시거나 심지어는 나의 오래된 동화책마저도 놓아두실 정도로.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을 발견한 것은 나였다. 처음으로 시체를 수습한 것도 나였다 장례식을 추진한 것도 나였다 그런데 저들은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아들이라서, 핏줄이라서?

와르르
밖에 놓은 책이 무너졌다. 오래된 책, 낡은 책, 거의 손을 타지 않은 책 등이 보였다.
나는 문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책을 펴보며 편지를 찾아갔다.
시현에게 시현에게 수많은 편지가 모두 그에게 쓰여 있었다 어릴적부터 옆에서 부둥키며 살았던 나초자 모르는 그가.
2000, 1999, …1980년 점점 날짜가 오래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쓰인 편지로 보이는 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끼워진 1980.12. xx.

남은 재산을 나에게 모두 남겨 놓았다고?
하지만 나는 마지막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아프신 줄 알았다면 일에 미치지 말 걸 이번에 휴가 좀 많이 쓸걸…. 후회만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선생님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낼걸… 이라고.
나의 친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병원 신세였으며 부모님이 없던 나는 아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돈인 선생님의 마지막 재산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이 최고였던 나는 나의 신념과 맞는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벌 수 있으며 미래에 출세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직장인 청와대에 들어왔다.
미친 듯이 달려왔던 나는 쉬는 거 하나 없이 빡빡한 일정과 더불어 휴가 하나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연차를 냈던 나는 또다시 연차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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