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선물 같은 사람들이 다가왔지만, 꽤 많은 순간 저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떠나보냈습니다. 머리로는 나의 성장 배경을 디딤돌로 삼으리라 결심했지만, 사람들이 면도날 같은 말과 태도로 마음을 휙휙 그어놓을 때마다 저는 허우적거렸습니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데, 하나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더 큰 다른 상처가 덧입혀졌습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어서 어른이 되고도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집을 떠나고 싶었고, 도망치듯 들어간 수도원조차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 또다른 절망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몸 둘 곳 하나 마련하기 힘든 세상에서 나는 내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내 몸을 둘 물리적 공간을 당장 마련하기는 힘들어도 내 마음 둘 곳을 마련하기는 그나마 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내 마음 둘 곳은 오직 시간뿐이었으니까요. 시간은 내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어떤 아픈 기억들을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희석시켜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시간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다른 결심을 했습니다. 타인이 내게 주는 상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상처로 인해 툭툭 튀어나오는 나의 모난 태도와 못난 말들을 스스로 용납하진 말자고요. 나의 힘겨움을 핑계로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물론 타인이 나의 상처를 건드린 적도 있지만 그만큼 나도 그들의 감정선을 건드려 메아리처럼 돌아온 상처도 많았습니다. 내 상처를 더 후벼파지 않기 위해서, 나의 생존을 위해서 ‘쟤 왜 저래?’ ‘저 사람 나한테 왜 그래?’라는 생각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무수한 타인들에게 거칠게 향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극단적으로 미워했던 타인들은 가난한 내 영혼의 반영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정해진 시간을 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유일한 한 획을 긋는 셈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품고서 각자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때 우리는 각자의 길 위에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곁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운명은 바뀔 수 없다.

Mutari fata non possunt.
무타리 파타 논 포쑨트.

매번 같은 인과관계를 찾거나 비슷한 지점에서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한 연극에 불과할까요? 생은 끊임없이 새로운 배역과 역할을 요구하는데 계속해서 과거 어느 시점을 탓하며, 나는 부득이하게 그것을 할 수 없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는 건 궁색하지 않을까요? 역으로 인간은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받는 그 나약함과 결점으로 인해 수많은 아름다운 배역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운명은 정말 바꿀 수 없는 것일까요?

‘바람이란 멈출 때 끝난다’는 스토아 철학의 사고가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자연에서 부는 바람도, 인간 내면의 바람도 모두 스스로 멈출 때 끝납니다.
우리의 바람엔 다양한 차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젊었을 적 바람과 나이들어가는 시점의 바람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세네카의 생각입니다. 저는 나이들수록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와 바람을 품게 됩니다.

자식의 부족함을 마주하면서도 부모는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체념의 마음도 있겠지만, 이 말을 했을 때 자식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뒤따릅니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그때 그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누군가 내게 일러주었더라면, 나이들어 치러야만 했던 혹독한 어려움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누가 무슨 귀띔을 해준다 해도 넘어설 수 없는 삶의 구렁. 모두의 삶에는 구렁이 있습니다. 다만 그 오랜 구렁을 인지하고 응시하며 넘어서려는 사람과,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나뉠 뿐입니다.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Vexatio storia fiat.
벡사티오 스토리아 피아트.

인생에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찾아온 아픔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입니다. 인생에 아픔이 이유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의 아픔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이유,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 보다 발전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이유로 남겨두지 마세요. 아픔을 보호막으로 쓰지 마세요. 그러면 나를 보호한다고 뒤집어쓴 그 아픔이 실제로 내 앞길에 장애물이 되어 삶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하려면 시간과 견딤이 필요합니다. 아픔이 고여 썩고 무르면 사람을 망치지만, 아픔이 숙성되어 스토리가 되면 한 사람의 생을 증언하는 역사가 됩니다.

아파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Aegroto dum anima est,
애그로토 둠 아니마 에스트,
spes esse dicitur.
스페스 에쎄 디치투르.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대충 살며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은 욕망에 빠집니다. 그런 순간들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일러둡니다. 그래도 너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 있고, 살아가려 한다고. 아무리 아파도 살아 있는 동안 희망은 있다고.

모든 고통은 시간에 의해
가벼워지고 옅어질 것입니다.

Omnes dolores tempore
옴네스 돌로레스 템포레
lenientur et mitigabuntur.
레니엔투르 에트 미티가분투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저는 밤에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가 절규하듯 "하느님, 이 세상에 저를 내셨으면 책임을 지셔야지요!"라고 외쳤던 적이 참 많습니다. 나이든 지금도 침묵 속에서 남몰래 외치고 있지요.
그래도 이런 가운데 저를 위로해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저는 시간의 의미를 깨닫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가혹한 고통도 결국엔 시간이 데려갑니다. 시간 속에서 우리의 고통은 가벼워지고 옅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Nolite ergo solliciti esse in crastinum;
놀리테 에르고 솔리치티 에쎄 인 크라스티눔;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크라스티누스 에님 디에스 솔리치투스 에리트
sibi ipsi: sufficit diei malitia sua.
시비 입시: 수피치트 디에이 말리티아 수아.

희망을 가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절망할 것도 없다.

Qui nil potest sperare,
퀴 닐 포테스트 스페라레,
desperet nihil.
데스페레트 니힐.

문장의 뒷부분에 방점을 두면 절망은 이 사람에게 없는 것입니다. 절망이 없기에 다시 희망 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희망이 없어서 절망할 권리마저도 빼앗겼다면 차라리 다시 희망을 선택하겠습니다.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갈 방향을 인지하는 것이 희망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인간은 기도하게 됩니다.
사랑이란 곧 한 사람을 향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자책과 탄식 속에 진보와 성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자책은 스스로를 더 작고 보잘것없고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가장 비참한 날에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지는 내가 스스로의 위로자가 되는 길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내 아픔과 비참으로 타자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위로와 도움을 갈구하는 고통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외로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Semper dolor aderit in eo qui
셈페르 돌로르 아데리트 인 에오 퀴
solacio indiget et auxilio.
솔라치오 인디제트 에트 아욱실리오.
Semper aderit solitudo.
셈페르 아데리트 솔리투도.

인간은 난생처음 나 홀로 겪는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신음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평생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내 편을 만들려 하고,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나 환경이 없으면 그것을 외로움, 또는 소외라 여깁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쉽사리 내 손 놓지 않을 편 하나 만들려고 그토록 몸부림치고 이해를 갈구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인간, 다른 인간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존재.
처음 살아가는 인간이 처음 살게 될 인간에게 손 내밀고 그 손 꼭 붙들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본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편은 누구입니까?
아니 그 전에 당신은 살아가면서 몇 사람의 편이 되어주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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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 문화/사화

조선 전기 사림파가 받은 정치적인 탄압이다. 성종 때 김종직이 등용된 이래 사랑과가 조정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 그리고 조광조까지 여러 선비가 지속적으로 등용되는데 조선 초기 개국공신들과는 세력을 달리한다. 이들은 정몽주, 길재 등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이들을 숭앙했으며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또 지방에서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향촌 자치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서 사림파를 탄압한다. 김종직 살아생전에 쓴 <조의제문>이라는 글 속에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내용을 근거로 들어 당시 사림파를 대거 척살한 것이다. 김종직은 시신을 꺼내 참형하는 부관참시를 당했는데, 무오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무오사화라고 한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 성종은 중전 윤씨가 질투심이 깊고 옳지 않다 여겨 폐비를 시킨 후 사약까지 먹었는데, 이에 동조했던 이들을 대거 척살한 사건이다. 야사에는 임사홍이 폐비 윤씨의 피가 묻은 적삼을 들고 와서 연산군에게 아뢰자 이에 격분하여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사건을 곰곰이 뜯어보면 사림파에 대한 정치 테러의 성격이 강하다. 중종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자 이에 피곤함을 느낀 중종이 남곤, 심정 등을 앞세워 조광조 세력을 유배 보낸 후 처형했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 사림파는 재기가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기묘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기묘사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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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나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고 그게 부자 되는 길로 나를 인도하였다고 믿는다.

참부자들은 부자가 아니었을 때 보석이나 패물에 돈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소유의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물론 아니다. 그들은 소유 욕망의 대상에 대하여 분석하고 그다음에는 우선순위를 파악한다. 왜냐하면 소유를 잠시 보류하면 돈이 쌓이고 그 돈에서 평생 여유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연예인도 아닌데 금은보석을 치렁치렁 몸에 감고 다닐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왜 부자의 인간관계는 척박하다고 믿는 것일까? 돈을 아귀처럼 움켜쥐고 있으면서 만 원짜리 한 장에 바들바들 떠는 부자도 있고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도 있고 아흔아홉 가마 가진 놈이 한 가마 더 채우려고 혈안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부자들도 있음을 왜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
물론 부자들이, 많은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습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서일까?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경제의 속성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묻는다. "경제를 배우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더 벌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택을 현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같은 재화를 갖고서 얻을 수 있는 가치들을 비교 선택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 비교가 있어야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고르기 위해 따져 봐야 한다는 말이다.

돈이 아주 많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불행하여진다는 공식을 이제는 버려라. 돈을 신 포도라고 미리 단정 짓고 뒤돌아서는 여우가 되지도 말아라. 이것은 어떤 여자들이 아름다운 여자가 지나가면 ‘저 여자는 행실이 좋지 못할 거야, 남자관계가 복잡할 거야, 성질이 있을 거야, 화장발이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부자를 흉본다고 해서 그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 수도 있듯이 돈이 많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당신도 부자가 되면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것이 목표이지 않은가.

부자들을 모두 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매도하거나 모두가 다 도둑놈들이라고 몰아붙이지도 말라. 물론 이 사회에는 정치적 결탁이나 부정한 방법을 써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십 배 노력하여 세금 다 내고 떳떳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부자들이 모두 다 어떤 부정한 사건과 연루되어 보도되는 부자들이기 때문이다. 땀 흘려 떳떳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부자들은 없다고 믿는다면, 언론에 보도되는 흉악범들은 모두 부자가 아니므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흉악범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자들을 일자무식 장돌뱅이로 여기는 어리석음도 버려라. 2000년도 삼성전자 등기이사 20명에게 지급된 보수는 298억 원으로 1인당 평균 14억 9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사외 이사 6명을 빼면 사내 이사의 평균 보수는 2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부자 계층이다. 일자무식이 전혀 아니며 당신보다 훨씬 더 엘리트라는 말이다(

진정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부자에 대해 억측하지 말라. 명심해라. 부자들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사실은 부자들이 쓴 고백서는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부자들의 삶을 강 건너에서 바라보고 추측하여 쓴 책들은 그 어느 것이든 무시하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억측만 하면서 아는 체를 하기 마련이다."―영화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ester〉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숀 코네리가 하는 말이다. 참부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배워라. 부자는 돈독이 들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가져올 때 부자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환희를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며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불행하지도 않고 도둑놈도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암초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과소비하는 생활 태도이다. 흔히 과소비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부유층의 과소비, 중산층의 모방 소비, 하류층의 자포자기식 실망 소비가 그것이다. 하지만 과소비가 능력 이상의 소비를 의미하는 이상, 부유층의 과소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소비는 부자들이 하는 게 아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졸부들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분수 이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과소비이다. 나는 한 번도 부자들이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여 카드 빚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를 꿈꾸지 말라. 그리고 명심해라. 시장 경제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당신이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떻게 모으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신중하게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갖고 싶은 것이 없는 부자 수준이 되면 소유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초월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부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해 왔기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고 이러한 태도는 부자가 되고 나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 돈을 더 벌어도 특별히 쓸 곳도 없으므로 바둥바둥대지도 않는다. 부자들은 오직 여유자금을 부동산이나 주식 중에서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투자할 뿐이다. 부자들 중에서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는 단타 매매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분양권 전매로 단기간에 프리미엄을 얻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투자 대상을 고른 뒤 장기적으로 그저 묻어 둔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은 그래서 돈을 더 번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소유 자체에 대해 초월적인 투자 태도’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소유 자체가 주는 만족감을 더 추구하고자 투자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이미 소유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초월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천만에. 부자들이 부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사치를 즐기고 소비를 왕성하게 하였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모두가 다 자기 수입 수준보다는 덜 쓰고 살아온 사람들이 부자들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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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는
제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이는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Via stulti recta in oculis ejus;
비아 스툴티 렉타 인 오쿨리스 에유스;
qui autem sapiens est audit consilia.
퀴 아우템 사피엔스 에스트 아우디트 콘실리아.

우리에게는 책 말고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가르침을 청할 선생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선생은 엄청난 학위와 스펙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치와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정확히 읽어주는 이들이었습니다. 원석도 못 돼서 그저 흙속에 파묻혀 있던 정체불명의 나라는 사람을 원석의 형태만이라도 갖추게 해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만나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려보면 저도 모르게 "제가요?"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너는 이러이러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라고 했을 때, 그 첫 반응은 언제나 "제가요?"였습니다. 그 말이 도통 믿기지 않았습니다.

너, 뭐가 그렇게 슬프냐?

Quid es tam tristis?
퀴드 에스 탐 트리스티스?

너, 뭐가 그렇게 슬퍼?
너, 뭐가 그렇게 힘들어?

이런 질문을 마주할 때, 저는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나 이래서 슬퍼’ ‘나 이래서 힘들어’라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숨이 꽉 막힐 듯한 애잔한 슬픔만이 밀려왔습니다.
‘아! 나에게도 의지할 가족이 있다면, 마음놓고 말할 친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곳도, 숨겨줄 사람도 없는 그 시절 나는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엔 합당한 이유도 없이 나를 죽도록 방해하고 적의를 표하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선의 속에서 나는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벽을 허물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높은 담을 쌓아도 운명 같은 은인들은 그 벽 너머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희망이고 구원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왜 그때 가진 것 없이 웅크리고 있던 내게 선의를 베풀었을까. 이따금 생각해보지만 사실 저는 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내게 ‘너, 뭐가 그렇게 슬프니?’ ‘너, 뭐가 그렇게 힘드니?’라고 캐묻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저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선물처럼 다가와 바위처럼 저를 짓뭉개고 있던 슬픔과 힘겨움을 조용히 들어올려줄 뿐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운명을
두려워하나 지혜로운 이들은
운명을 가지고 다닌다.

Stulti timent fortunam,
스툴티 티멘트 포르투남,
sapientes ferunt.
사피엔테스 페룬트.

청년 시절 가까스로 제 마음을 추스르며 다짐한 것은, 될 수 있으면 나의 배경에 대해서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운명은 두려워하거나 감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고 가기 위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 순간과 떳떳이 밝혀야 하는 결정적 순간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운명은 사는 동안 내내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수치심도 허세도 없이.
허튼 곳에 흘리지도 않고, 괜스레 남몰래 꽁꽁 묻어두지도 않으면서.

인생에서 운명처럼 다가온 은인들은 갑자기 저절로 나타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인과의 인연은 닥쳐오는 것을 견뎌내고 고난 속에서도 무언가를 해낸 사람에게 오는 선물입니다. 올바르게 처신한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아니 스스로 간절히 불러낸 선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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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 유적•유물/백자

‘고려청자 조선백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내내 다양한 백자가 제작됐다. <용재총화>에는 ‘세종 때에는 백자, 세조 때에는 청화백자를 어기로 사용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전기에는 문양이 없는 순수백자와 청색 유약으로 무늬를 낸 청화백자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전반적인 경제 위기를 겪던 조선에서는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백자를 생산할 수 없었다. 이때 나타난 백자가 ‘철화백자‘다.
청색 안료에 비해 철화 안료는 값싸고 구하기 쉬웠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생산된다. 하지만 전란의 후유증이 회복되면서 다시 각종 백자가 만들어진다. 상대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철화백자의 수가 적기 때문에 최근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훨씬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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