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문화/사화

조선 전기 사림파가 받은 정치적인 탄압이다. 성종 때 김종직이 등용된 이래 사랑과가 조정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 그리고 조광조까지 여러 선비가 지속적으로 등용되는데 조선 초기 개국공신들과는 세력을 달리한다. 이들은 정몽주, 길재 등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이들을 숭앙했으며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또 지방에서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향촌 자치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서 사림파를 탄압한다. 김종직 살아생전에 쓴 <조의제문>이라는 글 속에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내용을 근거로 들어 당시 사림파를 대거 척살한 것이다. 김종직은 시신을 꺼내 참형하는 부관참시를 당했는데, 무오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무오사화라고 한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 성종은 중전 윤씨가 질투심이 깊고 옳지 않다 여겨 폐비를 시킨 후 사약까지 먹었는데, 이에 동조했던 이들을 대거 척살한 사건이다. 야사에는 임사홍이 폐비 윤씨의 피가 묻은 적삼을 들고 와서 연산군에게 아뢰자 이에 격분하여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사건을 곰곰이 뜯어보면 사림파에 대한 정치 테러의 성격이 강하다. 중종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자 이에 피곤함을 느낀 중종이 남곤, 심정 등을 앞세워 조광조 세력을 유배 보낸 후 처형했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 사림파는 재기가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기묘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기묘사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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