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는 전부 앙카라는게 있어요. 그걸로 유리창을 깨면 그 방 아이들은 다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민간 선주들 전부가 하나같이 다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섬에 내려갔을 때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갖고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욕을 하는 거죠.
저희가 섬 주민들에게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느 센터나 기관, 사랑의열매니 하는 곳에서 성금을 모아놓은 것으로 섬주민들 배라도 만들어주라고 하고 싶어요. 주민들이 배를 안타요. 섬 사이를 돌아다니는 도항선의 상태가 어떤지 잘 아니까요. 하나같이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요. 그래서 안전법을 만들어야 해요. 언제, 어디서, 어떤 배가 어떻게 될지 정말 대한민국 국민들 전혀 몰라요. 나도 몰랐던 사람이지만. 그래서 제가 세월호에 대한 일이 다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부터 구청·시청·도청 등 기관과예비군 훈련장까지, 어른에서 아이들까지 안전교육을 시키는 일입니다. 배에 대한 사고에 대해선 세월호 유가족만큼 전문가가 없습니다. 아무리 뒤져봐도 해군도 아니고, 해경도 아니고, 앞으로 배에서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나를 데려갔으면 합니다.
세월호는 전부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왜’라는 물음으로 끝납니다. 왜 한 아이도 살리지 못했을까, 왜 안개 낀 인천항에서 배는 떠났을까, 왜 배는 급선회했을까… 왜 왜 왜. 사람들은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해요. 그런 사람들을 나는 좀 즐기고 싶어요. 나는 왜 그런 사람들을 못 만날까. 많이 만나고 싶어. 당신들 말대로 나 애새끼 팔아서 돈 벌고 싶은데 이 한 글자 왜라는 이 말에 답을 좀 줬으면 좋겠어. 그 답 들은 후에 돈을 벌게. 왜 아직도 아이들이 바닷속에 있는데 안 건지냐고 묻고 싶어.
JTBC 〈뉴스9〉은 수현이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동영상 중 하나를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침몰 당시 세월호 내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지러운 화면 속에서도 아이들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두려움이 들이닥쳤을 상황이건만, 아이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엄마 아빠를 찾으면서도 선생님을 걱정할 줄 알았고, 옆 친구에게는 선뜻 구명조끼를 양보했다. 배가 점차 기울어가긴 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닌 듯 싶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배에서 탈출할 만한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연이어 울려퍼진 안내방송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승객들을 내팽개친 채 도망간 선장의 지시는 동영상이 끝날 때까지도 계속됐다. 아이들은 15분 동안 여전히 제자리에 묶여 있었다. 우리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이 미증유의 참사가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말은 품어내지 못하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누군가에 관한 기억이 그렇다. 내뱉자마자 사그라지는 이야기 속에서 기억은 쉬이 흩날린다. 음절과 음절, 어절과 어절이 끊고 매조지는 동안에도 흔적은 조금씩 희미해진다. 결국 말은 쌓여갈수록, 기억되는 이를 그만큼 가라앉힌다. 애당초 기억은 온전하지도 않다. 바람, 감정, 판단은 매순간 기억하는 이의 머릿속을 마름질한다. 그 와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 것과 기억하면 안 된다고 믿는 것이 엇갈린다. 결국 말이 반복되고, 시간이 흐를수록남겨지는 것은 두루뭉술한 잔상뿐이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304명의 억울한 죽음 위에서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하나같이 소원하고 있다. 수현이 아버지 역시 진상규명이 끝마쳐지고, 거기에 따라 개선책들이 만들어진다면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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