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라도 우리 아이가 이렇게 살다 갔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요. 우리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우리 아이도 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였다는 걸, 그런 아이가 세상에 왔다가 갔다는 걸. 저는 그거 하나예요. 사건의 단추가 어디서부터 끼워졌고 어디서 끝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들이 제발 미안해하는마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우리 가족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아, 그래도 미안해하기는 해야죠.
그냥 4월 16일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날 이후 모든 시간이 꿈 같아요. 채원이가 간 다음에는 순간순간이 다 새롭고 처음이니까. 그 처음을 시작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제일 힘든 게 주말이에요. 식구들이 다 함께 있으면 사람이 하나 빠진 상황을 어쩌질 못하겠는 거예요. 어디다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번 추석 때도 죽는 줄 알았어요. 식구들 셋이 아무데도 못 가고 우리끼리 있는데 정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거예요. 그때 폭발할 것 같더라고요. 아직도 실감 안 나요. 우리 애가 어떻게 됐다는 게.
사람들이 나보고 속에 있는 얘기를 하라고,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게 너무 피곤해요. 나 자체로도 힘들고 가족끼리 있는 것도 너무 힘들고… 트라우마라는 뜻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공포감이 떠나질 않아요. 나가서 사람들 만나면 웃으면서 얘기하기도 하는데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 두려움이란… 내일 일이 너무 무서워요. 작은애가 하다못해 자전거를 타고 나가도 너무 무섭고. 내가 알던 국가라는 게 이런 건지도 몰랐고. 내가 이렇게까지 세상을 모르고 살았구나. 영화 속세상만 앞서가지, 진도에서 일어난 일은 정말 미개한 수준이고. 내가 그 속에 끼어 있는 것도 너무 힘들고…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관계가 부담스럽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또 번민이 너무 많아지고. 주체가 안 되는 생각들에… 불구가 된 것 같아요. 생각하는 것에서도 불구, 판단하는 것에서도 불구, 결단하는 것에서도 불구.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가 없어, 겁이 나서. 윤일병 사건 같은 사회문제가 터지면 다 내가 겪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 데로도 나아갈 수가 없어요.
천주교에서는 연도(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잖아요. 근데 내가 내 아이를 위한 연도를 할지는 정말 몰랐거든요. 누가 이렇게 짧게 왔다 갈지 생각을 했겠어요. 솔직히 애 장례 치를 때는 감정이 없었어요. 실감도 안 나고 그저 멍한 느낌. 우리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켜주지 못해서, 여기 안산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동안 나한테 와주어서,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그뒤부터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죠. 부모로서 작은아이 곁에도 있어줘야 하니까 살기는 살아야죠. 근데 남은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시간이 빨리 가서 이 삶이 정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