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기독교 - 완결편 데이비드 웰스 4부작 시리즈
데이비드 웰스 지음, 홍병룡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데이비드 웰스의 4부작인 '신학실종',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완결판이 나왔다! 4부작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단 한 권도 끝까지 읽지를 못했다. 내가 읽기에는 아직 나의 지식이 너무나 많이 부족하여 매우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어서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손에 들었다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던 차에 4부작의 완결판이 나와서 얼른 구입 했다. 우스운 얘기지만 읽든 안 읽든 세트는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도 완결판이라 하니 왠지 이 책을 먼저 읽으면 4부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주문하여 집에 책이 도착하기 무섭게 첫 장을 펼쳐들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 '용기있는 기독교'는 한번도 내려놓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책도 4부작과 마찬가지로 내게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4부작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읽었다. 비교적 말이다. 그리고 책 디자인 세련되고, 너무나 예뻐서 내려놓고 싶어도 자꾸만 나를 유혹해서 결코 내려놓을 수 없었다. 


 
 본문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복음주의의 세 진영', 2장은 '기독교를 할인 팬매하는 마케팅 교회', 3장은 '진리', 그리고 '하나님', '자아', '그리스도', '교회' 순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4부작을 압축, 보완 하였기에 내용이 빡빡할 거 같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역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다면 본문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 책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책들을 몇 권 읽었기에 그나마 수월하게 읽었지 준비가 전혀 없었다면 이 책도 상당히 헤매며 읽었을 것이다. - 더욱이 이 책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미국의 상황이기에 - 우리가 미국 교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어 상당부분 이해는 되지만 - 다루고 있는 문화적, 시대적 차이 등으로 인해 배경지식이 없다면 거리감이 얼만큼 느껴질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인 데이비드 웰스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단순히 드러난 현상만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이유와 깊이 이어진 근원까지 캐내는 그의 능력을 보면서 상황을 이렇게까지 꿰뚫어 보는 혜안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연구하며 책을 읽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도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부러움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비록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미국 교회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본으로 삶고 닮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그들의 문제와 비슷한 문제가 우리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어 이 책을 읽으며 - 우리의 문제가 보여 -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미국에는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지성인이 있다는 데에 부러움을 느꼈다. 데이비드 웰스와 비슷한 문제를 다루며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존 맥아더 목사 등 미국 교회에는 자성과 변혁을 촉구하는 리더들이 있어 비록 혼란을 겪고 있지만 계속 발전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우리에게는 목소리를 내야 할 교계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너무나 작게 내고 있어 혼란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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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있을까?
존 벤톤 / 목회자료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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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옥이 정말로 존재할까?"
 
 기독교인이라면 지옥의 존재를 분명히 믿으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거두기로 하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정말 사랑이 많으신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으니 더 이상 이야기 할 거리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은 어떨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옥에 보내실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 진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분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실까? 그러고도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과 원망을 품기에 앞서 문제의 초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을까?" 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실까?", "왜 보내실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묻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그러면 책의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논쟁의 주제', '하나님은 왜 화를 내시는가?'. '형별에 관한 연대의 사상들', '지옥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죄가 그렇게 심각한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이다.
 
 1장 '논쟁의 주제'에서는 제목과 같이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이 책, 논쟁의 주제임을 밝힌다.
 2장 '하나님은 왜 화를 내시는가?'에서는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음, 2. 하나님의 생활 계획, 3.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4. 하나님의 심판, 5. 인간의 죄라는 일련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이유를 밝힌다.
 3장 '형벌에 관한 현대의 사상들'에서는 형벌에 관한 현대 서구의 사상과 그것이 기독교적 형벌의 개념을 어떻게 거부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4장 '지옥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는 성경 말씀에 나타난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묘사를 살펴본다.
 5장 '죄가 그렇기 심각한가?'에서는 구약에 나타난 사례와 기다 예증을 들어가며 죄가 왜 심각한 것인지와 그것의 결과 -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 등을 이야기 한다.
 마지막 6장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가?'에서는 앞장에서 살펴본 내용에도 불구하고 제기되는 반론과 죄를 짓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살펴본다.
 
 비록 전체 페이지는 96페이지로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내용은 상당히 좋다. 마치 유명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용으 짧기에 필요한 말, 중요한 핵심만 담겨 있기 때문에 매우 담백하다. 최초의 질문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하나님은 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실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이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아파하신다. 그런 인간을 벌하시기 위해 지옥에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까닭에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위에 달려 죽게 하셨다. 지옥에 보내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애초에 인간이 죄를 짓지 않게 하시면 되지 않았는가? 지옥을 만드시지 않았으면 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하나님의 모든 일은 인간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권자의 괜한 장난 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겹게 들은 말이고, 지겹게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피조물인 까닭에 창조주를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그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었다면 그건 우리가 그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와 같아질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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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 없는 삶
조이스 마이어 지음, 김애정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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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연 태어나서 다른 누군가와 한 번도 다투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도 (단어적 의미에서 봤을 때) 다른 사람들과 다투었다. 신인(神人)이신 그분도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는가? 우리 또한 살며 누군가와 다투었고, 다투고, 다툴 것이다.
 다툼 그 자체는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툼으로 인해 우리는 성장한다. 그렇게 보면 다툼이 아주 쓸모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다툼의 결과는 영원한 아픔으로 남든가, 치유되어 성장으로 이어진다. 

 다툼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내 의견이나 행동방식 등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상대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문제이다. 내 것들이 한치의 오류도 없는 절대 진리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상대의 것들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 치부하는 것이 잘못이다. 여기에 감정이 개입되면 문제는 심각해 진다. 물론 상대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이성적으로 지혜롭게 대응한다면 다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다툼의 원인을 기독교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대한 대적, 즉 사단과 그 하위 마귀들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적 마귀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베전 5:8)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것에 대한 대항이 실패하거나 꺠어있지 못하면 마침내 다른 사람과 다투게 되는 것이다.  
 다툼의 원인이 어쨌든 그것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우리의 영혼에 상처를 낸다. 다툼을 처음부터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 발생 했다면 빨리 마무리 짓고, 상처가 치유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 기독교 서적 베스트 셀러 작가인 조이스 마이어(Joyce Meyer)는 다툼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그녀는 

 "사탄은 신자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하며 그들을 현혹하는데, 이런 일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부족하게 하거나 알고 있는 지식을 적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일어난다." 

고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다툼은 "사탄이 신자들을 현혹할 때 그것에 넘어가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다툼을 - 서문에 나와 있듯이 - 인식하는 법을 1부에서 가르치고, 2부에서는 곤란에 빠진 관계를 치유하는 법을 찾아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삶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하게 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부록에서는 각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의 내용은 뛰어난 작가답게 이해하기 쉽다. 우리에게 다툼을 인식하는 법과 그것에 대비하는 법 등을 잘 가르친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성경 말씀을 인용할 때 그 문장 사이사이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위적으로 여러 단어를 추가 했다는 것이다. 비록 독자의 이해를 돕고,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좀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한 처사이지만 자칫 말씀을 왜곡할 수도 있음을 -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 유념하고, 앞으로는 말씀에 다른 말을 가감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개인적 바람을 제외한다면 다툼에 대해 고찰해보고 배울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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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지음 / 김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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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00년을 넘어 20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 한국 교회는 100년 사이에 하나님의 축복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현재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교회가 한국 교회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10위 안에 한국 교회가 여럿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양적 성장일 뿐 질적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애국적,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동족상잔의 비극 후에 폐허 위에서 많은 이들이 믿음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이들에는 교회의 질적 성장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 물론 위의 모든 예들에 교회의 부정적 모습도 있으나 논의의 대상이 아니므로 이야기에서 제외한다. - 그러나 현재의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나라를 위하기는 커녕 개교회 중심주의에 빠져 나라와 민족, 즉 타인은 등한시 한 채 제 살기에 바쁘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양 승리주의에 도취되어 있다. 예수가 가르친 겸손과 섬김은 온데간데 없고, 교만과 지배만이 존재한다. - 음지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소리 없이 청지기 삶, 제자의 도를 충실히 지키고 있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나 그들의 존재와 힘은 미미하고, 미약하게만 느껴진다.

 교리주의에 물든 한국 교회는 실천이 사라지고, 이론만 남게 되었다. 교리에는 박식하나 실천에는 무지하다. 교리만 존재하는 교회는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교리는 없고, 실천만 있는 교회는 정체성과 본질을 상실하게 된다. 교리와 실천은 항상 공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만과 독선, 무지와 허위, 그리고 맹목 등만 남게 된다.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이 그러하다. 진리는 잃은 채 허상만 쫓고 있다. 그것이 진리인 줄 착각하고 말이다. 그러한 한국 교회에 일침을 가하는 이가 있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의 저자 '한완상'은 교회의 모범이 되신 예수,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한국 교회에 통렬한 외침을 발한다. 예수가 보인 겸손과 사랑의 실천, 그의 실제 삶의 모습은 배격한 채 '제 갈 길'로 가는 한국 교회에 역사적 예수의 삶을 회복 할 것을 종용한다. 예수의 모습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교회의 부끄러움을 매섭게 꼬집는다. 

 본문은 '팔이 밖으로 굽으시는 하나님', '아, 기독교인임이 부끄럽구나',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신앙, 그 감동의 역설', '우아한 패배, 참 평화의 길' 이렇게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분석하고,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와 주장을 잘 전개한다. 읽는 동안 계속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자의 일침에 어찌나 따끔한지 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글이 교계 지도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평신도에 의해 나온 것에 참으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300페이지라는 꽤 많은 양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지루하지 않아 읽기가 쉬웠다. 그러나 외줄타기라도 하듯 보기에 아슬아슬한 내용들이 있어 기독교 교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읽으면 좋은 영향만 받는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주장에 민중신학적, 여성신학적 요소가 조금 눈에 띄었다. - 그 신학들과 그것의 언급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만 강조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 그리고 고(故) 문익환 목사에 대한 언급과 근본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는 것으로부터, 책 전반에 흐르는 저자의 주장에서 그의 신학 사상이 어떠할지 - 이 책 한 권으로 저자를 온전히 알 수 없고,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지만 - 아주 조금 짐작 되었다. 무엇보다 예수의 실상을 지나치게 사회학적으로 해석 했다는 점이 가장 불안하게 보였다. 교리적 예수는 전부 거둬내고, 역사적 예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그렇다고 저자가 교리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교리가 제거된, 지나치게 편중된 시각이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자에게는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것이다. - 때문에 구원자 예수는 사라지고, 단지 민중 지도자 예수만 남아 있다. 그러한 예수의 생각과 행위의 해석에서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하기도 했으나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해석도 있어 과연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상에서 이야기 한 것들을 신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립하지 못한 이가 접했을 때 어떠한 생각을 할지 염려가 되었다.  

 저자의 주장은 좋으나 내용과 전개 방법이 다소 아쉬움이 드는 책이다. 어쨌든 한국 교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몇 안 되는 책이기에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서 목회자들도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는 왜 발생하게 되었을까? 첫 째는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 "예수 따르라!"를 외치지 않고, 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만 한 목회자들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이제 머리가 많이 컸다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신앙생활만을 고집하는 교인들의 잘못도 크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모두의 책임이지 어느 한 쪽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한국 교회는 제 살 깎아 먹기 성장을 하고 있다. 외형은 비대해지나 속은 계속 썪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을 닫고 있는 유럽 교회, 다원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는 미국 교회를 닮아가고 있다. 하늘에 닫고자 하는 열망으로 무너질 탑을 쌓다 흩어진 저 먼 조상들과 같아지고 있다. 겸손은 사라지고, 목 곧은 백성이 되어가고 있다. 실천은 사라지고, 즐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돌이키기 가장 좋을 때이다. 하나님이 참고 기다려 주시는 지금이야 말로 회개의 찬스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덩이가 언제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질지 걱정이다. 의인이 오십인만 있어도, 사십오 명만, 사십 명, 삼십 명, 이십 명, 아니 단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던 하나님. 과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열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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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러독스 -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미디어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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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가 잘 아는 개념이다. 시간이란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그것은 단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개념인지와 같은 철학적 그리고 과학적인 존재론적 고찰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시간은 우리 피부와 맞닿아 있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매우 현실적인 개념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간 관리가 필수적이다. '시간 관리' 하면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 ~ 1790, 미국의 정치가, 외교관, 과학자, 저술가)이다. 그는 '절제', '침묵', '규율',' 결단', '절약' 등 13가지 신조를 자신의 수첩에 적고 항상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그렇게 그는 자기 관리와 시간 관리에 철저하였고, 후에 그의 모습과 이름을 딴 자기관리 플래너인 '프랭클린 플래너'가 탄생 되기도 하였다. 

 왜 시간 관리를 해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세 전후이다. 이마저도 현대 과학의 성과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5~60세가 한계 수명이었다. 그러한 인간의 수명의 한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데에도 한계를 가져왔다. 기껏해야 80년을 사는 동안 무얼 얼마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욕심이 한도 끝도 없는 이들의 경우에 말이다.

 시간 관리는 시간에 대해 어떠한 태도, 즉 어떠한 시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방법이 달라진다. 그러면 시간관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시간관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과거지향적', '현재지향적', '미래지향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는 '과거긍정적', '과거부정적', '현재쾌락적', '현재숙명론적', '미래지향적',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으로 나눈다. 각각의 시간관 중 어떠한 시간관이 가장 좋을까? 자, 두 저자가 어떠한 답을 제시하는지 내용속으로 살짝 들어가보자. 

 이 책은 크게 두 부분(1. 새로운 시간 과학 : 1장 ~ 6장, 2. 가치 있는 시간 만들기 : 7장 ~ 12장)으로 나뉘어 있고,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2장에서는 시간관에 대해 살펴 본다. 그리고 3장에서 6장까지는 앞에서 이야기한 6가지 시간관의 장단점 등 각각의 시간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7장에서는 시간과 육체, 그리고 건강의 관계, 8장에서는 시간과 감각, 즉 돈과의 관계, 9장에서는 사랑과 행복과의 관계, 10장에서는 비즈니스 정치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각 장에서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여러 실험과 이야기들을 예로 들며 시간에 대한 심리와 각각의 시간관의 장단점 등을 균형있게 살펴보고, 시간과 건강, 돈, 사랑, 사업, 정치 등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 책에서 두 저자가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내리는 결론은 간단하다. "가장 좋은 시간관은 없다"이다. 다만 가장 좋은 시간관은 '균형잡힌 시간관'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시간을 만드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고 이야기 하며 마무리 짓는다. 

 두 저자의 말대로 한 가지 시간관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의 내용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각각의 시간관은 장점 뿐만이 아니라 단점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잡힌 시간관을 갖는 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더 쉬운 까닭이다. 모든 것을 취합하는 데는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더 나은 삶,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시간관보다는 균형잡힌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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