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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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본인은 가장 먼저 사교(邪敎)가 떠오른다. 비밀의식을 행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그런 이상한 종교 말이다. 동시에 그것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숨겨져 있는 뭔가를 캐내고 싶게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과학이 놀랍도록 발전한 21세기. 지금의 시대에 신비주의를 논하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과학이 이성과 지성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사고는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거부한다. 신비주의는 그 중 하나이다.

 

 사실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다. 오늘날 알아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에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별 도움이 안 되는 그것에 집중을 하는 것은 시간과 힘 낭비이다.  그럼에도 본인은 신비주의에 관심이 간다.

 

 신비주의는 세상에 대한 다른 이해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 곧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정확한 이해와 정의는 아니지만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노력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신비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우리를 앞서 간 종교와 철학자들 중 8명의 대표를 통해 신비주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종교와 철학사를 추적하여 신비적 주장과 전통을 설명한다. 어느 종교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이해할 수는 있으나 수긍할 수 없는 해석들이 있다. 전통적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넓게 써서 읽으면 흥미로운 지식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긍을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 하였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각력과 이해력, 그리고 설명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어떤 것들은 도저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다방면으로의 노력은 칭찬 할만 하다. 그것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이해를 통한 인간 삶의 근원을 캐고, 삶의 목적을 알아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인간 삶의 지속성으로 연결 된다. 그러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해의 노력은 좋은 것이지만 신비적 탐색이나 이해는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이해는 좋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 인간의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인간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 삶의 지속성을 헤친다.

 

 항상 전통적인 것과 주류인 것이 참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과 비주류인 것 중에도 참인 것과 좋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이고 주류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더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이 인간을 더 이롭게 하는지는 역사가 판단 할 문제이긴 하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역사는 승자에 의해 씌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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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 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박현주 지음 / 검둥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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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폭력이다. 누구나 맞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맞으면 아프기에 누구나 폭력을 무서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비폭력이다. 그것은 때리고 싶은 욕망과 맞는 두려움을 모두 이겨낼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최초 폭력자에 꼬투리만 준다. 하지만 비폭력은 실행하기 어렵지만 매우 현명한 방법이다. 도리어 최초 폭력자의 꼬투리를 잡는다.  

 역사상 가장 눈에 띄고 두고두고 화제가 되는, 대표적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것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에 의한 그 운동은 폭력자에 비폭력과 무저항으로 일관한 운동이다. 간디의 그것은 종교 갈등 해결과 인도 신분제 철폐, 그리고 인도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고, 마틴 목사의 그것은 미국 흑인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공권력에 아무런 저항 없이 있는 그대로 맞섰다. 참으로 놀랍고도 무서운 저항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둘 모두 암살 되었기 때문이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대명사는 가히 그린피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를 반대하고, 자연수호 운동을 펼치는 그들은 국제적 단체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파괴에 비폭력으로 맞서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에 죽어가는 수많은 동식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 많은 결실을 맺었고, 그들은 계속 노력하고 있다. 

 누구나 바른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바른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굉장히 큰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말에 누군가 폭력으로 맞선다면 더더욱 말을 지키기 어렵다. 따라서 바른 말을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어떠한 상황에도 비폭력으로 그것들을 일관하는 이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행동하는 양심' 이 책에는 그러한 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린피스, 간디, 프리덤 라이더스, 치코 멘데스 등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지만 큰 비폭력 직접행동을 한 양심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무기력하게 보이는 비폭력 행동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된다. 미련해 보이는 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큰지 느끼게 된다.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힘이 있는 행동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힘이 다가 아님을 보게 된다. 

 고대, 중세, 근대에는 양심의 행동은 죄악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잘못된 힘에 맞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다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분명히 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것에 맞서 서슴 없이 용기를 발휘한다. 보다 평화로운 세상, 옳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폭력으로 세상을 망가뜨리는 이들의 시도는 끊임이 없다. 세상을 계속, 그리고 더욱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비폭력으로 세상을 지키는 이들의 노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들은 폭력에 더욱 비폭력으로 맞선다. 약해 보이지만 더욱 큰 양심의 행동으로 세상을 지킨다. 그들의 목소리가 있는 한, 그들의 양심의 용기가 유지되는 한 세상은 희망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양심의 행동이 되어야 한다. 나도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강건너 불 구경하듯 하면 결국 비폭력자들은 힘을 잃고, 폭력자에 세상을 내주어 함께 공멸하고 말 것이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양심이 더욱 많아지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그것에 동참해야 한다. 나부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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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을 향한 갈망 - 영분별과 영적성장을 위한 영성훈련 지침서 ㅣ 영성 훈련 시리즈 1
김현배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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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와 디모데서 등 성경 곳곳에 신자들의 영적 성숙에 관한 말이 나온다. 오늘날 교회 생활을 하는 교인 중 영적 성숙, 영적 성장을 갈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모든 교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많은 교인들이 그것을 갈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위해 실질적으로 열심히 훈련과 노력을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라고 물으면 어떠한 답이 나올까? 아마 '별로'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정확한 통계에 의한 추산이 아니라 순전히 감에 의한 추산이긴 하지만 얼추 맞는 답일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교인들이 영적 성숙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면 교인 수 천만을 자랑하는 한국 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적 성장은 크리스천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 없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린 아이가 제 부모를 봉양한다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모습이다. 아이가 어찌 부모를 섬긴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을 만한 지적, 선체적 능력이 전혀 없기에 그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와 같이 영적으로 미숙한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기에 온전한 섬김이 불가능하다. 더 나은 섬김, 온전한 섬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 반드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성경에 그에 대한 체계적인 방법이 명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위해 노력한 많은 선배들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시중에 영적 성장에 관한 책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추상적인 말들만 늘어 놓고 있고, 실질적이며 체계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책은 상당히 부족하거나 과장하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방법론을 다루는 책은 흔하지 않고, 누구도 그것을 제시해 주고 있지 않다. 그것은 방법을 제시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한 검증이 없는 방법론은 있으나 마나한 것, 매우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영적성장을 향한 갈망'이라는 이 책은 상당히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영분별을 다루는 책이다. 영분별을 하여 대적들에 대항하는 능력을 기르고, 마침대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기에 이 책은 영적 성장을 돕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영적 성장을 매우 갈망하기에 그것을 위한 방법을 찾아 다녔지만 본인의 노력 부족인지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보내주신 지인과 이 책을 통해 영적 성장을 향한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영분별 방법과 대적들에 대적하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상당히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따른다면 그 능력을 제대로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저자 본인이 직접 경험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는 교인들과 그 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방법이기에 검증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믿을만 하고, 상당히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그에 대한 교과서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단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교과서는 전문서적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이다. 알아야 할 부분만 짚고 넘어가는 것이기에 더 자세한 부분은 참고서를 참고하거나 자신이 직접 실천해가며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 보완은 이 책의 저자나 자신의 목회자 등에게 받으면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참고하되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기만 하고, 연습과 행함이 없으면 결코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절대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는 것이 성경을 많이 읽고,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라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연습을 하나마나 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기 좋으라고 하는 자기 만족일 뿐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진정한 영적 성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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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죄악사 -상
조찬선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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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당연히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지음 받고 종교가 생긴 것이지, 종교가 생기고 인간이 지음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을 따름으로 그것이 종교가 된 것이지, 종교가 만들어지고 인간이 그것을 따르게 된 게 아닌 까닭이다. 

 세계 3대 종교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이다. 그리고 힌두교와 그 외에 소수 종교가 세계에 분포 되어 있다. 이들 종교 중 유독 눈에 띄는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일 것이다. 두 종교가 여러 종교 중 가장 많은 신자 수를 자랑하고 있고, 서로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목과 대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종교는 내부적으로 여러 파로 나뉘어 있어 그들 간에도 오랜 기간 반목과 대립을 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역사가 오랜 만큼 인류 문화와 기술 등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또한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대립이자 병폐는 단연 십자군 전쟁 일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2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루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약탈을 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인간의 씻지 못할 과오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는 근현대사를 주름잡는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로 인해 문학과 문화에 발전을 이루었다. 기독교로 인해 노예해방, 노예제 폐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의 노예제는 기독교로 인해 발생한 것이니 그리 칭찬 할 만 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기독교는 인류 문명에 득과 실을 가져 왔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면만을 본다면 장점만 있는 종교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 책은 기독교의 2천년 역사 동안 기독교가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을 고발한다. 기독교는 선의 종교라 스스로 부르짖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추악한 과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것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의 그러한 일면을 모두에게 고발한다. 

 먼저 기독교 내에 만연된 잘못된 문제들을 지적한다. 성직자의 잘못 등을 고발한다. 그리고 선교 등으로 인한 기독교의 외적 잘못을 지적한다. 이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독교로 인해 발생한 큰 사건들을 낱낱이 파헤치며 그 죄악상을 드러낸다.  

 이 책을 보면 기독교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생생히 알게 된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들이 얼마나 크고 끔찍한지 비록 활자로 보지만 눈으로 보는 듯 생생히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끔찍한 죄들을 저지를 수 있을까? 아니 인간은 죄의 유혹에 약하기에 그러한 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죄를 그리도 태연하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참으로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기독교의 죄악을 고발하기만 하려는 책이 아니다. "보아라, 선의 종교라 자칭하는 네가(기독교가) 이래도 선의 종교인가? 너는(기독교는) 위선의 종교이다!" 라고 꾸짖는 것을 목적으로 출간된 게 아니다. 기독교의 죄악을 고발하여 잘못을 꾸짖고, 그것을 통해 사죄와 용서를 얻어내기 위해 출간 되었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난 과거의 과오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을 담고 출간 되었다. 앞으로 모든 종교가 합심하여 인류 평화를 이루길 바라며 출간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을 보고 단순히 분노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 책의 목적에서 한참 빚나간 것이고, 평화와는 또다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의도로 출간 되었지만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목사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보면 그는 결코 목사가 아니다. 그는 확실히 삯꾼이요, 거짓 교사이다. 왜냐 하면 그의 구원관이 심각하게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구원관은 기독교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만이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 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아니다" - 상권 84p. 

라고 말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수차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다. 그는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 목사가 아니다. 그는 명백히 종교 다원주의자이다. 그가 말하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공영은 단순히 휴머니즘적인 주장이지 기독교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도 인류의 평화를 원한다. 다만 그가 목사라면 목사다운, 목사의 관점에서 주장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비롯해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가 자꾸만 죄악을 범하는 이유가 무언지 아는가?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독교에 속한 자들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자와 같이 자기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분명히 선의 종교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 세상에 전쟁과 기근이 그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다만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당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기독교로 인한 인류의 혼란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분께 온전히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신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면 인류에 혼란이 멎을까? 그렇지 않다. 기독교 신자가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혼란이 발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참 구원의 종교로써 이 땅에 평화 곧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전도하는 것이다. 온전히 믿는 신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혼란이 멎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의 모든 신자들이 온전한 신자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온 종교가 저자의 주장대로 함께 공존공영을 위해 애써야 한다. 어느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들은 참이 아니다. 오직 기독교의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만이 참이다. 다른 종교의 구원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기독교의 방법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명심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배타성을 버리고 말이다. 마음은 고자세 그러나 태도는 저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자신을 교만하고, 우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키되 마음을 넓게 가지라는 말이다. 굽신거리라는 말이 아니다. 관용과 섬김을 보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것을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간과했다. 아니 무시했다. 그의 눈이 먼 까닭일까?  

 기독교의 구원은 이 땅에서의 평화가 아니다. 물론 이 세상에 평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기독교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다른 세상에서 영원한 안식, 진정한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구원관은 그것을 무시한 채 단순히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그친다. 저자가 주장하는 구원관을 보면 내세적 구원은 전혀 없고, 오로지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그친다. 그것은 기독교의 구원관이 아니다. 기독교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기독교의 진정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확언하건데 그는 목사가 아니다. 단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선생일 뿐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이 못내 아쉽고, 저자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누구나 참으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도 해당 된다. 기독교에도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지난날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이 그것이다. 그것이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은 단순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사과와 용서를 빌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말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이 된다. 그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잘못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잘못인 것이다.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기독교의 잘못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나님께 한 발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특징은 회개이다. 지금과 같이 그것을 무시한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가 그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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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죄악사 -하
조찬선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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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당연히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지음 받고 종교가 생긴 것이지, 종교가 생기고 인간이 지음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을 따름으로 그것이 종교가 된 것이지, 종교가 만들어지고 인간이 그것을 따르게 된 게 아닌 까닭이다. 

 세계 3대 종교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이다. 그리고 힌두교와 그 외에 소수 종교가 세계에 분포 되어 있다. 이들 종교 중 유독 눈에 띄는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일 것이다. 두 종교가 여러 종교 중 가장 많은 신자 수를 자랑하고 있고, 서로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목과 대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종교는 내부적으로 여러 파로 나뉘어 있어 그들 간에도 오랜 기간 반목과 대립을 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역사가 오랜 만큼 인류 문화와 기술 등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또한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대립이자 병폐는 단연 십자군 전쟁 일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2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루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약탈을 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인간의 씻지 못할 과오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는 근현대사를 주름잡는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로 인해 문학과 문화에 발전을 이루었다. 기독교로 인해 노예해방, 노예제 폐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의 노예제는 기독교로 인해 발생한 것이니 그리 칭찬 할 만 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기독교는 인류 문명에 득과 실을 가져 왔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면만을 본다면 장점만 있는 종교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 책은 기독교의 2천년 역사 동안 기독교가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을 고발한다. 기독교는 선의 종교라 스스로 부르짖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추악한 과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것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의 그러한 일면을 모두에게 고발한다. 

 먼저 기독교 내에 만연된 잘못된 문제들을 지적한다. 성직자의 잘못 등을 고발한다. 그리고 선교 등으로 인한 기독교의 외적 잘못을 지적한다. 이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독교로 인해 발생한 큰 사건들을 낱낱이 파헤치며 그 죄악상을 드러낸다.  

 이 책을 보면 기독교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생생히 알게 된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들이 얼마나 크고 끔찍한지 비록 활자로 보지만 눈으로 보는 듯 생생히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끔찍한 죄들을 저지를 수 있을까? 아니 인간은 죄의 유혹에 약하기에 그러한 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죄를 그리도 태연하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참으로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기독교의 죄악을 고발하기만 하려는 책이 아니다. "보아라, 선의 종교라 자칭하는 네가(기독교가) 이래도 선의 종교인가? 너는(기독교는) 위선의 종교이다!" 라고 꾸짖는 것을 목적으로 출간된 게 아니다. 기독교의 죄악을 고발하여 잘못을 꾸짖고, 그것을 통해 사죄와 용서를 얻어내기 위해 출간 되었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난 과거의 과오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을 담고 출간 되었다. 앞으로 모든 종교가 합심하여 인류 평화를 이루길 바라며 출간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을 보고 단순히 분노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 책의 목적에서 한참 빚나간 것이고, 평화와는 또다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의도로 출간 되었지만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목사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보면 그는 결코 목사가 아니다. 그는 확실히 삯꾼이요, 거짓 교사이다. 왜냐 하면 그의 구원관이 심각하게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구원관은 기독교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만이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 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아니다" - 상권 84p. 

라고 말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수차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다. 그는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 목사가 아니다. 그는 명백히 종교 다원주의자이다. 그가 말하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공영은 단순히 휴머니즘적인 주장이지 기독교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도 인류의 평화를 원한다. 다만 그가 목사라면 목사다운, 목사의 관점에서 주장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비롯해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가 자꾸만 죄악을 범하는 이유가 무언지 아는가?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독교에 속한 자들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자와 같이 자기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분명히 선의 종교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 세상에 전쟁과 기근이 그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다만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당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기독교로 인한 인류의 혼란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분께 온전히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신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면 인류에 혼란이 멎을까? 그렇지 않다. 기독교 신자가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혼란이 발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참 구원의 종교로써 이 땅에 평화 곧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전도하는 것이다. 온전히 믿는 신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혼란이 멎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의 모든 신자들이 온전한 신자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온 종교가 저자의 주장대로 함께 공존공영을 위해 애써야 한다. 어느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들은 참이 아니다. 오직 기독교의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만이 참이다. 다른 종교의 구원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기독교의 방법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명심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배타성을 버리고 말이다. 마음은 고자세 그러나 태도는 저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자신을 교만하고, 우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키되 마음을 넓게 가지라는 말이다. 굽신거리라는 말이 아니다. 관용과 섬김을 보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것을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간과했다. 아니 무시했다. 그의 눈이 먼 까닭일까?  

 기독교의 구원은 이 땅에서의 평화가 아니다. 물론 이 세상에 평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기독교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다른 세상에서 영원한 안식, 진정한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구원관은 그것을 무시한 채 단순히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그친다. 저자가 주장하는 구원관을 보면 내세적 구원은 전혀 없고, 오로지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그친다. 그것은 기독교의 구원관이 아니다. 기독교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기독교의 진정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확언하건데 그는 목사가 아니다. 단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선생일 뿐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이 못내 아쉽고, 저자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누구나 참으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도 해당 된다. 기독교에도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지난날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이 그것이다. 그것이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은 단순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사과와 용서를 빌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말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이 된다. 그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잘못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잘못인 것이다.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기독교의 잘못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나님께 한 발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특징은 회개이다. 지금과 같이 그것을 무시한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가 그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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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BONBLUE 2010-03-2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교리는 인간의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다고 한다.
그럼 질문1, 캐톨릭과 불교의 교류는 케톨릭이 이단이란 말인가?
질문 2, 기독교가 전래되기이전의 이 땅의 조선민중 아니 우리들의 선조는 모두 구원받지 못한 인종들이란 말인가?

질문3, 이세상에 알지도 못하였기에, 전래되지도 못하였기에 원초적으로 예수님을 믿을래야 믿을 수도 없었던 민중들을 하나님이 구원에서 제외시켰다면, 그런 하나님은 쫌팽이하나님???아니면 인류가 공통으로 합심하여 버려도 좋을 무가치한 하나님이 아닐까?
질문4,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이고 구원받지 못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질문4.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명제로 저자는 목사가 아니라고 단정함에는 개신교의 교리가 심층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교리는 누가 만든 것인가? 인간이 만든 교리로 하나님의 마음을 재단한다? 구원의 다원론을 인정한 캐톨릭과 부정한 개신교는 분명 상호 모순이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교리가 옳다는 주장은 어디에 그 존재근거를 두는가?
충언1. 인간의 찢어진 눈깔구멍으로 하나님을 재단치 말라.
충언2, 그대가 밎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쓰레기통에 쳐 박아도 쓰레기 통이 아깝다.
충언 3, 구원은 생전의 구원인가? 사후의 구원인가? 죽어서 천당이라면 이세상은 지옥이란 것이 당연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진리는 단하나...온 인류가 하나님의 천국에 하루라도 빨리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전인류 동시에 지금 당장 집단자살뿐이다..그렇다면 예수의 이웃사랑은 무슨 개망발인가???

쩐디닥 2010-03-23 19:26   좋아요 0 | URL
자문자답 하시는 걸 보니, 쓰신 글을 보니 서로 뜻은 통하지 않고, 불필요한 논쟁만 오갈 것 같기에 아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날마다새로운 2010-11-0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는 보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기독교를 논하고 있군요.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적사건 어쩌고 하면서 늘어 놓으면 진짜인줄알고 혹해서 동조하게 되지만, 정말 한심한 사람이란 생각밖에 안드는군요.역사적 사건과 배경의 참모습은 덮어둔채 알량한 지식만 가지고 기독교를 논하다니

쩐디닥 2010-11-09 12:59   좋아요 0 | URL
다른 내용은 그럴 수 있다고해도 목사라는 이가 구원에 관한 진리를 부정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혀가 내둘러지더군요. 목사가 아닌 이가 쓴 책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겠지만 목사라는 이가 어떻게 기독교 구원의 진리를 부정하고, 다르게 말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자유 2015-02-1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티기독인들의 떡밥이 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