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본인은 가장 먼저 사교(邪敎)가 떠오른다. 비밀의식을 행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그런 이상한 종교 말이다. 동시에 그것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숨겨져 있는 뭔가를 캐내고 싶게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과학이 놀랍도록 발전한 21세기. 지금의 시대에 신비주의를 논하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과학이 이성과 지성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사고는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거부한다. 신비주의는 그 중 하나이다.

 

 사실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다. 오늘날 알아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에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별 도움이 안 되는 그것에 집중을 하는 것은 시간과 힘 낭비이다.  그럼에도 본인은 신비주의에 관심이 간다.

 

 신비주의는 세상에 대한 다른 이해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 곧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정확한 이해와 정의는 아니지만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노력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신비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우리를 앞서 간 종교와 철학자들 중 8명의 대표를 통해 신비주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종교와 철학사를 추적하여 신비적 주장과 전통을 설명한다. 어느 종교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이해할 수는 있으나 수긍할 수 없는 해석들이 있다. 전통적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넓게 써서 읽으면 흥미로운 지식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긍을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 하였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각력과 이해력, 그리고 설명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어떤 것들은 도저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다방면으로의 노력은 칭찬 할만 하다. 그것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이해를 통한 인간 삶의 근원을 캐고, 삶의 목적을 알아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인간 삶의 지속성으로 연결 된다. 그러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해의 노력은 좋은 것이지만 신비적 탐색이나 이해는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이해는 좋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 인간의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인간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 삶의 지속성을 헤친다.

 

 항상 전통적인 것과 주류인 것이 참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과 비주류인 것 중에도 참인 것과 좋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이고 주류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더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이 인간을 더 이롭게 하는지는 역사가 판단 할 문제이긴 하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역사는 승자에 의해 씌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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